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라면 유대인처럼 - 유대 5천 년, ‘탈무드 유머 에센스!’
박정례 편역 / 스마트비즈니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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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집에 오래된 탈무드가 한 권 있었다. 좋은책이라길래 별 생각 없이 책을 읽어봤는데, 낡고 오래된 겉모습과는 달리 꽤 읽을만한 내용이었다. 심지어 재미도 있었다. 가장 처음에 나왔던 내용이 굴뚝을 청소하는 아이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 나온 내용인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내용인지 정확하지 않다. 이 얘기를 통해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강렬하게 인지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워낙 오래된 책이라 처음 읽었던 탈무드를 잃어버렸다. 한동안 탈무드를 읽지 않았다. 그래서 탈무드의 내용으로 새 책이 나온 것을 보고 문득 어린시절에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유머' 에센스라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깨달음을 주는 쪽에 더 가깝다. 자칫 먼길을 돌아서 갈 수 있을듯한 문제 상황에서 아주 가볍게 허를 찔러 본질을 보도록 도와주는 책의 내용은 읽으면 읽을수록 좋다. 파이를 나눠가지기 위해 싸우게 된 남매에게 파이를 자르는 사람과, 잘라진 파이를 고르는 사람의 역할을 나눠주어 공평히 가져가도록 해결하는 얘기(76)나 천국에 가고 싶은 술꾼의 고민(106) 같은 소소하면서도 일상적인 상황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은 길지 않은 호흡으로 자투리 시간에 짬을 내어 읽기에도 좋고, 그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왔었는지 혹시 욕심을 부리고 어리석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생각하기에 좋다.

 

 유머가 특히 강조되어 있어서 탈무드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꼽아서 엮었을까 궁금하고 기대됐는데 대부분 살짝 실소가 나오는 정도다. 엄청 재미있을 것이라 기대하면 실망할수도 있지만,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고 읽으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지루하지 않은 내용으로 교훈을 얻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 남편이 거짓말을 할 때마다 알 수 있다는 여자(190)의 이야기나 진료비를 아끼기 위해 잔꾀를 부린 구두쇠(244)의 이야기 같은 것들은 개중 재미있는 편이었다. 이렇게 피식 웃으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을 만나 조금이라도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큰 보상이 될 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전혀 부담없는 분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어보면 좋겠다. 2021년 새해 목표로 독서를 꼽았다면 '유머라면 유대인처럼'을 읽으면 쉽게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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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들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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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시절에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표어를 볼 때마다 나는 '유행가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었다.(179) "던 저자의 책은 독특하다. 유행가를 주제로 나왔지만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유행가는 없다. 무려 1920년대의 '사의 찬미'를 시작으로 천천히 저자의 어린시절, 청소년기, 젊은날을 거쳐 온다. 80년대를 배척(208)했다고도 하고, 서태지가 등장하는 90년대만 되어도 90년대적인 것들과 불화하고 갈등(211)했다고도 한다. 그러니 이 책을 집어들 독자들이 흔히 기대할만한 유행가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좀 더 나이가 있거나, 그 이전의 대중가요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더 흡족해할 것이다.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일화도 나온다. 고은 시인(141)이나 김광석(201)과의 이야기는 짧게 나와도 시선을 붙잡는다. 겸손하기 위해 음악을 잘 알아서 이 책을 쓰게 된것이 아니(226)라고 하지만 초반의 내용들부터 어쩐지 학과시절 배우던 근현대사를 유행가와 함께 배우는 느낌일 들만큼 깊이있는 내용이다. '옛날 유행가는 한없이 슬프고 처량해야 한다'(83)는 '기쁨과 슬픔'(85)에 대한 확고한 생각처럼 이 책은 저자의 취향과 관점이 강하게 들어 있어 독특하다. 과거의 노래들에 대해서는 알아가고 배우는 기분으로 읽었고, 서태지와 김건모처럼 이제서야 들으면 어떤 노래인지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노래들에 대해서는 그저 흥미로웠다. '스피드'와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붙여 생각하거나, '맨발의 청춘'과 무기여 잘 있거라'를 꼽아 세대적 몰예의를 말한다. 별 생각없이 들었던 이 노래들이 이렇게도 읽히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재밌었다.

