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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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가족이 있다. 그런데 이 가족은 한국의 가정이 아닌 일본 가정의 이야기다. 하지만 일본 가정이라서 해서 다른 것은 없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고, 그 가족 구성원이 모여 사는 가정의 그림 또한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면에서 여기 가족사는 많은 공감과 때로는 유머속에서 좌충우돌하며 펼쳐내고 있다. 그리고 그 가족의 중심에는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 '우에하라 지로'가 있다. 즉, 이 초등학생 소위 '초딩'이라 불리는 이 꼬마 녀석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지로'라는 녀석이 아주 웃기다. 웃길 뿐만이 아니라 순수하면서도 먹을 것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쓰고, 때로는 어른들 사회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는 면까지 까칠한 구석도 있는 재밌는 캐릭터다. 지로의 모습이 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ㅎ

먼저 이 장편소설 <남쪽으로 튀어>는 일본의 유명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쓴 작품으로 히데오가 만들어 낸 못 말리는 의사 캐릭터인 '이라부' 시리즈에 이은 또 다른 인기작이다. 이라부 만큼이나 이 소설도 많은 인기를 끌며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강호는 저번에 '오쿠다 히데오'의 베스트 켈렉션 몇 권을 켈렉하면서 이제서야 읽게 된 소설이 바로 <남쪽으로 튀어>이다. 그중 1권을 읽고 나서 역시 그 재미는 이라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다가왔고, 어른들에게는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편린을 꺼내들게 만들며 그 이야기속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과연 초딩 6학년 '지로'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어찌보면 평범한 가족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못 말리는 가족사 <남쪽으로 튀어>, 웃기면서 제대로다.

또래 학교 친구들과 잘 지내는 '우에하라 지로', 그날도 학교가 파하자마자 거대한 게임센터 빌딩에 들려 게임을 하고 만화방에서 가서 만화보고 맛난 거 사 먹는 등 방과 후를 항상 이렇게 보내는 지로, 사실 그는 학교 공부는 뒷전인 채 놀기에 바쁜 초딩 6년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로의 가족은 다 허물어가는 목조 건물 2층짜리 집에 살면서 찻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사쿠라'와 백수건달로 자칭 '프리라이터'라는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소위 반체제 인사로 아나키스트다. 그리고 2살 밑에 여동생 '모모코'와 22살의 예쁜 누나 '요코'가 있다. 지로의 친구는 세탁소 가게 아들 '준', 도장가게 아들 '무카이', 부잣집 아들 '린조', 중학생 형들 밑에서 꼬봉 노릇하는 '구로키', 그리고 여자 친구까진 아니지만 관심이 가는 두 여학우 '핫세와 삿사'까지, 그리고 지로의 예쁜 담임선생님인 '미나미'선생님까지.. 이들이 극의 주인공이자 지로의 학교 생활에서 나오는 인물들이다.

여학우 '삿사'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아서 노는 모습들, 게임센터해서 죽치고 노는 모습들, 그리고 이제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거기시한 황홀경속 '몽정'의 세계, 그리고 여기 이야기의 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위 '삥뜯기'가 자주 나온다. 바로 위 중학교 1학년 형인 '가쓰'가 지로부터 해서 지로의 친구들까지 괴롭히며 아이들 애니메이션 카드를 팔아서 돈을 벌어오라, 자전거로 날 태우러 오라 등, 계속 괴롭힌다. 힘 하나 믿고 까부는 건데, 이에 지로는 반항을 못한다. 그리고 이런 일에 소위 시다발이 꼬봉으로 나선 '구로키'로 인해 지로의 학교 생활은 극락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며 우울의 연속이다. 그러다 급기야 터질 것이 터지고 만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가쓰에게 지로가 덤빈 것이다. 꼬봉 노릇하던 '구로키'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그 싸움의 현장에서 가쓰가 뒤로 넘어지면서 뒷통수를 심하게 부딪치며 정신을 잃자, 둘은 두려움에 가출하고 만다. 사람을 죽은 것으로 안 순진한 두 소년은 그렇게 잠시 집을 나갔지만 가쓰는 죽지 않았고 일종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된다. 물론 이후 가쓰의 앙갚음은 더 심해졌지만 말이다. ㅎ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지로는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한다. 가쓰와 한판 붙을 때 가쓰가 지로 어머니가 과거에 형무소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에 앙앙불락되다가 사고가 난 것인데, 아무튼 지로가 나름 탐정?한 결과, 어머니 '사쿠라'쪽 즉, 외갓집 할머니의 존재를 알면서 혈육을 만나게 된다.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소싯적에 무슨 잘못인지 몰라도 20여 년을 떨어져 살면서 왕래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외할머니 집은 소위 귀족가문처럼 잘 살고 있는 모습에 지로와 여동생 모모코는 부러워 마지않는다. 먹는 것도 많고, 거기 사촌들(지로 어머니 남동생의 자식들) 셋다 모두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귀티가 잘잘 흐른다. 이런 모습에 지로는 부러워하면서도 나름의 경계를 한다. 먹을 때만 빼면 말이다. 그런데 지로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도통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둘 사이에 그렇게 앙금이 깊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렇게 외갓집과의 만남 속에 지로의 집에 한 식객이 들어와 같이 지내게 된다.



