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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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p.8 "

 

 '딸에 대하여'를 읽으려고 전부터 생각을 해왔지만 이제서야 읽었다. 책을 읽을 것이라는 계획이 늘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내용을 전혀 모르는 채로 있었다. 제목만 보고 엄마와 딸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했다. 무심결에 오래 전 영화 '마요네즈'나 전도연이 나온 '인어공주' 같은 영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때문에 사실 좀 더 보편적인 모녀관계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뜻밖의 내용이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내용인가, 하고 주춤하다가 보편적이라는게 뭐지' 그린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결국은 모녀 사이의 보편이나 다름없는 것들 아닌가 생각했다. 다툼이나 친근함의 정도만 좀 다를 뿐 엄마와 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존재이면서 자신의 인력 안에서 상대방을 끝내 밀어내지 못하는 연관성이다.

 

 한참을 읽지 못했던 책을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문득 엄마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게 되면서다.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쩍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내가 나이를 먹으면 엄마가 그만큼 늙는다. 철없이 엄마, 엄마하고 쓰지만 실제로는 불혹에 가깝게 생각할 때가 되니 이제는 도리어 부모가 물가에 내놓은 애마냥 염려스러울 일이 많아졌다. 늙어가는 부모를 대신해 이런저런 물건을 주문하고, 볼일을 접수하고, 정보를 알아보다보면 내 시간을 쪼개 마음을 들이다가도 무심히 부모의 애정과 보살핌을 받는 다른 친동기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필요하다 하셨던 물건을 이제껏 없이 지내시게 말고 진작 사드리지 그랬어, 하는 불만이 불현듯 여직 시샘으로 번지는 탓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금반지 끼우고 싶은 손가락은 따로있다'는 우스갯말이 한동안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이제 노년으로 들어서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오를 일도 잦고, 부모가 된 사람들과 이야기 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종종 농담처럼 입에 올린 말이고 머리로 이해하는 말이지만, 때때로 "엄마에게 나는 어떤 손가락이야"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물을 수 없을 것 같은 말이라 생각되면서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뭉쳐 이리저리 쓸어보는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딸이니까 '딸에 대하여'를 읽어보면 이 질문이 조금은 흐려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엄마에게 딸이 무엇인지, '너같은 딸 낳아보'라는 엄마의 말을 잘도 피해간 딸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며.

 

 기대는 엄마와 딸이라기보단, 엄마와 자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낳아 세상을 보이고 가르치고 기른 자식이 크면서 점점 하나의 완벽한 인간이 되어 엄마 앞에 섰을때. 엄마는 한때 자신이 가꾸고 정리하며 속속들이 알았던-혹은 그랬으리라 착각했던- 이 익숙하면서 낯선 우주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것은 못 본 척하고, 어떤 것은 물고늘어지고, 어떤 것은 포기하고, 어떤 것은 헤집는다. 하지만 자식은 마치 저혼자 커버린 것처럼 묵묵한 타인의 얼굴을 하고 이렇게 존재하는 나라는 우주를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라 말한다. 문득 내가 엄마에게 숨겼던 것들, 전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것들, 그리고 나의 결정만으로 선택한 것들을 떠올린다. 엄마에게도 때로 숨이 막힐 듯한 부서짐의 시간이 있었을까. 내 딸이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낯선 얼굴을 하고 있냐고 묻고싶을 때가 있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엄마에게 하지 않듯이 엄마도 나에게 내 딸의 얼굴을 한, 너무도 다른 생각과 말을 가진 이 여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어쩌면 갱년기와 함께 그런 시간들을 흘려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안에서 엄마는 그린을 다그친다. 남들처럼 살고 나서지말라고. 너를 너무 많이 교육시켰는가보다 후회도 한다. 그린은 엄마를 향해 대꾸한다. 나를 가르치고 키운 것이 다름 아닌 엄마라고. 해고된 강사들을 위해 시위를 하는 그린을 속상해하면서도 권과장에게 속엣말을 다 쏟아낸 것도 자신이다. 남들은 다 보아넘기는 것을 끝내 마음쓰고, 억지를 부려서라도 젠을 시설에서 빼내어 집으로 들인 것도 자신이다. 그린이라는 우주 안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은 분명 그녀에게서부터 왔다.

