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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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예술을 즐기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결국 인간과 삶, 그리고 세계를 조금 더 깊고 넓고 다채롭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반면 예술가는 삶을 살며 자신이 이해한 인간, 삶, 세계에 대한 통찰을 작품에 자기만의 표현 방식으로 응축해 담아내려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온몸으로 미술작품을 감각하고, 소설과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와 연극을 본다. 이렇게 예술을 즐길 때, 비로소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미처 모두 경험해 볼 수 없는, 생각하고 느껴볼 수 없는 무언가를 간접적으로 경함하고 생각하고 느낄 기회를 창조해 낼 수 있다.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경험의 양과 질을 대폭 확장시킬 수 있다. 생각의 폭과 느낌의 깊이 역시 무한히 팽창시킬 수 있다...후략...(51) "


 얼마 전 충동적으로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예매해서 혼자 다녀왔다. 잘 모르는데 공부하고 가서 보면 좀 괜찮을까 부담도 되고, 아는 것도 없이 가서 보면 괜히 시간 낭비는 아닐까 걱정도 됐는데 갑자기 찾아간 전시회는 부담과 걱정 대신 재미와 흥분이 채워졌다. 내가 감상할 수 있는 만큼만, 보고 싶은 대로만 봐도 즐거웠다. 문득 나는 그동안 왜 걱정했지, 왜 어렵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끊었지, 의문이 들었다. 예전이랑 다르게 지금은 왜 재밌었을까, 왜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어떤 점이 달라졌기에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코로나 전에는 유명한 전시가 있다고 하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꾸역꾸역 찾아가 나도 문화 생활을 합네,하고 만족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시간들이 나름의 가상한 노력이었다고 스스로를 도닥여주고 싶을 정도다.)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냉담기가 길었고, 문화 생활과 더욱 멀어지게 된 이유였다. 무지한 사람이 뭔가를 감상해보겠다며 애써보다 '해도 안되'는 것 같아 아예 포기해버린 것이다. 꼭 뭔가 남겨야 될 필요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는데. 괜한 욕심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도 접어버린 시간이 길었다. 지금은 그게 가장 아쉽다. 


 다시 관심이 생기고 의욕도 생긴 지금 '삶은 예술로 빛난다'를 보고 이 책이 다음 경험을 위한 하나의 연결점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가 생겼다. 책의 띠지에 "삶이 텅 빈 것만 같을 때, 오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문구도 오래도록 마음을 때렸다. 예술이 생각보다 삶에 가까이 있었구나 새삼 느꼈다. 사소하게는 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갔을 때 벽에 걸린 그림에 잠시 눈길을 주게 되는 일, 백화점이나 호텔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장인들의 작품,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세워진 왜 있는지 모를 조형물도 우리 삶 안에 스며들어 있는 예술이었다. 비워둘 수도 있는 공간에 굳이, 부러 그것들을 둠으로써 우리 일상에 삶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이 생각과 저 문구가 만나 나름의 울림을 느꼈다.


 인상적으로 읽은 내용 중 하나는 '산책자는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117)'다. 요즘 운동을 하러 트레드밀-이라고 하면 어색한데, 러닝머신-을 이용하는데, 이 걷기는 어딘지 사유와 연결되지 않는다. 예전에 '걷기-철학자의 생각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걷기와 사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었다. 트레드밀 위의 걷기는 "닫힌 공간을 벗어나 열린 세계와 만나는 일(117)"이 생략되었기 때문일까? 산책은 소요되는 시간도 짧게 느껴지고 걸으면서 여러 생각을 쉴 새 없이 하기에도 좋은데 헬스장에서의 시간은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도 들어간마냥 지루해서, 요즘 왜 운동은 산책과 다를까 운동을 할 때마다 불평하듯 생각했던 주제와도 맞아 흥미롭게 읽었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가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만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넉넉한 비중으로 시선을 주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며 냉담했던 시기는 '살면서 한 번은 방황(291)'한 것이었다고 여기고 앞으로는 가끔 내 삶의 여백을 다양함으로 채워봐야 겠다는 결심도 해보았다. 


 " 무엇을 위해 미술작품을 봐야 할까? 나를 위해, 나의 감정을 만나기 위해, 나의 생각을 만나기 위해, 나의 관점을 만나기 위해, 나아가 나의 철학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예술의 존재 이유는 사실 그렇다. 예술작품을 보며 결국 나를 본다. 평소 일상에서 바깥일과 쏟아지는 정보를 바쁘게 처리하느라 미처 돌보지 못한 나 자신과의 오붓한 만남인 것이다. 예술은 고맙게도 바로 그런 소중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176) "


 아직은 그저 어떤 표현이 섬세하게 아름다운지 감상하고, 주로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채운 압도적인 작품들에서 경외감을 느끼고는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확장된 감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함께 하게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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