남쪽의 섬으로 떠나게 된 '지로' 가족의 이야기 1권

이름은 '아키라', 바로 지로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의 후배다. 이 둘은 무슨 사이일까? 그렇다. 이른바 '혁공동'(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이라 불리는 멤버로, 물론 지금은 백수건달로 집에서 놀고 먹지만 영화 시사회도 찾아다니고, 또 소싯적 글쓰기에 '프리라이터'라 자칭하지만 우에하라는 바로 예전에 전설적인 투사였던 것이다. 소위 반체제 인사로 무정부주의자 불리는 아나키스트였다. 그래서 그는 국가 자체를 부정하고 싫어한다. 국민 연금을 내라고 독촉해도 낼 수 없다 하고, 세금도 내지 않고 경찰이나 공무원만 보면 쌍심지를 켠다. 또 콜라와 캔 커피는 자본의 유산으로 금지요, 학교도 아이들 세뇌 교육을 시키는 장으로 안 다녀도 좋다며 지로를 통제하곤 한다. 심지어 지로의 담임 선생님 '미나미'를 꽤 괴롭힌다. 어떤 사상과 주의를 설파하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지로는 한 마디로 아버지가 마뜩찮다. 왜 남들처럼 넥타이매고 회사를 안 다니는건지, 맨날 집에서 백수처럼 방바닥에서 뒹굴며 콧구멍이나 파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지로는 절망한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의 후배가 집에 찾아와 지로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한다. 그런데 이 아키라는 아저씨는 지로나 모모코에게 참 잘해준다. 맛나는 음식도 사주면서 그 집안일을 도와주는데, 어느 날 지로에게 무언가 일을 시킨다. 곰 인형을 어디다 갖다만 주면 된다는 등 이른바 지로를 접선책으로 쓴 것이다. 물론 지로도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초밥을 사준다는 꼬득임에 넘어가며 일을 도와준다. 급기야 또 한번 일을 도와주면서 그때는 아키라까지 그 아지트에 뛰어들다가 큰 폭발 사고가 난다. 바로 사람이 죽은 것이다.

혁공동의 내분으로 사건이 밝혀지면서 아키라는 잡히고 지로는 학생 신분에 맞게 취조 아닌 취조를 당한다. 그러면서 지로의 집안은 쑥대밭이 된다. 지로 아버지의 전력이 다 들어나면서 경찰에게 연행되고, 지로마저 학교에서 쫓겨날 판이다. 결국, 급기야 지로의 부모는 소문이 이상하게 퍼지고 집 주인까지 집을 내놓으라는 통에 이 더러운 일본 사회를 떠나자며, 저 따뜻한 남쪽의 섬 오키나와의 '이리오모테' 섬으로 이사를 결정한다. 이에 지로는 깜놀하지만 그도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자책에 빠지며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친한 학우들 준, 무카이, 린조, 삿사, 구로끼까지 떠나기 전날 그들을 만나며 석별의 정을 나눈다. 아.. '이것이 진정 이별이란 말인가' 영화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지로는 마음 아파하지만 또 지로답게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모험에 그는 준비한다.

이것이 아니, 여기까지가 바로 <남쪽으로 튀어> 1권의 내용이다. 스포일러까지 모두 포함해서 내용을 정리해 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이야기들이 많이 와 닿는다. 우선 우리네 어린 시절의 초등학교 생활 이야기가 낯설지가 않게 고개를 많이 끄덕이게 하며 웃음을 곳곳에서 자아내게 한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학우들과의 관계속에서 남자들만의 세계를 알아가는 지로, 또 중학생 형에게 소위 삥뜯기를 당하면서도 결국에는 어떻해든 자신에게 중대차한 그 일을 처리하는 모습들까지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로의 아버지를 통해서 국가와 사회의 비판을 날을 세우는 현 자본주의에 대한 억압과 허상이 그려낸 사회문제까지 위트와 함께 재밌게 그려내고 있다.

어찌됐든 좌충우돌한 이 지로네 가족은 이제 저기 따뜻한 남쪽의 섬으로 떠나게 됐다. 그것이 그들의 의지가 됐든 아니든, 그것은 어찌보면 사회에 어울리고 적응하지 못한 한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 가족을 그렇게만 바라봐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히데오만의 작가적 역량으로 절대 무겁지 않게 때로는 가벼우면서도 유머속에서 아픔까지 담아내는 그 숨은 이면을 보게 된다. 과연, 지로네 가족은 그 섬에 가서 행복하게 잘살 수 있을까.. 그 이야기는 바로 2권에서 이어진다. 그래서 강호는 2권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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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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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강박증’하면 무언가 자신이 그 어떤 물체와 상황에 시달리는 정신적 장애와 공황상태을 보통 일컫는데, 이것은 일종의 신경정신과적 용어의 ’강박장애’로 엄연히 질환의 일종이다. 즉, ’강박장애(强迫障巫,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OCD)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떨쳐버리고 싶은데도 시도 때도 없이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상태’ 라고 명징하고 있다. 그렇다. 자신의 의지와는 반하게 무언가 쫓기듯 시달리며 그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상태라 보면 되는데, 이런 질환들은 사실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물체나 물건을 싫어하는 강박이 있다든지 어떤 상황에 처하면 그것을 해야 직성이 풀리듯 매번 그런 환경에 시달려 오곤 한다.

이른바 ’확인행위의 습관화’라고 보면 쉬울까.. 그렇다면 이런 질환의 치료는 어떻게 해야할까.. 물론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외적인 치료 이외에 책을 통한 간접치료도 있다. 그렇다. 여기 이 책이 그런 치료법을 제시하며 우리네 강박증의 사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일본에서 잘 나가는 작가 ’오쿠타 히데오’의 작품으로 물론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속에는 패러독스하면서도 ’유희적 인간’이자 무언가 정신이 나간 듯 괴짜의사 ’이라부’를 통해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다. 이미 전작 <공중그네>를 통해서 이라부는 그만의 강박증 치료법을 선보이며 많은 공감과 웃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여기 못 말리는 괴짜의사 이라부 시리즈의 2탄 <인 더 풀>을 통해서 우울증과 강박증에 시달리는 다섯 사람을 또 치료에 나섰다. 그들은 어떤 강박에 시달렸고 치료됐을지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현대인의 우울과 강박을 다룬 이라부 시리즈 2, <인 더 풀>

