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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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감정이 너무나 커져있어 '국화와 칼'을 읽기 어려웠다. 책을 읽다가도 불쑥, 잠깐 접어두었다가 표지를 보다가 불쑥, 마음속에서 북한 아나운서처럼 '간악한 쪽바리들이...'하는 생각이 솟아났다. 이 격렬한 반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비이성적인 한국인이기 때문에? 혹은 정치적 선동에 휘둘려서? 백번 양보해 아, 이것이 내 내면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적 성향 때문인가 싶어도,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에 대해 일어나는 혐오는 외부에서부터 비롯된다. 대문 옆 명패에 일본 이름을 붙여놓은 한국 정치인을 볼 때 느끼는 불쾌감과 비슷하다. 니 그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면 내 그카나?

 

 바로 이런 때야말로 일본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 '국화와 칼'이 도움이 될 거라는 시선도 있겠지만 국화와 칼이 가리키는 이 이중성이라는 것이 정말 그들에게 혼재해있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우리가 이면이라 생각하는 어떤 모습들은 본성을 가리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p.25 "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 문장이 그들을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것이 아닐까. 더불어 '거짓말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는 그들 속담처럼 사실이 아닌 것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꾸며내려는 습성도 있을 것이다.

 

 영화 '반딧불이의 묘'나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배우 아야세 하루카가 찍은 '진주만에 흩어진 사람'이라는 우익 다큐 같은 것을 보면 일본인의 이해안가는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은 자신들이 일으켜놓고 오히려 본인들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받은 것처럼 군다. 좀 감상적으로 전쟁 때문에 죽은 가족과 친구가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게 마음 아플 수 있겠다. 그 정도로는 생각해볼 수 있지만, 진짜 피해를 입은 다른 나라에 제대로 사과도 안하고 '전쟁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 어쩌고 하는 태도로 자기 자신의 불행이 대단한 상처인마냥 눈물 흘리는 역겨운 셀프 동정을 보면 여기서 정상인은 어리둥절해진다.

 

 특히 저 다큐에서 한 할머니가 미국인을 보면 얄밉다고 이죽거리며 퇴역군인인 미국인 할아버지에게 진주만 공습 때 무엇을 했냐며 당신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쏴서 살해했냐고 책임을 물을때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마저 아득해지는 어이없음을 경험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일부' 일본인들의 저런 사고와 태도가 가능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추측하려 노력해본다.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돌려주면 안되는 기리문화에 어긋나는 반격을 했기 때문일까. 기리는 정확히 같은 양으로 갚아야 하는데 미국이 "피라미를 도미로 갚"아서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에 피해의식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저 두 영상자료 모두 자신의 귀한 시간을 들여 혈압 올리는데에 낭비하지 않길 바라며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p.223 "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저자가 일본인을 제대로 이해한건가 싶어졌다. 실패는 개인적인 것이니 어쩔 수 없다해도 비방과 배척으로 일본인이 타인을 괴롭히는 일이 얼마나 흔한 일인지 그때는 이지메라는 말을 몰랐던건가 싶어진다. 그 바로 위에 원수에게 똥을 먹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나오는데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원수에게 들키지 않도록 교묘하게 좋은 음식 속에 똥을 넣어 대접하고 상대가 알아차리는지 살폈다. 손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p223 " 는 부분에서 '후쿠시마 산 식재료를 750만의 한국인 관광객이 먹어준다'고 발언한 일본 외무상의 발언이 떠올랐다. "손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손에 들고 지금이 읽기에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가,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일까 하고도 생각했다. 때때로 반일정서가 끓어오르는 사건이 터지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불매운동이라는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은 드물다. 나라가 망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즘의 시류가 반갑다. 이제 시작인데 불매운동은 아직 잘 진행되고 있을까, 장기적으로 참여해서 습관처럼 되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읽으면서 어떤 객관을 찾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들이 가진 음습함에 대해서는 한번 더 짚어보게 된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일본에 대한 분석이 필요치않다. 일본에 대해 몰랐던 서양인들이야 처음 일본이라는 적을 마주하고 이게 대체 뭘까 싶은 당황이 몰려왔겠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명백히 그들에 대해 경험으로 쌓아온 내력이 있으니.

