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복희라는 이름이 주는 어감과 원더랜드가 조합된 제목도 독특하고 경쾌해보이고 내가 읽기를 기대해왔던 재기발랄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 읽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재밌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구나 싶었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의 배경이 캄보디아라는 걸 알고나자 친구가 떠올랐다. 박지우가 특별한 결심을 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캄보디아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친구가 그렇다. 친구는 자꾸만 캄보디아로 떠났다. 추운 것이 싫어 추운 계절이 오면 한국을 떠나있곤 하는데 작년에는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어도 좀체 돌아오질 않았다. 나에게도 잠시 놀러오라'고 권했는데 차마 놀러가질 못했었다. 한달살기가 유행이라던데 친구는 한달이 아니고 여러달을 살고 나서야 간신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올해의 찬바람이 불자 친구는 또 캄보디아로 떠난다고 했다. 대체 캄보디아 땅에는 무슨 매력이 있길래 친구는, 또 한달을 사는 사람들은 자꾸만 캄보디아로 떠나는걸까.

 

 책은 한달살기의 매력이나 진짜 '원더랜드'같은 무릉도원을 만들어놓은 수수께끼의 호텔 주인에 대한 판타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리얼하게 담았다. 세계 어딜가도 끈끈하게 얽혀서 차이나타운을 만든다는 중국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국도 저래야 되는데 하고 맹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왜냐면 우리는 암암리에 외국나가면 한국 사람들이 사기치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이 퍼져있지 않은가. 그래서 서로 도와주고 가게도 겹치지 않게 개업하도록 해서 과열경쟁도 막는다는 중국사람들 얘기가 부러웠다. 그런데 막상 외국에 나가서 살게 되면 끈끈하게 얽혀오는 한인회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춤...더랜드'에서 보여준 교민들의 삶은 조금 더 유쾌하고 부드럽게 풀어냈을 뿐, 내가 나가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회를 주축으로 모여있는 사람들, 신자가 아니더래도 한인들이 주기적으로 모이는 장소에서 정보나 도움을 얻고 낯선 땅에 자리잡아 살기 위해 찾아가게 되는 곳. 그리고 그 안에서 빠르게 도는 소문이나 돈에 관한 문제- 단순히 돈을 빌리고 투자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누구의 씀씀이, 가난하고 부유해보이는 외견에 예민하게 신경이 곤두서는 일같은 건 어디서나 사람들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볼 수 있겠지만 외국의 좁은 한인사회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진다면 좀 더 숨막힐만한 것이다.

 

 지우의 친구가 무시하듯 말한 "거기 거지나라 아님?(37)" 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대한 못사는 나라라는 선입견에,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좁은 한인사회. 거기에 고복희씨의 원더랜드 부지를 탐내는 사람들의 욕망이 더해지면 '춤더랜드'의 무대가 다소 환멸나게 보인다. 심지어 교회에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는 서스펜스 적 사건이 더해지면서 복희씨는, 원더랜드는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과 의문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 불유쾌한 내용을 바닥으로 끌어내리지 않고 깔끔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풀어가는 책의 중심에는 잘 설정된 인물들이 있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의 강점은 인물이다.

 

 책 안에 나오는 인물들은 분명하다. 이래저래 뭉그스름하게 그려진 사람이 없이 다들 자신만의 분명한 선과 색이 있다. 그래서 이들이 책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재밌다. 각자 자기만의 생각과 욕심을 가진 인물들을 보며 책을 읽는게 아니라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결같은 인물, 변화하는 인물, 방황하는 인물, 막혀있는 인물, 반성하는 인물. 수많은 인물들 중에 우리의 고복희씨는 모난 돌처럼 튀어나와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꿈꾸는 어떤 이상적인 면을 가진 인물에 가깝다는 점도 좋았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할말은 하고, 치우치거나 쉽게 흔들리지 않을 중심을 분명히 갖고 있으면서,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복희씨는 보는 이의 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통쾌함과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고복희씨처럼 단단하고 곧게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단 말인가. 장영수같이 사는 척은 흉내낼 수 있지만 고복희처럼 사는 일은 흉내내기도 어렵다. 한결같고 부지런해야 하니까. 둘이 참 달라서 안 맞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늬를 담당하고 있던 것은 이 둘의 과거였다. 다 읽고 나니 영수씨가 왜 복희씨를 사랑했는지, 복희씨는 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수씨와 결혼하게 되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춤더랜드'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산다는 걸 복희씨가 내지르는 한방이, 감정적이고 줏대없던 박지우의 변화가, 린이, 안대용이 보여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건 따뜻한 경험이 되었다.