첫 번째 이야기 <도우미>는 섹시하고 외모도 출중한 한 젊은 처자, 이 처자는 이른바 ’도우미걸’이다. 레이싱걸 모델부터 각종 이벤트 행사, 모터쇼, 게임쇼등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쭉쭉빵빵의 여자, 그녀의 삶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히 좋지 않다.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은 모두 음흉한 늑대로 간주하는 도도한 여자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부터 ’자신을 누가 쫓아오는것 같다. 누군가 나를 계속 엿보고 있다’ 등 스토커에 시달린다고 이라부를 찾아간다. 그런 이라부는 도리어 치료는 커녕 그녀의 상황을 인정하며 자신이 애인까지 되주겠다며 희번덕거린다. 과연 그녀는 그 스토커를 떼어놓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정말로 스토커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일종의 ’자의식과잉’의 표출인 것인가.. 소위 ’자뻑’에 빠진 여자들이 꼽십어 볼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이야기 <아, 너무 섰다!> 제목부터 남자라면 눈치챌만한 이야기다. 바로 남성의 심볼 ’존슨’ 즉 거시기가 시도때도없이 서버려 일상생활은 물론 직장생활까지 위기에 처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싶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질환 중의 하나다. 이른바 ’음경강직증’이라 불리며 임포텐스(발기부전)와는 반대의 경우인 것이다. 아무튼 거시기가 빨딱 서버린 그는 이라부를 찾아간다. 그런데 이라부조차 그런 그를 보자 부러워하며 치료는 커녕 비아그라 과다 복용이라 단언하는데, 하지만 몇 번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차도가 없자, 그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교보재?로 쓰였다가 단박에 해결하게 되는데 마지막이 압권이다. 특히 남자들은 이 이야기에 심히 공감할 것이라 본다.  ㅎ




세 번째 이야기 <인 더 풀>은 이 작품의 표제작이기도 한데, 매사 생활에 의욕이 없어 이른바 ’심신증’에 걸린 한 남자, 심신과 마음의 병에 걸려서 매번 가슴이 저리고 답답함을 느껴 이라부를 찾아간다. 무엇이 원인일까? 이런 의욕없는 삶을 어떻게 돼 찾을 수 있을까, 이라부에게 고민을 털며 급기야 그 남자는 자신이 학창시절 했던 수영을 다시 시작하며 의욕을 찾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수영에 너무 빠져살면서 이라부까지 끌어들여 둘은 수영하기에 올인한다. 그러면서 둘은 구민회관의 수영장을 야밤에 급습해 마음껏 수영을 할라고 하는데, 하지만 모든 것이 지나친 과욕은 금물이다. 적당한 게 좋은 것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프렌즈>다. 여기 한 고등학생이 있다. 그는 지금의 학생들처럼 휴대폰에 빠져 산다. 과하긴 하지만서도 하루 2백통 이상의 문자를 보낼 정도로 그 남학생은 모든 것을 휴대폰으로 해결한다. 학교 생활은 물론 학교를 나와서도 매 소위 ’문자질’이다. 그런 휴대폰이 없어진다면 그는 심한 강박에 시달려 아무것도 못하고 손까지 떨 정도로 심각해진다. 이에 이라부를 찾아갔는데, 이라부조차 나도 휴대폰 문자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며 그 또한 휴대폰에 빠졌다가 재미없다며 손을 놓는다. 급기야 그 남학생은 나중에 휴대폰 문자를 대하는 친구들의 싸늘한 반응을 보고서 외톨이가 됨을 느끼는데.. 문제는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소위 소통이라는 게 그렇게만 일회성으로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다. 이 케이스는 우리가 정말 자주 보거가 접하는 강박증의 일종이다. 소위 아줌마들이 그런 케이스가 많은데, 집을 나서고도 내가 전기 콘센트는 뽑았는지, 가스불은 껐는지, 수돗물은 세지 않는지 등.. 그런거 말이다. 여기 논픽션 작가인 한 남자도 그런 케이스다. 대신에 이 남자는 담배불에 대한 강박이 있다. 집을 나설때마다 내가 담뱃불은 껐는지, 껐다면 혹시 불씨가 남은 건 아닌지, 그 불씨가 어디에 옮겨 붙으면 어떻하지 등.. 보통 걱정이 아니다. 그래서 이라부를 찾아간다.

이라부는 이것은 일종의 ’확인행위의 습관화’라며 그에게 도리어 담뱃불도 그렇지만 "가스는 새지 않았을까.. 전기는 누전이 안 됐을까.." 하며 그를 더욱더 압박한다. 이에 그 남자는 또 다른 강박에 시달려 어쩔줄 몰라하며 집을 나가면 가스 밸브도 잠그고 두꺼비집도 내리는 강수를 둔다. 그래도 길을 나서면 걱정은 매 한가지다. 과연, 이런 확인행위의 습관화를 어떻게 타파했을까.. 모종의 사건을 우연찮게 처리하며 일말의 여유를 찾게 되는데,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숙집으로 이사를 했지만서도.. ㅎ



괴짜의사 이라부 그만의 강박증 치료기, 낯설지 않다.

