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같은 나날
류전윈 지음, 김영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인기 작가를 꼽는다면 국내 독자들은 '위화''쑤퉁'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들과 함께 신사실주의적 기법으로 더욱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류전윈'(劉震云)이다. 이미 앞서서 잠깐 소개를 했지만, 그는 현재 1급 작가 신분으로 루쉰문학상 심사위원을 맡고 있고, 중국의 주요 문학상을 모두 수상하며 작품 중 다수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중에서 국내에는 7권 정도의 작품이 나와 있는데, 이중 강호는 그의 대표작이자 중편집 3권을 모은 소설집 <닭털 같은 나날>을 첫 번째로 읽게 됐다. 기존에 웬만한 건 다 읽어본 '위화'와 '쑤퉁'의 작품과 비교했을시 비슷하면서도 무언가 색다른 사실적 구조가 돋보이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이 3편의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간략히 살펴보자.

 

먼저 표제작이기도 한 '닭털 같은 나날'은 한마디로 거시기한 일상을 다룬 이야기다. 바로 '일지계모'(一地鷄毛’)라는 고사성어로 대표되는 이 말은 닭을 잡은 뒤에 피와 털이 난무하는 비참한 현실을 나타내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상황이나 허섭스레기 같은 일상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그렇다. 뜻은 보다시피 평범한 일상이 아닌 제대로 부대끼고 지리멸렬한 일상사를 그린 작품인 것이다. 여기 주인공 남자 '린'과 그의 부인 '리'가 있다. 이 젊은 부부에게 있어 일상은 바쁘고 고달픔의 연속이다. 매일 새벽 값싼 두부를 사기 위해 국영 상점 앞에서 줄을 서고, 물 값을 아끼려고 수도검침을 조작하다 망신당하고, 아내의 직장을 옮기려는 이직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뇌물을 쓰다가 좌절하고 망신당하는 등,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에 세살 난 딸을 유아원에 보내는 입학문제로 손을 쓰고, 집에서 부려먹던 가정부와 불화로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다. 이외에도 직장에서 '애국배추' 사기 해프닝이 벌어지고, 친구 대신 오리를 팔기도 하는 등, 여기 '린'에게 있어 일상은 부대끼는 나날의 연속이다. 그래도 그는 불만이 없다. 아내와 함께 닭을 구워먹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 이야기 '기관'은 그 제목에서 얼추 알 수 있듯이 중국인의 직장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앞선 '일지계모'가 한 남자의 가정의 일상을 다루었다면 여기는 바로 중국 사회의 '단위單位'라는 특수한 직장 시스템과 그 안에 속해 있는 개인들에 대해 그린 작품이다. 즉 직장내 선후배와 상사와의 관계가 아주 밀도감있게 펼쳐지는데, 주요 등장인물은 총 다섯 명, 오래된 짠밥의 동기생 '허와 쑨', 여성인 '펑과 차오', 그리고 부국장으로 승진한 '장'과 신출내기 '린'이 있다. 여기 '린'이 앞선 그 '린'이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이들 다섯 명의 직장내의 쏠라닥질같은 이야기가 가열하게 펼쳐진다. 먹는 '배' 배급 문제부터 포문을 열더니 회식자리에서 허와 쑨이 처장 승진문제로 작당해 장에 맞서기로 하고, 젊은 린은 '합거'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차오'에게 잘 보이다가 난관에 부딪치고, 장의 출장에 쑨과 린이 동행하며 묘한 대립을 보이는 등 직장내 이야기가 소상히 그려진다. 여기에 두 여성인 펑와 차오의 대립각부터 해서 장 부국장 이사 때 다들 도우는 풍경과 장과 차오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정직 처분 받다가 다시 복직되고, 차오는 퇴직돼 린과 이별 인사를 하는 등, 이들 직장은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1942년을 돌아보다'는 다소 독특하다. 앞선 2개의 이야기와 다르게 소설이 아니라 르포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허구가 아닌 실재의 이야기로 작가의 고향이자 현재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두 번째로 많다는 허난성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바로 1942년에 몰아닥친 가뭄과 대기근 앞에서 당시 3천만명 중 10%인 3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아비규환의 현장을 생생히 다루고 있다. 물론 작가 류전윈은 58년 생으로 당시 그 체험을 할 수 없었지만, 그의 할머니와 외삼촌의 증언을 통해서 당시 상황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다 당시 신문 기사 기록 등을 첨부하고, 특히 <타임>지의 외국기자 '화이트'의 활약상을 다루며 그가 국민당 위원장 '장제스'를 만난 일화를 소상히 밝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제대로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왜 '장제스'가 허난성의 이 대재해를 외면하고 지원을 제대로 못했는지에 대해서 나름의 이유를 말하는데, 그만큼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문제로 인해 여기 허난성의 3백만 명 아사와 몰살은 중요치 않았다는 거. 여기에다 당시 '허난성 재해실록' 논평을 다룬 <대공보>가 정간을 먹었던 사연을 소상히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타임>지 화이트 기자의 노력으로 그가 장제스에게 보여준 개가 사람 시체를 먹는 그 처참한 상황의 사진 한 장으로 허난성은 구조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완벽한 구호는 아니었고 외국인 선교사들 도움과 함께 그 와중에도 중국 정부의 착복과 수탈은 이루어져 인민들 죽음은 계속 늘었다는 자조 섞인 비판을 내비친다. 1943년 일본군이 허난성에 들어와 도리어 목숨을 살리면서 인민들이 매국노가 될지언정 말이다. 그만큼 당시 허난성은 과거에 중국의 중원답게 모든 게 어지러운 상황이자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세 편의 신사실주의 기법의 이야기들,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수작'들이다.

