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이 한 권의 장편소설이 화두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조정래'님의 신작 소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굴곡지게 씨날처럼 풀어쓴 대하 장편소설 시리즈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읽은 사람이든 못 읽은 사람이든 그의 작품은 그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다른 작품들이 있었지만 책으로 이렇게 출간된 것은 3년 만에 나왔다. 이름하여 <허수아비춤>, 이미 여러 번의 홍보가 되었던 책이라,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한 번씩 읽어야 할 그 어떤 교과서로 다가왔다. 마치 올 봄에 나왔던 황석영의 장편소설 <강남몽>처럼 말이다. 어찌보면 두 개의 작품은 다르면서도 많이 닮았다. '강남몽'이 대한민국 자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강남의 형성사를 다루면서 인간 군상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성찰했다면, 여기 '허수아비춤'은 역사가 아닌 현재 우리 시대 자본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조정래 작가의 신작 <허수아비춤>, 이 땅의 대기업을 소설로 말하다.

그것도 자본력으로 이 땅에 군림하고 있는 대기업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이게 아주 제대로다. 아니, 제대로가 아닌 우리의 현주소라 봐야할 것이다. 대기업의 비리와 관련된 스카우트, 편법, 탈세, 로비, 비자금, 차명계좌, 상납, 홍콩 쇼핑 관광까지 소위 전방위적으로 그들의 작태를 드라마처럼 마음껏 풀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가열한 느낌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의 모습을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기에 새삼스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확인 사살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디테일하게 들어가서 그들의 치부를 보니 일종의 쾌감까지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과연 '허수아비 춤'이 풀어낸 그 이야기 속에는 어떤 춤사위가 벌어진 것일까.. 그 이야기 속으로 잠깐 빠져보자.

이야기는 시작은 어느 대기업의 실행총무로 근무중인 '강기준'이 다른 대기업의 한 사람 '박재우'를 스카우트 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은 선후배 사이다. 일광그룹에 다니는 강기준이 태광그룹의 핵심 브레인 박재우를 스카우트 하는 것이다. 물론 남회장의 하달이 있었고, 윤성훈 총본부장이 총책임을 맡으며 그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 결국 박재우는 일광으로 넘어와 기획총장으로 앉는다. 그러면서 이들 셋은 남회장의 특별지시로 친위조직인 '문화개척센터'라는 조직을 만들어 알 듯 모를 듯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펼친다. 왜냐? 재계 1위인 태봉그룹을 넘어서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인데, 이들의 활약상이 중반까지 치닫는다. 공무원 조직의 주사부터 서기관과 국장급은 물론 검찰 조직의 검사까지 끌어들여 위용을 갖춘다.

'대기업의 로비는 이렇게 하는 거다'를 제대로 보여주다.

이에 남회장은 세상을 다 가진 양 마냥 좋아하는데, 특히 이 남회장의 성정은 독불장군식 안하무인에 불도저식 경영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시선이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코드를 무지 싫어하며 특히나 '노조'에 대해서 전형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어찌됐든 이 '문화개척센터'를 위시로 그들은 영입하려는 사람의 가족끼리 감동시켜야 한다는 '무한감동로비'의 기치를 내걸고 계속 활약한다. 설과 추석 때를 대비해서 전방위적 로비를 위해서 그들만의 비밀금고를 만들고 현찰을 쌓아 놓는 등 그 규모만도 1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에 세 사람을 중심으로 로비는 가히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남회장은 이들에게 스톡옵션으로 50억, 40억, 30억을 차등 지급하며 홍콩에 공무겸 쇼핑 관광까지 보내준다.

한편 이야기는 중반 이후 검찰 조직에 대해서도 메스를 가하는데, 이른바 '상명하복 검사동일체'로 운영된다는 이 검찰 조직에서 제대로 적응 못하고, 고지식하게 버틴 '전인욱' 검사가 좌천돼 검찰 옷을 벗고 급기야 변호사로 전환해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시민단체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이 단체는 일광그룹과 대일전을 벌인다. 그전에 어느 대학의 한 교수가 일광그룹의 비리와 관련된 글을 신문에 게재하면서 그 파문이 확산돼, 급기야 그 교수는 직장을 잃게 돼 시민단체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서 일광그룹의 불법적 재산권 상속과 경영권 승계 문제를 가지고 그 시민단체는 일광을 고발하며 부딪히게 되는데, 이에 남회장은 앙앙불락되고, 세 사람이 진화에 나선다. 이때 시민단체는 전 변호사가 공동대표로 추대돼 허 교수와 함께 그들의 법정 공방에 맞서지만, 쉽지가 않다.

이미 태봉그룹이 거대한 비자금 조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장이 풀려나듯, 여기 남회장도 유죄는 커녕 다른 하부 조직만 솜방망이 처벌로 넘어간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 셋은 보란듯이 시민단체의 무모함을 꼬집으며 자화자찬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정치민주화'는 이뤄냈을지 몰라도 '경제민주화'는 요원한 것이다.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는 대중들의 근저에 깔린 이기주의와 기회주의 때문이라도 우리 기업들은 망할 수도 없거니와 경제의 속성상 민주화는 될 수가 없다. 그래서 대중들은 '바보스러울 만큼 착하게 자발적 복종을 한다'며 자신들의 건재함을 위해 건배를 든다. 일견 와 닿는 말이기에 그들의 건배에 속이 쓰릴 뿐이다. 그러면서 이들의 이런 로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예견하며, 오늘도 내일도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이렇게 이 소설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바로 '대기업'이 있다. 일견 어느 기사에서는 여기 나오는 일광그룹과 태봉그룹을 H그룹, S그룹이라 보기도 한다는데, 뭐.. 그게 중요한 것보다 어느 기업이 됐든 간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들 비리와 관련된 작태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정직하게 돈 벌어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은 생색내기 일뿐, 각종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치고, 이름도 모를 새로운 조직을 친위대처럼 조직해서 로비자금을 융단 폭격하듯 마구 쏟아내며 이 사회를 부조리하게 만들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런 그림은 조정래식의 문학적 총체로 어우러져 풍자의 속성을 그대로 고발하듯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움직이는 그 부조리한 야만의 존재를 명징하게 말이다.