 

 친구처럼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난다면- 여행지에 가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편이 아니라, 원더랜드에 묵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원더랜드가 청결하도록 관리에 힘쓰는 복희씨가 있어서 믿음직하고 조용한, 무엇보다 '저렴한' 숙소가 될 것이다. 물론 조식이 맛없다는 건 큰 문제이지만.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를 읽으며 즐거웠다. 젊은 작가다운 재기와 기대 이상의 따뜻함을 보여주었다. "원더랜드는 여전하다.(259)"고 독자가 꿈꾸게 만들만큼. 앳된 얼굴로 다부진 소설을 내놓은 작가 문은강이 보여줄 다음 무대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매가 돌아왔다'는, 애석하지만 제목과 분홍색 표지 거기에 그러진 캐릭터 그림의 조화가 한데 어우러져 키치해보인다. 솔직히 좀 뻔하게 느껴지는 가족환장극의 기운에 '요절복통'이란 말이 써 있어도 얼마나 재밌겠는가 싶었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최후의 만찬'이라는 역사소설을 진중하지 못하게 읽어서 그런지 이런 가벼움에 홀랑 넘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역시 처음부터 주인공은 요즘 트렌드에 맞는 88연속 각종 시험과 구직 낙방을 자랑하며, 혼자 노래방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은 뭔 종점? '종점 보관소'라는 노래를 애창하는 인물이었다. 문학상까지 받은 소설은 무겁다고 별로 재미있게 읽지도 않았으면서 이천년대 양산형 소설같은 '할매가 돌아왔다'는 재밌게 읽었다고 하면, 아무리 '책을 읽는 이유가 재미있어서'라지만 너무 뻔한거 아닌가 싶었다. 차갑게 읽어야지. 마음먹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아니, 근데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게다가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치매를 의심하게 만드는 행동하며 '평소 조선시대 마지막 선비' 처럼 행동하던 할아버지의 입에서 '더러운 잡년'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비밀스러운 과거는 무엇이고? 핏덩이같은 자식들을 버리고 외국나가서 잘 살다가 다 늙어 돌아온 할머니라니, 자기는 88번이나 탈락된 주제에 네 할머니란 말에 가족의 짐덩이같은 할머니란 존재를 무작정 대문을 통과 시켜줘버린 동석에게 짜증이 나버렸다. 다행이? 동석이빼고는 야무진 가족들이 할머니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했을때 슬며시 안도했다. 그냥 이 책의 내용은 굴러온 돌이 박히게 두지 않으려는 가족간의 긴싸움이 되겠구나 예상했는데 갑자기 분위기는 60억이 된다. 제니-끝순 할머니가 가지고 돌아온 유산 60억! 가족들의 머리에서 돈계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상황에서 홀로 터져나오는 할아버지의 고함은 애처로워진다.

 

 대체 할머니는 왜 67년동안 집을 나갔던 것인가! 67년동안 어떻게 지냈으며 왜 이제서야 다시 가족에게 돌아게 된 것일까. 무엇보다 할머니가 가지고 돌아왔다는 유산 60억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일까? 60억의 유산은 누구에게 얼마나 배분될 것인가! 이 모든 의문과 비밀, 진실 그리고 돈을 둘러싼 가족들의 치열한 물밑작업이 시작된다. 이 정도의 상황까지는 좀 흥미로울 뿐이었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갑자기 전립선이 막혀 오줌을 눌 수 없는 여든넘은 노인의 고통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 아버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물쭈물하는 동안 할머니는 누워 있는 할아버지 바로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비켜라, 더러운 년, 뭘 하려고. 내 몸에 손 대지 마라. 할아버지의 마지막 저항은 참으로 서글펐다. 시끄러워, 이 짝불이 자식아, 누군 뭐 네 조그만 잠지 만지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가만히 있어. ...중략... 할아버지는 필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할머니 손을 피하려 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급해진 할아버지가 용을 쓰다가 그만 뭔가를 지린 것. 할아버지의 얇은 바지 위에 노란빛이 퍼져갔다. 아휴, 똥까지 지렸네, 더러운 새끼. 어멈아, 응급차 오기 전에 갈아입혀야겠다.(95) "

 할아버지가 똥을 지리듯, 나도 모르게 지려.. 아니, 흘러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고작 똥오줌 얘기에 무너지다니 자존심 상하게.

