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여름 2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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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만 내 부모님이었을 뿐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는 거예요. 리디아의 말대로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부모님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이해하게 됐어요. 하지만 부모님을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싶었음에도 나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도 날 몰랐던 것 같아요. 내가 두 분의 딸이라는 것 외에는. 아마 두 분이 살아계실 때 난 아직 내가 되기 전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도 완전히 나 자신이 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내가 마침내 내가 된다면, 그땐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건가요? (284) "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총 2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을 읽을 때와 2권을 읽을 때의 생각이 좀 달라져서 속으로 여러번 자문하면서 읽었다. 1권은 단순히 어떤 내용인지, 영화로도 만들어진 원작의 내용이 궁금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1권을 읽고나서 2권이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맥락으로 묶여있는 '트렌스젠더' 이슈들이 생겼다.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mtf 트렌스젠더의 여군과 여대 소속 허용 문제들이 그것이다. 나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도 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읽는 동안 신경이 날카로웠다. 동성애에 대해 이해한다고 하면서 트렌스젠더에 대해서는 머뭇거리는 이유가 뭔가, 이성애자인 내가 정말로 동성애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입장인 것은 맞나 생각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그 속도가 너무나 달라 무너지는 사회의 균형을 느끼면서도 손 쓸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했다. mtf의 경우를 예로 들어 남성으로 태어난 자신을 '여성으로 느끼기/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진짜로 그렇게 태어났으나 불행히도 잘못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여성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법적으로 여성으로 인정해주어야 하는가. 페미니즘이 뜨거운 화두에 오르면서 여성 스스로는 여성에게 주어진 여성성에 국한되지 않으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런데 mtf이 자신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에는 자신이 그 통념적인 여성성을 가졌고, 동경했고, 느끼기 때문에 여성이며, 여성이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미묘한 어긋남을 느꼈다. 자신에 대해 느끼는대로 스스로를 규정짓는다 해서 트렌스백인, 같은 것이 인정받을 수 없는 것처럼.

 

 한참 젠더와 동성애 이슈가 시작될 무렵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소수의 혹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느끼고 규정한다면 그 생각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도심에서 진행되는 레인보우 퍼레이드의 자유분방한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여자보다 더 예쁜 트렌스젠더를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개인이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사회가 무조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왜 갑자기 더 배타적이 된 것일까, 아주 평범하고 양산적인 나의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느껴서? 젠더와 성향 문제에서만큼은 나는 다수의 기득권층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시혜적인 이해와 허락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라고 여겨서? 나 역시 캐머런을 구경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어서?

 

 이런 생각들이 트렌스젠더 이슈 때문에 발현된 것이긴 하지만, 트렌스젠더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과는 별개로 동성애에 대해서는 취향의 한 갈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동성애자 특히 여성 동성애자들이 여성의 인권과 영역에 대한 큰 이슈를 몰고오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가 나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겼다는 것이다. 남성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차치하고서라도. 하지만 요즘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사회적 합의가 준비되거나 그렇지 못했건 상관없이, 결국은 올 미래이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일까 싶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치료소에 보내지는 것이 캐머런이었던 시대에 비해 너무나 멀리 온 것 같아졌다. 앞으로는 나같은 사람을 위한 치료소가 생길지도 모른다.

 

 1권을 다 읽고 난 뒤에 2권을 기다리면서 캐머런이 지나온 시간보다 훨씬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예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뒤엎을만큼 캐머런은 잘 지냈고, 사건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져나왔다. 이래서 기독교가,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가까운 타인에게 주는 영향은 너무나도 크고 위험하구나 싶어졌다. 한번쯤 모두와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동성애자, 트렌스젠더, 종교인. 직접 이야기해보면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게 되면 아마 더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이 다른 수단을 거쳐서 대화를 나누는 것과는 다르다고 믿고 있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때문에 캐머런이 매번 리디아와 일대일 면담을 가져야 했던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았다. 이래서 금연이나 금주자 모임같은 것이 있나보다. 1권을 읽었을때는 동성애에 눈 뜬 캐머런에 집중해서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다. 그래서 맨 처음에 적은 문장이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리뷰를 쓰기까지 내 낡은 타블렛이랑 얼마나 씨름했는지 모른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꽤 괜찮았다. 캐머런이 언제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하러 퍼레이드를 나서는지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은, 희망찬 결말의 전형을 보이지 않는 내용이라서 좋았다. 요즘 '다양성'이라는 것에 너무나 피로를 느끼고 있는 탓인지 이전에는 오히려 유하게 받아들였을 동성애에 대한 내용도 나도 모르게 트렌스'애정' 같은 것은 아닌지 검열하게 됐었다. '다양성'과 '소수'에 대한 피로라니, '약자'와 '억압'에 대해 피로하게 느끼는 성차별주의자의 모습이 나에게서도 보이는걸까. 정말 그게 맞다면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세상과 더불어 내 의식이 변해야 지금했던 생각들을 부정하고 싶어질까 생각했다. 우선은 검열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지. 요즘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던 이슈들과 함께 시의적절하게 읽은 것 같아 좋았다. 눈물의 가족대화합같은 잔치마당이 벌어지지 않아서,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캐머런을 영화로도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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