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탐정 정약용 1
이수광 지음 / 산호와진주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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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기 한 권의 역사소설 아니 역사를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더군다나 그런 장르에다 조선시대 최고의 실학자이자 민본정치를 펼치고자 백성을 위무하고 정조대왕 사후 곧바로 탄핵을 받아 저기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간 인물, 그 과정에서 많은 저서 <목민심서> 등을 집필하며 우리에게 지성파 문관으로 아직도 뇌뢰에 박혀있는 인기 만점의 역사 속 인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바로 이 책에선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어떤 위인전처럼 그의 일대기를 그린 것은 아니고, 그는 조선시대에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는데 인생 중반기에 '형조참의'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활약상을 그린 역사 추리소설이다.

즉 조선시대 미해결 사건들 특히 살인사건과 관련돼 다시 재심해서 범인을 추포하고 형을 가하는 이른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퀀스로 이 소설은 이목을 끌었다. 물론 영화는 미제로 남겨지게 되었지만, 여기선 어떻게든 해결을 한다. 그렇기에 사건을 되짚어 본다는 액면 그대로 '살인의 추억'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 될 터. 대신에 하나의 사건이 아닌 1권에서는 8개의 사건을 다루며 정약용이 당시 처한 상황과 정조의 막후정치를 큰 줄기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과연 조선시대 실제 벌어졌고, 임팩트한 사건들은 무엇인지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물론 이 사건들은 <흠흠신서> 등에 모두 기록된 살인 사건들이다.



먼저 각 이야기를 하기 전에 여기 주인공은 정약용을 위시로 네 명의 주요 인물들이 있다. 즉 이들이 조선의 CSI라는 '별순검'처럼 사건을 조사하는데, 형조참의 정약용과 함께 형조 서리 출신의 검률 '장영달', 오작인(검시인) '여리', 그리고 종사관 '이여철', 이렇게 주로 4명이 활약을 하며 나름 막강한 수사력을 과시한다. 정말로 케이블에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류승룡 주연의 그 별순검을 보는 듯 하다. 또한 면면들도 좀 재미난 구석도 있는 게, 장영달과 이여철 부인들이 색을 밝히는 등 지대고, 특히 여리는 남장여자로 나와 매력적인 자태를 뽐내며 극의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한다. 읽어보면 안다. ㅎ

정약용과 4명의 별순검이 조선의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파헤친다.

우선 제1화 '조선에 유령이 나오다'(운주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편은 제목 그대로 운주 지방에서 부녀자 다섯이 죽은 사건, 그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며 마지막으로 죽은 여자의 남편의 동생, 그는 바로 내시였다. 그렇다면 그가 범인이었을까.. 그런데 왜 남자 구실도 못한 그가 어떤 원은이 있길래.. 마치 전설의 고향을 보는 시퀀스로 첫회부터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제2화 '저수지에 떠오른 일곱 사람의 시체'(황해도 재령의 이경휘 옥사사건)는 볏단 두 단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워 일가족 7명을 자살하게 만든 이경휘에 대한 사건으로, 이미 여론은 그를 사형에 처하라고 하는데 실정법으론 안 되는 상황에서 조선시대 법리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법을 좀 알거나 공부한 이들에게 꽤 의미있는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제3화 '삼매의 서방은 아침에는 이가, 저녁에는 장가'(한성부 서부 조명근의 옥사) 편은 개인적으로 제일 쩌는 이야기로 꼽고 싶을 정도로, 조선후기 최대의 스캔들을 일으킨 '정삼매'라는 요부의 이야기다. 그냥 동네 외관 남자와 간통한 사건인 줄 알았는데, 그녀와 거시기한 이들이 조정의 실세들로 대거 연루되며 정조시대 '어우동'을 보듯 가열하게 펼쳐진다. 마치 우리시대 장자연?을 보는 듯 한데, 그러면서 정조를 어릴적에 돌봐준 봉보부인 성씨와 그 할매가 양자로 들이게 된 우부승지 '이정행'의 과거지사까지, 이 편은 재미는 물론 역사 지식에도 많이 도움이 되는 이야기다. 여튼 '정삼매' 이 여자 '어우동' 저리가라다. 한둘이 아니다..ㅎ