 

 거기다 동생이 밥 사준다고 불려나간 강남역 8번 출구 회전초밥집에서 동석이 보인 태도는 나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친구라는 놈한테 여친 뺏기고도 밸도 없이 술이나 얻어먹고 시집가서 살고 있는 전여친이나 아쉬워하는 지질한 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진지한 모습도 있었다. " '언제 다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47)" 이건 동석의 생각이자, 요즘 내가 음식점 갈 때마다 하는 진중한 다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밥통이 작아지는지 기량이 전같지 않아 마음이 아픈데, 동석의 이런 진지한 태도가 깊은 공감을 낳았다. 그리고 그 회전초밥집 진짜 있는 가게라면 나도 한 번 가고 싶어졌다. 가성비 맛집이라는 설정이 참 좋았다. 12년도에 처음 나온 책이니 아마 예전엔 있었어도 지금은 이미 사라졌겠지.

 

 어쨌든, 이 책은 그냥 웃기기만한 가벼운 내용도 아니다.

 " "나 아니여." 할아버지의 무지막한 대꾸가 이어졌다. "아니긴 뭐가 아니여. 개잡년아." "나 아니라니까." "이것이 또 거짓부렁이여."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빨리 자수를 해야 했다. "전데요." 할아버지는 조용히 창문을 닫았고 할머니는 입을 앙다물고 눈을 감았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약 3분 뒤 할머니가 드디어 침묵 대결을 깨뜨렸다. "넌 그때도 날 믿지 않았어." ...중략... "넌 마누라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165) " 

 차 안에서 동석이 뀐 방구 때문에 툭 불거져 나온 과거가 심상치 않았다. 조금씩 풀려지는 회한의 세월과 함께 웃음속에서도 마음이 말랑말랑 아려온다. 그러다 문득 아, 이래서 이 책이 사랑받을 수 있었구나 싶어진다. 하다못해 짝불이란 말까지 마음이 아려오게 만드는 과거가 숨겨져있다. '할매가 돌아왔다' 제목이나 가벼워보이는 표지만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더 괜찮았다. 책을 다 읽고나서 한참동안 '마음이 동한다'는 것(217)에 대해 생각해봤다. 미소가 지어졌다. '60억'도 떠올려봤다. 광대가 솟고 잇몸이 마른다. 마음이 더 동한다.

 

 결말은 글쎄, 가장 적당했지만 소설다운 통쾌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설다운 통쾌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더니 더 좋았다. 다 때려부숴버리면 얼마나 속이 다 시원하고 좋았을까. 하지만 이런 결말도 있는 법이다. 한편으로는 앞을 열어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삶이 계속되듯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봤는데 이 책을 쓴 작가가 63년생이다. 젊은 감각이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63년생이라니. 재미와 더불어 감탄도 나온다. 재미와 감동은 아쉽지 않은 책이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12년도에 진작 못 발견했던게 아쉽다. 여기저기 판권이 많이 팔린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연극 무대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라 무대에서도 꼭 만나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가장 많이 생각한 것 같다. 수상작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고 본다면 아마 이 책은 내가 좋아할만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어쩐지 읽으면서 이래도 되나 싶은 소설적 구성들이 눈에 걸렸는데, 긴 집필기간 동안 작가가 많이 알아보고 생각해서 썼을 것이란 생각에, 어련히 잘 쓰셨을까 하고 찜찜한 마음을 접으며 읽었다. 문득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나랏말사미'가 떠올랐다. 역사 속의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이 큰 논란이 됐었던 까닭이다. 첫머리에 소설은 소설로만 읽히길 바란다는 당부가 있지만 왜 자꾸만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가까운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있는 성향이란 말을 듣기는 하지만, 내 성향탓이 아니라 이 책은 진짜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가벼운? 재미있는? 글들만 찾아 읽으려고 해서 그런가 무게감이 느껴지는 글에 몰입을 잘 못하는 자신을 탓했다. 평소에 역사관련물은 책도 그렇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잘 보질 않아서 솔직히 단어 하나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 심지어 책을 읽다가 "예"하고 대답이 나올만한 부분에 "제"라고 오자가 있는 것을 보고도 옛날에는 저렇게도 대답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버렸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오자라고 말해서 '역시'하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고보니 괜히 솔직했나 굉장히 무식해보인다. 무식이 드러났다. 학교 다닐 적에 역사 공부를 덜해서 그런거다 하고 말하면 할말은 없지만.

