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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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런 형식의 책을 읽으면 궁금증이 생긴다. 저자는 평소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하나씩 다 기억해두고 있는걸가, 하는. 어떤날 어떤일이 생기면 이 일은 잘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글로 써야지, 혹은 책을 낼 때 써먹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걸까 궁금해진다. 내게도 가끔은 마음에 맺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감성이 차올라 별 거 아닌 일상의 일도 의미깊게 다가오는 때도 있지만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잊거나 그러고 만다. 자신이 생각하거나 겪은 소소한 순간들과 책을 엮어 낸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는 서른 한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서 내가 원하는 맛을 고르듯 요즘의 복잡한 내 마음에 닿을만한 글들을 골라가며 읽었다.

 

 최근들어 주변에 가장 많이 한 말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가장 크게 느낀 변화이기도 한 것이, '계절'이다. 좋아하던 노래가 있었는데, 가을방학이라는 가수의 가을방학이라는 곡이다.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노래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계절이 있었는데, 그래서 매번 그 계절을 기다리곤 했는데, 몇년전부터 문득 좋아하던 계절에 대한 호불호가 옅어지고 그냥 모든 계절이 다 싫지 않아졌다. 봄은 봄이라 좋고, 여름은 여름이라 좋고, 가을도, 겨울도. 모든 계절을 다 좋아하게 된 것도 그 나름 장점이 있지만 사게절 중 한 계절을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던 그 마음이 어디로 사라졌는가 싶은 쓸쓸함이 남았다. 그 노래의 가사 중에 "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싫은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제야 그 가사에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에도 계절에 대한 글이 나온다. " 자꾸 마음 쓰이는 계절 (86)"로 겨울에 얽힌 저자의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다. 계절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순간에 대해서도, 또 생각지 못한 어긋남으로 마음이 무거워진 일도. 뒤에 이어지는 '세한도'와 얽힌 부분은 제외하고서라도, 문득 가을방학의 노래가 떠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굳이 노래를 찾아 들으며 몇번을 다시 읽어봤는데 그때의 내 마음이 책 제목과 잘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내가 달라진 것이 좋은지 싫은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던데 정말 달라진 것인지, 그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는 때늦은 폭풍에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매번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보다 오년쯤 혹은 십년쯤 더 나이를 먹으면 이런 사소한 일로 방황하거나 고민하지 않을텐데, 하고. 십대때는 그때 했을 법한 뭐 고만고만한 고민들을, 대학가면 살빠지고 예뻐진다길래 그럼 대학가면 해결되겠구나 했던. 이십대적에는 내가 앞으로 뭘하고 살지 밥벌이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서른 넘으면 내 분야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살게 될거라 생각했었다. 그런 것들 말고도 친구, 일적으로 만난 관계들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도 나이를 더 먹으면 지금보다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매번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미래를 인간관계를 심지어 외모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 것을 스무살이 넘어서 서른살이 넘어서도 새삼 떠올리고 스스로 자조하는 것이다.

 

 마음에 걸어둔 빗장이 해제되지 않는 시기다. 겨울이 깊어져서 그런지, 허무하게도 나이를 더 먹어가는 시간 때문인지 불분명하다. 책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다만 위안이 된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나와 같은 얼룩이 있고, 그렇게 사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책도 나오고, 이런 책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뭐 그런 것 아니겠나. 얼마 전 받았던 질문이 있다. 우울할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당신만의 방법이 있냐는 것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그럴 때 일부러 패스트푸드 가게를 찾아가 감자튀김을 사먹는다. 처음엔 그냥 사람들속에 껴서 좋아하는 것을 먹고 기분을 전환하려고 한 것인데, 언젠가부터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기로 한 것처럼 바뀌었다. 별 것 아닌 대답을 특별하다고 해준 덕분에 이 방법이 힘을 좀 더 얻었다. 

