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임현주 지음 / 유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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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를 볼 때도 그렇지만, 어떤 프로그램을 볼 때 진행자가 남녀의 조합으로 있으면 가끔 물끄러미 기울기를 가늠해볼때가 있다. 주요한 흐름을 전달하는 역할은 누가 하는지,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지, 경력은 어떤지, 그들 사이의 비언어적 신호는 어떤지, 외모는 어떤지, 심지어 안경을 썼는지 아닌지 같은 것들도. 예민한가?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당신의 무심함을 자각해보면 어떨까. 몇번만 살펴봐도 은근하고 확연한 불균형을 감지할 수 있다. 에세이에서 가장 처음 마주치게 된 "잘 버텼어."(26)라는 말과 "언제까지 선택받아야 할까?(37)"의 내용을 읽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읽었다.

 

 틀에 박힌 역할을 사양(243)하는 것처럼 책의 내용은 다소 덜 정리된 분위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찌보면 그때그때의 솔직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으로도 느껴진다. 책을 읽기 전과 초반부에 아나운서로 생활하면서 풀어내고 싶었던 경험과 생각을 차분한 흐름으로 묶었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또 달랐다.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이 내용이 바뀌면서 글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개성이 묻어났다. 콩국수 한 입 때문에도 화내는 면(107)이 있는, 팬 앞에서 어색해하는(222), 여성주의(194)라는 단어를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 싶으면서도 하나같이 매력있었다.

 

 그의 다양한 면모는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아는 지인처럼도 느껴지고, 라오스나 순천 다녀온 내용을 읽다보면 살짝 아쉬운 여행 에세이 속의 젊은 여행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고, '안경'에 대한 얘기를 꺼내들었을때는 또 한동안 매체에서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조명했던 소문의 그 아나운서의 소신을 만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계속해서 평가하는 눈을 하고 있었던가 싶어 스스로도 그에게 '예쁜 여자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붙여놓고 선입견으로 바라본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읽다가 잠깐 멈추고 내 안의 선입견을 찾아내는 시간도 가졌다.

 

 솔직히 최근에 읽은 몇몇 에세이들만큼 피부에 와닿는 공감을 하기는 어려웠다. 슬프게도 세대차이로 오는 엇갈림같았다. 그의 지금을 현재로 같이 나눈다면 좋겠지만 요즘은 중년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자꾸 궁금해진다. 다만 나랑 좀 다르면서도 같다고 생각하며 읽은 것 중 가장 공감을 많이 한 것이 '브래지어 없는 날(177)'의 내용이었다. 겨울이 반가운 이유 중 하나는 노브라여도 크게 불편함이 없다는 것에도 있다. 아무래도 여름처럼 옷이 얇을 때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바깥을 나서기는 어색하다. 누가 뭐래지 않더라도 시선이 달갑지 않은 탓도 크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기로 마음먹고 실천했다는 것이 또 한층 달라보였다. 대단했다.

 

 솔직히 임현주 아나운서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일화와 이미지만을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좀 가까워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텔레비전에서 만나게 될 때는 어떤 생각을 어떤 태도로 드러내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볼 것 같다. 책이 완전히 만족스러운 깔끔함을 담아내지는 않았지만 아주 솔직하고 기대 이상으로 거침없는 공개였다는 점은 좋았다. 첫번째 에세이라는 말이 처음엔 어색했는데, 다음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지로 느껴졌다. 아마 그는 자신의 성장과 원숙해짐을 특유의 솔직함으로 담아낼 것이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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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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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한두권 접하면서 조금씩 신뢰가 쌓이고 있다. 늘 꼽는 장점으로는 읽기 편하다는 것. 이전에 읽었던 시리즈들보다 공리주의를 읽는 것이 조금은 더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전히 묘하게 읽기 좋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을 실생활에서 쓸 때는 다수결로 뭔가를 정할 때 밖에 없었다. 예를들면 점심 메뉴나 모임 날짜 정하는 사소하지만 이상하게 열올리게 되는 문제들. 개인의 만족과 모임 전체의 행복을 연결짓는다는 점은 비슷한데 이 말을 이렇게 써도 되는가는 의문이다. 이런 이유로, 공리주의가 무엇이냐 하면 입이 턱 막히길래 한번 읽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염려보다 책이 얇아서 다행이었다.