이렇게 여기 다섯 편의 이야기를 보면 마냥 소설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우리네 일상적인 모습들이 많다. 스토커에 시달려 왔다고 생각하는 섹시한 ’도우미’의 이야기나, 심적 압박과 충격으로 인해선지 남성의 심볼이 매번 빨딱 서 있는 그 남자의 고충, 심신이 지치자 예전에 했던 수영하기 운동을 찾으며 삶의 의미를 찾아간 한 남자, 그리고 휴대폰 문자질에 올인한 고딩학생의 소통방식인 문자 의존의 강박증, 마지막으로 우리네 일상에서도 많이 봐온 무엇을 했는지 안 했는지 등 ’확인행위의 습관화’처럼 이런 모습들은 절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즉, 모두 한두 번쯤은 겪거나 봐온 그림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강박장애는 꽤나 ’유희적 인간’으로 비춰보이는 괴짜 의사 ’이라부’와 섹시하면서도 너무나 관조적인 육체파 간호사 ’마유미’ 이 둘이 그런 환자들에게 주사 한대 맞히고 시작하는 그 이상한 치료법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이라부는 환자들의 고충을 마음껏 들어주는 듯 하면서도 그들과 같이 행동하며 치유해 가는 그만의 치료방식, 이것이 이라부를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그만의 강박증 치료기인 것이다. 즉, 함께 그 강박증 행위에 도달하기 전 또 도달했을 때 만나게 되는 행위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어찌보면 태초의 인간의 모습으로 그들을 대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되는 순간에 인간은 누구나 심리적 편향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의 삶의 궤적이 그려낸 흔적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이런 이라부를 만나며 때로는 웃음과 역설을 통해 치유 행위의 쾌감을 맛보게 된다. 아무튼 <공중그네>에 이어 이라부의 2번째 강박증 치료기 <인 더 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니, 때로는 위트있게 풍자하며 그 속에서 우울증과 강박증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이라부식의 치료를 보여주는 처방전들.. 마냥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닌 점에서 이 소설이 의미하는 크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요, 따분하고 우울하고 무언가 강박에 시달린다면 그래서 이런 소설이 심히 와 닿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이라부 표 처방전을 우리는 맞게 되고, 또 그의 활약은 계속될 것이다. 
3편 <면장선거>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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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현상금 견인 도시 연대기 2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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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 도시 연대기' 2번째 이야기, <사냥꾼의 현상금>

국내 SF소설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영국의 젊은 작가 '필립 리브'는 어찌보면 낯설다. 하지만 그가 쓴 SF소설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의 1부 <모털 엔진>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무한의 상상이 빚어낸 '도시 진화론'에 의해 도시가 도시를 잡아먹는 먼 미래의 세계,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음모와 모험등은 충분히 독자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든 새로운 SF소설의 수작이었다.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 그 이야기에 이은 2부 <사냥꾼의 현상금>이 출간되면서 이 시리즈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기대감을 만족시켰다. 물론 역사소설 <아서왕, 여기 잠들다>도 같은 시기에 나오면서 이목을 끌었고, 이 책 또한 읽어본 강호는 역사속 전설은 결국 '이야기'라는 어찌보면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아무튼 가을 밤마다 미지의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 '견인 도시 연대기'의 2번째 이야기 <사냥꾼의 현상금>.. 그런데, 이 SF소설은 전작 1편 <모털 엔진>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1편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보니 주인공 톰과 헤스터를 위시한 각 캐릭터들이 고정화되어 도시가 도시를 잡아먹고 먹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며 그 어떤 음모론적 서사로서 배경이 된 반면에, 2편은 우선 캐릭터들이 다양하다. 아니 1편보다 많아서 나오는 주요 인물만해도 십여 명이 넘는다. 그러면서 이 인물간의 관계가 조금은 얽히고설켜 있다. 물론 전작에서 죽은 한 인물이 중심이 되지만서도.. 
 
그런데 2편의 분위기는 웬지 동화스럽다. 동화스럽다고 해서 폄하하는게 아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유치한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닌 그렇다고 성인스럽다는 표현이 아니라 본격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점에서.. 마치 엘리스가 훌쩍 커서 미지의 모험을 떠난 올초에 개봉한 '조니 뎁' 주연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듯 때로는 몽환적이면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1편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2편의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는지 그 SF동화 속으로 빠져보자.

얼음도시 '앵커리지' 배경과 캐릭터의 향연장

먼저 <사냥꾼의 현상금>의 시대적 배경은 전작 <모털 엔진>에서 아주 먼 미래에 핵전쟁으로 추정되는 '60분 전쟁'으로 인해 종말을 맞은 지구는 '도시진화론'이 지배하는 세상의 연상선으로, 지표면을 달리며 작고 약한 도시들을 집어삼키던 견인 도시 런던이 '반 견인 도시' 세력을 무릎 꿇리려다 멸망하고 약 2년 후다. 그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메두사와 벌인 전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행선 제니 하니버를 타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두 주인공 톰과 헤스터.. 이들이 어느덧 성인으로 자라나 이야기를 펼친다. 그리고 그 둘은 비행선 제니를 타고 또 다른 도시 사냥꾼 비행단을 피해다니는 과정에서 허풍 끼가 다분한 역사학자 '페니로얄'를 만나고 천신만고 끝에 '앵커리지'라는 얼음 썰매 도시에 도착한다.

그곳은 라스무센家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레야'라는 십 대 여왕이 시장 노릇을 하고 있는 도시로, 한때 부유하고 융성했으나 역병이 돌아 폐허로 전락한 상태다. 그런 몰락해버린 도시 앵커리지의 프레야 여왕의 이미지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그 하얀 공주를 연상케하는데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고결한 모습은 결국에는 이 도시를 예전의 영화로 다시 일으키는 과정에서 나름 적극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손님 대접을 받으며 머물게 된 톰과 헤스터 그리고 페니로얄.. 여기서 페니로얄 교수는 자신이 쓴 책에서 언급한 미지의 아메리카 대륙을 말하며 앵커리지가 살길은 그 대지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 종용해 앵커리지는 그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여왕 프레야가 톰에게 첫눈에 반한다. 톰도 마찬가지로 헤스터보다 편하고 말도 잘 통하는 프레야에게 끌린다. 이에 평소 냉소적이고 까칠한 헤스터는 둘 사이의 모습에 앙앙불락되지만 결국에 상처를 받아 그 도시를 제니를 타고 홀연히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된다. 바로 헤스터는 다른 도시들이 있는 장소를 발설하면 현상금을 주는 '아크에인절'이라는 사냥꾼 도시로 제니 하니버를 타고 혼자 날아가 앵커리지가 있는 곳을 밀고한 것이다. 내용 전체의 분수령이 되는 대목이자 2편 전체 플롯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밀고를 했을까? 헤스터는 정말 돈이 필요해서일까.. 아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애인 톰이 프레야에게 넘어가자 현상금대신 톰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한 것이다.

