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아이
최윤석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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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달에 이름이 붙여지기 시작했다. 슈퍼문, 스트로베리문, 블루문 같은 이름과 함께 몇십년만의 주기에 한번 관측할 수 있다는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다. 그때마다 늘 있던 밤하늘이고 낮하늘이고 잘 바라보지 않던 사람들도 저마다 소식을 전하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기도 했다. 그저 평소보다 달이 조금 더 클 뿐인데. 커다란 달이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이유가 뭘까. 소설 '달의 아이'의 시작도 그렇다. 


 " -관측 이래 달의 크기가 최고치를 달성했습니다. 평상시보다 1.27배 큰 상태이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시민분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16) "


 긴급 재난 문자의 내용은 몸이 떠오르기 시작한 수진의 이야기와 함께 섬뜩함을 자아낸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에비에이션' 한 아이들은 정말 달로 가게 된 것일까, 언제 이 재난은 끝나게 되는걸까,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환상에 빠져 책을 읽다 달에 유인 탐사선을 보내는 계획이 나왔을 때 갑자기 현실로 돌아왔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워낙 판타지적인 소재다보니 가장 간단한 방법을 잊고 몰입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달의 인력에 이끌려 아이들의 몸이 떠오른다는 소재를 두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난 아마 무거워서 안 떠오르지 않을까, 그 전에 나이가 많아서 안 떠오르겠구나! 그래도 혹시나 떠올라서 우주로 날아가게 된다면 어떤 일을 겪게 될까, 무서울까. 혹은 내가 아끼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어떻게 행동할까. 돌아가는 것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내심 포기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무력함이 숨기려해도 자꾸 튀어나왔다. 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주인공들의 노력은 어떻게 될까 불안과 희망이 뒤섞였다.


 용달과 수진이의 관계에서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를 소재로 삼은 것 같아(151) 함께 불안함을 고조시켰다. 절망적인 소식만 들려오던 중 한울의 발견 소식(176)이 전해지며 분위기가 반전된다. 희망이 보이려나? 하지만 한울의 나이답지 않은 범상치 않음과 더불어 "하지만 저는 달이 우리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205)" 인터뷰 내용에 사건의 미스터리어스함이 점점 더해지고 정아와 얽힌 용달의 비극적인 사고까지 밝혀지며 뭔가 있다는 의심이 한층 더 쌓여갔다. 읽으면서 점점 더 '왜'라는 의문이 커지는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구조 과정에서 초록빛 젤리가 걷히며 아이들의 무사귀환이 좌절되는 부분(244-)은 솔직히 조금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늘로 떠올랐다는 막연한 표현만으로는 느껴지지 않던 잔인함, 공포가 새삼 다가왔다. 왜 많은 영화같은 영상물에서 어린 아이의 희생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지 다시 체감했다. 사람들의 욕망과 재난, 구조와 피해 보상 같은 문제들이 현실적으로 보여질 때마다 불편할 정도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흔히 대형 영화 배급사 표 신파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부분이 어색했다.


 표지에 마지막 두 페이지의 내용이 인상적일 것이라는 문구가 있었기에 대체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 엄청 궁금했다. 행복한 결말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갈림이 있었다.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 같은데 SF라니, 쉽지 않겠지. 독특한 상상력을 현실적으로 풀어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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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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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예술을 즐기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결국 인간과 삶, 그리고 세계를 조금 더 깊고 넓고 다채롭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반면 예술가는 삶을 살며 자신이 이해한 인간, 삶, 세계에 대한 통찰을 작품에 자기만의 표현 방식으로 응축해 담아내려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온몸으로 미술작품을 감각하고, 소설과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와 연극을 본다. 이렇게 예술을 즐길 때, 비로소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미처 모두 경험해 볼 수 없는, 생각하고 느껴볼 수 없는 무언가를 간접적으로 경함하고 생각하고 느낄 기회를 창조해 낼 수 있다.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경험의 양과 질을 대폭 확장시킬 수 있다. 생각의 폭과 느낌의 깊이 역시 무한히 팽창시킬 수 있다...후략...(51) "