대기업 비리를 총체적으로 담아낸 <허수아비춤>, '경제민주화'는 요원한가?


그리고, 또한 이 소설의 재미는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작가 특유의 새로운 우리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불콰하다, 깔끄장하다, 요로요로하다, 기욋돈, 꼬약꼬약, 괴어오르다, 고소롬하다, 잦바듬하다, 발싸심, 조단조단, 어스름, 때꾼하다 등.. 수없이 많다. 강호가 읽는 내내 수첩에 적은 것 중에 고른 게 이 정도다. 그만큼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시키는 단어들인데, 이외에도 문장들이 와 닿는 표현들이 많다.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그를 헐 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사기)", "선거는 지배 계급에게 주기적으로 지배와 억압에 대한 정당성을 선사해 제는 제도일 뿐이다.(프루동)", "정치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무 도덕적인 것이다. (마키아벨리)",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고루 나누어 먹고도 남는다. 그러나 부자들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마하트마 간디)" 등 구구절절 와 닿는 문구들도 많다.

그만큼 조정래의 소설 '허수아비 춤'은 단어와 문장을 오가며 색다른 재미를 주는데, 특히 강조하는 이야기로 수컷들의 본능에 대해서 몇 번을 언급하며 소위 '씨뿌리기'에 대한 단상을 말한다. 정말 이 또한 번외편의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 이렇게 이 소설은 이런 재미는 물론, 우리의 대기업들이 지금 자행하고 있는 온갖 비리 그중에서도 '로비'와 관련된 것에 중점을 맞춰 드라마를 보듯 써내려갔다. 그래서 묵직함 울림보다는 가벼운 터치가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만 볼 수 없는 본질적인 풍자가 담겨져 우리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는 읽은 이들에게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대기업의 행태에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마지막 단원의 11장 '착해라, 자발적 복종' 이야말로 대중들의 심리를 꿰뚫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여기 제목 '허수아비춤'이 말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도 곱씹어 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 생각은 안 떠오르지만, 이 제목은 바로 허수아비처럼 어떤 실존과 허상의 양면으로 치닫는 우리네 현주소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외면화된 대중들의 이름 모를 춤사위, 또 그런 춤사위를 지켜보며 자기들 나름대로 춤을 추는 대기업들, 그러니 박자가 같이 맞아 어울려야 할 그 춤사위는 어긋나며 아직도 '경제민주화'는 요원하다고 역설한 것은 아닐까.. 그래 아직 갈 길은 멀다.

이 한 권의 소설로 대기업의 비리를 제대로 해부했다고 또 경제민주화의 대안을 제시했다고 볼 순 없지만,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써내려간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분명 소설같지 않다는 거, 그것만 재확인을 했다면 순간 잊고 있었던 문학으로서 소설의 총체성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직도 허수아비 춤을 추고 있는 것을 스스로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과연 어느 장단에 춤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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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수호지 1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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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08명 양산박의 좌충우돌 영웅담을 담고 있는 이 수호지는 조금은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로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 4대기서(삼국지, 서유기, 금병매, 수호지) 중 하나요,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같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중국고전 중에 하나다. 물론 강호는 이중 수호지를 제일로 좋아하고 또 많이 읽어왔다고 밝힌바 있는데, 그것은 이 속에서 그 어떤 강호의 세계를 맛보며 쏠라닥질같은 인간사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전략 만화 삼국지'로 유명한 '요코야마 미쯔데루'의 만화 수호지 6권짜리를 켈렉하며 짬이 나는대로 틈틈히 만화 수호지를 읽고 있다. 이에 각 권마다 내용 정리는 물론, 매 책마다 뒷편에 수호지에 대한 역사, 인물, 문화 등 읽을거리가 있어 그것도 같이 정리해 보는 일환으로 삼는다. 먼저 1권의 간단한 내용은 이렇다. 어느 정도 '수호지'를 안다는 가정하에 주요 인물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며 이야기가 전개됐는지 위주로 쓴다.



때는 11세기 초 송나라시대, 역병이 창궐하여 온 나라가 힘들어할 때 인종황제는 사자를 시켜 용호산에 있는 선인에게 전염병을 물리칠 기도를 부탁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이 정신나간 관리가 용호산 기슭의 절에 찾아와 호기심으로 악마가 갇혀 있다는 '복마전'을 열고 만다. 그러면서 그 안에 갇힌 악마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수호지는 시작된다. 바로 악마는 108명의 영웅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인종->영종->신종->철종->휘종 황제까지 왔다. 바로 본격적인 수호지의 바탕이 되는 북송의 휘종황제 시절이다. 그 휘종황제의 총애를 받은 놈은 축국 한번 잘해서 출세한 그 유명한 '고구', 전수부 태위로써 군부의 최고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면서 멀쩡히 잘 지내던 금군의 사범 '왕진"이 쫓겨나고, 그 왕진이 어머니와 도망치는 과정에서 아홉마리 용문신을 한 '구문룡 사진'을 만나 무술을 가르쳐주고, 홀연히 떠난다.

그러면서 구문룡 사진은 산적 패거리였던 주무 진달 양춘과 한바탕 싸우는 과정에서 간담상조하고, 관군이 몰아닥치자 일단 해치우고 홀로 길을 떠난다. 그러면서 수호지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인 '노지심'이 나온다. 노지심은 원래 법명이고, 군인 헌병을 뜻하는 제할로 이름은 '노달'이었다. 그런 그가 사진과 만나 친해지고, 어렵게 길거리 가무를 하던 부녀를 도와주게 되다 그들을 괴롭힌 사람을 죽이면서 노달도 도피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된 노지심, 채소밭이나 가꾸라는 일상의 무료함에 '표자두 임충'을 만나며 친해진 두 사람, 그런데 임충도 왕진과 마찬가지로 고구 아니 고구의 아들에게 시달린다. 급기야 그들이 만든 함정에 빠지면서 옥고를 치르게 된 임충, 저기 어디 먼 곳으로 길을 떠나면서 죽을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 노지심이 도와주며 위기를 벗어난다.