제4화 '복수인가 살인인가'(전라도 강진의 윤항 옥사사건) 편은 윤씨네 가족과 친지가 얽혀서 아비를 죽게 했다는 이유로 원수를 살해한 뒤에 엽기적으로 배를 갈라 간을 씹어 먹고 창자를 몸에 감고 관청에 자수한 '윤항'의 재판사건이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조선시대 정당방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즉, 명시돼 있듯이 조선시대 법은 부모가 살해당하거나 폭행을 당할 때 현장에서 상대방을 살해하면 무죄가 되고, 간음한 현장에서 상대방을 살해해도 무죄가 된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하여 유죄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윤항은 시일이 지나 원수를 살해했기에 죄를 면하기 쉽지 않은데, 과연 조선의 명판관 정약용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제5화 '부패한 자들을 숙정하라'(형조판서 윤사국 파직 사건) 편은 제목처럼 정조가 부패한 자들을 숙정하라는 감찰을 정약용에게 내리면서 관리들끼리 뇌물을 주고 받으며 청탁을 받은 사건을 수사하는데, 그 과정에서 붙잡혀온 '이동석'의 아비이자 전 영의정 '이존경'이 자살하면서 일대 파문이 불거진다. 결국 당시 형조판서 '윤사국'이 며칠 만에 옷 벗은 사건, 그만큼 정조시대 부패척결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6화 '세 여인의 원망이 5월에 서리를 내리게 하다'(평안도 삭주부사 민치신의 권력 남용사건) 편은 민치신이라는 관리가 삭주부사로 있으면서 오초현의 3형제에게 곤장을 때려 3형제가 죽음을 당한 사건이다. 이에 그들 부인들이 '격쟁'(擊錚, 임금 행차시 징이나 꽹과리를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통해서 이 사건을 의뢰한 것인데, 하지만 민치신은 큰 죄 없이 파직만 되고, 그것이 바로 군령의 집행으로 처리된 사건이 되고 만다.

제7화 '한 밤에 들리는 여인의 울음소리'(경기도 파주 김진하 옥사사건) 편은 파주 지역의 한 관리가 촌에서 물대기 싸움으로 불거지자, 어느 한 과부를 죽기 직전까지 치도곤을 내고, 그를 묵과해주며 뇌물까지 먹은 파주 목사 '이장한'을 무기한으로 북청으로 유배시킨 사건이다. 탐욕스런 관리에 대한 서릿발 같은 판결이 일품이다. 제8화 '여자의 이빨에 물려 죽은 사내'(황해도 평신 김대한 옥사사건) 편은 두 김씨 김초동과 김연석이 싸우다 한 사람이 익사하자, 김대한의 숙질과 사촌 등 6~7인이 가담해 김연석을 몰매질해 죽게 한 사건으로, 이 사건은 특히 실인(實因, 사인)을 밝히는데 중점으로 펼친다. 그러면서 남장여자 여리를 짝사랑한 정조의 대내시위로 있는 '김경방'의 이야기와 막후에서 정조를 죽이려는 이정행의 음모까지 그려져 흥미를 유발시킨다.



역사 추리소설 속, 정약용 활약과 정조시대 상황들이 담겨져 있다.