즉, 사냥꾼 도시 '아크에인절'이 얼음도시 '앵커리지'를 잡아먹고 나면 현상금 대신 톰을 자신에게 넘기라는 조건이다. 정말 위험천만한 거래가 아닐 수 없다. 단지 사랑하는 남자때문에 도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과정에서 헤스터는 외딴 섬 '로그스 루스트'에 영문도 모른 채 불시착돼 '그린 스톰'으로 대표되는 그들에게 잡혀 문초를 당한다.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비밀스런 실험 대상으로 삼게 되는데, 그 실험은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이 실험은 바로 기계인간 '스토커'를 대량생산하는 곳으로 바로 1편에서 죽은 여전사 '안나 팽'에 대한 부활을 꾀하는 반 견인도시 연맹 단체였던 것이다. 즉, '안나 팽'이 타고 다녔던 제니 하니버를 톰과 헤스터가 타고 다니면서 그들의 타겟이 된 것이다.

한편 톰은 헤스터가 자신때문에 떠난 죄책감에 그녀를 찾아 나서게 되면서 그 또한 앵커리지에 숨어서 남몰래 정찰하는 도둑소년들 일명 '로스트 보이'에게 납치돼 '그림 스비'라는 단체의 수장 '엉클'에게 잡히게 된다. 그리고 엉클은 톰에게 제안한다. 헤스터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려주고 로스트 보이들과 그녀를 구하러가는 대신에 '로그스 루스트'의 일급비밀을 캐오라는 조건이었다. 이에 톰은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헤스터를 구할려는 일념에 수락해 적지 '그린스톰'으로 뛰어든다. 그런데 평소 톰을 좋았했던 '로스트 보이'의 '카울'이 그 섬을 '게 카메라'로 폭발시키면서 천신만고 끝에 톰과 헤스터는 그 섬을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아크에인절이 앵커리지 도시를 잡아 먹는 그 현장으로 달려가 그 도시를 구할려고 하는데.. 과연 그들은 착한? 앵커리지 도시를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허풍쟁이 역사학자 페니로얄 말처럼 미지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그들의 목적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결국에는 톰과 프레야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시기하며 다시 톰을 찾기위해서 자신을 잘 보살펴준 앵커리지를 밀고한 헤스터의 죄책감은 어떻게 상쇄될 것인가.. 이야기의 마지막이자 또 다른 이야기를 알리는 부분이다. 즉,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답게 다음 3편에서도 그들의 활약은 계속 되는 것이다.

헤스터가 중심이 된 2편, 그들의 모험은 계속된다.

이렇게 본 2편은 1편과 다른 느낌으로 우선 캐릭터들이 많아 이야기의 중심을 곳곳에서 이룬다. 두 주인공 톰과 헤스터를 위시해서 얼음도시 앵커리의 수장이자 라스무센가의 때로는 유머스런 고결함을 유지한 '프레야'와 그의 신하들, 허풍선이 역사학자 페니로얄을 통한 역사에 대한 꼬집기, 죽은 사람의 부활을 꾀하기 위한 기계인간 스토커를 만들려는 '로그스 루스트'의 '그린 스톰' 군인들, 마치 조지오웰의 <1984>의 '빅 브라더'를 연상케하는 '로스트 보이'(엉클이 항상 제일 잘 안다는 모토 아래 움직이는 물 속 도시 그림스비에 사는 일군의 고아 소년들을 지칭하는 용어) 데리고 조정하며 살고 있는 '엉클'의 캐릭터까지.. 나름 풍성한 캐릭터의 향연장이다.

그리고 이들은 각 이야기에서 중심을 이루며 그 모든 것이 톰과 헤스터와 관련지어 연결되게 된다. 그 속에는 베일에 싸인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상처와 복수, 그리고 용서까지 담아내며 우리를 그 어떤 동화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물론 SF적 요소가 다분한 미래소설이기에 그 상상의 그림은 한 편의 재미난 SF영화를 방불케할 정도로 흥미 또한 만점이다. 그것은 1편에서 상처 입은 어린 영혼의 소녀 '헤스터'가 여기서는 한 뼘 더 성숙하게 나와 모든 사건이 그녀에게 맞추어져 있다. 그녀가 느꼈던 열등감과 질투심, 배신감, 죄책감, 동정심 등을 통해서 어찌보면 성장소설로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즉 모든 사건의 핵심에는 헤스터의 그 '마음'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마지막에는 '밸런타인의 딸'로서 변모된 여전사의 모습까지도...

아무튼 강호는 SF소설을 즐겨 읽진 않지만, 필립 리브의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 만큼은 '닥본독'할 정도로 챙겨 읽게 된 SF소설이다. 그런 기대감은 1편 <모털엔진>과 못지않게 어찌보면 더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재미로 안내한 <사냥꾼의 현상금>.. 그렇게 자극적이고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우리네 어린시절 추억의 편린을 꺼내듯 동화스런 분위기로 이끄는 이야기의 힘.. 그것에다 먼 미래에 도시가 도시를 잡아먹는 '도시진화론'에 근거한 SF적 요소까지 충만돼 우리네 머리속 상상의 세계를 이끌며 충돌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먼 미래긴 하지만 그 상상의 세계속에서 견인 도시들을 만나보자. 

상상이 즐거워지는 흥미진진한 여기 이야기속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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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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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왕魔王' 한자 그대로 하면 마귀중에서 으뜸가는 왕, 악마중에 최고의 왕 '마왕', 이렇게 제목만 놓고보면 그 어떤 마왕을 그려낸 무슨 판타지 소설같은 느낌이다. 물론 이 소설은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다. 두 남자 형제 주인공중 하나는 복화술을 하나는 예지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 깔린 이야기는 절대 판타지가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본 아니, 지금도 진행중인 일본의 현 정치사회적 상황들을 그려내며 특히나 젊은 세태에 대한 비판과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이것은 자신 또한 젊기에 이 땅의 젊은 친구들에게 무언가 경고의 메시지로 담아내려 애쓴 일본에서 촉망받는 젊은 주류작가이자 예리한 문학적 지성의 소유자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인 <마왕>이다.