 얼마 전 충동적으로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예매해서 혼자 다녀왔다. 잘 모르는데 공부하고 가서 보면 좀 괜찮을까 부담도 되고, 아는 것도 없이 가서 보면 괜히 시간 낭비는 아닐까 걱정도 됐는데 갑자기 찾아간 전시회는 부담과 걱정 대신 재미와 흥분이 채워졌다. 내가 감상할 수 있는 만큼만, 보고 싶은 대로만 봐도 즐거웠다. 문득 나는 그동안 왜 걱정했지, 왜 어렵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끊었지, 의문이 들었다. 예전이랑 다르게 지금은 왜 재밌었을까, 왜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어떤 점이 달라졌기에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코로나 전에는 유명한 전시가 있다고 하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꾸역꾸역 찾아가 나도 문화 생활을 합네,하고 만족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시간들이 나름의 가상한 노력이었다고 스스로를 도닥여주고 싶을 정도다.)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냉담기가 길었고, 문화 생활과 더욱 멀어지게 된 이유였다. 무지한 사람이 뭔가를 감상해보겠다며 애써보다 '해도 안되'는 것 같아 아예 포기해버린 것이다. 꼭 뭔가 남겨야 될 필요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는데. 괜한 욕심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도 접어버린 시간이 길었다. 지금은 그게 가장 아쉽다. 


 다시 관심이 생기고 의욕도 생긴 지금 '삶은 예술로 빛난다'를 보고 이 책이 다음 경험을 위한 하나의 연결점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가 생겼다. 책의 띠지에 "삶이 텅 빈 것만 같을 때, 오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문구도 오래도록 마음을 때렸다. 예술이 생각보다 삶에 가까이 있었구나 새삼 느꼈다. 사소하게는 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갔을 때 벽에 걸린 그림에 잠시 눈길을 주게 되는 일, 백화점이나 호텔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장인들의 작품,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세워진 왜 있는지 모를 조형물도 우리 삶 안에 스며들어 있는 예술이었다. 비워둘 수도 있는 공간에 굳이, 부러 그것들을 둠으로써 우리 일상에 삶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이 생각과 저 문구가 만나 나름의 울림을 느꼈다.


 인상적으로 읽은 내용 중 하나는 '산책자는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117)'다. 요즘 운동을 하러 트레드밀-이라고 하면 어색한데, 러닝머신-을 이용하는데, 이 걷기는 어딘지 사유와 연결되지 않는다. 예전에 '걷기-철학자의 생각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걷기와 사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었다. 트레드밀 위의 걷기는 "닫힌 공간을 벗어나 열린 세계와 만나는 일(117)"이 생략되었기 때문일까? 산책은 소요되는 시간도 짧게 느껴지고 걸으면서 여러 생각을 쉴 새 없이 하기에도 좋은데 헬스장에서의 시간은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도 들어간마냥 지루해서, 요즘 왜 운동은 산책과 다를까 운동을 할 때마다 불평하듯 생각했던 주제와도 맞아 흥미롭게 읽었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가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만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넉넉한 비중으로 시선을 주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며 냉담했던 시기는 '살면서 한 번은 방황(291)'한 것이었다고 여기고 앞으로는 가끔 내 삶의 여백을 다양함으로 채워봐야 겠다는 결심도 해보았다. 


 " 무엇을 위해 미술작품을 봐야 할까? 나를 위해, 나의 감정을 만나기 위해, 나의 생각을 만나기 위해, 나의 관점을 만나기 위해, 나아가 나의 철학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예술의 존재 이유는 사실 그렇다. 예술작품을 보며 결국 나를 본다. 평소 일상에서 바깥일과 쏟아지는 정보를 바쁘게 처리하느라 미처 돌보지 못한 나 자신과의 오붓한 만남인 것이다. 예술은 고맙게도 바로 그런 소중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176) "


 아직은 그저 어떤 표현이 섬세하게 아름다운지 감상하고, 주로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채운 압도적인 작품들에서 경외감을 느끼고는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확장된 감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함께 하게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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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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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는 소중한 공유 신체를 하나 잃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지어야 했다. 그 죽음에 진짜로 책임이 있는 자가.(83) "


 '네가 있는 요일'은 정말 독특하다. 박소영 작가가 만들어 낸 '인간 7부제'의 세계는 놀랍도록 신선하고 또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을 때부터 두가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하나는 나는 어떤 요일의 사람이 될 것인가이다. 일주일에 하루만 선택해서 현실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요일을 고르고 싶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요일의 사람들에 대해 의심했다. 신체를 공유한다면, 누군가는 그 신체를 아낄 것이고, 누군가는 관심을 잃을 것이고, 누군가는 욕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낭비할 것이고, 누군가는 못견뎌 할 것이고, 누군가는 훼손할 것이고 결국 누군가는 빼앗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사건은 일어난다.  