 

 " 반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그가 찾고 있는 행복은, 현재 세상이 돌아가는 꼴로 보아, 절대 온전한 행복이 될 수 없고 불완전한 행복이 되고 말 거라고 느낀다. 그렇지만 그는 그 불완전함이 참을 만한 것이라면 그것을 참는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재능의 사람은 그런 불완전함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해서 욕망에 충실한 저급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저급한 사람은 그런 불완전함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의식하는 데서 나오는 선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약 그 바보 혹은 돼지가 이런 주장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면, 그들이 문제를 자기들의 입장이나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다. 반면 비교의 대상이 되는 다른 사람은 문제의 양쪽을 본다.(27) "

 

 인간의 쾌락과 행복 기여도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책에서는 그런 경계를 파하기 위한 반박이 이어진다. 돼지와 바보, 인간과 소크라테스로 이분화 된다면 소수의 인간과 소크라테스가 다수의 돼지와 바보들을 이끄는 모양새가 아닐까.* 이런 구조에서 공리주의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사상일까 의문스러웠다. 실제로 '인간'이 가치판단의 기준이라는 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기준으로 지금껏 거쳐온 지구의 모습을 보면 반드시 '지성인이 그가 보기에 낮은 등급의 존재로 추락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26)'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이때 생각했던 파레토 법칙과 비슷한 우려가 5장의 '사회적 갈등의 조정자(113)'의 내용에 나온다. 실제적으로 우리 생활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금문제같은 예를 들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다.

 

 읽으면서 가장 기대됐던 부분은 3장의 '도덕적 의무감은 선천적인 것인가?(66)'의 내용이었다. 도덕적 의무감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으로 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초등학교 토론 시간에도 주제로 나올만큼 익숙하고 의견이 많이 나뉘는 주제라 여기서는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었다. 책에서는 후천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이라고 해서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고, 공리주의는 동일한 효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려놓았다.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주제도 공리주의 도덕을 위한 하나의 길로 묶여있는 점이 아쉬웠다.

 

 분량은 짧아도 내용이 만만하지는 않았는데 작품해설이 아주 재밌었다. 두 사람이 서로 대화하듯이 구성되어 있고 이 상황극을 통해 독자가 품었을만한 생각과 질문을 대변해주면서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준다. 공리주의가 행복과 쾌락을 말하는만큼 그 안의 선과 도덕에 대해 너무 이상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돈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도 과연 돈이 '질'로 구분되는 행복에 속해 있을 수 있을까, 이미 기준을 상회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했다. 얕게 일독해서 생각을 다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공리주의에 대해서 기본을 잡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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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슬픔엔 영양가가 많아요
강지윤 지음 / 봄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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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음이 부족한 어느 벽 너머로 들려오는 옆집의 소음이 가끔 신경 거슬리지 않는 날이 있다. 집이 너무 조용해서 이따금 냉장고 소리가 크게 웅, 울리는 것에도 고개를 돌리게 되는 날이나 늦은 시간 자다가 혼자 깨어 있을 때 그렇다. 서로 다른 높낮이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들려오면 무슨 할 말이 이렇게 많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얘기를 나누고 있는걸까 싶기도 하다. '그대의 슬픔엔 영양가가 많아요'를 읽는 시간도 그랬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오히려 내게로 보내지는 신호처럼 느끼지게 만드는 책이다. 이리저리 글자만큼의 빈공간이 있는 느슨한 책은 그게 쉴 곳 같고 숨통같다. 상처와 상실이 빼곡한 것보다야 비워져있는 것이 낫다.