이렇게 여기까지가 '조선 명탐정 정약용'의 1권 내용이다. 그렇다. 한 권짜리가 아니라 두 권으로 되어 있고, 이야기는 그래서 연결이 되어 있다. 물론 이야기마다 각기 다른 살인 사건들과 억울한 사연들을 담고 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정약용과 그 주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 정조시대의 정치 상황들이 펼쳐지면서, 이른바 노론에서 양분된 두 세력들 중 사도세자 죽음의 정당성을 주장한 김상로, 김귀주, 심환지 등 벽파(僻派)와 사도세자의 장인으로 세손의 보필을 맡았던 홍봉한 일파의 시파(時派), 그리고 봉보부인 성씨와 우부승지 이정행의 악행까지 다루며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작가 이수광이 역사 팩션소설의 대가답게, 정약용이 사랑했던 여인이자 남장여자로 분한 오작인 '여리'라는 가상의 인물을 투입시켜 역사 팩션으로써 재미는 물론이요, 역사적 팩트로써 다가오는 정조시대의 정치 상황과 그만의 어찰정치를 보이는 등, 이 소설은 여러가지 지적인 재미와 흥미를 한꺼번에 선사하고 있다. 물론 한편으로 이야기들은 별순검처럼 각 에피소드처럼 다루지만, 그 중심에는 정조와 정약용의 이야기가 있음이다. 과연 2권에서는 어떤 조선판 '살인의 추억'을 다루고, 그들의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대해 본다. 커밍 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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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지대
쑤퉁 지음, 송하진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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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쑤퉁'은 국내에 10여 종의 소설들을 쏟아내며 나름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다. 그와 함께 중국문학의 기수로 꼽는 작가 '위화'는 굵직한 작품들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로 대표된다면, 여기 쑤퉁은 그 스펙트럼이 다소 넓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다. 역사소설부터 해서 섬세한 필치로 그린 여자의 이야기, 가열하고 비루하고 잔혹한 가족사, 그리고 그 시절의 청춘 이야기까지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레시피를 얹어 놓은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다. 그리고 이번에 접하게 된 쑤퉁의 작품은 바로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쓰린 유년시절을 떠올리듯, 우리시대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성북지대> 소설이다. 그런데 이 청춘의 이야기가 그냥 교과서적인 룰을 따르는 게 아닌, 이야기의 파괴성을 보듯 청춘들의 잔혹사를 그리며 읽은 이로 하여금 또 다른 기분이 괴어오르게 했다. 과연 성북지대에 올망졸망 모여사는 인간 군상들, 특히 여기 청춘들의 가열했던 봄날은 어떠했는지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먼저 제목 '성북지대'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중국 강남 유역의 작은 도시 한구석, 전작과 같이 '참죽나무길'이 있는 그곳의 하늘엔 잔뜩 화학 공장의 매연으로 휘감은 듯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그 특유한 향을 머금은 공기가 지배하며 올망졸망하게 모여사는 작은 소도시다. 그리고 이곳에도 어김없이 인간 군상들이 있다. 특히 책 표지에 나와 있듯이 네 명의 10대 소년들이 주인공이다. 먼저, '리다성'은 자신이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는 바람에 아비를 교통사로 잃고서 엄마 '텅펑'과 살고 있는 소년 가장, 아니 무람없이 가오만 잡고 사는 못 된 녀석이다. 그리고 '선쉬더'는 엄마 '쑤메이'와 아빠 '선팅팡'과 그럭저럭 사는 녀석이고, '장홍치'는 엄마 '쑨위주'와 사는데, 이 녀석이 한 여자애를 강간하면서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냥 닉네임 '쩔룩이'라 불리는 녀석은 아비 '왕더우'의 나름 총애를 받으며 나중에 이 소설 속에서 제일 잘 풀린 케이스의 인물이다. 이렇게 이들은 성북지대에서 잘 나가는 소위 '껌 좀 씹어봤다'는 '나쁜 녀석들' 4인방이다.

'나쁜 녀석들' 4인방의 청춘잔혹사 <성북지대>, 쑤퉁 최고의 청춘소설

그렇다면 이들의 일상은 어떨까? 그전에 이 녀석들은 10대 중반에서 후반을 넘어가는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앞만 보고 질주하는 망아치처럼 천방지축 무람없이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요, 모두 다 학교에서 제적을 당할 정도로 그들에게 공부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렇기에 여기선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일체 없다. 해뜨고 해가 질때까지 그냥 동네를 싸돌아 다니면서 작당이나 하는 그런 부류들이다. 그러니 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도 애가 타면서도 그들 나름대로 생활전선에 있다보니 이들은 방치된 채,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하릴없이 성북지대를 거닌다. 그러다 큰 사고가 터진다. 홍치 녀석이 낚시꾼골목에 같이 사는 '메이치'라는 소녀를 강간한 거. 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순간 욕정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욕보인 것이다. 바로 동네는 난리가 났다.

당장 홍치의 엄마 쑨위주는 아들 구명에 나서고, 메이치의 엄마 정웨칭은 이런 사태에 너무나 당황해 이 동네를 떠나려 애쓴다. 그러는 사이, 착하고 가녀린 소녀 메이치는 이런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강물에 투신해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원귀가 돼 여기 성북지대를 유령처럼 떠돌게 된다. 홍치는 이미 교도소에 들어가 있지만, 마을 사람들 눈에 가끔 그리고 여기 소년들과 엄마들 눈에 가끔씩 나타나 원혼을 달래려 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홍치가 강간 사건으로 쇠고랑을 찬 사이, 선쉬더는 같은 유리공장에 다니는 젊은 유부녀 진란과 바람을 피고, 심지어 쉬더의 아비 팅팡까지 그 여자를 탐한다. 이를 알게 된 쉬더가 다성이랑 눈에 쌍심지를 키고 칼을 들고 나서며 두 연놈을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소위 지애비도 필요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두 부자가 한 여자를 놓고 거시기한 짓을 하고 만 것이다. 이에 부인 쑤메이는 창피해서 얼굴을 못들 정도로 궁지에 몰리고, 결국 아비가 죄값으로 사상교육대에 보내지게 된다. 쉬더는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젊음이 좋긴 좋은가 보다.