 

 엄마와 그린이라는 두 우주가 만나 언성을 높였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했다가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시나브로 스며들기도 하는 과정을 보며 '컨택트(arrival:2016)'를 떠올렸다. 영화에서 주인공 루이스는 갑자기 지구에 등장한 외계 비행체-셸과 소통하기 위한 임무를 얻는다. 영화는 현재와 미래를 교묘히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셸에서 만난 외계 생명체들과 반목하지 않기 위해서 루이스는 반드시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고 우리의 뜻을 전달해야만 한다. 영화에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 그들의 방식으로 시간을 인식하게 됩니다. 미래를 보게 되요. 하지만 그들의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 가지 않아요." 란 말이 나오는데 루이스가 셸과 소통하는 것이, 엄마와 그린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주인공 루이스에게도 딸 한나가 있었다. 그 막을 수 없는 존재가.

 

 젠을 보며 품는 딸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아직 젊은 딸이 몰라주는 것이 답답했을 것이다. 딸이 여자 연인을 데려와서 같이 사는 일이 남들 눈에 뭐 어떻냐고, 대학 교수라는 타이틀이 사실 이리저리 보따리 옮겨 다니는 시간강사라는 것은 또 뭐 어떻냐고 생각하다 엄마가 하는 고민이 지극히 현실적임을 불쑥 깨닫는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날 그린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면 그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엄마 뿐인 현실이나 젊을 적 아무리 대단한 일을 했던 사람이라도 연고없이 혼자 늙어버리고 난 후에는 자기 자신조차도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고 만다는 처참함이 있었다. 나이를 더 먹었다는 뜻일까, 자꾸만 그런 모퉁이들이 더 눈에 밟혔다. 어쩌면 나같은 사람도 이제 점점 굳어서 뭔가를 '막고 있'는지 모른다.

 

 가볍게 읽었는데 생각보다 이리저리 길어졌다. 책을 읽으면 내 안에 뭉쳐둔 것을 조금 풀어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읽는 동안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이 나름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끝맛이 남아서 좋았다. 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는지 이해되었다. 그동안 읽어야지, 생각해왔던 책 중 하나를 읽었으니 책 한 권 만큼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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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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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여러 사정과 관계상 그리고 고질적인 게으름 탓으로 한동안 일을 하지 않는 시기를 거쳤다. 낯선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어느새 필수가 되어버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항목이 거추장스러웠다. 자신보다는 상대방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면서 어쩐지 민망했다.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반응이 '아, 그러시구나' 였다. 일을 해야 한다고 보여지는 나이에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가 될만큼 많다고 한다. 일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못한다고 봐야 더 정확하겠지만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보면 대부분 일을 하고 있다. 그 많은 일하지 않는 자는 어디에 있는걸까. 일하지 않는 자가 문제가 되는 사회와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게 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조금 품고 '게으름 예찬'을 읽는다.

 

 " 일하지 않는 시간에 관한 불안감이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과거 그리스인과 로마인 모두 그런 시간에 대해 예민하게 구는 경향이 있었고, 게으른 사람을 죽음으로써 벌했다. p.11 "

 

