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엔드 - 과학과 종교가 재앙에 대해 말하는 것들
필 토레스 지음, 제효영 옮김 / 현암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해마다 여름이면 지구의 멸망, 인류의 심각한 위협을 소재로 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찾아온다. 그간 우리가 접해왔던 흥행작들의 목록만 봐도, 인류 내면에 자리잡은 두려움 면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인공지능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 기계의 반란 '터미네이터', 급격한 환경변화로 야기된 빙하기 '투모로우', 인간의 유전자 실험으로 탄생한 괴물 상어 '딥 블루 씨' 국내 영화로는 '연가시, 판도라, 부산행' 같은 전염병이나 핵발전소의 폭발, 좀비 바이러스 영화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 소재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현암사의 신간 "디 엔드 - 과학과 종교가 재앙에 대해 말하는 것들 / 핵에서 인공지능까지 인류의 불행을 불러올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심층 탐구"는 이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소재가 될 법한 요소들을 하나씩 분석한다. 

 

 읽으면서 회의감을 느끼는 부분이 많았는데, 대부분의 요소들에서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인간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만 어마어마한 재앙을 일으키고 막대한 피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존재 자체가 지구에게는 피해를 일으키는 재앙적인 존재로 보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저지를/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모든 파괴적 행위들 뿐만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행하는 일들이 지구의 시간으로도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자연적인 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왔다. "인류는 겨우 몇백 년 동안 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도 진화 속도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급격한 변화였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숲을 밀어버리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조각조각 분열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 p163 공룡과 도도새" 이는 상아가 없는 코끼리, 덩치가 작은 곰들이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마지막 열네 번째 단락으로 가면 '사전 대응과 예방' 부분이 나오는데, 그동안 열거했던 문제들의 심각성에 비해 해결 방법은 미온적인 느낌을 받는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의 설정처럼 한 고객 응대 서비스 용 인공지능이 자신들끼리의 은어를 만들어 대화를 나눈 사건, 우리가 익히 아는 몰디브라는 섬이 곧 바다 속으로 침몰할 위기에 처한 온난화의 심각성, 종교 간 분쟁으로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전쟁과는 상관없는 민간인들의 사망 소식 또한 매일같이 전해지는, "세계 어딘가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문제는 이제 가능성을 가늠하기보다 시점이 언제인지 파악하는 것이 대체로 더 중요한 사안이" 된 지금 가장 유력한 곳 중 하나인 북한 문제가 -비록 우리는 큰 신경을 쓰지 않으며 일상을 유지하지만- 심각하게 대두된 시기에 "믿음보다는 증거를, 계시보다는 관찰을, 종교보다는 과학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한 문장은 너무나 미약하게 느껴져 아쉽다.


 이 책은 인간에게 있는 소멸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다룬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 이후의 세계와 내세를 기약하는 종교를 만들고,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인구절벽에 대한 위기의식과 휴거같은 지구종말론 선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환경오염으로 비롯된 온난화와 과학발전의 뒤를 따르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인간과 유사해지는 로봇에 대한 불안감, 마지막 전쟁이 될 핵무기 등이 자기 자신에게서 부터 비롯된 것임에도 왜 인간은 그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느끼고 있는 많은 위협들에 대해 공감하는 한 편, 지구에서 살고 있는 다른 종들도 인류가 느끼는 이 두려움을 자각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의문을 가질 수는 있지만 '절대로' 답할 수 없는 현상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럴 때 인간은 바로 앞에서 잡힐 듯 가물거리는 생각을 '표면적으로 들여다보는'것이 전부일 뿐, 실눈을 뜨고 아무리 골몰해봐야 제대로 볼 수 없다. - p113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는 발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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