'소선풍 시진'의 따뜻한 배려로 안도하게 된 임충은 그의 소개로 양산박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의 수령이 사람 하나 죽이면 인정한다는 소리에 차마 일반인은 못 죽이고 칼찬 무사 '청면수 양지'를 만나 용호상박의 대결을 갖고 둘은 간담상조한다. 양산박에 같이 머물기를 바랬지만, 양지는 고구 밑에서 친위대 장교였던 몸, 더군다나 풍랑으로 황제의 일처리를 못해 쫓겨날 판이지만 우선 보고를 하러 갔다가 결국 쫓겨난다. 소위 무사 집안의 체면이 말이 아닌 양지는 길거리에서 칼을 파는 행상을 하다가 급기야 사람을 죽이고 다시 길을 떠나는데... 바로 여기까지가 요코야마 미쯔데루 수호지 1편의 이야기다. 다음 2편도 기대 바라며, 그렇다면 1편 부록의 내용을 또한 정리해 본다.

1. 수호지란 무엇이며 무슨 이야기인가?

먼저 수호지는 14세기 중반, 원말명초 무렵에 집대성된 장편소설로 삼국지연의, 서유기, 금병매와 함께 중국 4대기서로 꼽는 작품으로 작가는 '시내암'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시내암의 원작을 삼국지연의 나관중이 손질한 것이라는 말도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시내암은 강소성 사람으로, 원말의 군웅 중 한 명인 장사성의 수하였던 적이 있어 <수호지>에는 그때의 경험이 활용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장사성'이라는 인물은 원말 강소성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일으켜 원 왕조에 저항, 원나라 멸망 후에는 명 태조 주원장과 싸워 패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삼국지연의'를 집대성한 나관중은 원곡(원대에 형성된 가극)의 작가로서 삼국지연의가 칠실삼허(七實三虛), 즉 70%의 사실과 30%의 허구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정도로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활용한 역사소설인데  반하여,

<수호지>는 북송말(11세기 초)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작중에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허구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히 이 이야기는 송나라 말기 휘종 황제(재위 1100~1125) 시절에 호숫가의 요새란 뜻으로 수호채라 불리던 산동 양산박에 모인 108명 호걸들의 이야기로 그 108명 호걸들의 수령은 바로 그 유명한 '급시우 송강(宋江)'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108명의 등장인물 중 이 송강이라는 인물의 이름만이 역사서에 남아 있으니, 북송·남송 양대의 정사인 『송사宋史』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한다.



2. 수호지 인물 중 수령 '송강'만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휘종본기 : 선화(宣和) 3년(1121) 2월, 그때까지 회하 남쪽에서 활동하고 있던 송강 등 도적(기아농민을 주축으로 한 봉기집단)들이 회하 북쪽으로 진출하였기에 장군을 파견하여 토벌하게 하였다. 송강 등이 거듭 북으로는 도성(하남성 개봉시)의 동쪽에, 남으로는 장강 북안에까지 출몰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는 동지나해 연해지방으로 나와 초주(강소성 회안시)를 넘어 해주(강소성 연운항시)에 침입하였으므로 해주 지사 장숙야에게 명하여 투항을 권고하였다.

후몽전 : 송강이 도성의 동쪽에 진출했을 때 후몽(侯蒙)은 상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방책을 올렸다. "송강은 36인 간부집단을 거느리고 산동 서부, 강소 북부 일대를 어지럽히는데 관군 수만을 동원해도 막아내기 힘든 형세입니다. 송강은 뛰어난 지휘관인 것으로 보이니 그에게 투항을 권고하여 그 죄를 용서한 뒤, 강남의 청계(절강성 순안시)을 점거하고 있는 방랍(方臘)을 토벌하게 하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황제께서는 "후몽은 일개 지방관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잊지 않는 충신이로다" 라고 말씀하시고 동평부 지사로 임명하였으나 부임 도중에 병사하였다.

장숙야전 : 송강은 하북에서 봉기하여 10군을 어지럽혔다. 각지의 관군은 싸우려 하지 않고 도망했다. 장숙야가 적군이 접근한다는 말을 듣고 탐색대를 보내 상황을 살펴보았더니 적군은 해안으로 직행하여 정박 중이던 상선 10여 척을 탈취해 각지에서 빼앗아온 물품을 실으려 하였다. 장숙야가 결사대를 모집하였더니 천여 명이나 모였으므로 새로이 성 밖에 복병을 배치하고 소수의 부대를 해안으로 보내 도적들을 유인한 뒤 적군이 배에서 떨어진 틈을 타 배에 불을 붙였다. 배를 읽은 적군이 허둥거리고 있을 때 복병이 포위하고 부장을 사로잡자 송강도 어쩔 수 없이 항복하였다.

이렇게 위의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북송말에 송강 이하 36인의 동료가 각각 수하를 거느리고 산동에서 강소에 걸치는 광대한 지역을 전전하면서 관군이 싸우지 않고 도망친 지방 도시들을 습격해 약탈하였지만 산동에서 장숙야의 계책에 빠져 항복했다는 것, 그리고 그 전에 후몽이 송강에게 투항을 권고하여 관군에 편입시켜 다른 지방의 반란군 토벌에 동원하자는 상주를 올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방랍의 난은 선화 2년 (1120) 100만 명 농민들이 악정에 항거하고자 결기하여 강남의 6주 52현을 점거했던, 진압까지 2년가량이 걸린 대사건으로서 송강은 같은 시기에 산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북송은 이로부터 머지않은 1127년, 남하해온 여진족 국가 금(金)에 의해 수도인 개봉을 점령당하고, 휘종, 흠종 부자가 북쪽으로 연행되면서 일단 멸망한다. 바로 이 사건이 그 유명한 '정강의 변'이라 하며, 이때 지방에 있어 난을 피한 흠종의 아우 고종이 절강성 항주에서 재건한 송나라를 남송이라고 한다.



