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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 생각이 변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다 읽고 하루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생각해보니 불쑥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표지의 색감이 좋아서 찬찬히 살펴봤는데 띠지에는 '가족과 못 다한 삶을 후회하는 남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안한 일생일대의 거래'라고 되어 있고, 뒷면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당신이 영원히 지워진다면' 하고 써있길래 이 곤경을 이겨내는 가족이야기가 담겨있으려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말이...
지나온 시간동안 일만 하며 살아온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그는 유명하리만큼 성공했고, 부유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암에 걸렸다. 그 사실을 하나뿐인 아들에게 차마 털어놓지도 못할만큼 가족과 멀어져 있었다. 그는 그저 아들이 일하는 바의 창문 밖에서 아들을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다. 그가 내뱉는 과거의 한 장면장면마다 후회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의 인생의 고비마다 나타났던 의문의 여자가 병동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명부에 이번에야말로 그의 이름이 적히게 될지 그의 운명이 바뀔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그들이 만났던 순간마다 그의 삶이 어땠는지 돌아보는 과정 동안 이맘때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의 주인공 스크루지였다. 주인공은 돈에 있어서 인색한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명부를 가진 여인과 그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이 스크루지에게 세명의 유령이 찾아와서 그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날이 추워지는 요즘, 커피숍에서 나오는 캐롤이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만들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더불어 '일생일대의 거래'도 지금 시즌에 잘 어울릴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주인공이 내린 선택이 가족에게 있어서는 더욱 이기적인 선택인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서사도 아니고 그동안 가족에게 있어 무심했던 아버지였는데, 그가 내린 결정마저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명예롭다고 생각하는 선택으로 만족을 얻고자하는 이기적인 결정 아닌가 싶었다. 영웅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이지만 평생을 결여로 성장해 온 아들이 알면 오히려 가슴에 대못이 박힐 전개였다. 한국적 신파를 섞어 영화로 만들 수도 있을 법한 느낌으로.
가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에게 고향이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폐쇄적이고, 나와 내 가족, 내가 버리고 떠나온 과거를 잘 아는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버티고 있는 집단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작은 동네에서의 생활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나 전작 '베어타운'에서 떠나고 싶고 떠나야만 하는 곳으로 보여지는 고향에 이렇게까지? 싶어질 때가 있었다. 이번 '일생일대의 거래'에서 나오는 헬싱보리의 장소들은 실제 그가 자라온 곳을 배경으로 한다. 대체 고향이 그에게 어떤 의미이기에 이렇게 고향을 깊게 의식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책을 처음 다 읽었을 때는 마지막 장까지 덮고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며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짧지만 잘 짜여졌다는 것은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겠구나 싶었다. 내용에 대해서는 감동을 떠나서 내 생각과 다른 점이 있긴 했지만, 내 생각일 뿐이고 책을 읽고 감동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책을 이제 몇 권 읽어봤을 뿐인데, 신간을 읽을 때마다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처음엔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꽤 좋다고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된다고 마음이 바뀌었다. 프며들었나보다. '일생일대의 거래'를 통해 당신도 프며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