 " 호라 넌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거 같아?

 언니는?

 음, 그날 그 여자 굉장히 행복해 보였잖아. 곧 보디메이트를 죽일 사람이 그렇게 신나 있었다는 건, 믿고 싶지 않긴 해. 

 원수를 죽이는 사람이라면 행복할 수도 있겠지.

 복수라. 그럼 죽은 여자가 나쁜 사람이었던 거네?

 글쎄 그건 모르지. (272) "


 화인이 왜 수인을 없애려했을까! 화인인 지나의 메시지는 다정해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싸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수인 울림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억울한 자신의 죽음이 계획 살인이었음을 밝히려 노력하는 울림의 여정은 김달과 젤리, 최사장과 함께 여울시에 입성하면서 본격적으로 큰 흐름을 타게 된다. 가진 것이 없다면 자신의 몸마저 포기해야 하는 인간성이 상실된 세계에서 이들이 얻게 되는 결말은 무엇일까. 대체 지나는 왜 울림을 죽이려 한 것일까. 과거로부터 얽혀온 두 사람의 이야기는 무재와 강이룬의 정체가 드러나며 풀려간다. 결말이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권선징악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7부제 세계가 주는 갑갑함과 섬뜩함은 계속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 "인류가 번식해 온 이래로, 하늘이 감동할 만큼 헌신적이고 자식밖에 모르는 부모조차 아이의 동의를 구한 뒤에 아이를 낳는 경우는 없어. 너도 나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거 아니잖아. 그저 우릴 낳은 이들의 결정이었어. 그중에 이기적이지 않은 결정이 어디 있는데? 나를 닮은 작은 존재를 낳아 무한한 사랑을 줘야지,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싶다, 뭐 이런 결심은 덜 이기적인 거야?" 

 "......절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은 존재해."(57) "


 독특한 상상의 세계는 차가운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출생 감소에 대한 문제도 비슷한 맥락 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이었다. 아이를 낳기로 하는 것도, 낳지 않기로 하는 것도 이기적인 결정이 되는 현실을 나타낸 부분이었다. 예전에 처음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서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요즘은 그리 충격적인 생각이 아닐 것이다. 뭐가 더 옳고 그르다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딘지 씁쓸하다. 이뿐 아니라 환경파괴와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여 공멸을 막기 위해 인구 수를 조절하기로 한 설정은 지금껏 외면하고 있는 세계적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든 현실과 다름없다. 


 "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며 달려올 때, 남편이 커다란 꽃다발을 등 뒤에 숨겨 집 안으로 들어올 때, 남편과 아이가 똑 닮은 웃음을 지을 때, 여자는 그 순간을 영원히 저장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즉시 여자의 왼쪽 눈에 설치된 렌즈가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여자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손가락을 눌러 그날 일어난 행복을 되감아 보다 스르륵 잠에 들었다. 이렇게 좋은 기술이 왜 불법일까, 하는 생각이 깨진 건 딸 때문이었다.(141) " 


 이 부분은 가끔 혼자 상상했던 일이 표현되어 있어서 신기하고 반가워서 옮겼다. 내 인생의 어떤 순간들에도 영화나 티비처럼 배경 음악이 입혀지고 촬영되듯 저장되어서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 나도 눈에 렌즈를 넣는 시술이 있다면 받을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순간, 보고 싶은 얼굴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저장해서 간직할 수 있다니 한쪽 눈알이 빨갛게 빛나는 부작용 쯤이야 어떠랴.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신작을 읽고 있는데도 박소영 작가의 다음이 자꾸만 기대되는 책이었다. 이런 세계를 상상해 낸다니. 벌써 영상으로도 보고 싶다. 영화나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잘 만들어진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요일을 선택할까 궁금해하면서 자연스럽게 마더구스의 노래가 떠올랐다. 월요일의 아이는 예쁘고 다정하고, 화요일의 아이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열정적이고, 수요일의 아이는 호기심과 재능이 많고, 먼 길을 떠나는 목요일의 아이는 낙천적이고, 매력적인 금요일의 아이는 예술에 재능이 많고, 토요일의 아이는 불가능에 도전하여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의 아이는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당신은 어떤 요일의 사람일까. 어떤 요일의 당신이든 매일이 충실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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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이석용 지음 / &(앤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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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려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매달면 어떻겠습니까?"