3. 송나라 때 다채로운 대중예술 속에서 꽃핀 '수호지'

역사적으로 300년 가량 이어진 송대는 북송(960~1127), 남송(1127~1279)을 거치는 내내 북방 이민족의 위협에 시달리는 시대였으나,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시민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대중예술이 눈부신 발전을 이룬 시대이기도 하다. 서커스, 곡예 등 다채로운 대중예술 가운데 이 시대에 하나의 분야로서 확고한 지위를 다졌던 것이 바로 노래와 이야기로 이루어진 설창(說唱)이다. 즉 우리가 자주 듣는 '설화(說話)'라는 것인데,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예능인은 설화인 '강석사'라 불렸다. 북송의 수도 개봉(당시의 변경)과 남송의 수도 항주(당시의 임안)에는 '와자(瓦子)'라 불리는 오락가가 몇 군데씩 형성되어 있었고, 그곳에 크고 작은 극장이 늘어서 있어 당시의 항주에는 외자가 17곳이나 있었는데 그 와자에서 강석된 설화는 크게 나누어 4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1. 소설(小說, 한 차례 이야기로 완결되는 단편 강석)
2. 담경(談經, 불서를 풀이한 강석)
3. 강사서(講史書, 여러 차례에 걸쳐 이어지는 역사 강석, <삼국지>, <오대사五代史> 등)
4. 합생(合生, 내용은 불명)

'소설'의 제목 중에서는 화화상(노지심), 행자(무송), 청면수(양지), 석두 손립 등 나중에 <수호지>에서 활약하게 되는 인물들의 이름(별명)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송의 유민 공성여의 <송강삼십육인찬>(원나라 초기, 주밀의 <계신잡식 속집 상권>에서 발췌> 서문에 실려 있는, 송강 일당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강석되지만 내용은 엉터리인 것이 많다. 하지만 당시 고여, 이숭 등 화가들이 그들의 모습을 그려 전하고 있으므로 학문상 무시할 수도 없다는 측면도 있다. 또한 남송 때 이미 36인 각자의 전기 같은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자 미상의 <대송선화유사>에는 '수호지'의 전신이라 말할 수 있는 '수호설화'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청면수 양지가 검을 팔러 갔다가 무뢰한을 죽이고, 조개와 오용이 독주를 사용한 책략으로 채 태사에게 헌상하는 재물을 빼앗았으며, 송강이 염파석을 죽이는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결국 양산박에 들어가 관군에 반항하였으나 장숙야의 중개로 조정에 귀순하여 무공대부로 임관되고, 방랍을 정벌한 공적으로 절도사가 되는 등 비록 세세한 차이는 있으나 <수호지>의 골자가 되는 설화의 원형을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송나라 때 이후 몽골족이 세운 원에서는 '원곡' 또는 '원잡극' 등 희곡이 유행했고, 후에 <수호지>로 집대성되는 이야기 대부분이 이 '원곡'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이들 수호극 중에는 특히 '흑선풍 이규'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많았는데 이는 당시 그의 인기가 비교적 높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문수가 지은 <흑선풍쌍헌공잡극>에서 양산박의 동지를 '삽십육 대협 칠십이 소협'으로 세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송말에 송강을 비롯해 모두 36명이던 무리가 이 시대 설화의 세계에 와서야 36명의 천강성(天剛星, 대두목)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 소두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4. 수호지 원본 중 본연은 백회본, 수호지를 다시 꺼내든다.

시내암 원작자와 나관중이 편찬자로 집대성한 <수호지>의 원본은 크게 나누어 백회본(전 백 장)과 백이십회본, 그리고 청(淸)의 감성탄이 정리한 칠십회본(제오재자서본, 김성탄본)의 세 가지가 있다. 일단 전반의 1부뿐인 김성탄의 칠십회본은 별도로 치고, <수호지>는 송강 등 108인이 갖가지 경위로 양산박 충의당에 결집할 때까지의 개인 전기 부분인 제1부, 하늘을 대신해서 도를 행하는 '체천행도'의 군사를 일으킨 양산박 일당이 관군을 격파하고 조정의 귀순을 받아들여 귀순할 때까지의 제2부, 북방의 이민족 요나라의 침략군을 물리치는 제3부, 강남에서 독자 세력을 일으킨 방랍의 난을 평정하는 위업을 달성하지만 싸움 중에 많은 동료를 잃고 귀환한 후에 양산박을 두려워한 중신들의 간계에 빠져 파멸하게 되는 제4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수호지> 본연의 백회본이며 이 백회본 제1부와 제2부 사이에 양산박 일당이 전호, 왕경을 정벌하는 내용의 20회를 추가한 것이 <수호전전> 이나 <수호전서>로 불리는 백이십회본이다. 칠십회본은 청초의 문예평론가 김성탄이 <수호지>의 제1회를  '설자'(서장)라 하고 제70회(본래의 71회)에 108인이 양산박 충의당에 모여 '체천행도'의 군사를 일으키는 대목까지 적은 뒤, 그날 밤 부수령이 된 노준의가 108인 전원의 목이 잘리는 꿈을 꾼다는 구절을 덧붙여 완결시킨 것이다. 이렇게 수호지는 총 세가지 원본이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수호지의 내용은 바로 '백회본'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수호지의 성립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아직도 중국고전 중에서 수호지가 허무맹랑한 구성이 많아 얼토당토 않는 영웅들의 이야기로 치부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강호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듯 이 속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는 강호의 세계가 이중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여곡절 끝에 주류가 된 그들이지만 결국 주류로 남지 못했던 그들, 민중의 고달픈 희노애락을 대변하는 듯 펼쳐내는 그들의 재미난 이야기 속에는 바로 거창하지 않은 우리네 인생사가 들어있다. 그러기에 이렇게 수백 년이 지나도 계속 회자되고 읽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고전이 주는 가장 원초적인 맛이자 재미일 것이다. 그래서 추워지는 이때 수호지 속으로 빠져보길 권해보며.. 강호의 수호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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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사건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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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젊은 작가이자 선봉파의 기수로 잘 알려진 '위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 등의 장편소설을 통해서 그는 국내 팬들을 다수 확보한 나름의 인기 작가다. 그래서 강호도 이미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서 그 쏠라닥질 같은 인생사를 제대로 보았다. 그 속에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등 격변기가 관통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가 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위트 가득히 풍자를 한 아름 담아 펼쳐낸 이야기였다. 그래서 '위화'하면 이제는 낯설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그가 쓴 그 두 권의 소설에 아직도 매료되긴 하는데, 물론 올해가 가기 전 <형제> 3권에도 도전할 참이다. 그전에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위화의 신간이 나왔다 해서 몇 주전 사 이번에 읽게 된 소설이 있다. 바로 <4월 3일 사건>이다. 