 

 쓰고보니 객관적이지 못한 리뷰를 쓴 것 같아서 아쉽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애국심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어진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태도가 좋지 못한 탓이 더 클수도 있지만, 나의 소견이 아니라 이순님 장군님의 피셜로도 "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 " 라고 하셨으니 대부분 팩트에 기초한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더 차지게 비판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객관성에 있어서는 덜 아쉬운 마음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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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하는 여자들
대니엘 래저린 지음, 김지현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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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을 책들 더미 위에 '반박하는 여자들'이 맨 위로 올려지던날 지나가던 사람이 흘끗 보고 한마디 했다. "반박하는 여자들?" 예상이 가는가? 말꼬리가 미묘히 올라가있었다. 반사적으로 가슴이 선뜩했다. 맨 위에 올려두지 말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짐짓 "왜요?" 하고 물으니 "책 제목이 뭐 그래?" 하고는 가버렸다. 책 제목이나 표지에 페미니즘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가끔 읽을 순서가 되어도 맨 위에 올려놓지 말까 하는 고민을 하곤 했다. 페미니즘에 따라붙는 혐오와 공격성이 옮아붙을까 싶었던 것이다. 평소에 놓여진 책들을 슬쩍 훑는 일들이 없진 않았지만, 제목만으로도 말끝이 올라간 한마디를 들었다. 여자들이 왜 반박을 해서는.

 

 책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 건조하다. 책의 제목을 보고 무서운 페미니즘 전사들이 잔뜩 흥분한채로 고양된 감정을 드러내며 피해의식에 가득한 얘기를 쏘아낼 것이라 생각했을 사람들에게 유감이다. 평범한 소설들로 채워진 소설집일뿐이다.

 

 " 장 뤼크는 미국인은 아니다. 아마도 유부남인 듯하고 나이는 나보다 확실히 많다. 내 평생 처음으로 혼자서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난 다음 날, 그는 내게 커피를 사주고는 지금쯤 고향에서 샘이 바람피우고 있을 거라고 우긴다. 그는 내가 어리고 순진하며 내 미래는 그가 말하는 진실 그대로 될 거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와 네 시간을 같이 보내고 나서야 내가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그냥 일어나서 나가버리면 된다는 걸 깨닫는다. p.134 "

 

 이 책의 재밌는 점은 이런 순간이다. 어디서 마주쳤던 것 같은 사람과 상황들에 있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리고 예의발랐을때 나에게도 자신이 옳고 삶은 이런 것이라며 개똥철학을 늘어놓으려 드는 꼰대들과의 대면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땠었나, 너무 많은 시간을 예의차리며 그 앞에 앉아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일어나서 나가버리면 된다는' 깨달음이 더 빨리 왔었다면 좋았을텐데.

 

 다른 단편들보다 '풍경 27'이 마음에 들었다. '반박'도 실제인지 아닌지 불분명하게 보인다는 점이 괜찮았지만 틴에이저의 시선이라 좀 거칠었다. 하지만 '풍경 27'은 금방이라도 무슨 사건이 생길 것 같은 위태로움이 잘 느껴지는 분위기도 좋았고, 리차드 기어가 나온 '언페이스풀'이라는 영화가 떠오르는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언페이스풀'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싶고, 혹시 안봤다면 그냥 '언페이스풀'을 보면 될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영화는 재밌으니까.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던 영화라 '풍경 27'을 읽으며 '언페이스풀'이 연상되는게 좋았다. 생각보다 짧게 마무리되어서 아쉬웠지만 읽는동안 그래서, 그 다음은? 하고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 그때는 웨슬리를 임신한 지 5개월째였는데, 그 사실을 쉽사리 잊어버렸다. 모든 일의 주도권은 그녀의 몸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녀가 아기를 원하는지, 아기를 잘 돌볼 것인지, 사랑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아기는 그녀의 안에서 자라다가 태어날 테고, 그 과정에서 둘 중 하나는 - 특히 그녀가 - 죽을지도 모르며, 그녀 몸의 모든 것이 아기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살리고 치유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다. 그래야 다시 임신할 수 있을 테니까. p.315 "