이후에 사건은 계속된다. 주인공 격인 리다성이 '돌아온 탕아'를 꿈꾸며 나름 무술 연마를 위해서 고수를 찾아다니고, 엄마 텅펑의 아버지인 뱀꾼 텅원장이 20여 년만에 딸을 찾아왔지만, 그는 소싯적 딸을 버렸다는 원죄로 문전박대를 당해 추운 겨울 다리 밑에서 동사하고 만다. 죽은 뒤 후회막급에 한움큼의 눈물을 쏟아낸 텅펑, 하지만 다성은 그 어떤 감정도 없다. 그냥 죽었구나다. 한편 쉬더와 팅팡 두 부자가 진란과 불륜질한 게, 항상 깔끄장했던 쑤메이는 목욕탕에서 진란을 개패듯 패주며 화풀이를 한다.

그리고 여기 네 명의 멤버 중에 쩔룩이는 문제아 대표로 뽑혀 학교 적응기 교보재 식으로 다시 학교로 복귀했는데, 수업시간에 선생 리팡과 삿대질에 대판 싸우고 다시 쫓겨난다. 그러는 사이 아들 홍치의 구명을 계속 하던 엄마 쑨위주는 이젠 거의 지쳤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법원 앞에서 그만 급사하고 만다. 이 여인네의 죽음을 계기로 성북지대의 사람들은 하나 둘 죽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피부병이 창궐하고, 왕더우의 큰 딸 '진홍'이 밤길에 깡패들에게 맞아 살해되는 등, 이것이 메이치 원혼의 복수라 할 정도로 성북지대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아들과 함께 한 여자와 바람까지 펴 완전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진 선팅팡은, 아내 쑤메이가 왕더우랑 부절적한 관계임을 의심하다가 어이없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의 거시기를 자해하는 등, 진풍경이 벌어진다. 참 대단한 동네가 아닐 수 없는데, 결국 그 진란이 산달이 다 돼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누구의 씨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네에선 아들 쉬더쪽이라는 분위기에 진란은 그래도 쉬더에게 애정을 쏟는다. 그리고 그녀는 쉬더와 함께 몰래 밤기차를 타고 이 성북지대를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이젠 남겨진 청춘은 두 명 중 하나, 쩔룩이는 학교에서 다시 쫓겨난 뒤 이 마을에서 열심히 폐지 줍는 캉씨를 '군통'(국민당 정부의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 스파이로 잡는 공을 세우며 선진인사로 나름 위명을 떨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다성이는 '돌아온 탕아'를 꿈꿔왔듯 다른 동네 구두장길의 돼지머리파와 그 전설의 17:1 아니.. 10:1 패싸움을 벌이다 장렬히 저탄장에서 전사하고 만다. 어미 '텅펑'이 아끼던 자명종 시계와 같이 묻히면서. 그리고 텅펑은 아들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오늘 날이면 종이우산을 든 채 거리를 미친년처럼 배회하며 말한다. "이봐요, 우리 집 자명종 못 봤어요? 쇵마오표 자명종인데, 혹시 못 봤나요?"



예의없는 청춘들의 불온한 이야기, 그 시절은 그렇게 쓰리고 그리운 거.

