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의 비밀 높새바람 41
윤숙희 지음, 김미경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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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웅녀가 어떻게 사람이 되었는지 아니?"

갑작스런 반야의 질문에 선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히 알지. 사람이 되고 싶은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만 먹으며 햇빛이 비추지 않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지냈는데, 호랑이는 못 참고 동굴을 뛰쳐나가고 곰만 사람이 되었잖아. 사람이 된 곰이 바로 웅녀고."

"맞아. 근데 난 가끔 궁금해. 웅녀는 사람이 되어서 행복했을까? 사람이 되기 전에 함께 지냈던 곰 가족이랑 친구들이 보고 싶지 않았을까?" - p70 단군사당 "

 

 '반야의 비밀'은 독특한 매력이 있는 동화다. 서울에서 잠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지리산 마을로 오게 된 선재의 입버릇은 "얼른 서울로 가고 싶다!" 이다. 낯선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재가 할아버지를 따라 지리산을 오르다 비탈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위기의 순간, 선재는 불현듯 나타난 낯선 여자아이의 도움을 받게 된다. 선재는 자신을 도와주고 사라져버린 여자아이에게서 묘한 여운을 느낀다. 부모님의 출장이 길어져 선재는 지리산에서 잠깐 산골 학교를 다니게 된다. 전교생이 30명 밖에 되지 않던 작은 학교에서 선재는 자신을 구해준 '반야'라는 여자아이를 다시 만난다. 반야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선재는 말을 건넬 기회를 잡기위해 반야를 유심히 지켜보다 조금씩 미스터리어스한 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하는데...

 

 의문스러운 구석이 매우 많은 지리산 소녀 반야, 지리산에 던져진 도시 소년 선재. '반야의 비밀'은 두 아이가 점차 가까워지며 쌓아가는 풋풋한 우정과 지리산에 숨겨진 비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까지 독자에게 선사해준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한 편의 이 예쁜 동화는 우리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에 있는 웅녀 설화가 모티브가 되었다. 독특한 설정이 주는 몰입감만큼이나 짜임도 탄탄해 동화의 끝의 끝까지 어떤 결말을 선사해줄 것인지 궁금함을 갖고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한없이 자연에 가까운 반야를 통해 선재 뿐 아니라 독자들도 지리산과 지리산의 풀, 열매, 계절에 한층 가깝게 다가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돈으로도 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친구를 사귀길 바란다.'는 아빠의 문자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도시와 산촌에 대한 대조적인 설정, 전형적인 인물상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 다소 빠른 전개로 인물간의 연결고리가 탄탄해질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 등이 아쉬웠다. 사춘기가 금방 온다는 요즘 초등학생, 열두살 나이의 아이들의 난이도 높은 교우관계를 고려한다면, 한두개의 사건을 더 넣어 선재와 반야가 깊은 교감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넉넉히 보여줬다면 흐름이 더욱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반야의 비밀'을 읽으며 깨끗하고 맑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재미있을 뿐 아니라 순수함이 묻어나는 자연 그대로의 소녀 반야의 안내를 받으며 지리산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기분이 든다. 곳곳에 놓여진 단군신화의 흔적을 살피며 신비로운 전설의 일부분이 잘 녹아든 미스터리 물을 즐기게 되는데, 모처럼 아련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동화를 만나게 된 듯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해볼 수 있고,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볼수도 있을 것 같다. 선재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안겨주는 인물이었는데, 선재가 좀 더 용기있는 소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며 독서를 마무리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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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엔드 - 과학과 종교가 재앙에 대해 말하는 것들
필 토레스 지음, 제효영 옮김 / 현암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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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여름이면 지구의 멸망, 인류의 심각한 위협을 소재로 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찾아온다. 그간 우리가 접해왔던 흥행작들의 목록만 봐도, 인류 내면에 자리잡은 두려움 면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인공지능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 기계의 반란 '터미네이터', 급격한 환경변화로 야기된 빙하기 '투모로우', 인간의 유전자 실험으로 탄생한 괴물 상어 '딥 블루 씨' 국내 영화로는 '연가시, 판도라, 부산행' 같은 전염병이나 핵발전소의 폭발, 좀비 바이러스 영화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 소재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현암사의 신간 "디 엔드 - 과학과 종교가 재앙에 대해 말하는 것들 / 핵에서 인공지능까지 인류의 불행을 불러올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심층 탐구"는 이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소재가 될 법한 요소들을 하나씩 분석한다. 