사실, 이 작품은 영화 <골든 슬럼버>를 통해서 알게된 작가의 책으로 먼저 냉소적이면서 무언가 매력적인 사신死神 치바의 이야기를 그린 <사신 치바>를 읽고 나서 두 번째로 만난 소설이다. <사신 치바>가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신 '치바'를 통해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냉소적 진중함으로 다가왔다면 여기 <마왕>은 인간의 삶이 어떤 자각없이 사색없이 획일적으로 흐르는 그 사회적 현상에 대한 비판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초능력을 가진 두 형제를 통해서 그려내며 때로는 관념적으로 때로는 진중어린 순수함으로 어리석은 군중들에게 '생각하라, 생각하라'는 문제의식을 던진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 <마왕>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정치인, 무솔리니, 시인, 복화술사, 예지력자, 인간군상들

사람들이 만원이 지하철 안.. 저마다 말없이 골똘히 생각을 담고 살아가는 이들, 여기서 20대 후반의 젊은 청년 '안도'는 친구 '시마'를 만나 나라 안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소수 야당인 '미래당'이지만 거기에 젊은 정치인 '이누카이'를 통해서 그 둘은 현 정치 상황을 꼬집는다. 이 대찬 정치인은 바로 중국에게 매번 당하고 미국에는 찍소리 못하고 끌려가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자신과 동급인 정치인의 작태를 꼬집으며 일본 정치판을 뒤흔들 야심찬 인물이다. 그리고 이런 성향이 국가주의적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파시즘의 '무솔리니'를 '이누카이'와 대비시켜 이목을 끌고 있다. 또한 일본의 국민작가로 칭송받으며 자연인으로 살고자 했지만 젊은 시절에 요절한 시인이자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몇몇 작품의 구절을 인용해서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리고 여기 주인공 '안도'는 바로 다른 사람의 심중에 있는 말을 간파하는 혹은 그 사람의 말을 조정할 수 있는 일명 복화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능력이 있는지 몰랐지만 차츰 알게 되면서 그 능력을 여러 곳에서 시험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안도는 지금 일본이 처한 상황들 정치인에게 환멸을 느껴하는 국민들과 '이누카이'가 무솔리니와 닮아 보이는 저 정치인의 등장에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생각해라.. 생각해라.. 맥가이버'를 외치듯 그는 사색에 골똘한 젊은이다. 물론 이런 형을 옆에서 지켜보는 형을 지극히도 좋아하고 아끼는 동생 '준야'는 그런 형이 걱정이 된다. 너무 사색만 하다가 자신의 입장도 견지하지 못한 채 쓰러질까봐 걱정이다. 이렇게 형 안도는 조근조근 하면서도 냉철한 사색의 소유자다.

반면 동생 '준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정치사회에는 크게 관심없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친구 '시오리'와 무난한 삶을 추구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에 평소 복화술에 심취해 몸이 점점 허해져 가던 안도가 그 당찬 정치인 '이누카이' 유세 현장에 갔다가 갑자기 길바닥에서 '돌연사' 하면서 동생 준야의 삶도 바뀌어 버린다. 5년이 훌쩍 지나버린 그 시점에서 시오리와 살고 있는 준야네는 TV와 신문등 모든 정보를 끊은 채 도심속에 고립된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준야는 무언가 잘 맞추는 '예지력'이 있음을 간파한다. 형의 혼이 씐 것이 아닌가 위안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둘은 경마장에 가 그 예지력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된다.

물론 이를 지켜보는 제 3자의 시선으로 말하는 '시오리'는 남편 준야의 이런 능력과 기운에 섬뜩함을 느끼게 되는데.. 과연, 그 돈으로 그들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위 '평화헌법'이라는 불리는 '헌법 9조'의 개정(국가 안위를 위해서 자위대의 무력 사용이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선 정치인 '이누카이'와 맞서려는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결말은 그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사회 비판적 견지로 사색적인 삶을 일관해온 복화술사 '안도'와 다르게 나름 안돈하며 크게 사회정치적 성향은 띄지 않은 채 살아온 그가 결국에 맞선 삶이 무엇인지 말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마왕'은 사회소설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복화술사, 예지력자라는 판타지적 요소에 무언가 독특하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여기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사회적 미디어와 관련된 언론들의 상황과 정치적으로 표출된 헌법 개정과 관련된 국민투표등 비단 일본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이채롭다 할 수 있다. 바로 현재 한국에 사는 우리와 궤를 같이 하는 느낌으로 깨닫는 바가 많은 작품이다. 그것은 바로 젊은 작가의 시선으로 그려낸 사색없이 획일적인 일본내 세태의 비판이자 미래의 대안 제시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런 그림들은 이야기속에 나오는 캐릭터를 통해서 표출된다. 젊지만 올곧고 나라를 위해선 국민 모두가 국가를 위해서 나서야 할 때를 주장하는 당찬 젊은 정치인 '이누카이'.. 실제 이 인물은 1932년 평화적인 정당정치를 옹호하던 '이누카이 츠요시' 총리를 보수 우익 성향의 젊은 해군 장교들이 총리 관전에 난입해 살해한 5·15 쿠데타 사건을 모티브로 따온 인물이다. 또 그것을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을 낳은 '무솔리니'와 접목시켜 그리고 있으며, 자연인으로써 살고자 했던 일본 국민작가 '미야자와 겐지'를 통한 "제군은 이 시원스러운.. 제군의 미래권에서 불어오는.. 투명하고 청결한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가.." 같은 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주인공 복화술사 '안도'를 통해서 사람들의 말을 조정해 행동을 고쳐 사색적 삶으로 인도하려는 의도와 양태들, '준야'의 예지력으로 경마에서 일확천금을 땄지만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문제 제기로 미래에 대한 조망과 이 둘 형제를 지극히도 관조적으로 때로는 관여하듯이 일관되게 지켜본 여자 '시리오'까지.. 이렇게 여기 캐릭터들은 서로 상충되면서도 일면 서로 통하듯 일본사회의 생각없이 일관되온 사회적 세태를 흡수적인 비판적 견지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젊은 세대들에게 정보화의 홍수속에서 인터넷 '검색' 아니라 제대로 된 '사색'을 견지하라는 메시지가 강하다. 소위 '생각 좀 하고 살자!'의 주의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은 슈베르트의 유명한 가곡인 '마왕' 속의 이야기, 꿈속이었는지 마왕을 본 한 아들이 아버지의 품속에서 결국 죽어갔다는 그 모티브로.. 이 둘 형제를 마왕속에 집어 넣으며 우리 안의 그 어떤 '괴물'에 대한 섬뜩하면서도 기발한 우화적 이야기로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작품 전체적 느낌은 사회적 세태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어 그것을 두 주인공을 통해서 꼬집으며 대중적이면서도 무언가 순수문학적 분위기로 사회소설을 지향하고 있는 작품 <마왕>..