 

 요즘은 그럴만큼 낮은 감정에 빠진 일이 드물긴 한데, 그냥 단순하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우리집 강아지, 주말에 먹었던 맛있는 점심, 누군가 굳이 보내주었던 좋아하는 케익의 기프티콘, 겨울마다 장식되는 꼬마전구들, 새로 산 카디건.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누군가도 그래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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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늑대였다
애비 웜백 지음, 이민경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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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비 웜백의 글을 읽으면서 잘 쓴 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표현한 '늑대'의 뜻이 단순히 야생성이나 용맹함 같은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란 점은 좋았다. 물론 그런 의미도 포함하고 있지만, 책의 앞부분에 그가 예로 든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에 대한 이야기는 좀 다르다. 이 이야기를 나도 인터넷을 통해 본 적이 있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몇 마리의 늑대가 불러온 환경의 놀라운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뉴스나 다른 매체로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체계의 위협으로 간주되는' 존재가 사실은 사회가 기능하도록 만드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증명을 여성에게 대입한 점이 영리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에 대한 이야기 영상을 본적이 없다면 한번쯤 찾아보는 것도 좋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영감을 주는 여성 리더들의 책을 많이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성인 리더들의 강연이나 책도 자극이 되겠지만, 여자로서 사회에 나가 헤쳐나가는데에는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이들의 생생한 경험과 이해가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전에 읽은 책에서 본 간단한? 실험에 대한 내용인데, 여성과 남성 직원이 서로의 이름만 바꿔서 일을 했을때 어떤 차이를 경험했는가를 말했다. 같은 일을 처리할때 남성 직원의 이름으로 요청하고 제안한 건이 더 쉽게 받아들여지고, 여성 직원의 이름으로 제안된 것은 몇번의 확인 절차나 지체가 있었다는 결과였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런 차이는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아채기 어려울 때가 많다. 피파가 내셔널 풋볼 리그 경기장에서 여자팀의 경기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애비 웜백이 자신이 상을 받은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 경험에 대한 감상과, 다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차림을 한 결단에 대해서 말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 나는 우리 셋이 비슷한 경력을 끝마치고 내려가지만 매우 다른 미래를 마주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코비, 페이턴, 나는 각자의 경력을 위해 같은 것을 희생했습니다. 비슷한 양의 피와 땀,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세계 챔피언십을 거머쥐었습니다. 똑같은 야성, 재능, 헌신을 몇십 년 동안 필드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은퇴 이후는 전혀 같지 않았습니다. 코비와 페이턴은 무대를 떠나 내가 가지지 못한 미래를 향해 걸어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59) " 를 언급했을때 의외성을 발견하고 책이 더 흥미로워졌다.

 

 자신이 이룬 것을 진열하고 당신도 할 수 있다고만 말하려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리더에 대해 말하면서 타인을 압도하고 리드하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 이곳에서 불친절은 용납되지 않아. (76)" 라고 정의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리더십이라는 게 "벌어들이는 자리(76)"라면 개인적으로 그런 것에는 큰 흥미도 의미도 찾기 어려운 성향이라 리더십의 필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책에서 설명하는 리더십이라면 자신의 성향과 떨어진 것이라는 거리감이 들지 않았다. 포용하는 것이라면, 또 친절과 마음씀이 속해있는 것이라면 나와도 가까운 것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빌어먹을. 공. 내놔 (109) " 부분을 유쾌하게 읽으면서 욕심내고 열망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도 했다. 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의 미덕을 배웠던 것 같은데, 요즘 90년대생의 등장과 함께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보며 '꼭 그래야만 되는게 아닌가보다'하던 참이었다. 내가 그래야만 하는 것, 그래야 미덕이라고 여겼던 태도들이 관습에 지나지 않고, 욕망해도 괜찮고 솔직해도 괜찮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특히나 내가 여성이어도. '우리는 언제나 늑대였다'는 짧지만 강렬한 메세지로 많은 생각을 유도했다. 내가 평소에 포기했던 것,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것, 의식하지 않았던 것, 때로 무시했던 것들을 하나씩 되돌아보게 만든다. 쿨하고 열정적인 어조로 저자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책이었다. 2020년 새해를 한달 정도 보내고 정체된 자신에게 자극제가 필요하다면 가볍게 읽어볼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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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2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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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만 내 부모님이었을 뿐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는 거예요. 리디아의 말대로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부모님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이해하게 됐어요. 하지만 부모님을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싶었음에도 나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도 날 몰랐던 것 같아요. 내가 두 분의 딸이라는 것 외에는. 아마 두 분이 살아계실 때 난 아직 내가 되기 전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도 완전히 나 자신이 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내가 마침내 내가 된다면, 그땐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건가요? (284) "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총 2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을 읽을 때와 2권을 읽을 때의 생각이 좀 달라져서 속으로 여러번 자문하면서 읽었다. 1권은 단순히 어떤 내용인지, 영화로도 만들어진 원작의 내용이 궁금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1권을 읽고나서 2권이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맥락으로 묶여있는 '트렌스젠더' 이슈들이 생겼다.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mtf 트렌스젠더의 여군과 여대 소속 허용 문제들이 그것이다. 나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도 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읽는 동안 신경이 날카로웠다. 동성애에 대해 이해한다고 하면서 트렌스젠더에 대해서는 머뭇거리는 이유가 뭔가, 이성애자인 내가 정말로 동성애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입장인 것은 맞나 생각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그 속도가 너무나 달라 무너지는 사회의 균형을 느끼면서도 손 쓸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했다. mtf의 경우를 예로 들어 남성으로 태어난 자신을 '여성으로 느끼기/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진짜로 그렇게 태어났으나 불행히도 잘못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여성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법적으로 여성으로 인정해주어야 하는가. 페미니즘이 뜨거운 화두에 오르면서 여성 스스로는 여성에게 주어진 여성성에 국한되지 않으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런데 mtf이 자신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에는 자신이 그 통념적인 여성성을 가졌고, 동경했고, 느끼기 때문에 여성이며, 여성이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미묘한 어긋남을 느꼈다. 자신에 대해 느끼는대로 스스로를 규정짓는다 해서 트렌스백인, 같은 것이 인정받을 수 없는 것처럼.