 

 읽으면서 회의감을 느끼는 부분이 많았는데, 대부분의 요소들에서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인간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만 어마어마한 재앙을 일으키고 막대한 피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존재 자체가 지구에게는 피해를 일으키는 재앙적인 존재로 보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저지를/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모든 파괴적 행위들 뿐만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행하는 일들이 지구의 시간으로도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자연적인 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왔다. "인류는 겨우 몇백 년 동안 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도 진화 속도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급격한 변화였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숲을 밀어버리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조각조각 분열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 p163 공룡과 도도새" 이는 상아가 없는 코끼리, 덩치가 작은 곰들이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마지막 열네 번째 단락으로 가면 '사전 대응과 예방' 부분이 나오는데, 그동안 열거했던 문제들의 심각성에 비해 해결 방법은 미온적인 느낌을 받는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의 설정처럼 한 고객 응대 서비스 용 인공지능이 자신들끼리의 은어를 만들어 대화를 나눈 사건, 우리가 익히 아는 몰디브라는 섬이 곧 바다 속으로 침몰할 위기에 처한 온난화의 심각성, 종교 간 분쟁으로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전쟁과는 상관없는 민간인들의 사망 소식 또한 매일같이 전해지는, "세계 어딘가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문제는 이제 가능성을 가늠하기보다 시점이 언제인지 파악하는 것이 대체로 더 중요한 사안이" 된 지금 가장 유력한 곳 중 하나인 북한 문제가 -비록 우리는 큰 신경을 쓰지 않으며 일상을 유지하지만- 심각하게 대두된 시기에 "믿음보다는 증거를, 계시보다는 관찰을, 종교보다는 과학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한 문장은 너무나 미약하게 느껴져 아쉽다.


 이 책은 인간에게 있는 소멸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다룬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 이후의 세계와 내세를 기약하는 종교를 만들고,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인구절벽에 대한 위기의식과 휴거같은 지구종말론 선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환경오염으로 비롯된 온난화와 과학발전의 뒤를 따르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인간과 유사해지는 로봇에 대한 불안감, 마지막 전쟁이 될 핵무기 등이 자기 자신에게서 부터 비롯된 것임에도 왜 인간은 그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느끼고 있는 많은 위협들에 대해 공감하는 한 편, 지구에서 살고 있는 다른 종들도 인류가 느끼는 이 두려움을 자각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의문을 가질 수는 있지만 '절대로' 답할 수 없는 현상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럴 때 인간은 바로 앞에서 잡힐 듯 가물거리는 생각을 '표면적으로 들여다보는'것이 전부일 뿐, 실눈을 뜨고 아무리 골몰해봐야 제대로 볼 수 없다. - p113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는 발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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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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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시를 접하는 사람들은 시의 낯섦이나 해독의 어려움에 부딪치며 멈칫한다. 뭔가에 가로막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시가 일상적으로 쓰는 생활 어법과 다른 어법을 쓰기 때문이다. 시는 은유라는 이상야릇한 수사법을 품는데, 은유는 일상 화법과 다르게-말하기다. - p.29 은유의 깊이, 은유의 광휘 " 

 

 저자는 "시를 읽어도 '우주에서 은하의 속도는 시속 100만 마일'이라는 지식을 얻을 수"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불분명한 근간의, 명확하지 못한 우주라는 시공을 나름의 해석으로 그려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은 또 무엇일까. 문학적 상상이 그 안에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익혀온 이름난 시를 아끼고 사랑함에도 새로운 시를 마주했을때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던 낯섦과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은유의 힘' 안의 스물네 단락의 글을 읽다보면 그토록 경계했던 시읽기의 오독과 무지의 공포가 점차 옅어짐을 느낄 수 있다. 장석주는 '은유의 힘'을 통해 시인과 시라는 것들이 우리 삶과 분리된, 해석하지 못할 기호에 머물지 않도록 한다. 그는 시인을 "우리 주변에 즐비한 것들의 발견자"로, 시는 "삶을 이루는 모든 찰나에서 파열하듯이" 나타나 직관으로 낚아채진 번개와 같은 빛줄기로 묘사한다. 이는 시와 시인이 우리와 다른 것을 보고, 보여줌을 드러내지만 한편으로는 괴리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실제로 시에게로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우주에서 은하의 속도는 시속 100만 마일"이라는 지식을 얻지 않았는가.  