과연 우리시대 진정한 마왕은 누구이며, 여기 이야기속의 두 형제가 추구한 진정한 삶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파시스트 무솔리나와 함께 처형당한 그의 애인 클라라, 이 둘의 시체가 거꾸로 매달렸을때 뒤집어진 클라라의 치마를 바로잡아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운집한 군중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속 어느 페이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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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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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말로 진심으로 '언론은 공정하게 진실만을 보도했다'고 생각이 든다면 강호는 이 책을 당당히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읽는 순간 그 믿었던 공정함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9시로 대표되는 뉴스 통칭해서 우리시대 '한국의 언론들'에 대해서 날이 선 비판의 견지로 KBS 최경영 기자가 쓴 '한국 언론의 몰상식 보고서'다. 읽는 내내 그 통렬함에 수십 번이나 수긍이 가고 해당 문장을 몇 번이나 곱씹어 봤는지 모른다. 아주 제대로 까발리고 파헤치며 한국 언론의 치부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 소위 사탕발림으로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들은 정작 대중을 위한 진실의 보도가 아닌 절대 객관적이지 못한 소위 '이익의 물타기'로 대변되며 오로지 이익 추구만을 위해서 뉴스를 확대 재생산해온 '싸구려 뉴스'로 전락해버린 한국 언론들의 작태를 제대로 꼬집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의 특이할 점은 이런 날선 비판과 비평에 대해서 무차별적으로 까발리기 보다는 그 근거로서 가치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과 대비시켜 조목조목 한국 언론과 빗대어 반박하며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뭐.. 여러 말이 필요없다. 자신의 성향이 비판적 견지가 다분하다면 또 지금껏 우리 시대 언론들이 해온 작태를 생각해 본다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요.. 다시 그들의 과오를 확인하는 복습차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넘겨버릴 계제가 아니다. 우리의 언론이 특히 이 정부들어 화두가 되버린 '공정한 사회' 처럼 왜 공정(公正)하지 못하고 권력과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수기로서 대중을 호도하고 왜곡보도를 일삼는지 자세하고 가열하게 그 '한국 언론의 몰상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은 각개로 들어가기 전 각 장의 제목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으니..
먼저, 각 장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한국 언론, 너는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가?"

1장에서 반어적 제목으로 "우리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만 한다"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다. 언어의 물타기, 언론의 상징조작의 사례로 대표적인 노무현 정부시절 보수 신문들이 만들어낸 '세금폭탄'이라는 용어를 꼬집는다. 그러면서 한국 언론이 말하는 '국익'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으로 대변돼 왔음을 견지한다. 2장 워렌 버핏의 상식 첫번째로 "나는 내가 투자한 기업의 다음 분기 실적도 알 수 없다" 는 그의 투자철학과 상속세 인하에 반대하는 50조원의 재산가 버핏의 삶을 고찰한다. 3장 "기자는 언론사가 고용한 월급쟁이다"를 통해서 언론사에 고용된 기자들의 작태와 '기계적 중립'은 거짓과 위선에 대한 ‘물타기'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소위 월급쟁이 기자들의 '받아쓰기 저널리즘'(stenographic journalism논쟁을 그대로 뉴스화할 뿐, 각 논쟁에 대한 사실 검증이나 비판을 게을리 하는 언론의 관행을 비판하면서 나온 말)을 맹비난하며 개탄해 마지 않는다.

4장에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우물만 판 버핏의 생애 조망과 검소와 절제를 실천하는 금융계의 아웃사이더 버핏의 이야기를 한다. 5장은 이런 버핏의 주식투자와 빗대어 한국 언론이 전하는 주식과 관련된 기사들 특히 '급등, 급락, 폭등, 폭락'은 사실이 아닌 감정의 표현임에도 버젓이 쓰며 대중들을 현혹시킨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피상적인 추정과 편견이 사실로 둔갑하는 그 현실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6장에서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는 현인 버핏의 주식 철학중에 '숫자는 가정과 분석, 추정의 뭉텅이다'와 '그래도 시장은 대체로 옳다'는 어찌보면 상식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7장에서는 한국 언론들은 진실 보도보다 당장 돈 되는 보도가 우선이다는 원칙하에 '뉴스는 비즈니스다'로 귀결되며 상업뉴스로 전락한 그 이면을 고발한다. 그리고 대중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뉴스를 꼬집는다.

   
 

왜곡된 언어를 통해 대중의 의식을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 가두려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언론의 의도는 애당초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언론과 전문가는 대중이 사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하기보다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객관적인 것처럼 보일까' 하는데 더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부당한 것인지 명백히 구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그 부당함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결과적으로 그 부당함을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재임 기간 동안 택시 운전기사들의 입을 빌려 흉흉한 경제 민심을 전파해온 신문들은 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요즈음에는 그런 기사를 싣지 않는 것일까요? 택시 운전기사들의 살림살이가 급격히 나아져서? 