 

 한참 젠더와 동성애 이슈가 시작될 무렵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소수의 혹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느끼고 규정한다면 그 생각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도심에서 진행되는 레인보우 퍼레이드의 자유분방한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여자보다 더 예쁜 트렌스젠더를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개인이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사회가 무조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왜 갑자기 더 배타적이 된 것일까, 아주 평범하고 양산적인 나의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느껴서? 젠더와 성향 문제에서만큼은 나는 다수의 기득권층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시혜적인 이해와 허락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라고 여겨서? 나 역시 캐머런을 구경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어서?

 

 이런 생각들이 트렌스젠더 이슈 때문에 발현된 것이긴 하지만, 트렌스젠더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과는 별개로 동성애에 대해서는 취향의 한 갈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동성애자 특히 여성 동성애자들이 여성의 인권과 영역에 대한 큰 이슈를 몰고오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가 나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겼다는 것이다. 남성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차치하고서라도. 하지만 요즘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사회적 합의가 준비되거나 그렇지 못했건 상관없이, 결국은 올 미래이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일까 싶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치료소에 보내지는 것이 캐머런이었던 시대에 비해 너무나 멀리 온 것 같아졌다. 앞으로는 나같은 사람을 위한 치료소가 생길지도 모른다.

 

 1권을 다 읽고 난 뒤에 2권을 기다리면서 캐머런이 지나온 시간보다 훨씬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예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뒤엎을만큼 캐머런은 잘 지냈고, 사건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져나왔다. 이래서 기독교가,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가까운 타인에게 주는 영향은 너무나도 크고 위험하구나 싶어졌다. 한번쯤 모두와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동성애자, 트렌스젠더, 종교인. 직접 이야기해보면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게 되면 아마 더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이 다른 수단을 거쳐서 대화를 나누는 것과는 다르다고 믿고 있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때문에 캐머런이 매번 리디아와 일대일 면담을 가져야 했던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았다. 이래서 금연이나 금주자 모임같은 것이 있나보다. 1권을 읽었을때는 동성애에 눈 뜬 캐머런에 집중해서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다. 그래서 맨 처음에 적은 문장이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리뷰를 쓰기까지 내 낡은 타블렛이랑 얼마나 씨름했는지 모른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꽤 괜찮았다. 캐머런이 언제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하러 퍼레이드를 나서는지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은, 희망찬 결말의 전형을 보이지 않는 내용이라서 좋았다. 요즘 '다양성'이라는 것에 너무나 피로를 느끼고 있는 탓인지 이전에는 오히려 유하게 받아들였을 동성애에 대한 내용도 나도 모르게 트렌스'애정' 같은 것은 아닌지 검열하게 됐었다. '다양성'과 '소수'에 대한 피로라니, '약자'와 '억압'에 대해 피로하게 느끼는 성차별주의자의 모습이 나에게서도 보이는걸까. 정말 그게 맞다면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세상과 더불어 내 의식이 변해야 지금했던 생각들을 부정하고 싶어질까 생각했다. 우선은 검열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지. 요즘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던 이슈들과 함께 시의적절하게 읽은 것 같아 좋았다. 눈물의 가족대화합같은 잔치마당이 벌어지지 않아서,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캐머런을 영화로도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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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동거 주니어김영사 청소년문학 10
김선희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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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아직 읽고 있는 중이지만, 잠깐의 쉼표동안 '이상한 동거'를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읽기 편한 소설은 아니었다. 청소년소설은 비슷한 분량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서 읽기에 편하긴 하지만, 반영되어야 할 흐름이 더 민감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읽다가 문득 10대가 쓸법하지 않은 말투나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싶어지는 장면이 나오면 몰입이 깨져버리고 만다. 그게 나이든 나 때문인지, 우리가 매번 안다고 생각하면 또 자신들만의 세계로 달아나버리는 청소년들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가끔은 작가의 나이를 찾아본다. 그 시절에서 얼마나 많이 멀어져있는지. 그럼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가까울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 떠올려보며 읽게 된다.

