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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6호 - 2019.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평점 :
계간지를 곱씹어 읽으면서 혹은 파헤쳐내면서 생각지 못했던 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작가의 선택한 작품만을 읽을 수 밖에 없는데, 겨울호를 읽으면서는 한 권 안에서 다양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그 점이 좋았고 그래서 힘들기도 했다. 익숙치 못한 글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든 읽어냈다는 것. 흔한 표현이지만 과자가 종류별로 담긴 종합선물세트의 베스트 상품과 끼워팔기 상품까지 천천히 먹어치운 것과 비슷하다. 늘 고르던 익숙한 맛이 아닌 낯섦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솔직히, 읽으면서 가장 재밌었던 것은 자주 접했던 소설 부분이었다. 최근 관심이 생긴 작가의 글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승은 작가의 글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인상이 강렬했다. 단편 자체도 읽으면서 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날선 분위기와 히스테릭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 더 부각한다면 영화로 나와도 될 법하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 동안 장류진 작가의 ‘연수’가 11회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승은 작가의 '공포가 우리를 지킨다'와 함께 굳이 찾아 읽어볼 만 할 것이다.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작가조명이었다. 작가조명을 읽었다고 해서 은희경에 대해 잘 알게된 것은 아니지만, 그를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오해였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의 글을 몇 편 읽고 내가 느낀 것들은 나로 인해 해석된 일부에 지나지 않고, 그조차도 고집스럽게 굳어있거나 너무나 쉽게 변해버린다. 작가조명을 읽으면서 작품을 통해 들여다 본 은희경이 아닌, 은희경을 통해 작품을 돌아보는 체험을 했다. 다만 이조차도 은희경을 이해했다기 보다는 그의 순간에 닿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로 작품에만 집중했는데 때로는 작가를 향해 시선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논단이나 현장의 글들은 타인의 시선이 강하게 묻어나오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읽었다. 아주 작은 것에도 나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들어갔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선택이 틀렸다고 부정하기 쉽다. 나와 같으면 ‘*잘알’이고 다르면 ‘알못’이 되는 세상 아닌가. 특히 ‘조국사태’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럽고 예민한 시선이다. 다만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청산되지 못한 것들이 남은 임기 동안 좀 더 나아지기를. 때로 실망하더라도 냉소적 입장으로 마주보기를 피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읽었다.
벌써 2020년이 된지 한달쯤이 지났다. 어쩐지 2019년을 달고 있는 겨울의 계간지를 읽는 일이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직 이 겨울이 다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요즘 들려오는 전염병에 대한 소식들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보니 몇몇 이슈들은 아득히 멀게도 느껴진다. 2020년 봄호에서는 어쩌면 이 주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이 지나면 1월이 끝나고 곧 입춘이다. 벌써부터 창비의 계간지 봄호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