 
   

8장 버핏의 주식철학중 '거품의 이면을 보고 싸구려 일용품을 멀리하다'는 견지하에 버블의 이면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어떤 기업에 투자할 것인지 주로 가치주에 대해서 분석한다. 9장에서는 권력과 기업을 대변하는 언론으로 전락한 그들의 모습 중 왜곡된 통념을 전파해 기득권 세력을 비호하는 한국 언론을 제대로 꼬집는다. 그러면서 한국 언론은 '왜 백인 남성 교수에게 약할까?'라는 다소 재밌는 분석을 내놓는다. 물론 다 근거있는 학설에 의한 주장들이다. 그리고 그저 출입만 하는 출입기자들이 정부의 홍보도우미로 전락한 행태를 꼬집는다. 10장에서 "언론인이 똑똑할수록 사회가 더 윤택해진다"는 소재로 화두를 던지며 버핏은 '훌륭한 투자는 평생 두세 번이면 족하다'는 주장과 대중을 '호구'로 보지 않는 언론이 필요하다는 역설과 함께 대중들이 '호구'로 전락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9시의 독재자'

11장 '9시의 독재자'로 전락해 버린 9시 뉴스들 예전 이승만 정권 시절 '대한 늬우스'와 전두환 시절 '땡전뉴스' 그리고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하는 미디어의 효과에 대해서 말하며 중세시대 '런던이 물에 잠긴다는?' 사례를 들어 재밌게 전달한다. 12장 '뉴스와 주가는 결국에 어떤 관계일까?'를 던지며 오히려 주식시장의 호객꾼으로 전락한 뉴스가 전하는 주식 소식들의 이면을 뒤집는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대중은 뉴스로 '툰드라의 들쥐'로 된다는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13장에서는 결국 '언론의 자유는 대중의 자유다'로 귀결시키며 누가 뉴스를 이용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이런 '사려 깊지 못한 언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웨렌 버핏과 도표로 비교해 까발린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대중이 나서야 하며 그것은 소비자가 되찾아야 할 언론의 자유라 역설한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분노와 긍정으로 다시 시작하며, KBS 새 노조 벗들에게' 전하는 저자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메시지가 있다. 

이렇게 이 책은 각 장의 제목과 내용만 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 우리 시대 한국 언론들을 칭찬한 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그 비판의 강도가 세다. 그래서 어찌보면 소위 "좋은게 좋은거지.."로 살아오신 50-60대 어르신들에게 다소 아니, 심히 불편할 책일 수도 있다. "언론들이 다 그런거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시대 젊은 대중들은 그렇게만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여기 비판의 강도가 다소 센 것은 그만큼 한국 언론이 얼마나 '이익의 물타기'로 대중을 자극적으로 선동하며 지내왔는지 그 가열한 언론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자기 반성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말이다.

   
 

대통령의 말이면 무조건 '천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라고 모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은 '왜'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따져야 합니다. 

상업주의 언론에서 기사는 오로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뉴스 비지니스'라는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뉴스가 사업이 된 마당에 언론이 진실이 추구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언어도단입니다.

한국 언론은 '대통령, 검찰, 감사원, 법원, 교수, 백인 남성 지식인, 해외 유명 언론'등의 권위를 이용해 대중을 협박하려 듭니다. 때로는 그들의 말을 슬쩍 바꿔치기하거나 짜집기해서 스스로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 들기도 합니다.

 
   

'워렌 버핏의 상식 vs 한국 언론의 몰상식'

또한 그것은 가치투자의 대가라고 불리는 '워렌 버핏'을 대비시켜 버핏이 견지해온 삶과 주식에 대한 철학등 한국언론과 비교하며 객관적으로 와닿게 설명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부제목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처럼 '워렌 버핏의 상식 vs 한국 언론의 몰상식'으로 대비시켜 설명한 것이다. 물론 승자는 워렌 버핏이다. 이 부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저자 말대로 한국언론은 썩을때로 썩어 몰상식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몰상식을 현장에서 계속 봐온 저자로서는 그래서 심히 고민되고 자신의 직장을 버릴 각오로 이 책을 썼다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작금의 한국언론의 행태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특히 KBS는 공영방송의 위상을 저버린 채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영방송'으로 전락해버린 그 작태에 저자는 심히 분노와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른다고 했다. 특히나 '탐사보도상'까지 탄 자신이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 행동'에 소속해 언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이력때문에 보복인사로 좌천된 것만 보더라도.. 그는 작금의 KBS를 공정한 언론이라고 말할 수 없어 심히 부끄럽다고 마지막까지 언급했다. 결국, 언론의 진정한 사명이자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자유 언론 실천'이 요원한 가운데.. 그래도 'KBS는 공익적인 자유 언론'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배부른 노예'보다는 진정한 직업정신으로 이 시대의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서 저자는 이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빼앗긴 언론의 자유를 대중과 함께 쟁취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튼 아직도 한국 언론이 공정하다고 믿는 분들께 이제는 환상을 깨고 지금까지 언론이 얼마나 몰상식한지 주지하길 바라며.. 다시 한번 이 책의 일독 아니, 정독(正讀)을 권하는 바다. 또한 우리 대중들도 이제는 '무엇이 X이고 된장인지' 아는 비판적 견지로 언론을 공정하게 수용하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저자의 구구절절 제대로 된 공정(公正)한 말들이 꽤 많다. 그중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 대중들에게 던진 화두 위주로 몇 개를 소개하며, 이 책의 리뷰를 마칩니다. 

   
 

나치 정권의 괴벨스에게 이용당했던 독일 대중, 독재정권 아래에서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김정일 정권 아래의 북한 주민들까지, 모두 흔들리고 조정당하는 수동적인 대중이었습니다. 2010년 우리는 그런 대중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자유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비판적인 세상 보기를 하지 못하는 대중은 언론에 의해 들쥐 떼처럼 몰려다닐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그래왔습니다.

한국의 대형 언론사들 역시 소비자인 대중의 저항 없이 그들의 이익과 권리를 결코 스스로 양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애당초 우리 것이었는데도 돌려주지 않는다면, 가서 되찾아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는 본디 쟁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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