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슬픔엔 영양가가 많아요
강지윤 지음 / 봄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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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음이 부족한 어느 벽 너머로 들려오는 옆집의 소음이 가끔 신경 거슬리지 않는 날이 있다. 집이 너무 조용해서 이따금 냉장고 소리가 크게 웅, 울리는 것에도 고개를 돌리게 되는 날이나 늦은 시간 자다가 혼자 깨어 있을 때 그렇다. 서로 다른 높낮이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들려오면 무슨 할 말이 이렇게 많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얘기를 나누고 있는걸까 싶기도 하다. '그대의 슬픔엔 영양가가 많아요'를 읽는 시간도 그랬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오히려 내게로 보내지는 신호처럼 느끼지게 만드는 책이다. 이리저리 글자만큼의 빈공간이 있는 느슨한 책은 그게 쉴 곳 같고 숨통같다. 상처와 상실이 빼곡한 것보다야 비워져있는 것이 낫다.

 

 어린시절의 상처, 친구를 잃은 상실 그리고 '이렇게 슬픈데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책은 제법 무겁다. 날이 추워지고, 연말이 되고, 밤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읽으면 공감을 많이 할 것 같은데 혹시나 그 우울이 증폭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감성적인 면도 많고 희망으로 보듬고 있지만 상처와 우울에 대한 내용도 많아서 어쩔 때는 그런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니까 조심스럽다. 나 역시 흐름은 다르더라도 책 안의 키워드가 최근 겪은 개인적인 일과 겹쳐 오랜시간 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한번 실망을 안겨준 사람을 다시 믿을 수 있을까. 당연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실망을 한번 안겨준 사람 역시 같은 패턴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고, 바뀌기 힘든 상대의 본질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경계하고 의심할 것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알아온 친구에게 실망을 느끼게 된 일이 있었던 탓에 이 부분에서 한동안 머물러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내가 느끼는 실망이 정당할까, 이런 생각의 변화를 상대방도 느끼고 있을까.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만들어 온 관계에서 실망을 느끼니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아니면 영영 이렇게 망가지게 되는걸까.

 

 이런 고민들 속에서 사람을 믿어 사기를 당한 이야기(157)를 읽으며 사람을 믿을수도 믿지 않을수도 없이 살아가는게 참 어렵구나 싶었다. 저자는 사람을 쉽게 믿는다고 했는데 내심 나는 그렇지 않아,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걸까, 믿지 않기 위해 곁을 두지 않는걸까. 한번 상처받은 일 때문에 '불안을 가진 채 관계를 이어(159)'는 것은 마찬가지였나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왜 종소리가 그리울까요(180)'였는데 어린시절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집에서 바라보는 오르막길쪽으로 아주 오래된 작은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의 첨탑이 집 옥상에서 잘 보이는데 어린시절 저녁무렵이면 교회에서 틀어주는 종소리-멜로디-가 좋아 소리가 들려오면 하던 일도 멈추고 옥상에 올라가 그 소리를 귀기울여 듣다가 내려오곤 했었다. 이맘때면 그 교회에서 첨탑에 색색의 전구를 달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서 밤이면 한참 추위를 참으며 그 불빛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그 기억이 떠오르는 내용이었다. 책 사진을 올려두니 지인이 책 표지가 꼭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킨다고 해주었는데 이런 생각을 들여다본듯한 말이라 어쩐지 더욱 호감이 갔다.

 

 빈 곳이 많은 책은 어쩐지 아쉬운데 이 책의 빈곳은 이해가 갔다. 시간이 갈수록 나랑 공감의 폭이 비슷한 사람들의 글을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라고 지나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심리상담전문가의 치유에세이'라는 말이 판에 박힌 것 같을지 모르지만, 공감도 치유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저 공감하고 이해하며 읽어도 좋을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드러낸 자신의 조각들을 조금씩 나와 맞춰보는 일이 싫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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