 한 세줄 읽자마자 사망하게 되었다. 조금 게으를 뿐인데 왜 죽음으로써 벌을 받아야 하는가. '게으름 예찬' 이라더니 멕이고 시작하는가, 나의 게으름을 변명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내가 당했구나 싶었다. 그러고보니 예로부터 게으른 자를 가혹하게 벌하는 계몽작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게으름뱅이는 소가 된다는 동화나 중세 유럽의 동화를 보면 아이들에게 게으르면 안된다는 계몽적 내용을 잔인하다시피 담은 내용도 있다. 게으르다는 것이 왜 이렇게까지 금기시 되어 있을까. 근본적으로는 게으르지 않아야 제 먹고사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책에서도 게으를 수 있는 것은 귀족들 뿐이라 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진정으로 게으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은 게으르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고 게으르지 말 것을 요구받는다. 입성을 충족시킬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느끼고, 이를 게으르다고 여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욱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이 유행했듯이 이 책이 제대로 게으를 수 있는 게으름의 기술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부지런히 게으를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 진짜 게으르려면 한강에서 열리는 '멍때리기 대회'라도 나가는 편이 나으려나. '게으름 예찬'이 너무나도 치열하게 게으름에 대해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전혀, 절대 게으르지 않았구나 싶어진다. 세상에 어떤 게으름뱅이가 머리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단 말인가. 저자가 게으름을 표방한 성실하고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기가 아닌 진짜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면 아마 이 책의 표지 안에는 '게으른게 제일 좋아 늘 새로워, 짜릿해' 같은 말 몇 줄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게으름에 대한 해석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문득 인류가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해방 되고 난 이후의 시간보내기는 어떤 형태일지 생각해본다. 생산적이라 여겨지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때의 게으름은 더이상 죄책감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개나 고양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게으름을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그건 인간의 존엄이 사육하는 개나 고양이처럼 여겨지도록 만들까? 우리가 결코 알 수 없을 머리속에서 이어지는 생각을 냉소적으로 부정한 피터의 시선(p.50)처럼?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흡연이 부정적 시선을 얻게 되면서 흡연을 통한 사유의 시간이 사라지게 됨을 강조하는 내용(p.81)이었다. 이에 대에서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는데, 흡연 금지 구역이 늘어나면서 설자리를 잃었다며 불평을 쏟아내는 흡연자들의 불만토로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갑자기 등장한 흡연에 대한 절절한 고백에 읽으며 모난 듯이 걸렸던 부분이다.

 