 

 십대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이해가 안되는 순간이 많다. 왜 저렇게 생각하지, 왜 저렇게 행동하지, 조금만 더 사리분별을 하거나 조금만 더 약게 굴면 좋을텐데 싶다. 주인공 광민이가 사사건건 엄마와 주인집 노인과의 관계에 대해 엇나가게 굴때면 알 수 없는 분노와 엇나감이 당황스러웠다. 나이를 먹어서 그렇게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원래 내 성격이 그래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나라면 반찬으로 옥돔이 구워져 나오면 영감 옆 자리에 앉아 밥 먹으며 옥돔에 젓가락이라도 좀 대볼텐데, 창 밖으로 물안개가 보이는 인테리어 싹 된 내 방을 하나 마련해줬으면 핑크방이면 어때 너무 좋을거 같은데, 왜 광민이는 그리하지 않는 것일까. 내 청소년기에 나도 진짜 옥돔반찬을 포기했을까.

 

 '사라지지 않는 여름'도 그렇고 '이상한 동거'도 그렇고 십대의 동성애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내가 정말 동성을 좋아하는 걸까? 하고 흔들리는 내용은 보통 여중생이나 여고생들을 소재로 나오는 것 같다. 남학생이 고민한다면 그거는 보통 찐으로 가고, 여학생의 경우는 헷갈려하는 흔들림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보통인 것 같은데 그건 왜 그럴까. 남학생의 경우 고민하게 되면 진짜 동성애자고 아니면 이성애자의 경우는 보통 고민하는 법도 적어서 그런걸까. 더 나이든 성인물에서는 브로맨스로 엮은 컨텐츠가 더 많이 나오는데 유독 청소년물에서는 흑백처럼 분명한 구분이 있는 것 같다.

 

 '이상한 동거'는 전개도 빠르고 자극적?인 내용들도 곳곳에 심어져있어서 재밌게 읽기는 했지만 개연성은 부족하다고 생각됐다. 딸이 예의없이 굴도 반항하고 엇나가는데도 엄마가 굳이 주인 할아버지에게만 집중하고 아이를 방치하는 듯한 모습이 그렇다. 오히려 마지막에서야 밝혀지는 사연을 광민에게 먼저 설명해줬다면 아마 이해하고 착하게 적응했을 인물처럼 느껴졌다. 굳이 숨긴 탓에 애꿎은 광민만 엇나가고 서로를 이해할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는 것 아니었나. 그리고 강슬이나 건영이가 광민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럴만한 계기같은 것에 대해 설명이 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웠다.

 