이렇게 이 소설은 어느 것 하나 착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강간, 자살, 자해, 살해, 폭력 등 사회 일면을 장식할 내용들로 여기 네 명의 소년들이 중심이고, 이 예의없는 청춘의 인사들을 화자로 내세우며 가족사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전작에서 읽었던 <쌀>과 <화씨비가>처럼 여기에도 가열한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 거. 그렇기에 중심에 있는 이들 4명은 학교 공부와는 거리가 먼 절대 모범생이 아닌, 사회에서 소외되고 방치된 채 거리를 배회하고 사고나 치고 다니는 이른바 '나쁜 녀석들'이다. 절제되지 않은 욕정으로 강간을 저지르고, 어미와 아비에게도 욕지거리를 퍼붓고, 무술을 익혀 오로지 짱만 먹겠다는 심산에다, 다 큰 처자와 바람을 피고, 학교 선생에게 대드는 등, 이런 캐릭터는 우리가 보통 TV 뉴스에서나 보는 '막장급 청소년'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쑤퉁은 이들을 통해서 그들의 그런 모습 뒤에 감춰진 이면과 무모하기까지 한 그들의 언행을 통해서 그 어떤 사회적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즉, 막 청춘기에 접어든 이 소년소녀들은 이미 위태롭고 불안하고 불온한 모습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소외되고 방치된 자들의 가혹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음을 견지하게 된다. 이것은 1970년대 말 문화대혁명의 풍파를 겪은 지난 세대의 은원이 가시지 않은 듯, 그대로 담아내며 이 예의없는 청춘들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직관적으론 '나쁜 녀석들'의 불온한 이야기지만, 절대 이야기는 나쁠 수가 없는 바로 그 시절의 청춘의 현실과 이상, 그 속에서 쑤퉁은 유년시절을 상념하듯 섬세하면서도 잔혹하게 꺼내들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는 스스로 말했듯 자전적 소설로써 '쑤퉁 최고의 청춘소설'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은 대표적 작품이다. 그것은 여기 '성북지대'에서 보여준 이야기들이 누구에게나 한 때 불온했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추억케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청춘스케치'라고 다 좋을 순 없는 것이다. 나쁜 것일수록 추억은 오래 가는 법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유년시절은 어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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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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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의 발자취에서 이제는 손꼽는 자리에 올랐지만, 아직도 일부 독자들이 그를 '청년작가'라 부르는 문인 중 한 사람. 하지만 죽을 때까지 강력한 '현역작가'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 '박범신' 작가. 그가 90년대 절필 후 다시 재개하면서 글쓰기 유혹에 빠진 채, 최근 신작 <은교>까지 이른바 '갈망의 삼부작'을 완성시키며, 또 하나의 장편 소설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비지니스>다. 얼추 제목만 봐서는 기업소설 같은 기시감이 들지만, 정작 여기서 말하는 비지니스는 기업상의 일거리가 아닌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이 가열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지니스 즉, 각자 버티며 살기 위해서 매달리는 일을 눙쳐서 말하는 그 '비니지스'를 일컫는 것으로, 여기선 다소 은어적 느낌으로 다가온다. 과연 박범신 작가가 말한 그 '비니지스'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여기 한 도시가 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이름이 없다. 그냥 우리말 자음 'ㅁ'(미음)시다. 위치는 중간 정도에 서해안쪽. 원래는 오래된 한적한 시골 도시였지만, 여기에 간척지 사업에다 각종 개발 바람이 불면서 ㅁ시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지방의 굵직한 도시가 된다. 옆에 중국과의 수출입 교역도 활발해지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이렇게 ㅁ시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모 시장은 중앙정부에서도 인정받는 권력의 실세가 된다. 그리고 여기 ㅁ시는 개발이라는 동전의 양면처럼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뚜렷히 양분된다. 즉 신시가지는 강남과 같이 휘황찬란하게 개발돼 장족의 발전을 이루지만, 구시가지는 쓰레기 소각장 등 대규모 매립 단지 조성으로 이른바 '죽음의 도시'로 서서히 변모해간다. 그래서 구시가지에 사는 사람들은 오늘도 내일도 돈을 벌러 신시가지로 노예처럼 빨려 들어간다.

그 중심에는 여기 주인공인 한 여자가 있다. 남편과 함께 공기 좋고 물 좋은 ㅁ시로 내려왔다가, 구시가지에 정착한 이들로 중학생 아들이 있다. 그런에 '칼라'라 불리는 이 여자는 내일 모레 40을 바라보면서도 그 자태는 아직도 매혹적인 매력을 풍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몸을 무기로 매춘을 한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남자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거. 이유는 무얼까? 그렇다. 신시가지에 있는 외국어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서 아들의 학원비에다 과외비를 벌기 위해서 직접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천하게 노는 계집 창녀같이 싸게 보이진 않는다. 마치 고급콜걸처럼 때로는 기품있는 자태로 그녀는 그만의 '비니지스'를 할 뿐이다. 그리고 그녀와 관계를 맺은 남자 '옐로'라는 중년 신사도 그만의 비지니스를 갖고 그녀와 관계를 지속하는데, 그 남자는 이른바 대도(大盜)라 불리는 '타잔'이었다.