 "매, 매달아? .......뭘?"

 "사형숩니다." (11) "


 솔직히 무슨 내용일지 감도 잘 오지 않는, 제목이었다. '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죽게 된 마당에 뭐가 맛있을까 싶기도 하고, 사형수가 형 집행 전에 먹게 된다는 마지막 식사 레시피가 아니라, 그 레시피가 아니라, '집행'에 대한 레시피일지도 몰라 싶어지니 음모론도 떠오른다. 누구하나 요리해서 보내게 되는 소설인가. 감방에 들어간 사형수의 '슬기로운 감방생활' 얘기만 읽게 될지도 모르거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에 대한 신파 가득한 '감동실화'를 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조금 웃긴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초반부터 얄팍한 나의 웃음취향에 걸린다.


  " "그럼, 뭐...... 괜찮은 거 아니오?" 대통령은 어쩌면 '내 임기 안에는'이라는 말을 애써 삼켜 버렸는지도. (13) " " 다들 괜히 청와대에 있는 건 아닌가 보네!(23) " " 문과네, 문과야!(72)" "살려 준대도 싫대......(119)" "아이참! 오라, 가라......(177)" 이런 부분들이. 한번 웃기기 시작하니까 그냥 사소한 부분들이 웃겼다. 대부분 '아재'일 인물들의 대사를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교수형 로또(143)'의 등장이나 '솔리드의 <천생연분>(45)'을 불렀다는 건 쓸데없이 구체적이라 웃기고 하필 오래된 노래라 웃기고 현실반영이라 웃겼다.  


 바닥으로 내려가다 못해 뚫게 생긴 지지율을 회복시키고자 사형집행이라는 각본을 만들어내려는 뒷공작 자체가 블랙 코미디인데, 본격적으로 형집행이 준비되면서 점점 내용이 흥미로워진다. 사형집행까지의 과정을 줄줄이 설명한 내용도 진짜인가 싶고,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된다면 '매달리는' 방법을 쓰는 것이 맞나 궁금했다. 영화에서 본 것은 전기를 흘리는 방식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외국영화 뿐이었다. 사실 내 취향인 '지옥 삼거리 마지막 주방장(75)'이라는 작명 센스가 어디서 온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어쨌든, 지옥 삼거리 마지막 주방장이 아닌 '요리사X'가 내놓는 마지막 식사를 받은 사형수들은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벼운 개그코드로 관심을 끌었던 초반부에서 벗어나 이 레시피가 사실은 요리사X가 벌이는 심리전에 이용되는 도구인 것인지, 음식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요리사 X는 어떻게 이런 식사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인지 책 내용에 빠져들어 읽게 된다. 각 사형수들마다의 사건이 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라면 연재로 몇 편이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200쪽을 조금 넘는 분량이 짧게 느껴졌다. 바란대로 사형수마다의 에피소드가 더 길게 이어지지 않더라도, 조금 성급하게 느껴지는 마지막 마무리를 더 고민했더라면 어땠을까 재미있게 읽은만큼 아쉬움이 남았다. 


 " "듣자 하니까 그놈들 노역도 안 하고, 혼자 쓰는 방에서 하루 세끼 다 찾아 먹는다고 하데요. 우리 형철인 아직도 밤마다 제 흘러나온 장기를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는데...... 쪼끔 시원하다 말 것 같으니까 하는 소리지......"(95) "