 

 임신이 여자의 몸을 기능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임신과 출산을 숭고한 것으로 만들어주지만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서 느꼈던 불쾌함은 일의 주도권이 그녀의 몸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문제들이 사실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성은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필연/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더 맞겠다.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며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만났다. 모성이 너무나 위대해서 모성으로 그것들을 모두 이겨낼 수 있는게 당연하지 않다.

 

  어느정도 강렬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을까 준비하며 읽었는데 생각보다 묘하다. 제목이 도전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비해 내용은 그림자로 비추는 어른한 형태로 윤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다. 좀 아쉽기도 하고, 이런 방식의 접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동안 읽어왔던 여성들을 주제로한 글들에 비하면, 좀 순한맛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한국적인 소재가 담긴 내용이 더 매운맛에 익숙한 탓도 있겠다. 심심하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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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쇼핑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넘어
박노성.정윤환.조영준 지음 / 성안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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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몰을 열어 떼돈을 벌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 흥미를 조금 느낀 건 ㅎ회사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였다. 전에 일했던 쪽이 ㅎ회사와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었던터라 ㅎ회사의 이름이 가끔 눈에 띄고는 했는데 저자가 ㅎ회사의 마케팅 담당이 돼서 ㅎ회사를 업계 1위로 만들었다는 내용을 책의 초반에 읽었다. 정말 온전히 저자의 마케팅 능력 때문에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겠지만, 생각해보니 ㅎ회사가 갑자기 광고도 늘고 꽤 유명하게 인지도를 쌓은 일이 떠올랐다. ㅎ회사 이야기를 읽고나니 그저 그런 얘기만 늘어놓는 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쇼핑을 많이 하다보니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영 어색하지는 않았다. 온전히 구매자의 위치에만 있지만 상품 검색 내용별로 노출 순위가 다르게 되어있는 점(59)이나 미끼상품 전략을 쓰는 것, 키워드 공략에 대한 부분에서는 최근에 내가 직접 검색해서 구매했던 핸디형선풍기나 규조토발매트가 (114-119) 예로 나와 놀랄만큼 현실성 있게 책을 봤다. 내가 사고 싶어서 검색해보고 구매한 것인데도 책을 읽다보면 쇼핑몰에서 구매를 유도한대로 내가 끌려가듯이 구매했던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자세했다. 문득 책표지에 "검색에서 쇼핑까지 매출로 이끄는 쇼핑몰 성공 전략서"라는 문구가 써있는게 보였다. 잘쓰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내가 사려고해서 산게 맞나 갑자기 더 의심된다.

 

 사업에 뜻이 없어서 아쉽게 되었지만 스마트 스토어 판매자 되는 법(75)을 한걸음 한걸음 아주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있는 사람은 이 책이 꽤 유용할 것 같다. 창업을 글로 배웠어요"하고 이 책 한권만 의지해서 일을 벌려서는 안되겠지만 SNS같은데서 오늘 하루만 00만원을 벌었다며 다단계같은 부업을 유도하는 사람들에게 멘토링을 받는 것보다는 더 양심적이고 유용할 것 같다. 단순히 나의 성공기, 나는 이렇게 창업해서 성공했다, 같은 류의 내용이 아니라 하려면 이렇게 해야하고 뭐가 필요하다는 가이드북이라는 점이 좋았다. 다만 그래서 일부 내용은 쉽게 읽어 넘어가기 어려운 전문적인 부분이라 적당히 스킵하며 읽었다. 쇼핑몰 열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부분들이 핵심적으로 중요하겠다.