 

 시대물이라는 이유를 빼고서도 책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오래되었다. 역사물을 좋아한다면, 그래서 장르소설도 시대물 위주로 보고 드라마도 챙겨본다면 이 책이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지 모르겠다. 거기에 종교가 있다면 더욱.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글쎄 좀 갸우뚱하며 읽게 되지 않을까. 읽으면서 길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 아주 간단하게 누구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어떤 사건을 바라봐야할지 잡힌다면 의도나 흐름을 파악하기 더 좋았을테지만, 인물들은 한 틀에서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길을 따라 결말이라는 끝을 향해 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각각의 큐브 조각들이 서로의 고리에 연결되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된 인물인 도향과 약용의 관계에서 왠지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정약용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어쩐지 내심 역사시간 메인 인물인 그에게 경외감 같은 것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도향이 나오는 부분마다 정약용의 모습이 흔들리는 개인으로만 묘사되는 것 같았다. 도향이라는 인물이 가진 것을 오히려 접게 만드는 걸림돌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장벽이 오히려 책을 읽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정약용에 대해 다시 알아보았다. 그의 삶이 책에서 보여지는 것과 비슷한 궤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며 이상하게 오히려 역사와 책속의 정약용이 별개의 서사를 가졌다는 것을 분리할 수 있었다. 반면 읽을수록 장영실의 존재가 너무나 커지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최후의 만찬'을 보며 오른쪽 두번째 인물이 장영실..이 될 수 있는가를 연관짓다니. " "장영실은 정말 밀라노에 갔단 말인가?" (318)" 이 문장은 내 머리속에도 황당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모든 것을 견뎌?내고 난 뒤에 조심스럽게 재밌어지기 시작한다. 화선지에 살짝 묽은 염료가 번지듯이 은근하게. 처음에 불편했던 도향과 약용의 관계도 어긋남이 보이면서 담담해지고, '변음'에서 오는 불협화음같은 긴장감이 고조되며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어휘들도 익숙해지고 그동안 풀어졌던 떡밥들이 일부나마 회수된다.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어떤 부분은 판타지인가 싶어진다. 이미 지리적 배경은 밀라노에 다빈치까지 끌어온데다 종교문제까지 있으니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했던 걸까 싶어진다. 그 뒤로도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흘렀기 때문에 그 이상을 쓸수도 없을테지만. 어쩌면 너무 많이 지나보내고 난 뒤에 재미를 느끼고 읽어서 끝맺음이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전에 잘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장르를 만나본 것 같아 괜찮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지음 / 수카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음악이 없으면 서랍 같은 걸 엄청 많이 사야 될 거야. 원래는 음악 속에 추억을 넣고 다니니까.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추억도 새로 산 서랍 속에 넣고는 겉에 '작은 별'이라고 쓴 테이프를 붙여놓아야 할걸. 아마 번거롭겠지. 근데 그럴 필요까진 없어. 우리에겐 바다가 있으니까. 바다는 아주 큰 서랍이야. 우린 먼 훗날 바다 앞 모래사장에 걸터앉아서 오늘을 떠올릴 수 있어. p.52 "

 

 본업을 너무나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찬혁의 소설이 궁금했다. 종종 듣는 좋아하는 노래도 있고, 남매 뮤지션이라는 끈끈한 관계성 때문에 악동뮤지션에도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소설을 썼다는 신간 소식을 들었을 때 세상에 이런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음악과 가사로 보여줬던 세계를 소설로 보여준다면, 나는 또 어떤 느낌을 받을까 궁금했다. '물 만난 물고기'를 읽기 전에는 그가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기 때문에 내용이 궁금했다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를 악동뮤지션의 이찬혁과 분리시켜야 하는 것일지 고민했다.