 책을 읽으며 게으름은 여러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태한 상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혹은 먹고 사는 생산적 활동에서 벗어난 것, 여러가지 방향으로 시간을 보내는 활동. 개인적으로는 게으름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맞을까 싶은 것들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 같다. 특히나 놀이와 스포츠마저 분석의 대상으로 흘러들어가는 식의 책의 내용이 다소 딱딱하게 읽혔다. 애초에 저자가 " 자유 시간을 보내기에 더 비옥하고 덜 타락한 방식이 분명 있지 않을까? p.292 " 를 모색하면서 게으름을 예찬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과 해석에 대해서는 흥미로웠다. 다만 우리 게으름뱅이들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 이 책을 읽으려해선 안될 것 이다. 본투비 앞에서는 아쉽게도 좀 결이 다른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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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플하게 말한다
이동우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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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정해놓고 방영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을 매번 챙기기가 귀찮아서 그런데 요즘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은 비교적 챙겨보는 편이다. 프로그램은 진행자인 유재석과 조세호가 길을 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짧은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다 100만원의 상금이 걸린 퀴즈를 푸는 형식이다. 나라면 상금이 욕심 나 퀴즈를 풀고 싶어도 인터뷰에 응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매 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인터뷰를 하고 퀴즈를 푼다. 그리고 뜻밖에 진솔하고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센스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다. 수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향해 있는 순간을 잘 이겨낸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만약에 나라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심플하게 말한다'는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이라는 뜻밖의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회의, 발표 같은 상황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웬만한 상황에서 할말은 하는 편이라 '입만 열면 개구리가 튀어나'온다는 것이 좀 어색한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말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표현일까 짐작해보았다. 지금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직장인들이라면 어린시절 웅변학원.. 스피치학원이란 표현이 더 나으려나.. 좀 다녔을만한 삼십대도 있지 않을까. 그 세대들이 자라 또 '말하기'가 필요하다니 '사는 기술'이 참 품이 많이 드는구나 싶었다. 더불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뜻밖에 가장 필요한 기술이 글쓰기라고 나왔다니 말하고 듣고 쓰기라는 기본이 간단한 것 같아도 삶 전체를 아울러 중요한 조건임을 새삼 깨닫는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는데 첫 시작에 나온 조언이 '최대한 말하지 말 것'이어서 재밌었다. 말 잘하고 싶어서 책을 읽으려는데, 말하지 말라니. 그런데 문득 얼마 전 읽은 오프라 윈프리의 책이 떠올랐다. 썩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오프라의 인터뷰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책 안에서 그녀는 대부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상대방이 자신이 경험했던 일이나 생각을 전하면 오프라는 내용이 더 풍부히 이어지게 될만한 질문을 짧게 던지거나, '맞아요' 하고 수긍하고 '당신도 나와 같은 걸 느끼는 사람이라니 기쁘네요' 하는 공감을 표시한다. 줄곧 우리는 공감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많이 써서 그때 책을 읽을 때는 어색했는데, 이동우의 '나는 심플하게 말한다'를 읽으면서 오프라의 태도가 상당히 전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조언들이 나왔지만 가장 찔렸던 것이 '자존심을 버리'고 '언제든 틀릴 수 있다고'(p.174-175)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이 강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터라 더욱 그랬다. 내 생각이 맞는 것 같고 남이 나와 다르면 '나랑 잘 안맞는다'거나 '뭘 잘 모르는 것' 같이 생각될 때가 많았다.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 같고, 이러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고 나중에 후회될 때가 있었다. 독특하게도 잘 말하는 것보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를 더 많이 의식하며 읽은 것 같다. 그저 먹은 나이를 두고 '우열의 계단'(p.187) 올라서려는 꼰대짓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말하는 스킬이나 연습도 중요하지만 요즘에는 좋은 태도에 더 마음이 쓰인다. 책 초반에 나왔듯이 달변에 마음이 움직이는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말을 잘하면 흘려듣거나 내 나름의 생각으로 말을 재보곤 한다. 그런데 말을 잘하지 않더라도 핵심을 분명하게 말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면 오히려 더 호감이 느껴진다. '워킹메모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쇼핑을 예로 든 부분(p.42)을 읽으며 왜 아무것도 사지 못할 것이라 단언하는가 쇼핑을 잘 안해본 것일까 의심하기도 했다. 뭔가를 사기 위해 두시간동안 매장 여덟군데를 돌아다녔다면 사려고 했던 물건과 함께 계획에 없었던 물건도 추가로 구매하고도 남을텐데. 그러니 내가 말을 잘 못해서 마음이 염려스러웠던 사람들은 책 내용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말 잘하는 저자도 쇼핑은 잘 못한다는 사실을 두고 조금 위안을 삼길 바란다. 당신도 당신이 잘하는 분야의 뭔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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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호하게 살기로 했다 - 일, 관계, 인생 앞에 당당해지는 심리 기술
옌스 바이드너 지음, 장혜경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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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운 고추 전략'이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 증후군' '다이아몬드 분석' '희생양' 같은 말들은 누가 만들어내는 걸까. 매운 고추 전략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p.81~83)을 읽다보면 세상에 그렇게 완벽한 직업인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인간관계를 실리에 견주어 쉽게 끊어버리는 성향마저도 시간이 없어서 라는 말로 변명해준다. 이런 말들에 휘둘릴 정도로 정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조언을 이 책이 해줄 것인가, 시험지에 오답을 체크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몇 점을 줄 수 있는 시험지일까 생각하면서.

 

 두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오갔다. 인생은 실전이기 때문에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잡힌다, 100번 잘해주다 1번 못하면 욕을 먹고 100번 못하다 1번 잘해주면 칭찬을 듣는다, 참을인 세번이면 바보가 된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같은 말들이 생활명언으로 현실 공감을 얻는다. 살아보니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나는 단호하게 살기로 했다'도 저런 말들과 같은 결을 갈 것이다. 착한사람일 필요 없어, 갈등을 피하려고 손해보는 짓을 하지마 같은 내용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저런 조언이 필요할까 의문을 가진다.