 

 어린시절의 상처, 친구를 잃은 상실 그리고 '이렇게 슬픈데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책은 제법 무겁다. 날이 추워지고, 연말이 되고, 밤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읽으면 공감을 많이 할 것 같은데 혹시나 그 우울이 증폭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감성적인 면도 많고 희망으로 보듬고 있지만 상처와 우울에 대한 내용도 많아서 어쩔 때는 그런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니까 조심스럽다. 나 역시 흐름은 다르더라도 책 안의 키워드가 최근 겪은 개인적인 일과 겹쳐 오랜시간 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한번 실망을 안겨준 사람을 다시 믿을 수 있을까. 당연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실망을 한번 안겨준 사람 역시 같은 패턴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고, 바뀌기 힘든 상대의 본질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경계하고 의심할 것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알아온 친구에게 실망을 느끼게 된 일이 있었던 탓에 이 부분에서 한동안 머물러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내가 느끼는 실망이 정당할까, 이런 생각의 변화를 상대방도 느끼고 있을까.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만들어 온 관계에서 실망을 느끼니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아니면 영영 이렇게 망가지게 되는걸까.

 

 이런 고민들 속에서 사람을 믿어 사기를 당한 이야기(157)를 읽으며 사람을 믿을수도 믿지 않을수도 없이 살아가는게 참 어렵구나 싶었다. 저자는 사람을 쉽게 믿는다고 했는데 내심 나는 그렇지 않아,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걸까, 믿지 않기 위해 곁을 두지 않는걸까. 한번 상처받은 일 때문에 '불안을 가진 채 관계를 이어(159)'는 것은 마찬가지였나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왜 종소리가 그리울까요(180)'였는데 어린시절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집에서 바라보는 오르막길쪽으로 아주 오래된 작은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의 첨탑이 집 옥상에서 잘 보이는데 어린시절 저녁무렵이면 교회에서 틀어주는 종소리-멜로디-가 좋아 소리가 들려오면 하던 일도 멈추고 옥상에 올라가 그 소리를 귀기울여 듣다가 내려오곤 했었다. 이맘때면 그 교회에서 첨탑에 색색의 전구를 달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서 밤이면 한참 추위를 참으며 그 불빛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그 기억이 떠오르는 내용이었다. 책 사진을 올려두니 지인이 책 표지가 꼭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킨다고 해주었는데 이런 생각을 들여다본듯한 말이라 어쩐지 더욱 호감이 갔다.

 

 빈 곳이 많은 책은 어쩐지 아쉬운데 이 책의 빈곳은 이해가 갔다. 시간이 갈수록 나랑 공감의 폭이 비슷한 사람들의 글을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라고 지나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심리상담전문가의 치유에세이'라는 말이 판에 박힌 것 같을지 모르지만, 공감도 치유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저 공감하고 이해하며 읽어도 좋을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드러낸 자신의 조각들을 조금씩 나와 맞춰보는 일이 싫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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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일기 -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
김민철 외 지음 / 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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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감이란 뭘까. 
 
 "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해결 방안을 말해주었다. 우울의 이유가 만약 일이라면, 그 일을 끝내면 최근에 만들어졌던 우울은 잦아들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마음의 우울을 줄이기 위해서, 일이 힘들더라도 결국은 마무리했다는 기쁨으로 매듭짓기 위해서 마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일의 내가, 조금 뒤의 내가 할 거야'라는 농담도 점차 나에게 던지지 않게 되었다. 잠깐, 하면서 손을 내밀고 '그 일이라는 거...... 지금 하면 내일의 내가, 조금 뒤의 내가 웃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곤 한다.(172) "
 
 주변 사람들은 아마 내가 마감기한을 빠듯하게 남기고 동동거리면서 일을 끝마치는 타입이라 생각할 것이다. 맞다, 사실.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의 마감을 그렇게 치뤄냈다. 아니, 당장 지금의 내가 쉴 수 있는데 왜 벌써부터 일을 미리 쳐내야 하는거죠? 왜 일을 미리미리 해서 끝내놔야 하냔 말이에요! 일은 기한이라는게 있는데! 그리고 마지막 날이 다 되어서야 울면서 기한에 맞춰 대충 끝내버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올려놔야 하는 실패도 성공도 아닌 개고생을 반복했다. 때론 그 짜릿함도 즐겼다. 마감에 닥쳐서 일을 하면 절박해져서 어쩐지 집중도 높아지고 능률도 최고치인 것 같은 기분과 분초를 아끼며 정신없이 일하는 스릴같은 것도 느낄 수 있다. 그 특유의 쳐내기를 해내고 나면 느낄 수 있는 기분이 또 재밌어서, 미리미리 하지 않는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긴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직 정신 못차렸다는 증거다. 
 
