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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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는 소중한 공유 신체를 하나 잃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지어야 했다. 그 죽음에 진짜로 책임이 있는 자가.(83) "


 '네가 있는 요일'은 정말 독특하다. 박소영 작가가 만들어 낸 '인간 7부제'의 세계는 놀랍도록 신선하고 또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을 때부터 두가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하나는 나는 어떤 요일의 사람이 될 것인가이다. 일주일에 하루만 선택해서 현실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요일을 고르고 싶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요일의 사람들에 대해 의심했다. 신체를 공유한다면, 누군가는 그 신체를 아낄 것이고, 누군가는 관심을 잃을 것이고, 누군가는 욕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낭비할 것이고, 누군가는 못견뎌 할 것이고, 누군가는 훼손할 것이고 결국 누군가는 빼앗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사건은 일어난다.  


 " 호라 넌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거 같아?

 언니는?

 음, 그날 그 여자 굉장히 행복해 보였잖아. 곧 보디메이트를 죽일 사람이 그렇게 신나 있었다는 건, 믿고 싶지 않긴 해. 

 원수를 죽이는 사람이라면 행복할 수도 있겠지.

 복수라. 그럼 죽은 여자가 나쁜 사람이었던 거네?

 글쎄 그건 모르지. (272) "


 화인이 왜 수인을 없애려했을까! 화인인 지나의 메시지는 다정해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싸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수인 울림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억울한 자신의 죽음이 계획 살인이었음을 밝히려 노력하는 울림의 여정은 김달과 젤리, 최사장과 함께 여울시에 입성하면서 본격적으로 큰 흐름을 타게 된다. 가진 것이 없다면 자신의 몸마저 포기해야 하는 인간성이 상실된 세계에서 이들이 얻게 되는 결말은 무엇일까. 대체 지나는 왜 울림을 죽이려 한 것일까. 과거로부터 얽혀온 두 사람의 이야기는 무재와 강이룬의 정체가 드러나며 풀려간다. 결말이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권선징악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7부제 세계가 주는 갑갑함과 섬뜩함은 계속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 "인류가 번식해 온 이래로, 하늘이 감동할 만큼 헌신적이고 자식밖에 모르는 부모조차 아이의 동의를 구한 뒤에 아이를 낳는 경우는 없어. 너도 나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거 아니잖아. 그저 우릴 낳은 이들의 결정이었어. 그중에 이기적이지 않은 결정이 어디 있는데? 나를 닮은 작은 존재를 낳아 무한한 사랑을 줘야지,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싶다, 뭐 이런 결심은 덜 이기적인 거야?" 

 "......절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은 존재해."(57) "


 독특한 상상의 세계는 차가운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출생 감소에 대한 문제도 비슷한 맥락 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이었다. 아이를 낳기로 하는 것도, 낳지 않기로 하는 것도 이기적인 결정이 되는 현실을 나타낸 부분이었다. 예전에 처음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서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요즘은 그리 충격적인 생각이 아닐 것이다. 뭐가 더 옳고 그르다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딘지 씁쓸하다. 이뿐 아니라 환경파괴와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여 공멸을 막기 위해 인구 수를 조절하기로 한 설정은 지금껏 외면하고 있는 세계적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든 현실과 다름없다. 


 "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며 달려올 때, 남편이 커다란 꽃다발을 등 뒤에 숨겨 집 안으로 들어올 때, 남편과 아이가 똑 닮은 웃음을 지을 때, 여자는 그 순간을 영원히 저장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즉시 여자의 왼쪽 눈에 설치된 렌즈가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여자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손가락을 눌러 그날 일어난 행복을 되감아 보다 스르륵 잠에 들었다. 이렇게 좋은 기술이 왜 불법일까, 하는 생각이 깨진 건 딸 때문이었다.(141) " 


 이 부분은 가끔 혼자 상상했던 일이 표현되어 있어서 신기하고 반가워서 옮겼다. 내 인생의 어떤 순간들에도 영화나 티비처럼 배경 음악이 입혀지고 촬영되듯 저장되어서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 나도 눈에 렌즈를 넣는 시술이 있다면 받을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순간, 보고 싶은 얼굴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저장해서 간직할 수 있다니 한쪽 눈알이 빨갛게 빛나는 부작용 쯤이야 어떠랴.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신작을 읽고 있는데도 박소영 작가의 다음이 자꾸만 기대되는 책이었다. 이런 세계를 상상해 낸다니. 벌써 영상으로도 보고 싶다. 영화나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잘 만들어진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요일을 선택할까 궁금해하면서 자연스럽게 마더구스의 노래가 떠올랐다. 월요일의 아이는 예쁘고 다정하고, 화요일의 아이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열정적이고, 수요일의 아이는 호기심과 재능이 많고, 먼 길을 떠나는 목요일의 아이는 낙천적이고, 매력적인 금요일의 아이는 예술에 재능이 많고, 토요일의 아이는 불가능에 도전하여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의 아이는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당신은 어떤 요일의 사람일까. 어떤 요일의 당신이든 매일이 충실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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