 

 너무나도 공격적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덜 단호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남에게 받고 싶은 태도대로 남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되었던가. 혐오와 이기가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진짜 숨겨진 공격성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오히려 공격성을 숨기는 쪽이 더 필요해보인다. " 이 책은 남을 생각하지 않고 본인만 앞서 나가려는 이기적인 출세욕을 장려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포함하여 당신의 기업과 직원 모두에게도 이익이 되는 선한 목표의 관철을 지지한다.(p.42) " 고 되어 있지만 낱낱은 좀 애매하다.

 

 여성 경영인을 향한 조언이 있는 부분도 상대를 제대로 보고 있는건지 의문스러운 면이 있었다. 능력있는 여성의 성장을 지지하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여성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 같은 태도다. " 일자리 다툼에 성별대결까지 곁들여졌다/ 여성의 경계 대상은 잘난 남성 경영인이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남성들이다. 높은 자리의 남자들은 그만큼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으므로 경쟁에서 져도 수긍할 수 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먼저 그 남성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중략... 위치를 파악한 뒤에는 기품 있고 정중하게, 또 이런저런 뜻밖의 칭찬으로 그들을 안심시켜라. 남자들은 대부분 칭찬에 약해서... 후략.(p.105) " 

 

 매운 고추 전략이 여성에게 주는 조언이 높은 자리의 남자들에게 패배하면 '그만큼 뛰어난 자질을 갖'춘 사람이니까 하고 인정하고, 나보다 못한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경계할 때 그들을 칭찬해주는 일이라면 어느 부분이 매운지도 모르겠다. 책에 나와있는 스코빌 지수를 확인해봤을때 그리 높은 지수가 나온 것이 아닌 나도 저 이상의 투지와 단호한 태도를 보일 준비와 의지가 있는데 " 여성은 직장의 꽃도 아니고 분위기 메이커도 아니다.(p.112) " 라고 하면서 여성을 꽃처럼 생각하고 내민 조언이 아닌가.

 

 읽으면서 이보다 더 눈을 의심했던 것은 '희생양(p.162)'에 대한 내용이었다. 휴가중에 자신의 업무가 아닌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는데도 다른 동료들이 회의에서 그를 지적한다. 이에 대해 항의하자 동료들이 회사에 큰일이났는데 속편히 휴가갔던 네가 문제라고 되받는다. 여기서는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을 희생양이라 명명했다. 팀 전체가 그를 통해 어려움을 넘겼으니 희생양이 도망가서 내가 타깃이 되지 않도록 그를 잘 보살펴주라!는 조언을 한다. 한국에서는 이를 두고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만드는 등 방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저런 조언을 한다니 독일인이여, 당신의 인성은 지금 어떠한가요.

 