이렇게 세 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중편집 '닭털 같은 나날'은 꽤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닭털 같은 나날'의 '일지계모' 이야기는 한 남자가 가정내에서 부딪히는 고민거리 같은 다반사를 다루며, 평범한 듯 하면서도 부대끼고 사는 삶의 한 단면을 다소 유머스럽게 그리며 생생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질퍽하기 보다는 담백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 '기관'은 가정이 아닌 바로 직장인 그것도 관공서에 일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이야기로 그 속에서 그들이 생존을 위해서 서로 불신하고 감시하고 비방하는 쏠라닥질 같은 풍경으로 그리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면서 그걸 조장하는 중국 사회 특유의 정치문화, 권력의 역학 관계도 밝히는 등, 작지만 무시하기 힘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마지막 '1942년을 돌아보다'는 앞선 두 이야기와는 다르게 소설이 아니라 르포 형식의 이야기로 작가 류전윈의 고향인 허난성에서 1942년 가뭄과 기근으로 3백만 명이 굶어 죽은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아비규환 같은 그 현장을 생존자들의 회상담과 함께 밝히고, 여러 가지 기사와 책 등을 인용하면서 취재하는 형식으로 쓰인 작품인 것이다. 그러면서 눈에 띄는 대목은 <타임>지의 화이트 기자가 국민당 장제스 위원장을 독대한 장면인데, 당시 장제스의 진퇴양난의 상황이 나름 소상히 들어 있어 근대중국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기록문학처럼 보이지만, 작가 자신의 내면적 독백이 평행선처럼 함께 진행되고 있어 1942년 허난성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살펴 봤듯이, 여기 세 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중국인의 일상과 삶 그리고 직장내에서 관계 등을 신사실주의 기법으로 제대로 그리고 있다. 여기에다 1942년 허난성 대재해 기록과 당시 국민당 위원장 장제스의 고민과 상황까지.. 단순히 소설 책이라 치부하기엔 얻을 것이 많은 '닭털 같은 나날'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류전윈만의 역량이자 그만의 작품세계인데, 이미 황석영 작가도 류전윈이야말로 '지옥 같은 세상을 능청스럽고,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고 추천했듯이, 여기 '일지계모'에 담긴 이야기 세 편은 중국인의 일상은 물론 그들의 삶과 지난했던 과거, 그 시절의 리얼리티를 떠올리게 하는 수작이 아닌가 싶다. 바로 현대 중국의 눈물나는 속살이 드러나는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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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1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닭털같은 나날이라..제목한번 의미심장합니다.

북스강호 2011-05-18 18:32   좋아요 0 | URL
바로 '일지계모'로 대표되는 일상들, 바로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