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 페미니즘이 이자혜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우리 시대의 질문 5
양효실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덜 말해지거나 더 말해진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를 잃고 혼란스러워진다. - p.105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를 읽기 위해 우선 문제가 되는 "이자혜 사건"부터 찾아봐야 했다. 현실문화에서 나온 우리 시대의 질문 다섯번째 시리즈인 이 책은 "페미니즘이 이자헤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275쪽에 약간의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만 그로서는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고 따로 포털을 검색하여 해당 사건을 갈무리하여 이 책의 출간 의도와 배경을 알아야만 했다. 누구나 책을 읽기 전에 해당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하겠지만, 이 사건을 알아본다면 이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판단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쟁점이 되는 성관계에서 두 주체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여부부터 시작하여, 당시 미성년이었던 피해자의 선택에 주체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문제도 얽혀있다. 거기에 제 3자인 이자혜의 성폭행 공모/조장이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까지 간다면 더욱더 복잡해진다. 이자혜가 그려낸 창작물들과 남겨놓은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안의 글들이 보여주는 당혹스러운 폭력성과 원색적인 욕망의 적나라한 표출은 현실과의 경계를 교묘히 이용한 이입과 조롱의 단면이기도 했다. 알아보기 위해 건드렸다가 더욱 복잡해진 눈으로 '당신은 피해자입니가, 가해자입니까'를 읽었다.

 

 쟁점은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혹 모두가 순결하고 정의로운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자혜가 닿아있는 모든 부분에서 그를 제거하여 삭제해버렸다는 점이다. "소비자본주의는 이제 '유저' 혹은 '독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비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도덕적인 행위는 이제 윤리적인 소비자가 문제시된 생산물, 혹은 생산자를 시장에서 축출함으로써 실현된다.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소설가, 시인의 작품을 삭제하라는 요구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을 시장에서 쫓아내라는 요구들은 그 작품 내지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된다는 식으로 개념을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윤리의 이름을 내건 집단적 알리바이 만들기에 가깝다. - p.44 페미니즘이 해시태그를 만났을 때" 공공연히 알려진 유명인에 의한 폭력/피해 사건의 피해자들이 이를 알리면서 원하는 것이 사과와 보상 그리고 유명인인 가해자를 공적인 매체에서 더이상 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이자혜가 '제거'된 각계각층의 빠른 피드백이 대중의 요구에 발빠르게 부합한 점으로 보인다. 부정을 저지른 자의 창작 또는 공공연한 사회/경제적 활동은 사회윤리 의식에 반하는 결과를 보인다. 수많은 '청산'들은 시대의 과제이고, 우리는 그토록 빛이 어둠을 이기고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사회가 되길 바라왔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로 타인을 상처입히고 손해보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죄과와 별개로 구분되는 창작/사회/경제 활동으로 인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이익을 보며 지내고 있다면 그러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적 관점 때문에 서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이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많은 관점들이 "이자혜는 여자이기 때문에 수 시간만에 밥줄이 끊겼다(이 주장을 반박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제발 알려달라). - p.120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며 그의 제거됨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계속하여 만약 자신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고려해보길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미지가 경험하는 세계는 두말할 나위 없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여성의, 청년의, 빈곤 계층의 경험이 녹아 있다. - p.172 오해의 세계" 는 점에서도 이미 삭제된 이자혜의 창작물들 중 남아있는 몇 편만을 본 지금에서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음을 밝힌다.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그렇지 않다면 미자를 통해서 느꼈을 공감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신은 깨끗하길 원하는 위선'이라는 시선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한편으로 이자혜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이들이 쓴 글을 읽으며 만약 내 지인의 일이라면 다른 면모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동감을 한다. 이 이상의 것들은 더이상 판단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에 부친다. 현시점에서 가지고 있는 뒤늦은 부스러기들로 이만큼의 입장을 드러낸 것 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이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일 만으로도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분류되는 날선 분위기와 무엇도 결론나지 않은 채 소멸된 사건의 흐름이 그러하다.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275쪽의 개요와 197쪽의 '도덕적 폭력, 그 상큼한 쾌락의 원천'에서 다시 서문으로 이어지는 순서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65쪽의 '이 여자들을 보라:애드리언 리치의 '강간'과 비르지니 데팡트의 강간 이론'인데 이자혜 사건과 거리감을 둔 글로 맨 처음 혹은 가장 마지막에 읽는 것을 추천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잘 아우르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자혜와 거리를 둔 내용의 글이 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심정적으로 그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한 글도 접해보고 싶었다. 번외로 아쉬운 점은 우리 시대의 질문 시리즈가 꽤 좋은 기획으로 출간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목록이 있는지 찾아봐도 검색이 잘 걸리지 않는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1,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2, 곁에 서다 3 까지만 대표 포털에서 검색되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헬조선에는 정신분석 4 까지만 확인된다. 다섯번째 시리즈까지 나왔는데. 시리즈 디자인을 좀 더 통일감있게 해서 시리즈 느낌도 팍팍 내주고, 검색에서 확인될 수 있게 출판사 블로그에서도 강조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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