'카프카'적 느낌이 다분한 '위화'의 중편집, <4월 3일 사건>

얼추 제목만 보면 우리의 참혹했던 '제주 4.3사건'을 떠올리는 제목의 이 작품은 위화의 중편소설 4개를 모아놓은 책이다. 물론 마지막 이야기는 짧아서 단편으로 봐야겠지만, 그런데 이야기를 쓴 시점으로 따지면 신간은 아니다. 모두 위화의 초창기 시절 80년대 후반에 습작 비스름하게 써온 작품들이고, 그 중에서 옥석을 가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신간으로 펴낸 것이다. 또 다른 단편집 <무더운 여름>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이 중 <4월 3일 사건>을 먼저 읽게 됐는데, 그런데 이 책의 느낌이 기존의 <인생>이나 <허삼관 매혈기>와는 완전히 180도 다른 분위기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어 깜짝 놀라기도 한데, 그것은 어떤 대단한 소설을 발견했다는 의미보다는 그 문체와 내용에 있어 기존과 확연히 다른 점에서 느끼는 원초적인 느낌이다. 마치 '그로테스크'하기로 유명한 '카프카'적 느낌으로 다가온 이 <4월 3일 사건>.. 네 편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첫 번째 이야기는 표제작 <4월 3일 사건>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어떤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긴 한데, 그런데 이 사건이 정확히 나오질 않는다. 더군다나 화자인 주인공의 이름도 없이 그냥 '그'로만 나온다. 바로 십대 소년 '그'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고,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이 와 닿지 않게 꽤 이상하다. 때로는 몽환적인 풍경을 그리며 비현실적이면서 추상적인 묘사로 일관해 읽는 이로 하여금 머리를 싸매게 한다. 즉, 이야기 하려는 대상 자체도 명확하지 않은 채 그 소년의 내면의 심리적 감정을 묘사하며 그 소년이 위험에 쌓인 그 어떤 음모를 밝히려 한다. 다분히 '그' 중심으로 써내려 갔지만 기이하고 모호할 뿐, 과연 그 음모는 실제로 존재한 것일까?

두 번째 이야기는 <여름 태풍>이다. 이야기는 제목처럼 그 어떤 자연재해를 다룬 이야기다. 최근에 개봉한 중국영화 <대지진>에서 나왔던 '당산 대지진'이 여기서 언급한다. 여기서 화자는 '바이수'라는 소년이다. 그 소년이 이 당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관측을 탐지했다는 등의 에피소드를 전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자연재해 앞에 무너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나온다. 학교 선생님부터 해서 그와 관련된 사람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이들의 관계를 알 듯하면서도 도통 알 수가 없는 구조를 띈다. 시간적 흐름이 없이 대사는 허공을 맴돌며 표현의 의도 또한 모호하다. 더군다나 지진과 태풍이라는 자연재해 앞에 선생의 아내와 소년의 관계도 모호하고 그 어떤 의미를 알 수 없는 상징과 비유로 가득해 모호한 정서적 울림만 주려는 느낌이다. 과연 잘 전달이 된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어느 지주의 죽음>이다. 그나마 앞선 두 개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확실하고 명확하게 들어오는 이야기 구조를 띄고 있다. 제목처럼 배경은 중일전쟁 시기 중국 시골의 어느 지주 집안이 있다. 그 집안의 아들이 일본군의 길라잡이로 나서면서 아비는 그 아들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집사 '쑨시'가 직접 찾기 위해서 그들을 쫓는다. 그러면서 일본군이 행군하는 동선을 좇으며 그들의 만행을 이야기하고, 길라잡이가 된 아들은 그들을 엉뚱한 곳으로 이끎으로써 죽음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먼 이방에 온 군인들의 처연한 마음을 전달하며, 아들의 심정과 아들을 잃은 아비의 심정을 대비시켜 그리고 있다. 물론 제목처럼 이 지주 가문은 마지막에 죽는다. 특히 아비는 너른 벌판의 똥통 옆에서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조용히 숨을 거두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마치 <인생>에서 누구처럼 말이다. 아무튼, 앞선 두 개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서사 구조가 명확해 이야기 전달이 잘 된 작품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조상>이다. '어느 지주의 죽음'을 통해서 받은 이야기감이 다시 앞의 '4월 3일 사건'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 이야기도 도통 모호할 뿐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어떤 우리네 할아버지 같은 '조상'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 자연을 담아낸 그 어떤 숲에 대한 원시적 존재와 동경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그러면서 그 원시적 존재에 대한 애틋함과 두려움을 한 아이의 시선으로 묘사한 이야기인데, 여기서 조상은 그 숲에서 알 수 없는 '괴수'로 어른들의 눈에 비춰지고, 편견에서 자유로운 아이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대비감을 준다. 더군다나 그 괴수가 나타났을 때 어른들은 공포에 휩싸여 공격하고 잡은 괴수를 조각을 내는 등 잔혹함을 보인다. 과연, 그 소년이 보았던 숲속에는 그런 괴수(조상)가 살고 있었을까?