 

 "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 노래들이 그들의 시대적 감정을 대변하는지 모르겠다. 나이 탓인지 내게는 세월이 갈수록 삶의 전망을 함께 나눌 사회적 감정의 매개물이 잘 눈에 듸지 않는다. SNS에 가득 찬 이야기들에는 풍문의 아우라가 없고 오히려 '가짜 뉴스'의 음험함만 도사려 있다.(20) " 는 지점은 상당히 아쉬웠다. 나 역시도 시간이 지나면서 유행하는 노래나 인기있는 가수에 대해 어릴 때보다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흐름을 따라가는 일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 변화에 맞춰 살아야 감을 잃지 않는다. 물론 내가 누리던 것의 장점이 여전히 선명해보이겠지만, 그것만 바라보고 있다보면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가 되버린다. BTS처럼 충분히 집중하고 분석할만한 소재들도 있는만큼 현시대를 좀 더 포용하는 내용이 있었다면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을 것이다.

 

 고은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각별한 친밀함이 느껴지는데 대담집을 낸 적 있었다. 기왕이면 이 다음의 노래들을 모아 유행가들의 다음권을 내준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아는 노래들, 익숙한 노래들이 나오는 부분이 특히 재밌었다.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색다른 주제를 만날 수 있어 좋겠고, 대중가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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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레베카
케이트 더글러스 위긴 지음, 유기훈 그림, 박상은 옮김 / &(앤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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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인생 만화로 '빨간머리 앤'을 꼽는 친구들 많았다. 빨간머리 앤을 컨셉으로 커피숍을 인테리어하기도 하고, 굳즈도 많이 나온다. 나 역시도 텔레비전에서 빨간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할 때마다 채널을 고정하는 편이다. 적어도 십수년인 시간동안 쌓아온 애정을 바탕으로 이제서야 '나의 친구 레베카'를 만났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표절이었다. 이런 사람이 한둘은 아닐테니 책 소개에도 "'빨강 머리 앤'보다 5년 먼저 출판된 책"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럼... 앤이? 복잡한 마음과 호기심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 그 순간 제리마이어 콥의 느리게 작동하는 머릿속에 차츰 그런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새는 그가 날마다 역마차를 몰며 보아온 새들과는 완전히 다른 깃털을 가진 새라는 그런 생각이.(20) " 레베카에 대한 묘사가 시작되면서 이 부분을 읽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쇼생크 탈출'이 떠올랐다. 레드가 앤디에 대해 설명하는 나레이션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 새장 안에 갇혀선 살 수 없는 새들이 있다. 그러기엔 그 깃털이 너무나 찬란하다. " 레베카가 이런 인물이라면 마음에 들 것 같았다. 더불어 제리마이어 콥의 간결한 설명도 '마음을 녹였다.'

 

 때로는 레베카의 수다스러움에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물 흐르듯 이어지는 순수하고 밝은 에너지가 마음을 즐겁게 만든다. 아무래도 읽으면서 '앤'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었는데 길버트 같은 소년의 등장을 기다렸지만, 시소의 행동은 오싹하기만 했다. 레베카가 물을 마시고 난 다음 차례에 물을 마시려고 하거나, 경멸의 시선마저도 즐기는 모습, 레베카의 꿈을 꾸려고 한다는 부분은 그저 소름이었다. 덕분에 심프슨 네가 리버버러를 떠나던 때 레베카를 찾아와 어른이 된 뒤에 연락해도 될지 묻는 시소를 단칼에 거절하는 장면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안 돼(240)" 

 

 " 그녀는 이모네 집에 얹혀살면서 이모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모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이모가 만들어주는 옷을 입고, 이모가 사주는 책을 읽으면서 이모를 미워하는 것은 나쁜 짓임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며, 후회가 밀려올 때마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이모를 기쁘게 해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90) " 학창시절 부모님 말씀 안듣고 저 혼자 큰 것처럼 굴어서 죄송했다는 반성을 이제서야 해봅니다. 때때로 이런 생각을 잊고 서운한 일 섭섭한 일만 불평하는 아직 철이 안든 어른도 읽으면서 다시금 반성했다.