매춘으로 만난 '칼라와 옐로'를 통해 본 자본의 비애와 갈망 그리고 고독

즉 이 남자는 ㅁ도시에서 잘 살아볼려고 내려왔다가 한 때 잘나가던 횟집이 신시가지 개발 붐으로 구시가지가 나락으로 몰리면서 직격탄을 맞은 거. 부인마저 환경 오염 속에서 지병을 못 이기고 죽고, 하나 있는 중학생 아들은 자폐증 증세로 그의 생활고는 심해진다. 그래서 신시가지에 살고 있는 부자들의 패물과 값나는 물건을 훔치는데, 결국 시장까지 납치하는 등 그런 일에 그녀까지 공범조로 어쨌든 가담돼 인생의 끝자락으로 내몰린다. 이렇게 여기서는 매춘하다 만난 두 남자 '칼라'와 '옐로'를 화자로 내세워 그들이 처한 상황과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즉, 강남과 강북으로 대표되는 마치 양지와 음지처럼 선연히 분리되는 자본의 계급화를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칼라의 동성 친구인 '주리'를 통해서 졸부들의 작태를 보여주고, 칼라의 남편은 전도유망한 법조인을 꿈꾸었지만 희망의 대척점에서 낙오자로 몰린 상황을 그리며 이들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결국 죽을 각오로 옐로가 시장까지 납치하면서 이들 사이는 위기를 맞는다. 물론 이들은 처음엔 나락의 끝자락에서 몸을 탐닉해 만난 사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때로는 파토스적 사랑에 다가가며, 그렇게 그들은 구시가지의 황야처럼 고독과 갈망으로 내닫게 된다. 과연 칼라와 옐로는 어떻게 됐을까? 단순히 해피엔딩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이 이야기는 다분히 메시지적으로 자조섞인 비애감이 물씬 풍기는 매력을 마지막까지 선사한다.

이렇듯 이 소설은 매춘으로 만난 '칼라와 옐로'를 통해서 우리의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길지 않게 200여 페이지로 짧은 편이다. 컴팩트한 양장본 스타일로 이야기도 심플하게 아주 담백하다. 즉 장문보다는 단문의 향연을 보듯 이야기 자체는 꽤 몰입감을 준다. 개발 붐으로 양면으로 갈리게 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축을 이루고, 여기서 살고 있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서 자본으로 대표되는 산업화의 몰인정을 가감없이 그려냈다. 그러면서 내던져진 우리네 여자들이 자식들의 과외비를 위해서 몸을 파는 것까지 가버린 그 자학적인 그림으로 자본주의적 슬픔을 대변하는 비애감까지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절대 이 이야기는 소위 싼티가 아닌, 꽤 품격있게 그려내며 박범신 작가 특유의 수사적 표현으로 이야기를 관조적 욕망과 고독의 자세로 풀어내고 있다.

역시 박범신답다. 결국 제목 '비지니스'가 의미하는 그 비지니스는 절대로 단순한 일거리가 아니다. 이 가열한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투영하듯 매개체로써, 이미 주인이 되버린 '자본' 앞에 우리네 삶의 유일한 전략으로 내몰린 상황이 펼쳐져 있다. 그 속에서 작가는 자조적인 비애감과 함께 고독과 갈망을 추구하는 몸부림으로 이 가열한 비지니스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읽기 전 책 표지의 여인이 누구일까 궁금했었다. 그 여인은 바로 주인공 '칼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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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중국 문단의 선봉자’이자 ’중국 제3세대 문학의 대표자’로 불리는 명실상부한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쑤퉁’. 그의 또 하나의 장편소설 <쌀>이 꽤 임팩트한 매력을 뿜어내며 읽는 내내 강호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기존의 비극적이면서도 통속적 처연한 가족사를 그린 <화씨 비가>와는 완전 차원이 다른, 전혀 착한 구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이른바 ’나쁜 소설’이라 불릴 정도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매우 잔혹하고, 음탕하고, 질퍽하고, 폭력과 불륜이 판을 친다. 그래서 매우 깔끄장한 기분이 괴어오르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매력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게, 바로 여기 주인공 ’우룽’을 통해서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것도 또 하나의 가족사다. 그렇다면 과연 이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이야기 속으로 잠시 떠나보자.



여기 ’우룽’이라는 젊은 한 남자가 있다. 홍수와 기근으로 난리가 난 고향 땅을 떠나 밤 깊은 석탄화물 열차에 몸을 싣고 어느 한 동네로 기어들어온다. 단지 먹고 살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몇날 며칠을 굶은 그에게 있어 먹는 것은 최대의 화두이자 삶의 목표가 된다. 부두가에서 그렇게 거렁뱅이 신세로 갖은 굴욕을 당하면서도 그는 배고픔을 잊지 못한다. 결국 기어들어간 곳이 그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대홍기’ 쌀집, 쌀이 원없이 있던 그곳에서 이른바 ’일꾼’으로 일하게 된다. 배경은 1920~30년대, 현대가 아닌 근대기에 중국 인민들의 삶은 고루하고 비참함의 연속이다. 기근에 시달려 쌀을 사고 파는 풍경이 대홍기 쌀집을 위주로 펼쳐진다. 그속에서 일하게 된 우룽은 펑사장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일하지만, 사장이 그렇게 잘 대해주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여기 대홍기 쌀집의 두 처자, 즉 펑사장의 두 딸인 ’쯔윈’과 ’치윈’이 그를 노예 부리듯 대하며 그를 매 항상 기분 나쁘게 만든다. 특히 치윈이 정도가 심했는데, 하지만 큰 딸 쯔윈과는 나름 잘 지내며 그의 몸종 노릇까지 한다.