 

 우연히 도서를 제공받게 되어 이쪽은 어떤 세계일까 궁금한 마음에 읽어봤는데, 잘 모르던 분야를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흥미로웠다. 쇼핑을 하는 건 아주 익숙한데 그 세계에 이렇게 치열한 계산과 전략이 있다는 걸 판매자의 입장에서 가감없이 보는 건 또 색다른 일이었다. 요즘은 텍스트로 정보를 얻지 않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지만, 인터넷으로 쇼핑몰을 열어 뭔가를 하고 싶다면 이 책 한권 정도 투자해서 읽어보는 품은 들여야하지 않겠나싶다.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도 틀을 잡을 수 있게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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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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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란 무엇인가. 생리는 홍길동같은 것으로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그날, 마법, 멘스, 달거리같은 좀 덜 직접적으로 들리는 우회어로 불려왔다. 어디서 생겨난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첫생리가 시작되면 무려 '파티'를 해주기도 하지만 생리 중인 것이 티나지 않게 비밀스럽게 지나보내야 한다. 피가 새거나 묻는 수치스러운 불상사가 벌어지면 안되고,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예민해지는 것을 티내서도 안된다. 그러면 조심성없어 칠칠맞지 못하다거나 '왜 이래? 오늘 그날이야?' 같은 질책섞인 넝담도 듣게 된다. 생리통은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다지만 귀찮고 불편한 생리를 하는데 당연히 예민해지고 기분이 안좋은게 뭐 어쩌라고 싶지만 따라오는 오해와 참견은 피하고 싶어진다. 생리대에 대한 광고에서도 생리란 말은 기피되고 생리혈의 색은 파란색 실험용액으로 대체되어 보여진다. 이 밖에도 끄집어내자면 더 많지만, 생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사실 생리에 대해 이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생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얼마나 특별할까 싶었다. 이미 다 아는 얘기를 반복해놓은게 아닐까? 10년쯤 일찍 나왔다면 특별했을려나?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순식간에 읽었다. '100명의 여성은 100가지의 생리를 한다'는 소제목처럼 나랑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여성의 완전 솔직한 생리 이야기는 또 나름 흥미로웠다. PMS시기부터 시작해서 생리를 하는 기간동안을 담은 생리일기 부분도 재밌게 읽었고 사후피임약, 생리 중 섹스, 생리 공결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부분도 여자집단에서는 종종 올라오는 문제여서 익숙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보지 긍정'에 이르러서는 어쩐지 어색했다. 여성기를 이르는 말 역시 생리처럼 에둘러 표현되는 일이 많으니 직접적으로 보지라는 단어를 보자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럴때면 나도 아직 멀었구나 싶어진다. 

 

 한 이십여년전에도 생리를 숨기지말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생리하는게 티나면 창피한거니까 생리는 숨겨야만 되는 줄 알았던 어린시절 어떤 선생님이 '얘들아, 생리해서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쉬어' '생리하는 때에는 생리한다고 말하고 배려받아' 하고 공표한 적 있었다. 그때는 저 선생님이 유난스러우시네, 특이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고 필요한 조언이었다. 창백해진 낯으로 배가 아파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도 생리해서 아프다는 말을 참거나 몰래 속삭이던 때였다. 문득 떠올려보니 아득한 옛날이다. 시대도 달라지고 나도 달라졌으니 책을 읽을 준비는 다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생리도 이만큼했으면 프로?고 말 많은 페미니즘을 빼고서라도 여자들은 생리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없이 할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그 오래전의 선생님보다 내 생각이 덜 트여있는가 싶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어색하더라도 긍정하며 읽었는데 생리 중에 수영장을 가는 것에 대한 내용은 거부감이 들었다. 생리대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고, 생리중인 사람의 수영장 이용을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탐폰이나 생리컵을 쓰고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굳이 막을 일은 아니지만 이미 수영장물이 얼마나 더러운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기에 생리 중인 내 몸에 안좋을 것 같아서가 더 크다. 맨날 싸움나는 주제라지만 생리기간동안 수영장 이용을 안한다면 한 달 이용 요금을 감면받는 쪽으로 불편을 줄이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것도 생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배운대로 따라가듯 생각하는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생리가 싫다, 생리를 싫어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이것도 단순히 불편에서 오는 싫음이 아니라 학습된 미움일까 궁금해졌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겠다.

