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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가장 많이 생각한 것 같다. 수상작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고 본다면 아마 이 책은 내가 좋아할만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어쩐지 읽으면서 이래도 되나 싶은 소설적 구성들이 눈에 걸렸는데, 긴 집필기간 동안 작가가 많이 알아보고 생각해서 썼을 것이란 생각에, 어련히 잘 쓰셨을까 하고 찜찜한 마음을 접으며 읽었다. 문득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나랏말사미'가 떠올랐다. 역사 속의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이 큰 논란이 됐었던 까닭이다. 첫머리에 소설은 소설로만 읽히길 바란다는 당부가 있지만 왜 자꾸만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가까운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있는 성향이란 말을 듣기는 하지만, 내 성향탓이 아니라 이 책은 진짜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가벼운? 재미있는? 글들만 찾아 읽으려고 해서 그런가 무게감이 느껴지는 글에 몰입을 잘 못하는 자신을 탓했다. 평소에 역사관련물은 책도 그렇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잘 보질 않아서 솔직히 단어 하나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 심지어 책을 읽다가 "예"하고 대답이 나올만한 부분에 "제"라고 오자가 있는 것을 보고도 옛날에는 저렇게도 대답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버렸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오자라고 말해서 '역시'하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고보니 괜히 솔직했나 굉장히 무식해보인다. 무식이 드러났다. 학교 다닐 적에 역사 공부를 덜해서 그런거다 하고 말하면 할말은 없지만.
시대물이라는 이유를 빼고서도 책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오래되었다. 역사물을 좋아한다면, 그래서 장르소설도 시대물 위주로 보고 드라마도 챙겨본다면 이 책이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지 모르겠다. 거기에 종교가 있다면 더욱.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글쎄 좀 갸우뚱하며 읽게 되지 않을까. 읽으면서 길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 아주 간단하게 누구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어떤 사건을 바라봐야할지 잡힌다면 의도나 흐름을 파악하기 더 좋았을테지만, 인물들은 한 틀에서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길을 따라 결말이라는 끝을 향해 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각각의 큐브 조각들이 서로의 고리에 연결되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된 인물인 도향과 약용의 관계에서 왠지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정약용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어쩐지 내심 역사시간 메인 인물인 그에게 경외감 같은 것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도향이 나오는 부분마다 정약용의 모습이 흔들리는 개인으로만 묘사되는 것 같았다. 도향이라는 인물이 가진 것을 오히려 접게 만드는 걸림돌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장벽이 오히려 책을 읽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정약용에 대해 다시 알아보았다. 그의 삶이 책에서 보여지는 것과 비슷한 궤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며 이상하게 오히려 역사와 책속의 정약용이 별개의 서사를 가졌다는 것을 분리할 수 있었다. 반면 읽을수록 장영실의 존재가 너무나 커지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최후의 만찬'을 보며 오른쪽 두번째 인물이 장영실..이 될 수 있는가를 연관짓다니. " "장영실은 정말 밀라노에 갔단 말인가?" (318)" 이 문장은 내 머리속에도 황당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모든 것을 견뎌?내고 난 뒤에 조심스럽게 재밌어지기 시작한다. 화선지에 살짝 묽은 염료가 번지듯이 은근하게. 처음에 불편했던 도향과 약용의 관계도 어긋남이 보이면서 담담해지고, '변음'에서 오는 불협화음같은 긴장감이 고조되며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어휘들도 익숙해지고 그동안 풀어졌던 떡밥들이 일부나마 회수된다.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어떤 부분은 판타지인가 싶어진다. 이미 지리적 배경은 밀라노에 다빈치까지 끌어온데다 종교문제까지 있으니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했던 걸까 싶어진다. 그 뒤로도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흘렀기 때문에 그 이상을 쓸수도 없을테지만. 어쩌면 너무 많이 지나보내고 난 뒤에 재미를 느끼고 읽어서 끝맺음이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전에 잘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장르를 만나본 것 같아 괜찮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