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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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한 소설이었다. 소원을 말해달라는 상큼한 제목과는 다르게, 음울하고 축축한 느낌이 물씬 드러나는 내용이었다. 읽으면서 계속, 이게 뭔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국내 최초 재난.공포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역작!'이라는 띠지의 문구를 보면서 역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소설은 확실히 국내 최초이긴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표지 디자인이 예뻐서 겉만보고 어떤 내용일지 꽤 기대했었는데, 읽고 나니 아무래도 책을 앞에 두고 산길을 걷다 뱀 한마리를 마주한 것처럼 호감이 일지 않는다. 뱀을 싫어했던가, 재난물을 좋아하는 편인데, 왜 그럴까. 

 

 "소원을 말해줘"에는 두가지 키워드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뱀이다. 소설에서는 뱀을 전설 속의 존재로 그려낸다. 도시를 사로잡은 불치의 전염병을 치료할 수 있는 전설을 품은 뱀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도시에 나타난 전설-일지도 모르는-의 뱀을 두고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뱀에 애정을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동물원의 주인이 가끔 찾아와 핸들링을 하거나 사육사가 뱀과 교감하는 장면들은 놀라움과 더불어 약간의 불쾌감을 준다. 뱀도 주인을 알아본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 몸을 타고 구불거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교감의 순간이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막연히 좀 징그럽게 느껴진다. 

 

 또 하나는 피부병인데, 이 특정 구역 사람들에게 주로 발명하는 병은 피부껍질이 각화되면서 간지러움과 통증이 생기고 심해지면 악취를 풍기는 피고름을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들이 사회에서 격리되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생존하는 모습은 과거 한센병을 앓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떠올리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 증상이 심해진 피부 껍질을 치료해서 새 살이 돋게 한다는 치료방법은 꼭 뱀이 허물을 벗어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탈피 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때문에 책을 읽으며 이 두가지 키워드가 꽁꽁 얽혀 도시전설에 지나지 않는 롱롱의 존재를 마음 속 깊이 바라게 된다. 기적이나 영웅이 나타나길 바라는 것처럼 '소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만 소설은 뱀처럼 교묘히 독자를 홀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거대한 뱀이 궁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의 모습은 설명으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헬스장에서도 타이어가게에서도 뱀은 때로 거대해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처럼 느껴지다, 갑자기 이성적인 크기의 파충류로 작아지기도 했다. 그 점은 읽는 동안 아쉬웠다. 거기에 사육사와 척의 감정선은 갑작스럽게 깊어졌고, 공박사와 척 사이의 끈은 설정보다 약해서 존재감이 미미했다. 양념처럼 끼얹어진 노파나 두목 원숭이의 존재는 거칠게 두드러져 나왔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등장한 인물들이라 구심점없이 기능만 하고 흩어진 느낌이었다. 좀 더 탄탄했다면 훨씬 더 매력적으로 읽히지 않았을까 싶다. 

 

 읽으면서 종종 작가에게 있어 뱀이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했다. 뱀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뱀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사람일까. 어찌되었든 작가가 뱀이란 것에 깊이 사로잡혀있다는 것만은 느껴졌다. 뱀이 이렇게나 중요한 존재였던가. 소설 안에서 뱀은 실제로 존재하고, 전설이 되고, 상징이 되어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허물이 생긴다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것이고 모든 것이 마치 뱀에 의한 뱀에 대한 뱀을 위한 소설같았다. 한번도 뱀을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읽으면서 조금 당황했다. 뱀이란 단어를 단시간에 이렇게 많이 본 것은, 동물원의 파충류사를 구경할 때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이 점은 재밌었다.

 

 사실 동물원에서밖에 뱀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리창 너머로 격리되어 있는 무기력한 기묘한 생김새의 동물을 별 의식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다만 내 가까운 친구는 어린시절 집이 농장을 했었는데, 길에서 가끔 뱀을 마주칠 일이 있었던 터라 뱀을 아주 싫어했다. 단지 뱀의 생김새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위협을 느끼며 뱀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주변에 오직 그뿐이라 나는 뱀이란 말이 나오면 무심결에 그를 떠올리곤 한다. 책을 읽으며 그 친구를 내내 떠올렸는데, 아마 이 책은 읽기조차 싫어하지 않을까 싶다. 독특한 느낌을 주는 인상적인 소설이기는 하지만 뱀 때문이 아니더라도 피부병같은 소재로도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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