'위화'의 색다른 작가적 풍모를 볼 수 있는 중편집, <4월 3일 사건>

이렇게 본 네 편의 이야기들을 살펴봤는데, 물론 마지막은 단편의 느낌이지만 아무튼 어느 것 하나 쉽게 와 닿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다만 세 번째 이야기 <어느 지주의 죽음>을 빼놓고선 나머지 세개는 참 그로테스크한 기이함과 모오함의 이중적 구조를 띄고 있다. 바로 소위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전위적 작품들이라 볼 수 있는데, 보편적 서사가 아닌 전통 서사를 구사하며 이야기 전개의 알레고리를 뒤집는 묘수까지, 이번 위화의 중편집은 다분히 그 색과 맛이 기존에 잘 알려진 <인생>이나 <허삼관 매혈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접하고 읽는 이들에게는 꽤 낯설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작법 자체가 '카프카'의 영향을 받은 느낌으로 다가오며, 위화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 내면의 깔려있는 알 수 없는 그 어떤 공포와 억압, 그리고 그런 인간을 둘러싼 폭력과 죽음을 통해서 삶의 근원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지레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기존 인기작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 등에서 느꼈던 '위화' 스타일의 연장선에서 택했던 이 소설 <4월 3일 사건>은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고차원적인 그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읽는 내내 알 듯 모를 듯 모호하게 머리를 쥐어짜게 만드는 이렇게 다분히 실험적이면서 전위적인 소설들, 간만에 다시 '카프카'를 찾아 읽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그래도 '위화'에게 카프카적인 색다른 풍모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고 난 위안 거리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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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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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본의 유명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만들어내며 인기를 구가한 작품들이 있다. 바로 사회에 지친 강박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괴짜의사 '이라부' 시리즈로 총 3부작 소설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국내에 유명하게 소개되며 일본의 문학상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공중그네>가 바로 그것인데, 이 작품은 아직도 '오쿠다 히데오'를 대표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은 이 <공중그네>가 2부에 해당되고, 그 전에 1부가 <인 더 풀>이다. <인 더 풀> 또한 우리 주위에서 보는 평범한 사람들이 강박증 환자로 나와 이라부를 통한 치료기였다면, <공중그네>는 좀더 특정 분야 전문인을 환자로 설정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3부인 이번 <면장 선거>는 특정 분야에서 더 나아가 특수성을 더욱더 살리면서 사회에서 명망있는 실제 유명인을 소재로 소위 '공인'에 대한 풍자를 곁들인 작품이다. 표제작 '면장 선거'를 제외하고 나머지 3편의 이야기가 다 그러한데, 그럼 이들의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 본다.

세 편은 실제 유명인을 모델로 한 이야기, <면장 선거>

첫 번째 이야기 <구단주>는 일본에서 잘 나가는 78세의 고령의 노신사로 그는 전쟁시대를 대표하며 지금의 일본을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그런 인물이다. 실제 일본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사 대표이기도 하고, 일본 프로야구 인기구단 구단주이기도 한 이 노신사는 한마디로 제대로 된 사회 지도층 권력자다. 즉, 자신이 지금껏 해온 전력으로 이만큼 일본이 발전해 왔다는 옹고집의 아집이 강한 그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부터 권력의 종말을 의미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일종의 패닉 장애와 강박을 겪는다.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며 폐쇠된 공간을 싫어하는 등 그는 그렇게 인생의 종말에서 위기 의식을 느끼며 '이라부'를 찾아가 치료를 받는다. 이라부의 치료 방식이나 응대에 마뜩잖고 버릇 없는 놈이라 홀대했지만 점점 더 그의 치료에 익숙해져 가는데, 과연 이 구단주는 그 어떤 패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두 번째 이야기 <안퐁맨>은 일견 우리에 소개된 '호빵맨'을 떠오르게 하는 이름인데, 그렇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개릭터인 '안팡맨'을 연상시키는 여기 주인공의 별명으로 그의 성 '안포'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여기 30대의 젊은 주인공 '안포'는 한마디로 잘 나가는 IT업계의 총아로 견실한 기업가다. 아니, 견실하기 보다는 어떤 고생없이 쭉쭉 치고 나가며 성장해 온 소위 잘나가는 CEO 벤처 사업가다. 그러면서 안퐁맨은 그 어떤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가는 극단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해오며 청년성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즉 문득문득 기억 상실에 걸리는데, 바로 일본의 글자 '히라가나'를 순간 못 쓰는 낭패를 겪는다. 이에 이라부를 찾아가 상담하며 급기야 유치원까지 찾아가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며 치료를 하는데, 어떻게 그의 순간 기억 상실은 다시 돌아왔을까?

세 번째 이야기 <카리스마 직업>은 바로 연예계 이야기다. 젊은 배우는 아니지만 마흔을 넘기고도 변함없는 미모와 젊음을 자랑하는 여배우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런 미모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그녀는 항상 바쁘다. 즉, 남들한테 유명인으로써 잘 보이기 위해서 소위 뼈를 깍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견지하에, 오로지 자신의 미모를 유지하기 위한 미용과 다이어트 문제에 병적으로 매달리며 이성을 잃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말 눈물겨울 수가 없는데, 결국 심적 고통에 이라부를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이라부의 간호사인 '마유미'를 통해서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여기서 바로 그간 안 알려졌던 마유미의 전력이 나오는데, 그녀는 바로 펑키 락밴드의 기타를 치며 자신의 표현했던 시크한 여자였다. 그리고 그 마유미가 속한 락밴드 공연을 보러 간 여배우는 그곳에 그 어떤 해방감을 찾는다.

네 번째 이야기 <면장 선거> 이 책의 표제작이도 한 이야기로,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바로 선거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선거가 도심에서 펼치는 그런 선거가 아니라, 바로 작은 섬에서 펼쳐지는 선거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아주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어찌보면 더 공명정대할 그 작은 선거판이 그 섬의 내력이 이어오듯 양 진영으로 나뉜 채, 서로 흑색선전에다 돈 선거가 판을 친다. 이에 중간에 낀 도시에서 파견나온 24살의 젊지만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한 공무원의 눈을 통해 이들의 선거 이야기를 펼친다. 그리고 우리의 이라부는 여기에 두 달간 파견나온 의사로 나와 그 또한 선거판에 개입돼 돈을 먹는 등, 이라부식의 멋진 호연을 펼친다. 양 진영을 왔다갔다 하며 선거 지원성 찬조 연설을 하는 등 말이다. 이렇게 양 진영이 혼탁한 선거에 치쳐갈 때쯤, 이들은 서로에게 눈을 뜨고 그 섬의 전통놀이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면서 마지막에 작은 감동까지 선사하는 맛이 느껴지는 이야기로 맺는다.