 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바로 저 문장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때 내가 쓰는 방법이 앞당긴 나만의 마감을 만드는 것이다. 남이 정해 준 마감말고, 내가 정한 마감을 새로 만드는 것! 내가 만든 마감은 내 일정을 고려해서 만들기 때문에 시간 배분에도 좋고, 어쩔 수 없이 그 마감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해도 이건 여유있는 일정으로 정해둔 날일뿐 진짜 마감은 따로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기한에 늦게 되는 일이 없다. 왜 이런 짓을 하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이건 8시에 일어나기 위해 7시 45분부터 5분단위로 알람을 맞춰놓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쉽다. 8시 알람을 듣고 한번에 일어난다면 좋겠지만 혹시 8시 알람 못듣고 9시까지 자버리는 날이 가끔은 생길수도 있잖아요. 어휴, 그럼 큰일이지. 어쨌든 나만의 마감 방법은 게으른 나의 인생을 아주 조금은 부지런하게 바꿔놓았다. 아, 바꿔놓고 있는 중이다. 다른 분야의 게으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때문에 이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는 필연적으로 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직장인, 학생들에게도 일의 마감기한은 있으니까. 민간인 사찰 기록지인가 싶을 정도로, 마감 때문에 애먹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방금 리뷰를 쓰다가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되어서 그동안 쓴 글이 통째로 사라졌다가 자동임시저장 기능을 통해 일부 복구되는 경험을 했다. 마감과 제작물 날리기는 정말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보다. 마감이라는 말만 썼을 뿐인데 글이 날아가는 일이 왜 갑자기 생기죠. 어쨌든 이런 일도 마감하다보면 생긴다. 메인 문구로 " 너무 걱정은 마세요. 마감은 끝나거나 안 끝나거나 할 겁니다. 책도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 인생은 언젠가 확실히 끝이 납니다. 우리 그냥 사랑을 해요. 이 우주를, 가련한 중생을, 마감 늦는 작자들을요.(66) " 이숙명 저자의 글 일부를 본 적 있는데 아마 글 날아갔을때 정신력이 한계에 부딪혔을때 쓴 글이 아닐까 싶은 꽃밭 마감 마무리멘트여서 웃겼는데, 리뷰 날아갔을 뿐인데도 약한 충격과 함께 이 글이 떠올랐다. 지금은 한문장 쓰고 임시저장을 누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수능이 끝났는데, 사실 올해의 수능이 끝났고 수능 시계는 내년을 향해 다시 돌아가고 있겠지만, 수능을 치른 학생들에게는 인생의 여러 마감 중 하나를 치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중요하지만 또 그리 인생의 전부인 것은 아닌 마감이다. 이제 세월 지나갔다고 아무것도 이해못하면서 훈수두는 말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공감할거다. 성공한 사람들, 또 실패한 사람들 모아놓고 이유를 물어봤을때 그 요인으로 수능을 잘 봤습니다, 혹은 수능을 망쳤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거다. 이제 다들 다음 마감을 위해 열심히 살아나가길. 모두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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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김용주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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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익스피어는 장미를 찔레꽃보다 높이 평가한다. 아름다운 것은 둘 다 마찬가지지만 장미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특별한 향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이 기본적인 기교와 감각의 차원을 뛰어넘어 불멸의 작품이 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작품의 유형적 및 무형적 표현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느냐는 모호함의 정도에 달려 있다.(124) "

 

 철학도 음악도 잘 모르지만, 몰라서 읽었다. 알고 읽는다면 더 좋겠지만 모르니까 해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나. 그러니 이 책이 초면인 사람들은 뭐 어때, 하면서 그냥 읽어보길 권한다. 음악적 소양의 깊이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음악가의 블로그 글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전문적인 용어나 내용이 분명 들어가 있지만 그저 이 사람의 삶과 생각이 이렇구나 하는 정도로 읽을 수 있다. 게임, 가르침, 상관관계, 악보, 코다라는 다섯가지의 큰 분류로 글이 나뉘어져 있는데 그 안에서도 아주 여러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은 반쪽에서 그보다 적은 분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이 없다.