 

 레베카의 생활에 어려움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지만 스스로도 좌절하지 않고 어느 때에도 긍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밝은 모습, 주변에 힘을 나눠주는 태도를 나도 갖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살피며 사는게 어렵다. 자신의 문제에 둘러싸여 제 앞가림 잘하는 어른이 되기도 때로 벅차다. '아낌없이 사랑받고 후회 없이 사랑해요'라는 말이 유치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옳은 말임은 변치 않는 것처럼 동화로도 충분히 영감을 받고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레베카의 뒷이야기도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참 레베카의 성장과 미래가 기대되는 와중에 마무리 된 것 같아 아쉬웠다. 다 읽고나니 레베카는 레베카고 앤은 앤 다운 매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앤의 팬이라면 만나서 좋은 친구가 한명인 것보다 두명인 것이 더 좋으니 레베카의 매력에도 빠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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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쉽게 살면 재미없어 - 거대한 행복 속으로 나를 업그레이드하는 방법
권유진 지음 / 라온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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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아야할까, 를 많이 고민한 책이다. 모두가 늘 해왔던 고민이지만 노력한만큼 보상이 따른다는 근면과 성실이나, 개천에서 용이 난다, 맨주먹 성공신화 같은 이야기들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되면서 젊은 세대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새로온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오죽하면 미래를 도모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신조인 욜로나 소확행 같은 말들이 유행하게 된 것일까. 저축에는 답이 없고 주식으로 몰리는 투자 심리도 이런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 저자는 이런 젊은 세대를 향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해 온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현실적인 조언을 전한다.

 

 평소 귀가 얇아서 중심을 잡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요즘은 생활방식도 유행을 많이 타기 때문에 욜로한다고 탕진을 일삼다가 단순한 생활방식이 유행한다고 가진 물건을 다 내버렸다가 채식주의 노선까지 타는 사람들을 봤다. 어디까지나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한 노력이 깃들어 있는 시도겠지만, 이런 흐름에 이리저리 쓸려가다보면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중심이 없어 장기적으로 목표를 잡고 지속해나가기 어려워진다. 책에서도 " 내가 추구했느냐, 추구당했느냐는 다른 것(29) "이라고 한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

 

 더불어 주변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거리감을 유지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3장의 내용도 항상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을 사람들이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가끔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많이 얻거나 의견대립이 분분한 내용의 글을 보면 인간관계로 비롯한 문제가 도마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배려, 예의, 매너 같은 항목은 특히나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요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니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은지도 나와 남 사이는 서로 다른 우주만큼이나 차이나는 다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사적, 공적인 자신의 위치와 매너를 잡아야 할 때라면 3장의 내용을 읽어보고 생각을 정리하자.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했던 것이 2장의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현재 생활 방식에 익숙해지면 쉽게 무기력해지고 점차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게 되면서 스스로가 '고인다/정체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를 깨야한다는 생각과 시도를 담은점이 자극이 되었다. 1장에서는 주로 경제관념을 잡는것, 자립적인 생활을 할 것, 특히 금융 관련 투자 경험을 쌓을 것 등의 실용적 조언을 했는데 이는 요즘처럼 주식시장이 과열되기 전에, 작년 이 시점 즈음에 나왔다면 이 책을 읽고 주식을 시작해보게 된 젊은 개미들이 저마다의 성공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5장에도 있듯이 "아무것도 모른채 그냥 남 따라(210) " 사는 주식은 실패하기 쉽다. 조심하자 개미들.

 