 

 장석주는 '은유의 힘' 안에서 수많은 은유들을 논한다. 이는 "인간은 스스로가 만물의 영장, 우주의 주인이라는 믿음", "오만한 영장류의 시대"를 시인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에서 보여주는 목가적 소망의 노래에 대입하기도 하고, "실재계를 비추지만 현전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닌 '거울'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간 자아 발달을 얘기하기도 하고,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가르는", "기호이자 상징체계"인 언어의 역할을 드러내기도 한다. 더불어 그는 "보다 정교한 상징체계를 기반으로" 삼으며 "전복과 파괴라는" 망치질에 단련되는 시와 철학의 유사성, "세계와 대면하는", "감각의 확장"을 유도하는 몸과 그 안에서 "신체라는 영토를 탈주해 독립된 지위를 갖는" 얼굴에 이르기까지 감각과 기관으로 확장-세분되는 것들에도 주목한다. 시인은 인류 최후의 목소리이며, 일곱번째의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존재이고, 말을 모으는 사람이며, 이 말들은 기호이자 이름이고 얼굴이며 비로소 완성되어 현존하는 의미이자 본질이 됨을 강조한다.

 

 문학작품 안에서 은유의 상징과 의미를 정답찾기 하듯이 찾아낸 교육 아래에 길러진 수많은 '**년생 아무개'들을 돌이켜보자.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며, 떠올릴-떠올릴 수 없는 또다른 수많은 얼굴들이다. 대학 강의실, 한 교수의 입에서 "어둠은 모조리 일제고, 빛은 죄다 조국의 해방이냐"는 일갈을 듣기 전까지,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의 자투리들을 파헤치며 정답을 찾아냈던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시인 장석주의 신간 '은유의 힘'은 기계들에게 던지는 -살충제 성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계란이다. 굳어져 무디고 어쩌면 녹이 슬었을 기계에 던져지는 계란이 기계 작동의 매커니즘을 일거에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얼굴과 기계를 향해 던지는 작은 충격과 균열을 주는 시도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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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 페미니즘이 이자혜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우리 시대의 질문 5
양효실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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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 말해지거나 더 말해진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를 잃고 혼란스러워진다. - p.105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를 읽기 위해 우선 문제가 되는 "이자혜 사건"부터 찾아봐야 했다. 현실문화에서 나온 우리 시대의 질문 다섯번째 시리즈인 이 책은 "페미니즘이 이자헤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275쪽에 약간의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만 그로서는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고 따로 포털을 검색하여 해당 사건을 갈무리하여 이 책의 출간 의도와 배경을 알아야만 했다. 누구나 책을 읽기 전에 해당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하겠지만, 이 사건을 알아본다면 이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판단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쟁점이 되는 성관계에서 두 주체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여부부터 시작하여, 당시 미성년이었던 피해자의 선택에 주체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문제도 얽혀있다. 거기에 제 3자인 이자혜의 성폭행 공모/조장이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까지 간다면 더욱더 복잡해진다. 이자혜가 그려낸 창작물들과 남겨놓은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안의 글들이 보여주는 당혹스러운 폭력성과 원색적인 욕망의 적나라한 표출은 현실과의 경계를 교묘히 이용한 이입과 조롱의 단면이기도 했다. 알아보기 위해 건드렸다가 더욱 복잡해진 눈으로 '당신은 피해자입니가, 가해자입니까'를 읽었다.

 