 

 "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려면 지능지수가 110 이하이거나 140 이상이어야 한다.(19) "

 

 위의 문장은 저자 개인의 발언이므로 독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혀두고 싶은 면이 느껴진다. 예술가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약간 괴짜같은 면이 보이기도 하고 이후에 풀어나가는 뒷문장들을 보면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첫번째 게임 부분에서 손가락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재밌었다. " 궁극의 매체인 손가락 끝의 신성함과 온전함은 영원히 보호되어야 한다.(77) "고 말하는 피아니스트의 관점에서 손가락을 낱낱이 해부하여 평가한다면 이럴 수 있겠구나 싶은 내용이었다. 게임이 아니라 손이라고 이름을 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만큼 손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악보 부분은 가장 분량도 많고 각 꼭지의 길이도 길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부분에 비해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나와 그냥 일독을 할 때 훑듯이 읽고 넘어갔다. 재독하게 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읽어 넘긴다해도 완독에 큰 지장은 없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서 마음의 부담이 줄었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관관계 부분이다. 상관관계의 내용은 피아노에만 국한되지 않고 예술, 사회, 문화, 매체, 운동, 과학 등을 아울렀다. 처음 목차의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지 가장 감이 오질 않았는데, 읽다보니 왜 이런 제목을 달아놓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읽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은 오디오 북으로 듣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이 유려하다. 책을 듣다보면 ASMR같은 느낌을 줄 것 같고, 건반을 두들기는 듯 힘있고 명료한 낭독을 듣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은행나무에서는 오디오 북으로 제작할 생각이 없을지 궁금하다. 음악, 피아노 전공자가 읽는다면 더욱 만족스러울 책이겠지만 다른 우주의 보통의 독자도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겠지만 문장을 음미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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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2020-12-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클래식 FM에서 이 책소개 듣고 관심있었는데요, 이렇게 리뷰까지 읽으니 더욱 읽고싶어지네요.러셀 셔먼의 연주가 들어간 오디오북도 나오면 정말 좋겠네요^^

테일 2020-12-03 22:12   좋아요 1 | URL
오! 연주가 들어간 오디오북! 더 좋은 생각이네요^^ 은행나무에서 기획해준다면 좋겠는데 말이죠...!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책소개를 들으셨군요. 어떤 내용이었을지 궁금하네요. 소개듣고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섬세하고 유쾌하고 날카로운 면이 있어요.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청공 2020-12-0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일님께서 써주신 내용만큼 풍부하진 않았어요^^. 피아노연주만큼이나 침묵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줬어요. 글고요.셔먼이 인류학자인부분도 흥미로웠어요(‘출발 FM‘프로그램였는데요.솔직히 아이유치원 준비시키면서 들어서요, 책소개에 완전 집중은 못했어요 ㅠ) 셔면의 피아노곡 두개 정도 들려줬어요^^ 개인적으로 책내용 중 악보부분 궁금하네요~

테일 2020-12-03 22:58   좋아요 1 | URL
‘ ˝나는 음표는 몰라도 쉼표는 다른 피아니스트들보다 더 잘 연주한다˝고 한 아르투르 슈나벨의 말은 오직 침묵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잠재의식의 합창을 뜻한 것이다.(14)‘ 는 인용문이 있는 부분 내용 같네요. 악보 쪽에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하이든에 대한 해석이랄까요, 외에도 이름난 작곡가들에 대한 글 비중이 많아요.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니, 싶은 책입니다. 재독할 때는 연주를 찾아 들으면서 읽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