이렇게 본 네 편의 이야기들을 간단히 살펴봤듯이 모두 사회성이 짙은 이야기들이다. 단순히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그 이야기에 담고 있는 메시지들이 묵직하다. 더군다나 앞에 세 이야기는 모두 일본의 실제 인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구단주>는 인기구단 구단주이자 요미우리 신문사 대표 '와타나베 쓰네오'를 모델로 삼으며, 이를 통해서 옹고집의 70대 후반 노신사의 권력의 정점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느낀 인생의 종말에 대한 회한과 고통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펼쳐냈다. <안퐁맨>은 젊은 나이에 성공한 벤처기업가 '라이브도어'의 대표였던 '호리에 다카후미'를 모델로 삼아 극단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어떤 강박을 보여주며 치료에는 유연함을 강조했다.

사회성이 짙은 '이라부'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 <면장선거>

또한 <카리스마 직업>에서 나오는 여배우 이야기는 바로 영화 <실낙원>의 여주인공을 맡은 '구로키 히토미'를 모델로 했다. 물론 실제 여배우가 여기 이야기처럼 그런 타입인지 몰라도, 적어도 인기 여배우라면 그 어떤 미용에 몰두하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표제작 <면장 선거>는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아닌 가공의 이야기지만, 의미하는 바는 실로 크다. 우리네 정치사회판을 주름잡고 그 어떤 정치적 행위로써 펼쳐지는 선거판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이른바 흑색선전에 돈선거 특히 돈선거는 돋을 정도로 주고받는 게 가관도 아니다. 이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는 젊은 공무원과 그를 치료하며 선거에 묘하게 개입된 이라부까지, 또 이를 지켜보는 시니컬한 마유미 간호사 등, 여기 인간 군상들은 그 쏠라닥질의 선거판에서 그렇게 묘하게 활약하며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만 봐도 이 소설은 정말 위트와 풍자로 가득한 사회소설이라 할 수 있다. 대신에 그 어떤 유명한 고전류 작품처럼 진중하거나 묵직한 것이 아니라 가벼운 터치로 재밌게 그리며 본질을 꿰뚫는 예리함까지 선보인다. 그것이 일종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유명인으로써 다가오는 그 어떤 강박증을 이라부는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때로는 방관자로써 물러나 그들의 어깨에 얹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다. 심리적 패닉으로 몰리는 강박이란 게 어찌보면 신경정신 질환의 일종이지만 이렇게 쉽게 마음을 한풀 꺽고 내려 놓는다면 이를 통해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라부식만의 유쾌하고 독특한 상상이 빚어낸 치료법인 것이다.

아무튼 이번 '면장 선거'를 끝으로 이라부 시리즈 3부작은 모두 마무리됐다. 그런데 계속 이라부가 기달려지는 것은 왜일까.. 그와 함께 마유미도 그렇고, 그것은 아마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이라부를 찾아가 치료받을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다음 이라부 이야기를 막연히 기다려 본다. 무리하게 짧은 다리를 꼬꼬 앉은 그의 히죽거리는 모습과 마유미의 터질듯한 육감적인 가슴 계곡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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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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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 중에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괴짜의사 '이라부' 시리즈를 만들어내며 독자들에게 많은 웃음과 풍자를 선사한 '오쿠다 히데오'..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지극히 코믹적인 유머로 점철된 이야기들이 많은데, 하지만 그의 여러 작품중에서도 상위권에 꼽는 작품중에 <남쪽으로 튀어> 1, 2권을 읽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이 이야기에도 코믹적인 유머가 물씬 풍긴다. 소위 초딩 6년짜리 식탐가 '우에하라 지로'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번 <남쪽으로 튀어>는 일견 '사회소설'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이미 1권을 읽고서 리뷰를 통해서도 밝혔지만, 1권이 그 따뜻한 남쪽의 섬 '이리오모테' 섬으로 튀기 전까지 이야기로써 지로의 학교 생활을 중점으로 재미나게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번에 2권은 바로 그 섬에서 가족이 겪는 고난과 역경을 재미나게 푼 이야기다. 과연 그 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간략히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일본의 오키나와현의 소속으로 있는 두 개의 섬 '이시가키'와 '이리오모테'섬.. 지로네 가족은 도쿄 나고야 생활을 접고, 접게 된 것도 다 지로의 아버지 때문이다. 과격파 운동권 출신의 전설적인 투사였던 '우에하라 이치로'는 한마디로 국가 자체 특히나 세금도 안 낼 정도로 버티는 일종의 국가 간섭을 무지 싫어하는 일종의 무정부주의자 '아나키스트'였다. 혁공동(아시아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의 멤버로 그쪽의 내홍으로 사건이 터지면서 우에하라가 궁지에 몰리자.. "에라이, 다 필요없다. 이 참에 우리 저기 따뜻한 남쪽의 섬으로 가서 살란다." 를 주창하며 온 가족을 이끌고 머나먼 이 섬까지 오게 된다. 물론 가족 중에 21살 난 과년한 딸 '요코'만 놔둔 채 말이다. 물론 12살 지로와 10살 모모코는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이 어린 것들이 부모와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법.. 어찌됐든 지로는 섬에서 살게 된다.