 쟁점은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혹 모두가 순결하고 정의로운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자혜가 닿아있는 모든 부분에서 그를 제거하여 삭제해버렸다는 점이다. "소비자본주의는 이제 '유저' 혹은 '독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비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도덕적인 행위는 이제 윤리적인 소비자가 문제시된 생산물, 혹은 생산자를 시장에서 축출함으로써 실현된다.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소설가, 시인의 작품을 삭제하라는 요구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을 시장에서 쫓아내라는 요구들은 그 작품 내지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된다는 식으로 개념을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윤리의 이름을 내건 집단적 알리바이 만들기에 가깝다. - p.44 페미니즘이 해시태그를 만났을 때" 공공연히 알려진 유명인에 의한 폭력/피해 사건의 피해자들이 이를 알리면서 원하는 것이 사과와 보상 그리고 유명인인 가해자를 공적인 매체에서 더이상 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이자혜가 '제거'된 각계각층의 빠른 피드백이 대중의 요구에 발빠르게 부합한 점으로 보인다. 부정을 저지른 자의 창작 또는 공공연한 사회/경제적 활동은 사회윤리 의식에 반하는 결과를 보인다. 수많은 '청산'들은 시대의 과제이고, 우리는 그토록 빛이 어둠을 이기고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사회가 되길 바라왔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로 타인을 상처입히고 손해보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죄과와 별개로 구분되는 창작/사회/경제 활동으로 인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이익을 보며 지내고 있다면 그러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적 관점 때문에 서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이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많은 관점들이 "이자혜는 여자이기 때문에 수 시간만에 밥줄이 끊겼다(이 주장을 반박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제발 알려달라). - p.120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며 그의 제거됨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계속하여 만약 자신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고려해보길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미지가 경험하는 세계는 두말할 나위 없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여성의, 청년의, 빈곤 계층의 경험이 녹아 있다. - p.172 오해의 세계" 는 점에서도 이미 삭제된 이자혜의 창작물들 중 남아있는 몇 편만을 본 지금에서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음을 밝힌다.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그렇지 않다면 미자를 통해서 느꼈을 공감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신은 깨끗하길 원하는 위선'이라는 시선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한편으로 이자혜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이들이 쓴 글을 읽으며 만약 내 지인의 일이라면 다른 면모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동감을 한다. 이 이상의 것들은 더이상 판단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에 부친다. 현시점에서 가지고 있는 뒤늦은 부스러기들로 이만큼의 입장을 드러낸 것 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이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일 만으로도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분류되는 날선 분위기와 무엇도 결론나지 않은 채 소멸된 사건의 흐름이 그러하다.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275쪽의 개요와 197쪽의 '도덕적 폭력, 그 상큼한 쾌락의 원천'에서 다시 서문으로 이어지는 순서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65쪽의 '이 여자들을 보라:애드리언 리치의 '강간'과 비르지니 데팡트의 강간 이론'인데 이자혜 사건과 거리감을 둔 글로 맨 처음 혹은 가장 마지막에 읽는 것을 추천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잘 아우르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자혜와 거리를 둔 내용의 글이 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심정적으로 그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한 글도 접해보고 싶었다. 번외로 아쉬운 점은 우리 시대의 질문 시리즈가 꽤 좋은 기획으로 출간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목록이 있는지 찾아봐도 검색이 잘 걸리지 않는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1,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2, 곁에 서다 3 까지만 대표 포털에서 검색되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헬조선에는 정신분석 4 까지만 확인된다. 다섯번째 시리즈까지 나왔는데. 시리즈 디자인을 좀 더 통일감있게 해서 시리즈 느낌도 팍팍 내주고, 검색에서 확인될 수 있게 출판사 블로그에서도 강조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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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 소금창고 그림책 1
잔니 로다리 글, 풀비오 테스타 그림, 이현경 옮김 / 소금창고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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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유명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있다. "...전략...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라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잔니 로다리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아이들에게 전하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었다. 전자가 좀 더 생의 비애와 수수께끼에 대해 은유적인 분위기를 풍겼다면 후자는 마치 권장 캠페인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어른의 눈으로 책을 읽은 결과, 이 짧은 동화 안에서 세 번의 예상 외의 줄거리를 맞닥뜨렸다. 고집쟁이 마르티노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길을 떠나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 첫번째였다. 두번째는 도착한 성에서 고집쟁이 마르티노에게 권했던 보물들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그것을 마을 사람들과 고루 나눴다는 점이다. 이것들이 이 짧은 동화를 다른 것들과 다르게 느끼게 만드는 점이기도 하면서 어른의 눈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기도 했다.  

 

 남들과 같아지지 않을,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지 않을 주체적인 사고를 가지도록 도와주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길이 어디선가 나타난 한 마리의 개가 길잡이 역을 해줄 순탄한 길이 아닐 수 있음을 그래서 고집쟁이 마르티노 역시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갔음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을 읽을 어린아이들이 차차 자연히 알게 될 현실이지만, 빠져있으니 어쩐지 '만약에 이 길에 사나운 개가 가로막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거니?'하고 물어보고 싶어지는 부분이었다.

 

 두번째는 고집쟁이 마르티노의 성실함, 요행을 바라지 않는 태도를 시험하기 위한 권유라고 생각했는데 쉽게 받아들이고 말 그대로의 포상이었음이 의외였다. 세번째는 가진 것을 나누면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다른 사람들의 욕심을 경계하는 마음에서 함께 나눴다는 점이 예상 밖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어른의 눈으로 동화를 읽은 감상이라,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점을 가장 흥미롭고 즐겁게 생각할지 또 이런 부분들이 의외의 요소들로 느껴질지 궁금해졌다.

 

 책 안 가득히 펼쳐진 조화로운 삽화와 반복해서 읽어주어도 부담되지 않을 분량의 글 조합이 매력적인 동화책이다. 책을 권장할만한 연령층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유치원생인 조카는 이제 책 읽어달라는 말 대신 핸드폰이랑 컴퓨터 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에, 5세 아이들 정도까지에게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혹 독후활동을 겸한다면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읽고 학년 별 독후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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