 저자 역시 아직 젊기 때문에 유행도 많이 따르고, 성숙해져가는 과정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확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참고 대확행을 하기 위해 친구들과의 치맥파티를 계획했다는 일화(20)를 읽을 때는 어설픔이 느껴졌다. 친구들과의 치맥파티 역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소확행일 뿐인데 예를 잘못든 것 아닐까. 필사, 투자, 심리상담 등의 권유도 요즘 젊은세대 내에서의 유행이 엿보인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생한 전달을 하려고 노력한 점은 좋지만 유행을 따른 비슷한 흐름에 아쉬움도 있었다. 십대에게는 조금 이를지 모르겠지만 곧 스무살을 앞두었거나 사회초년생인 나이대까지의 독자들이 읽어보면 도움이 될 내용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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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9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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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일이 괴로웠다는, 마치 자기 깃털을 뽑아 옷감을 짜는 학같았다는 얘기를 읽고는 당황스러웠다. 작가의 전작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을 읽고서는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추겨세워놓고 한편으로는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써낸 글'이라는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작가는 당연히 프로의 길을 가고 있고 그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과정일텐데 내심 큰 고민이나 어려움없이 쓰는 '천재작가'로 여겼다. 아직도 질투와 부러움이 남아있나 싶다. 그만큼 재밌고 감동적으로 읽었다. 처음 한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이번에 읽은 '엄마의 엄마'는 지난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게키야스당의 폐점(16)'에 나도 함께 놀라버렸다. 장사꾼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게키야스당이 결국 망해버리다니.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거기까지 갔단 말인가, 하고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버린 시국이다. 전작에 나온 인물들이 계속해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전작을 읽고 읽으면 더 재밌겠지만, 그냥 읽어도 좋다. 서로에게 안타까운 관계는 있어도 절대적 악역은 없어보이는 몽글몽글한 내용이다.

 

 계속해서 하나미 특유의 엄마를 쏙 빼닮은 끈끈하고 성숙한 시선으로 보여지는 것도 좋지만 신야와의 관계만큼은 신야가 담당하는 게 좋다. 하나미의 시점에는 두근거림이나 긴장감이 하나도 없을게 눈에 선하다. 힘내, 신야. 기도 선생님의 이야기도 기도의 시선으로 긴 시간의 흐름을, 하지만 다른 인물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엵어서 보여주기 때문에 특별한 감동을 준다. 아무래도 각 중단편들의 소재가 성장해가는 작가의 관심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성적지향과 관련된 내용이 암시적으로 놓여지다 패러렐 월드에서 확 터져나온 느낌이다.

 

 " 심지어 그 시절에도 흔치 않았던 교환 일기까지 썼다. 둘 다 휴대폰이 있었으니 문자도 주고받았으면서, 옛날식 교환 일기를 쓴 것이다. 겐토가 먼저 노트에 직접 쓰고 싶다고 고집했다. "요즘 같은 시대니까 오히려 하는 거야. 손으로 쓴 문자는 나만의 속도감을 지니고 더 깊이 새겨지거든. 종이에도 마음에도. 읽을 사람을 생각해서 한 글자씩 적으면 인연이 생겨. 더 깊어져." 그렇게 말하면서.(56) "

 

 내가 이런 멋진 말이나 의도를 생각해 낸 것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가까운 친구들과 일년에 적어도 한 번 연말에는 편지를 주고 받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된 전통은 아니고, 그냥 가끔은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해야 관계가 더 풍요로울 수 있을 것 같아 편지를 쓰고 답장을 쓰라 강요했다. 그런데 '읽을 사람을 생각해서 한 글자씩 적으면 인연이 생'긴다면 이미 오랜 친구라 깊은 인연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편지 써보세요. 편지를 쓰는 건 좀 어색해도 답장을 받을때의 즐거움은 그 이상입니다.

 

 게다가 나 역시 중학교때 친구와 교환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겐토는 집에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했을때는 혹시 싶었다가, 교환일기부터 겐토에게 어떤 확신이 들긴 했는데. 어쨌든 그 시절 핸드폰이 있었음에도 교환일기를 썼던 그 친구와 나 역시 지금은 더이상 인연을 이어가고 있지 않다. 그저 이렇게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떠올리며 잘 지내려나, 하고 떠올릴 뿐이다. 야스타케와 겐토도 이 이후로 다시 연이 끊어졌으려나. 겐토 이상의 사람이 없었다면 어쩌면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엄마라는 말이 주는 느낌 때문에, '엄마의 엄마'를 두고 따뜻하고 뭉클한 내용을 예상했는데,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던지는 할머니가 등장해서 불안한 시작이었다. 끝까지 나쁜 사람으로 남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시간을 덮을만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읽기 괴로운 내용이 될 것 같다. 할머니가 던지고 간 폭탄같은 발언들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걸려 불안한데, 꼭 이 다음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이렇게 '변변찮아도 마음'인 일상을 보내며 무탈히 어른이 되었다는 하나미의 보고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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