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9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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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일이 괴로웠다는, 마치 자기 깃털을 뽑아 옷감을 짜는 학같았다는 얘기를 읽고는 당황스러웠다. 작가의 전작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을 읽고서는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추겨세워놓고 한편으로는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써낸 글'이라는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작가는 당연히 프로의 길을 가고 있고 그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과정일텐데 내심 큰 고민이나 어려움없이 쓰는 '천재작가'로 여겼다. 아직도 질투와 부러움이 남아있나 싶다. 그만큼 재밌고 감동적으로 읽었다. 처음 한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이번에 읽은 '엄마의 엄마'는 지난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게키야스당의 폐점(16)'에 나도 함께 놀라버렸다. 장사꾼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게키야스당이 결국 망해버리다니.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거기까지 갔단 말인가, 하고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버린 시국이다. 전작에 나온 인물들이 계속해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전작을 읽고 읽으면 더 재밌겠지만, 그냥 읽어도 좋다. 서로에게 안타까운 관계는 있어도 절대적 악역은 없어보이는 몽글몽글한 내용이다.

 

 계속해서 하나미 특유의 엄마를 쏙 빼닮은 끈끈하고 성숙한 시선으로 보여지는 것도 좋지만 신야와의 관계만큼은 신야가 담당하는 게 좋다. 하나미의 시점에는 두근거림이나 긴장감이 하나도 없을게 눈에 선하다. 힘내, 신야. 기도 선생님의 이야기도 기도의 시선으로 긴 시간의 흐름을, 하지만 다른 인물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엵어서 보여주기 때문에 특별한 감동을 준다. 아무래도 각 중단편들의 소재가 성장해가는 작가의 관심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성적지향과 관련된 내용이 암시적으로 놓여지다 패러렐 월드에서 확 터져나온 느낌이다.

 

 " 심지어 그 시절에도 흔치 않았던 교환 일기까지 썼다. 둘 다 휴대폰이 있었으니 문자도 주고받았으면서, 옛날식 교환 일기를 쓴 것이다. 겐토가 먼저 노트에 직접 쓰고 싶다고 고집했다. "요즘 같은 시대니까 오히려 하는 거야. 손으로 쓴 문자는 나만의 속도감을 지니고 더 깊이 새겨지거든. 종이에도 마음에도. 읽을 사람을 생각해서 한 글자씩 적으면 인연이 생겨. 더 깊어져." 그렇게 말하면서.(56) "

 

 내가 이런 멋진 말이나 의도를 생각해 낸 것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가까운 친구들과 일년에 적어도 한 번 연말에는 편지를 주고 받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된 전통은 아니고, 그냥 가끔은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해야 관계가 더 풍요로울 수 있을 것 같아 편지를 쓰고 답장을 쓰라 강요했다. 그런데 '읽을 사람을 생각해서 한 글자씩 적으면 인연이 생'긴다면 이미 오랜 친구라 깊은 인연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편지 써보세요. 편지를 쓰는 건 좀 어색해도 답장을 받을때의 즐거움은 그 이상입니다.

 

 게다가 나 역시 중학교때 친구와 교환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겐토는 집에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했을때는 혹시 싶었다가, 교환일기부터 겐토에게 어떤 확신이 들긴 했는데. 어쨌든 그 시절 핸드폰이 있었음에도 교환일기를 썼던 그 친구와 나 역시 지금은 더이상 인연을 이어가고 있지 않다. 그저 이렇게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떠올리며 잘 지내려나, 하고 떠올릴 뿐이다. 야스타케와 겐토도 이 이후로 다시 연이 끊어졌으려나. 겐토 이상의 사람이 없었다면 어쩌면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엄마라는 말이 주는 느낌 때문에, '엄마의 엄마'를 두고 따뜻하고 뭉클한 내용을 예상했는데,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던지는 할머니가 등장해서 불안한 시작이었다. 끝까지 나쁜 사람으로 남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시간을 덮을만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읽기 괴로운 내용이 될 것 같다. 할머니가 던지고 간 폭탄같은 발언들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걸려 불안한데, 꼭 이 다음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이렇게 '변변찮아도 마음'인 일상을 보내며 무탈히 어른이 되었다는 하나미의 보고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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