 

 소설 속 해야는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해야에게 빠지는 선이의 모습을 보면 볼 수록 나도 해야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자신에게 있어 너무나 큰 존재로 받아들이는 선이를 불안정하고 미숙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 그녀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못했으면 난 이 마지막 여행 이후로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음악가보다 환경미화원이 더 멋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야는 나의 음악에서 결핍된 자리를 정확히 채워주고 있었다. 그녀가 나의 음악이었다. 그녀의 말고 생각은 나를 번뜩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그녀였다. p.115 "

 

 " 그녀의 책에는 결말이 있을 것이고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가장 마지막 챕터가 나올 것이다. 내가 그녀의 책 가장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조연이라면 난 주저 없이 가장 멋진 결말을 그녀에게 선물할 것이라 다짐했었다. p.161 " 언뜻 로맨틱하기도 하고, 멋진 것 같은데, 이를 두고 낭만적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표현이 어색했다. 오히려 그녀가 나의 책-인생-에 등장하는 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선이의 생각이 자기파괴적이라 느껴질만큼. 하지만 저자를 떠올렸을때 어쩌면 그는 그럴수 있을 것이라는 이해를 하게 된다. 그가 가진 젊음과 그가 보여준 젊음만큼의 순수같은 것들에선 저런 낭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유롭고 부드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쩐지 안전벨트를 푸는 해야의 행동(38)에 주춤하게 된다. 요즘은 티비 프로그램에서도 사람들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 나오면 전좌석 인원이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다. 미착용한 모습을 발견하면 시청자 게시판 같은 곳에 이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엄격한? 규정에 대한 지적과 수정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일까, 소설을 읽으면서도 마치 실제처럼 '저러면 안되는데'하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두 사람이 드라이브를 하는, 그러면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장면인데도 나는 티비를 보듯이, 출연자와 제작진들이 지켜야 할 사회의 규범을 연상한 것이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기로 한 일, 처음엔 꽤 그럴싸한 이벤트라고 생각했던 죄수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일조차 만약 그들이 입은 죄수복이 진짜의 그것과 비슷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속으로 자꾸 브레이크를 거는 동안 소설의 내용은 더욱 자유로워졌다. 선과 해야의 만남이 애매한 착각같았다면 선의 여행이, 해야의 존재가, 그들의 이별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어떨때는 의미를 알 수 없어졌다. 소설의 사소한 장면들을 끌어와 현실에 끼워맞추려는 시도들이 내 기준점을 잃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같았다. 이는 내가 소설 속에 푹 빠져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호기심이 가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그가 창작해 낸 곡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내면에 맑은 장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은 만족스러웠다. 음악을 들으며 '어떻게 이럴 수 있지'하고 생각했던 걸 '이런 사람이라 그랬구나'하고 멋대로지만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어쩐지 알몸이나 키스라는 단어가 나와도 외설적인 뉘앙스가 전혀 연상되지 않는 글이었다. 얼룩말들이 옷을 걸치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포옹으로 기쁨을 나누는 것처럼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형태와 감정의 교류로 보였다. 이쯤되니 만약 그가 죽음과 거짓으로 점철된 스릴러나 추리소설 같은 것을 썼다면 혹은 인간 밑바닥의 추악한 본성에 대한 글을 썼다면 덜 잔인하게, 자연스럽게 보였을까 궁금해졌다.

 

 읽는 동안 내가 멀어진 곳에 서서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작가의 존재가 의식되었다. 유명인이 냈다는 특징은 그 책을 찾아 읽게 만드는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결국 그 안의 '나'를 자꾸만 '그'로 바라보게 만드는 점도 있었다. 어느 작가의 글을 보더라도 '나'를 두고 작가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덧그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물 만난 물고기'를 읽는 동안은, 어쩌면 책을 읽을 때 카페에서 그의 신곡이 나왔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 모르지만 새 앨범의 모티브가 된 소설이었단 문구와 함께 자꾸만 작가가 아닌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떠올랐다. 지금은 '물 만난 물고기'를 읽으면서 조금 아쉬움을 느껴졌지만 앞으로 그가 더 다양한 분위기의 글을 지금처럼 순수하게 계속해서 쓴다면 어떨까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튜브 젊은 부자들 - 구독자 0명에서 억대 연봉을 달성한 23인의 성공 비결
김도윤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이 나를 아날로그형 인간으로 분류했다. 그 영역으로 내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습관대로 검색을 네이버로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나와 한 십년정도 차이나는 세대들은 어느새 유튜브로 정보를 찾고 있었다. 동영상으로 원하는 정보를 찾아본다는 것에 어리둥절해 할 무렵 유튜브는 누구나 사용하는 심지어 중장년층도 늘 시청하고 있는 거대 플랫폼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나도 몇몇 크리에이터들의 이름을 알고 가끔 소개받는 영상들을 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영상이 있는 채널은 기억해두었다 찾아보기도 한다. 가까운 지인은 유튜브로 돈을 벌어볼 요량으로 채널을 만들었는데, 나는 그의 채널을 구독하기 위해 처음 유튜브를 가입한 것이다. 때문에 아직도 유튜브라고 하면 내가 미처 따라가지 못한 새로운 플랫폼으로 장벽이 느껴진다.