 

 여자라서 생리에 대해 이미 다 알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면 잘 읽히고 금방 읽으니까 가볍게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성과 관련된 지식에 약하다. 남자라면, 이 책이 읽고 싶을까 궁금하다. 생리휴가나 생리대 무상 지원 같은 문제를 두고는 할말이 많은 사람들을 봤지만 생리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등가적이진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몽정과 같은 정액 배출에 대해 책이 나왔다고 하면 내가 별 관심을 갖지 않을것처럼 말이다. 한달에 일정 기간동안 남자도 계속해서 정액이 흘러나오는 기간이 있다면 어떨까. 생리처럼 통증도 있고 패드를 해서 새고 묻는 것을 막아야하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그렇게 생각하니 관련 책이 나오면 한번 읽어볼 정도로 궁금하긴 할 것 같다. 남성독자들도 그 정도의 호기심으로 읽어볼만 하겠다. 하지만 특히 자라나는 소녀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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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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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p.8 "

 

 '딸에 대하여'를 읽으려고 전부터 생각을 해왔지만 이제서야 읽었다. 책을 읽을 것이라는 계획이 늘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내용을 전혀 모르는 채로 있었다. 제목만 보고 엄마와 딸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했다. 무심결에 오래 전 영화 '마요네즈'나 전도연이 나온 '인어공주' 같은 영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때문에 사실 좀 더 보편적인 모녀관계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뜻밖의 내용이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내용인가, 하고 주춤하다가 보편적이라는게 뭐지' 그린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결국은 모녀 사이의 보편이나 다름없는 것들 아닌가 생각했다. 다툼이나 친근함의 정도만 좀 다를 뿐 엄마와 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존재이면서 자신의 인력 안에서 상대방을 끝내 밀어내지 못하는 연관성이다.

 

 한참을 읽지 못했던 책을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문득 엄마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게 되면서다.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쩍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내가 나이를 먹으면 엄마가 그만큼 늙는다. 철없이 엄마, 엄마하고 쓰지만 실제로는 불혹에 가깝게 생각할 때가 되니 이제는 도리어 부모가 물가에 내놓은 애마냥 염려스러울 일이 많아졌다. 늙어가는 부모를 대신해 이런저런 물건을 주문하고, 볼일을 접수하고, 정보를 알아보다보면 내 시간을 쪼개 마음을 들이다가도 무심히 부모의 애정과 보살핌을 받는 다른 친동기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필요하다 하셨던 물건을 이제껏 없이 지내시게 말고 진작 사드리지 그랬어, 하는 불만이 불현듯 여직 시샘으로 번지는 탓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금반지 끼우고 싶은 손가락은 따로있다'는 우스갯말이 한동안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이제 노년으로 들어서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오를 일도 잦고, 부모가 된 사람들과 이야기 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종종 농담처럼 입에 올린 말이고 머리로 이해하는 말이지만, 때때로 "엄마에게 나는 어떤 손가락이야"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물을 수 없을 것 같은 말이라 생각되면서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뭉쳐 이리저리 쓸어보는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딸이니까 '딸에 대하여'를 읽어보면 이 질문이 조금은 흐려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엄마에게 딸이 무엇인지, '너같은 딸 낳아보'라는 엄마의 말을 잘도 피해간 딸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며.

