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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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형식의 책을 읽으면 궁금증이 생긴다. 저자는 평소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하나씩 다 기억해두고 있는걸가, 하는. 어떤날 어떤일이 생기면 이 일은 잘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글로 써야지, 혹은 책을 낼 때 써먹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걸까 궁금해진다. 내게도 가끔은 마음에 맺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감성이 차올라 별 거 아닌 일상의 일도 의미깊게 다가오는 때도 있지만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잊거나 그러고 만다. 자신이 생각하거나 겪은 소소한 순간들과 책을 엮어 낸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는 서른 한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서 내가 원하는 맛을 고르듯 요즘의 복잡한 내 마음에 닿을만한 글들을 골라가며 읽었다.

 

 최근들어 주변에 가장 많이 한 말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가장 크게 느낀 변화이기도 한 것이, '계절'이다. 좋아하던 노래가 있었는데, 가을방학이라는 가수의 가을방학이라는 곡이다.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노래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계절이 있었는데, 그래서 매번 그 계절을 기다리곤 했는데, 몇년전부터 문득 좋아하던 계절에 대한 호불호가 옅어지고 그냥 모든 계절이 다 싫지 않아졌다. 봄은 봄이라 좋고, 여름은 여름이라 좋고, 가을도, 겨울도. 모든 계절을 다 좋아하게 된 것도 그 나름 장점이 있지만 사게절 중 한 계절을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던 그 마음이 어디로 사라졌는가 싶은 쓸쓸함이 남았다. 그 노래의 가사 중에 "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싫은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제야 그 가사에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에도 계절에 대한 글이 나온다. " 자꾸 마음 쓰이는 계절 (86)"로 겨울에 얽힌 저자의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다. 계절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순간에 대해서도, 또 생각지 못한 어긋남으로 마음이 무거워진 일도. 뒤에 이어지는 '세한도'와 얽힌 부분은 제외하고서라도, 문득 가을방학의 노래가 떠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굳이 노래를 찾아 들으며 몇번을 다시 읽어봤는데 그때의 내 마음이 책 제목과 잘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내가 달라진 것이 좋은지 싫은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던데 정말 달라진 것인지, 그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는 때늦은 폭풍에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매번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보다 오년쯤 혹은 십년쯤 더 나이를 먹으면 이런 사소한 일로 방황하거나 고민하지 않을텐데, 하고. 십대때는 그때 했을 법한 뭐 고만고만한 고민들을, 대학가면 살빠지고 예뻐진다길래 그럼 대학가면 해결되겠구나 했던. 이십대적에는 내가 앞으로 뭘하고 살지 밥벌이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서른 넘으면 내 분야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살게 될거라 생각했었다. 그런 것들 말고도 친구, 일적으로 만난 관계들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도 나이를 더 먹으면 지금보다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매번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미래를 인간관계를 심지어 외모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 것을 스무살이 넘어서 서른살이 넘어서도 새삼 떠올리고 스스로 자조하는 것이다.

 

 마음에 걸어둔 빗장이 해제되지 않는 시기다. 겨울이 깊어져서 그런지, 허무하게도 나이를 더 먹어가는 시간 때문인지 불분명하다. 책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다만 위안이 된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나와 같은 얼룩이 있고, 그렇게 사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책도 나오고, 이런 책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뭐 그런 것 아니겠나. 얼마 전 받았던 질문이 있다. 우울할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당신만의 방법이 있냐는 것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그럴 때 일부러 패스트푸드 가게를 찾아가 감자튀김을 사먹는다. 처음엔 그냥 사람들속에 껴서 좋아하는 것을 먹고 기분을 전환하려고 한 것인데, 언젠가부터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기로 한 것처럼 바뀌었다. 별 것 아닌 대답을 특별하다고 해준 덕분에 이 방법이 힘을 좀 더 얻었다. 

 

 요즘은 그럴만큼 낮은 감정에 빠진 일이 드물긴 한데, 그냥 단순하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우리집 강아지, 주말에 먹었던 맛있는 점심, 누군가 굳이 보내주었던 좋아하는 케익의 기프티콘, 겨울마다 장식되는 꼬마전구들, 새로 산 카디건.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누군가도 그래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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