 하지만 학교에서 실시하는 동성애 관련 설문조사나 훈화, 색출 방법 같은 판에 박힌 듯이 똑같았다. 내가 학생일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저렇게 조사하려나, 싶을 정도로. 나는 뭐라고 썼더라, 그리고 저런 설문조사같은 것에 진짜로 응하는 학생이 있으려나. 요즘은 어떨까. 트렌스젠더가 여대와 여군에 들어가려고 하는 시대인데. 동성애를 한다고 고발?당한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은 아직도 손을 잡고 기도를 해줄까. 너 때는 그렇게 착각할 수 있어, 하고 말해줄까. 요즘은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학생 인권을 침해한다고 교육청이든 인권위같은 곳이든 진정을 넣는 세상이 된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묘하게도 '이상한 동거'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때 지나가는 고민거리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동성애적 성향을 보이는 인물들에게 어딘지 모르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설정을 부여한다. 지영이와 주예는 스스로의 이름짓기를 한다던지, 피를 섞어서 가지고 다니고, 부부가 됐다고 하거나,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동성을 사랑한다고 하기도 한다. 아무리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구석이 없는 설정에서 거리감이 든다. 엄마의 학생시절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때 느꼈던 감정이 대부분 스쳐지나가는 것이라고 하는 부분도 나온다. 물론 진심을 품은 학생도 있다고 나오지만, 나중에 지영이 자신이 붙인 강슬이라는 이름을 버리는 장면과 더불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이 붙인 이름을 버리고 만다는 뉘앙스를 받았다. 스탠스가 모호한 느낌?

 

 근데 문득 책이 '여고괴담2'랑 좀 비슷한 것 같단 느낌이 든다. 두명의 관계에 한명이 끼어들게 된 것(의미는 좀 다르지만)도 그렇고, 주예와 강슬의 관계를 다른 학생들도 알고 있고 이를 공공연히 피하는 분위기라는 점, 둘이 틀어지게 되면서 주예가 수업 중에 과잉된 행동을 하거나 자해를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그렇다. 여고괴담에서 본 것 같은 비슷한 느낌이 있다. '이상한 동거'를 재밌게 읽은 십대라면 '여고괴담2'도 좋아하지 않을까. 청소년 관람불가였던가 아니었던가 기억은 나지 않는다만. 한국의 10대 성정체성에 대해 읽었으니 이제 미국의 것으로 넘어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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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6호 - 2019.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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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지를 곱씹어 읽으면서 혹은 파헤쳐내면서 생각지 못했던 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작가의 선택한 작품만을 읽을 수 밖에 없는데, 겨울호를 읽으면서는 한 권 안에서 다양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그 점이 좋았고 그래서 힘들기도 했다. 익숙치 못한 글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든 읽어냈다는 것. 흔한 표현이지만 과자가 종류별로 담긴 종합선물세트의 베스트 상품과 끼워팔기 상품까지 천천히 먹어치운 것과 비슷하다. 늘 고르던 익숙한 맛이 아닌 낯섦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솔직히, 읽으면서 가장 재밌었던 것은 자주 접했던 소설 부분이었다. 최근 관심이 생긴 작가의 글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승은 작가의 글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인상이 강렬했다. 단편 자체도 읽으면서 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날선 분위기와 히스테릭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 더 부각한다면 영화로 나와도 될 법하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 동안 장류진 작가의 연수11회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승은 작가의 '공포가 우리를 지킨다'와 함께 굳이 찾아 읽어볼 만 할 것이다.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작가조명이었다. 작가조명을 읽었다고 해서 은희경에 대해 잘 알게된 것은 아니지만, 그를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오해였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의 글을 몇 편 읽고 내가 느낀 것들은 나로 인해 해석된 일부에 지나지 않고, 그조차도 고집스럽게 굳어있거나 너무나 쉽게 변해버린다. 작가조명을 읽으면서 작품을 통해 들여다 본 은희경이 아닌, 은희경을 통해 작품을 돌아보는 체험을 했다. 다만 이조차도 은희경을 이해했다기 보다는 그의 순간에 닿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로 작품에만 집중했는데 때로는 작가를 향해 시선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논단이나 현장의 글들은 타인의 시선이 강하게 묻어나오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읽었다. 아주 작은 것에도 나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들어갔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선택이 틀렸다고 부정하기 쉽다. 나와 같으면 ‘*잘알이고 다르면 알못이 되는 세상 아닌가. 특히 조국사태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럽고 예민한 시선이다. 다만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청산되지 못한 것들이 남은 임기 동안 좀 더 나아지기를. 때로 실망하더라도 냉소적 입장으로 마주보기를 피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읽었다. 

 

  벌써 2020년이 된지 한달쯤이 지났다. 어쩐지 2019년을 달고 있는 겨울의 계간지를 읽는 일이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직 이 겨울이 다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요즘 들려오는 전염병에 대한 소식들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보니 몇몇 이슈들은 아득히 멀게도 느껴진다. 2020년 봄호에서는 어쩌면 이 주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이 지나면 1월이 끝나고 곧 입춘이다. 벌써부터 창비의 계간지 봄호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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