 세상 부정적인 직장 내 사회생활 팁을 알려주다가 마지막에는 갑자기 '너무 걱정하지마, 사실 세상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야, 하지만 만만하지 않으니 내 조언을 잘 새겨뒀다 필요할 때 쓰렴.' 하고 나름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급하게 끝을 맺는다. 이 책이 진짜로 필요한 마음 여린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직장 생활 1년만 혹 알바라도 좀 해본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인류에 대한 혐오와 넘치는 공격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함부로 나에게 꼭 필요했던 책이라고 단정짓지 말고 '아, 저 사람은 진짜 안되겠다' 싶은 순두부 멘탈에게만 이 책을 추천해주면 좋겠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아서 내가 아닌 척 어떤 행동을 해도 분명 그 속내를 느끼는 누군가는 존재한다. 그러니 누가 대놓고 싸움을 걸어오는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내가 대접받길 원하는대로 남을 대접해주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끝내 나에게 좋을 것이다. 매운 고추가 되는 것은 쉽지만 남에게 선의를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나는 좀 피해보고 있는 것 같은데 싶은 마음이 든다면 매운 고추 테스트(p.117)를 솔직한 마음대로 해보자. 매운맛에 미친 민족답게 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높은 지수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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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높이기의 기술 -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25가지 커리어 관리의 비밀
존 에이커프 지음, 김정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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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받는가! 우리 내면의 광활한 우주와 은은히 풍겨나오는 인덕같은 깊이는 아니더라도, 성인이 되고 밥벌이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쉽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 혹은 능력이 있는지 같은 것들이 직업에서 드러난다. 어느 무심한 서랍 구석에 회사에서 나온 명함이 잔뜩 쌓여있다. 가끔 명함이 필요한 만남이 있을 때 평소에는 그저 징글징글하게 생각하던 밥벌이가 갑자기 단단히 뭉쳐져 '이게 접니다'하고 타인에게 새겨지는 나의 한 조각이 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우리 물질세계로 내려와서 보면 우리는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때로 특정 직업을 선망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가진 직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를 통해 판단하고 가치를 둔다는게 맞을지 모른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꿈이 연예인이고 유투브같은 컨텐츠 크리에이터인 세상이다. '몸값 높이기의 기술'은 꽤 노골적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끈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세상에 몸값 높이는 기술이 있다니 궁금할만도 한데,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25가지 커리어 관리의 비밀' 이나 '회사가 우리를 구원해줄 것 같아?' 같은 문구를 곁들인다. 

 

 꽤 단호하고 신랄한 어조로 조언을 하는 편이다. 제안하는 방법들이 좀 판에 박힌 듯해서 아쉬웠지 하나하나 뜯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시간'에 집중하라(p.164)는 부분은 뼈를 맞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기술은 나중에도 배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마 내년쯤? 아니면 한 5년 후쯤? 아니면 영원히 못 배우든가. (p.165)" 부분에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프로젝트 101' 시즌2에서 가희가 남긴 명언이 떠올랐다. 내 새끼 데뷔시키려다 갑자기 팩트로 두드려맞고 순살된 시청자가 넘쳐난다는 명언이니 나태한 자신을 깨우칠 조언이 필요하다면 검색해봐도 좋겠다.

 

 재밌는 부분은 매일 정시에 출근하라는 조언(p.134)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정시 출근은 복지가 좋은 직장의 조건 중 하나일 뿐 암묵적으로 업무시간보다 일찍와서 늦게가는 곳이 태반이다. 우리 저정도 규칙은 지키고도 남으니 기본적 커리어 관리는 하고 회사생활하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퇴사는 왜 늘 불행할까(p.201)' 이 부분은 본 내용은 좀  제목 자체가 의아했다. 가슴속에 삼천원, 아니 사표를 항상 품고 다니는데 퇴사란 인수인계도 콧노래부르면서 하게 만든다는 마법의 단어 아니었던가.     

 

 이쯤되면 이런 간접적이고 두루뭉술한 조언을 비법처럼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받아들이기에는 아쉽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 바닥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있다. 무슨 공부를 더 해야하는지, 자격증은 뭘 준비해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지, 이직하려면 어떤 업무를 도전해서 경력을 쌓아야 좋은지 다 안다.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사실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어려운 길은 안가고 싶다는 회피에 가깝다.  

 

 덧붙이건데 '늦었다고 생각하면 진짜 늦은 것'이라는 한국사회에서 보기엔 좀 외국식 사고방식인 듯한 느낌도 든다. 직장에서 이런 행동은 좀 튀겠는데, 뒷말 나오겠는데 싶은 느낌. 튀면 어떠냐 싶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모나서 정 맞을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소극적인 마음이 든다. '몸값 높이기의 기술'은 이런 소극적인 마음에 등을 떠밀어주는 도움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거기에 내 커리어에 맞춰 몸값을 올릴 수 있을만한 소스가 들어있을 것을 기대한다면 아쉬울 것이다. 그런 비밀이 있었다면 이미 우리의 커리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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