 

 기대는 엄마와 딸이라기보단, 엄마와 자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낳아 세상을 보이고 가르치고 기른 자식이 크면서 점점 하나의 완벽한 인간이 되어 엄마 앞에 섰을때. 엄마는 한때 자신이 가꾸고 정리하며 속속들이 알았던-혹은 그랬으리라 착각했던- 이 익숙하면서 낯선 우주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것은 못 본 척하고, 어떤 것은 물고늘어지고, 어떤 것은 포기하고, 어떤 것은 헤집는다. 하지만 자식은 마치 저혼자 커버린 것처럼 묵묵한 타인의 얼굴을 하고 이렇게 존재하는 나라는 우주를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라 말한다. 문득 내가 엄마에게 숨겼던 것들, 전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것들, 그리고 나의 결정만으로 선택한 것들을 떠올린다. 엄마에게도 때로 숨이 막힐 듯한 부서짐의 시간이 있었을까. 내 딸이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낯선 얼굴을 하고 있냐고 묻고싶을 때가 있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엄마에게 하지 않듯이 엄마도 나에게 내 딸의 얼굴을 한, 너무도 다른 생각과 말을 가진 이 여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어쩌면 갱년기와 함께 그런 시간들을 흘려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안에서 엄마는 그린을 다그친다. 남들처럼 살고 나서지말라고. 너를 너무 많이 교육시켰는가보다 후회도 한다. 그린은 엄마를 향해 대꾸한다. 나를 가르치고 키운 것이 다름 아닌 엄마라고. 해고된 강사들을 위해 시위를 하는 그린을 속상해하면서도 권과장에게 속엣말을 다 쏟아낸 것도 자신이다. 남들은 다 보아넘기는 것을 끝내 마음쓰고, 억지를 부려서라도 젠을 시설에서 빼내어 집으로 들인 것도 자신이다. 그린이라는 우주 안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은 분명 그녀에게서부터 왔다.

 

 엄마와 그린이라는 두 우주가 만나 언성을 높였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했다가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시나브로 스며들기도 하는 과정을 보며 '컨택트(arrival:2016)'를 떠올렸다. 영화에서 주인공 루이스는 갑자기 지구에 등장한 외계 비행체-셸과 소통하기 위한 임무를 얻는다. 영화는 현재와 미래를 교묘히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셸에서 만난 외계 생명체들과 반목하지 않기 위해서 루이스는 반드시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고 우리의 뜻을 전달해야만 한다. 영화에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 그들의 방식으로 시간을 인식하게 됩니다. 미래를 보게 되요. 하지만 그들의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 가지 않아요." 란 말이 나오는데 루이스가 셸과 소통하는 것이, 엄마와 그린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주인공 루이스에게도 딸 한나가 있었다. 그 막을 수 없는 존재가.

 

 젠을 보며 품는 딸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아직 젊은 딸이 몰라주는 것이 답답했을 것이다. 딸이 여자 연인을 데려와서 같이 사는 일이 남들 눈에 뭐 어떻냐고, 대학 교수라는 타이틀이 사실 이리저리 보따리 옮겨 다니는 시간강사라는 것은 또 뭐 어떻냐고 생각하다 엄마가 하는 고민이 지극히 현실적임을 불쑥 깨닫는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날 그린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면 그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엄마 뿐인 현실이나 젊을 적 아무리 대단한 일을 했던 사람이라도 연고없이 혼자 늙어버리고 난 후에는 자기 자신조차도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고 만다는 처참함이 있었다. 나이를 더 먹었다는 뜻일까, 자꾸만 그런 모퉁이들이 더 눈에 밟혔다. 어쩌면 나같은 사람도 이제 점점 굳어서 뭔가를 '막고 있'는지 모른다.

 

 가볍게 읽었는데 생각보다 이리저리 길어졌다. 책을 읽으면 내 안에 뭉쳐둔 것을 조금 풀어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읽는 동안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이 나름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끝맛이 남아서 좋았다. 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는지 이해되었다. 그동안 읽어야지, 생각해왔던 책 중 하나를 읽었으니 책 한 권 만큼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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