’쌀’에 애착을 보인 한 남자 ’우룽’, 그를 통한 잔혹하고 질퍽한 가족사

그런데 쯔윈은 10대 시절부터 남자를 알았던 소위 성에 일찍 눈에 뜬 케이스. 그 지역 유지인 뤼 대감의 첩실로 들어가는 등, 벌써부터 기질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부두 조직의 패거리인 ’아바오’라는 놈과 통정을 하고, 심지어 몸종 우룽과도 관계를 갖는 등, 그녀는 그렇게 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결국 쯔윈이 임신하자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뤼 대감을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만 당하고, 우룽을 더욱더 꼬시는데.. 이를 지켜보는 치윈은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 화냥년 같은 언니와는 사이가 가히 좋지 않을 정도로 두 자매는 그렇게 살갑게 굴지 않는다. 결국 쯔윈은 꿩 대신 닭이라고 우룽과 결혼한다. 그렇다고 우룽이 그렇게 반기는 것도 아니었다.

이른바 화냥년을 거두어 줬다는 심정으로 같이 살게 된 것인데, 이때부터 우룽은 그녀를 변태 성욕적으로 대한다. 관계시 좋은 침실을 놔두고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쌀 곳간에 들어가 관계를 맺으면, 그는 그녀의 음부에 쌀을 한 움큼 집어넣는 등, 변태 성욕으로 욕정을 채운다. 정말 나쁜 남자가 아닐 수 없는데.. 하지만 이런 기질은 처제인 치윈에게도 똑같이 굴며, 이 집안에서 점점 한 마리 욕정의 화신인 동물의 수컷처럼 우위를 차지한다.

결국 펑사장은 풍을 맞고 쓰러져 죽게 되고, 죽기 직전 우룽을 불러 무언가 얘기할려다 딸들의 복수인지 우룽의 한쪽 눈을 부지불식간에 찔러 실명케 만들고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우룽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지만, 그렇게 그는 펑사장 대신 대홍기 쌀집의 사장으로 대신하게 되며 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쯔윈이 아이를 낳게 되자 뤼 대감 집으로 다시 들어가고, 이로 인해서 우룽은 처제인 치윈과 결혼을 하게 된다. 즉 두 여자와 몸을 섞게 된 것인데, 그래도 치윈은 생활력 강하게 이 막돼먹은 인간 ’우룽’과 잘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우룽은 매 항상 걸죽한 욕지거리와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집안을 휘어 잡는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우룽의 식구에게도 가족, 즉 아이들이 생겼다. 큰 아들 ’미셩’, 작은 아들 ’차이셩’, 막내 딸 ’샤오완’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 세 명의 자식들도 만만치 않은 게, 미셩은 여동생이 말을 안 듣고 아비에게 자신의 죄를 알렸다는 명목으로 쌀 곳간 더미에서 여동생을 질식사 시키고, 미셩은 아비게에 잡혀 한쪽 다리가 부러지는 절름발이 신세가 된다. 그리고 마냥 놀기만 좋아하는 차이셩까지.. 이렇게 우룽의 두 아들은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노랬다. 그러면서 커서 둘다 혼인을 했는데, 미셩의 부인은 ’쉬에챠오’, 차이셩의 부인은 ’나이팡’, 이들은 나름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아비 우룽을 성정을 쏙 빼닮은 미셩은 부인을 매번 차갑게 대하고, 차이셩은 도박에 빠져 집안일에는 등한시한다. 그러다 쯔윈의 아들 ’빠오위’와 부절적한 관계를 갖은 쉬에챠오. 결국 그 현장을 차이셩에게 들켜 약점이 잡힌 채, 전전긍긍하더니 우룽네 식구들을 모두 죽일 심산으로 식사 때 국에다 비상을 타고 그냥 도망쳐 버린다. 물론 그 독을 미리 알게 된 우룽네는 먹지 않고 살았지만, 역시 대단한 엽기가족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이들은 쌀집을 운영하며 살아가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살듯 그 그림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매 항상 전쟁을 치르듯 살얼음 판이었고, 결국 쯔윈마저 뤼 대감 공관이 일본군 공습으로 폭파돼 흔적도 없이 죽게 되고, 빠오위는 정처없이 떠나 일본군과 손을 잡게 되고, 우룽네의 둘째 며느리 ’나이팡’은 산달을 앞두고 일본 군인들이 즐겨했다는 살인게임의 희생양으로 잔혹하게 살해되고, 여기 우룽은 이젠 쌀집 운영은 뒷전인 채, 부두 조직의 두목으로 성장, 이마저도 나중에는 와해되고 말았지만 늙어서도 제 버릇 못 준다고 그 성욕을 자랑하듯 잦은 기방 출입으로 덜컥 성병에 걸리고 만다. 그러면서 그의 쇠잔해진 몸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가는데, 이를 지켜보는 치윈마저도 동정은커녕, 또 두 아들도 불쌍하게 아비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서 빨리 죽고 재산이나 물려달라는 심보로 우룽을 겁박한다.