 

 그런 내가 이제와서 유튜브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유튜브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쯤되면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원하는 영상을 찾아봐야 더 유튜브적 인간과 가까워지는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 '유튜브 젊은 부자들'을 읽어보게 만든 차별점은 저자도 구독자 0의 상태에서 유튜브를 직접 시작하며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미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더 괜찮아보였다. 이미 지나온 것을 회고한 것보다 더 생생하고, 과정의 시행착오나 보장되지 않은 성장이 그대로 담긴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랑 공감하듯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흔히 창업을 할 때도 성공한 대박집만 찾아다니며 계획하는 것보다 장사가 안되는 집을 보며 공부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지 않은가. 창업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직접 사업을 시작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라니, 그만큼의 품과 리스크를 들이는 사람의 글이라면 좀 읽어볼만 하지 않을까하고.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이 소개되는 유튜버마다 처음 들어보거나 뉴스같은 티비 프로그램에서 언급되는것만 접했지 한번도 영상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수십만의 구독자들을 보유하고 있고, 유튜브로 돈을 벌고 있었다니. 많이 한다더라 하고 듣는 것과 유명한 유튜버들을 선별해서 소개했을텐데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니 아직도 난 유튜브를 전혀 이용해보지 않는 것과 다름없구나 싶었다. 대도서관이나 도티, 입짧은햇님, 박막례님 같이 티비에 나온 사람들을 알고 있는것과는 또 달랐다. 대단한 촬영 장비가 필요없다, 아주 간단한 편집교육만 받고 뛰어든 사람들도 많다 같은 내용들은 이미 다른 책에서도 많이 언급된 내용이라 크게 새롭지 않았는데, 소개되는 유튜버들은 다 처음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초반에는 그점이 신기했다. 효기심, 리뷰엉이같은 이름들은 특히나 센스있게 만든 것 같아 한번 보고 딱 기억되는 이름도 중요하구나 싶어졌다. 

 

 유튜브를 좀 안다는 이들 중에 성공 비결을 두고 꾸준함을 꼽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늘 새로운 크리에이터들의 창작물을 고루 추천하기 때문에 컨텐츠를 잡고 꾸준히 할수만 있다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정말로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그나마 형평성이 맞는 기회의 장인 것일까? 이 책에서도 알고리즘에 대해 나오는 부분(127)이 있어서 읽기 전에 그 내용이 가장 궁금했었다. 막상 그 단락에서 보게 된 내용들은 크리에이터들이 제작해야할 컨텐츠에 대한 직접적인 조언, 시의성에 맞는 주제나 빨리 많이 먹기 같은 자극적인 내용 등이 소개되어 있어서 아쉬웠다. 뒷부분에 언젠가 터질 날?을 기다리며 꾸준히 업로드해야 하는 성실성을 강조한 부분도 있지만 앞서 소개된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을 보면 곤충먹기, 짜장면 빨리먹기, 롤리타의 자극적 장면을 담은 썸네일, 외국인 반응 영상 등 유튜브에 호감을 갖기 어려운 주제들이었다.

 

 처음에 기대했던 책의 전개와는 방향이 좀 다른 것처럼 느껴져서 읽으며 아쉬웠다. 많은 유튜버들의 케이스를 소개해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알 수 있도록 한 의도는 좋았지만 저자가 시작한 유튜브의 과정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어서 처음에 차별점이라 생각했던 장점이 없었다. 유튜브, 당신도 할 수 있다! 시작하라! 는 권유를 담은 내용같은데 한편으로는 주춤하게 만드는 부분들도 눈에 띄었다. 아직 빈자리가 많이 남아있다. 늦기 전에 탑승하라(165)고 하면서도 유튜버 중 99%가 한달에 100달러도 못 번다는 통계자료가 있다(170)는 언급이 나온다. 최근 일어난 안타까운 일 때문에라도 악성 댓글에 어느 정도 각오할 필요(226)에 대해 조언하는 부분도 이 시장을 되는 돈벌이?로 여겨서 뛰어들만한 것일까 의문을 갖게 했다. 좀 더 모험심이 크고, 자신을 드러내보이는 것에 거부감이 적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실용적이고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준비된 인재이겠지만. 하지만 그렇지못한 성향의 개인으로는 아쉬움으로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