'남쪽으로 튀어' 2권 이야기, 그 섬에서 생활과 살아남기

그런데 이 섬 생활이 완전 무인도에 야생의 정글처럼 인식했는데, 역시 죽으란 법은 없다. 이시가키에 먼저 도착해서 뜻밖에 환송을 받고, 이리오모테로 다시 들어와서 그 섬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지로네 가족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에하라 할아버지 간진 어른이 이 지역에서 예전에 터를 잡고 섬에서 나름 영웅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인데, 즉 지로네 가족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고향으로 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그 섬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그들 가족을 홀대할 리가 만무하다. 마치 가족처럼 지내며 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일으켜 세워 새롭게 개조해 살게 해주고, 각종 음식에다 대신에 전기는 안 들어왔지만 나름 생활은 됐다. 그런데 문제는 지로와 모모코를 전교생 5명만 있는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거, 결국 학교 선생님과 관계자들이 나서서 학교에 다니게 된 지로와 모로코는 너무 좋아했다.

이렇게 이 가족의 생활은 잘 지내나 싶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이 먼 섬지역에도 개발의 바람이 분건지, 지로네가 머물고 있는 그 집이 호텔 리조트 개발 회사 소유의 땅으로 밝혀지면서 큰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회사는 그 섬에도 거대한 리조트를 짓겠다해서 그 섬 지역의 환경모임 개발반대 단체로부터 거센 반발을 산다. 이에 반대모임에서는 전설적인 투사였던 '우에하라 이치로'를 선봉에 서려 하는데, 우에하라는 선뜻 나서지 않는다. 자신은 오로지 독고다이로 행동할 뿐 당신네들처럼 이념에 물들기 싫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로네 가족은 위험에 처한다. 땅 소유사로부터 불법 점거라는 이유로 집을 당장 철거해야 하는 상황과 맞물리자 우선 아이들은 공동주택으로 들어간다.

이때 아니, 그전에 지로의 누나 '요코'가 복잡 다난한 도쿄 생활을 청산하고 이 섬에 들어와 있었다. 그 콧대높던 요코가 자신의 두 동생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집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며 한 발짝도 못 물러선다고 버티고, 외국인 섬 부랑자 '베니'와 함께 개발 회사 앞에서 투쟁을 한다. 이미 매스컴은 이 보도에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들의 물리적 폭거 앞에 또 경찰들까지 나서서 그들 셋은 체포되고 만다. 이에 지로와 모모코, 요코는 걱정이 앞서지만 곧바로 풀려날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잠시 잡혀있던 경찰서 부근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그 순간 셋이 사라지고, 베니만 잡히고 지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탈주해버려 행방이 묘연해진다.

하지만 이미 섬 사람들을 통해서 연락해온 것은 지로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또 다른 꿈의 섬 '파이파티로마'라는 전설의 섬을 찾아 미리 떠난 것이었다. 즉, 이 섬 조차도 이렇게 자본 개발의 논리에 간섭을 받자 지로의 아버지는 또 다른 섬을 찾아 떠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착하는 순간 자신의 자식들을 데리고 살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그리고 우에하라의 아들 지로는 도시에서 전혀 못 느꼈던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 옛날 '오야케 아카하치의 난'의 전설대로 자신의 아버지가 그래했듯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남풍을 가슴 가득 들이마시면서 말이다.

섬 이야기속 '사회소설' <남쪽으로 튀어2>, 제대로다.

이렇게 <남쪽으로 튀어> 2권의 이야기는 제대로 된 섬 이야기다. 그곳도 야생의 그대로 보존된 하지만 사람들이 옹말종말 모여사는 정을 느끼며 사는 그곳도, 자본 개발의 논리는 피해갈 수 없었다. 섬 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며 섬에 잘 정착한 그들은 도시에서 각자 생활로 찌들어 살았던 삶과는 다르게 이 섬에서는 오히려 가족끼리 똘똘 뭉치며 살았던 것이다. 결국 그 리조트 개발 회사 때문에 집을 또 다시 잃게 되면서 쫓겨나게 된 것이 2권의 내용인 것이다. 정말 제목 '남쪽으로 튀어'가 여기 '이리오모템' 섬으로 오게 된 이야기의 전초였다면 결말에서 바로 꿈의 섬 '파이파티로마'로 제대로 튀어 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시 '우에하라 이치로'답다.

그래서 2권의 느낌은 1권하고는 많이 다르다. 1권이 도시 생활에서 느끼는 찌든 삶의 고단함과 지로의 학교 생활이 중점이 되면서 그 도시에서 지로의 아버지는 그냥 괴짜 스타일의 과격하기만 하고 콧구멍이 파는 돈도 못버는 그런 스타일의 아버지였다면, 자의든 타의든 이 섬으로 오면서부터 지로의 아버지는 자신의 태생적 성정이 그러한지 이 섬에서 제대로 정착하며 비로소 '자연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또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부인은 물론 아들 지로와 딸 모모코까지 아버지의 색다른 모습에 활기를 찾고, 과년한 딸 요코까지 마음의 문을 열며 이 가족은 한마음이 된 것이다. 마치 열두 살 소년 지로의 '성장'을 보듯이 말이다.

그것은 일견 과격파 운동권 출신의 전설적인 투사였던 인물을 중심에 세워놓고, 그 어린 아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이렇게 극명하게 때로는 비판적으로 다가와 읽는 이로 하여금 삶의 현실과 모순을 일깨우게 하는 이야기를 독자들은 주시하게 된다. 때로는 무거운 주제가 될 수 있는 그 어떤 체제와 사상에 관해서 이렇게 가볍고 날렵하면서도 진중한 주제 의식을 포기하지 않는 '오쿠다 히데오'의 숨은 역량이 느껴지는 힘, 단지 그 자연 생태의 섬에 정착한 그 지로네 가족사를 통해서 무엇이 작금의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인지 사회 문제인지 일깨워주는 소설 <남쪽으로 튀어>인 것이다.

그 머나먼 남쪽 나라의 비밀의 섬으로 다시 튄 전설의 투사 '우에하라 이치로', 그가 바로 제대로 된 그 어떤 체제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연인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들 지로는 그 섬에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며 한 뼘 성장한 것이다. 아무튼 '오쿠다 히데오'하면 이라부의 '공중그네'를 얼핏 떠올리게 되는데, 이 소설도 재미는 물론 때로는 숨은 진중한 맛에 우리네 삶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하는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그래서 깊어가는 이 늦가을, 부담없이 이 두 권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를 만나보시길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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