 뉴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요즘 연이은 인면수심 사건들을 보며 더더욱. 범죄자들의 식단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인권을 위해 냉난방 시설을 보완해야 한다는 뉴스들을 접한 적이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생활하는 빈곤층도 다 지원하지 못하는데,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생각하면 씁쓸하기도 하다. 인권의 보호와 피해자 구제, 범죄자 교화는 다 마땅한 가치 판단의 기준 아래에 있어야 하지만 현실에서 체감하는 불균형을 외면할 수는 없는 탓이다. 재밌게 읽다가도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들에서 한걸음 떨어진다면 선선한 날씨에 머리를 식히며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파격과 재미, 자극과 반전을 적당히 버무려 내었다. 분량도 많지 않으니 한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편한 마음으로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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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내 마음이 버거울까? - 정신과 의사 캘선생의 상담소
유영서 지음 / 미래의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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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만화가 같이 있어서 읽고 싶었다. 읽기 편할 것 같고, 같은 말을 해도 더 재밌을 것 같고, 만만해보였다고 할까. 요즘들어 자꾸 긴글을 읽을 때면 이리저리 관심이 삐뚤어지게 나가는 고민을 덜어줄 것만 같았다. 이게 다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불평하다가, 이리도 한참 성인이 된 어른이 이 정도로 집중을 잘 못한다는게 정말인가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캘선생님 이것도 저를 이렇게 만드는 다른 요인이 있기 때문이겠죠. 단지 스마트폰 중독이라서가 아니겠지, 아니어야 할 텐데, 아니라고 해주면 좋겠다 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사실 스마트폰 중독이라서 그런게 맞긴하다.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멀끔한 얼굴로 정색하며 자가진단을 내리지만, 사실 현대인에게는 누구나 증상이 있다는 말에는 공감한다. 어찌 이 세상 무결하고 완벽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으랴.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더 무서울 것 같다. 나는 아무튼 괜찮은데 언젠가부터 지인이 요즘은 잠을 잘 자는지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시작할 때가 많았다. 나는 평소와 다름 없는데, 뭔가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었나 되짚어 생각해보니 모르는 사이에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는 말을 꽤 자주 했던 듯 하다. 일반적인지 않은 수면 패턴을 들은 지인이 두고두고 염려할만큼. 


 그래서 내가 잘 못자는 것에는 어떤 심리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여 읽었다. 만화보려던 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 그래서인지 나와 내 안의 이야기 부분이 꽤 흥미로웠다. 그런데 가장 공감했던 것은 나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 부분이었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112)'나 '다른 사람과 '나'를 계속 비교하게 돼요(122)'는 평소 궁금했던, 그리고 염려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너무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실천 없이 가능성만 내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난 모습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시간들은 괴롭고 강렬했다. 좋아요도 그만 확인해야지.


 그런데 또 하나 당연하면서도 늘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저를 사랑하고 싶어요(197)'의 내용이었다. 과거의 자신, 미래의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기대에 반해 현재의 자신을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가가 비교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할 때, 겸손을 이유로 칭찬을 부정하거나 다른 단점을 내뱉곤 했다. '아니에요, 그렇지만 저는 이런 단점이 있는데요'하고. 겸손한 대처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는 걸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도 칭찬을 감사와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만, 남에게 하는 칭찬을 부정하거나 단점을 지적하지 않듯이 자신에게 대우해주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 이런 내용은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솔직히 좀 뻔한 조언들도 있다.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그런 뻔함이 머리속에서 사라져 도통 떠오르지 않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이어지는 과거 회상 시간같이.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불을 걷어차게 만드는 끔찍한 순간들을 생각해봤자 좋을게 하나도 없으니 생각을 끊고 잠이나 자는 게 옳다는 것을 알지만 한번 시작되니 멈출 수는 없는 시간. 생각을 멈추고 잠을 잔다는 뻔한 대답이 눈 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때처럼 당연한 조언들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으니 이 책도 그런 시기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가벼운 접근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긴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쉬엄쉬엄 보기도 좋으니.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꼭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감사한 일 기록하기'였다. 그러고선 일단 내년에 1월 1일이 되면 시작해야지, 했는데 '시작이 너무 어려워요(241)'을 보고 또 한번 실시간으로 반성하게 되었다. 은연중에 완벽해야 한다는, 확실한 시작이 있어야 한다는 집착적인 생각을 가지고 할일을 미뤄버린 것이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싶으면서 도저히 양보하기 어려운 고치기 힘든 습관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앞서 말했지만 현대인에겐 '증상' 하나쯤은 있다. 거짓으로라도 이 버릇을 고치겠다는 말을 쓰기가 어려워, 다른 독자들의 공감을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하지만 진짜 내년부터 감사한 일을 기록하기를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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