결국, 우룽은 자신의 생애가 다 되었음을 느꼈는지 마지막으로 고향 땅을 밟고 싶다고 가족에게 말한다. 그러면서 여기 와장가에 처음 왔을 때 탔던 그 석탄화물 열차에 몸을 싣는다. 아들 차이셩과 한가득 실은 쌀더미와 함께..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꿈속의 고향을 그리며 서서히 눈을 감고 만다. 황금빛으로 도도하게 출렁이던 고향의 논밭을 기억하며, 일렁이는 황금빛 물결 속에서 마치 한 알의 벼이삭처럼, 한 송이 면화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나쁜 남자 ’우룽’의 잔혹하고 질퍽한 가족사, 인간의 폭력적 본성을 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우룽’의 가족사다. 아니 우룽은 고아 출신이기에 내력은 없다지만, 그가 고향땅을 떠나 먹고 살고자 대홍기 쌀집으로 들어와 살게 된 이야기로써, 즉 어찌보면 우룽을 통해 본 가열한 가족사를 그려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일반 드라마적으로 잔잔하게 그려낸 것이 절대 아니다. 잔잔하게 아니라, 아니 잔혹할 정도로 인간의 악마적 본성이 매 페이지마다 판을 친다. 폭력과 살인, 음모와 배신, 강간에 근친상간은 물론이요, 빈번하게 등장하는 욕지거리와 성적 묘사는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내며 매우 깔끄장한 기분을 괴어오르게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기이할 정도로 끄는 매력인 셈인데, 어느 것 하나 정이 안 가는 여기 캐릭터들, 마치 인간의 밑바닥에 배여있는 더러운 성정을 보듯, 그들은 가열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 우룽은 어찌보면 ’나쁜 남자’의 전형으로 일관하며 두 여자를 변태적 성욕으로 강간하고, 심지어 번갈아 근친으로 결혼하며 대홍기 쌀집을 풍비박산 지경까지 몰고간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살갑게 구는 아비도 아니다. 여동생을 죽게 만든 큰아들을 보란듯이 반송장으로 만들어 절름발이로 만들고, 며느리 한테도 XX년이라며 총을 들이대며 밑구녕을 아작낸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기녀들로 인해 성병에 걸리자 8명을 매몰시켜 버리는 등, 그는 마치 악의에 바친 사람처럼 가열한 폭력으로 일관되게 살아오며 버텨낸다. 마지막 쯔윈의 아들 빠오위한테 심하게 고문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이렇듯 이 소설은 가열한 한 남자 ’우룽’의 이야기다. 그가 그렇게 평생의 안식처로 좋아했던 또 사람이 살기 위해서 주된 먹거리인 ’쌀’을 통한 매개체로, 그 어떤 생존 본능에 대한 발호로 악마적 본성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가열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깔끄장한 기분이 괴어오를 정도로, 잔혹하고도 꽤 질퍽한 가족사기에 ’쌀’의 이야기는 무시로 엄청난 마력을 뿜어낸다. 이른바 착한 소설이 아닌 아주 ’나쁜 소설’의 전형 <쌀>, 읽어보면 안다. 여러 말이 필요없이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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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비가
쑤퉁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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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기작가이자 이제는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쑤퉁'은 중국 문단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다. 바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인데, 그렇기에 강호는 그런 일환으로 얼마 전부터 <나, 제왕적 생애>, <이혼 지침서>에 이어 읽게 된 신작 소설이 <화씨 비가>다. 이 한 편의 장편소설은 한마디로 한 가족사의 비극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가족사기에 우리네 소시민들이 그렇게 살아왔듯 크게 우리나 중국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중국의 70~90년대 배경이다 보니 좀더 찌들어 보이고, 보통 인민들이라 불리는 특히 멸시받는 하층민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인지라, 그들의 삶이 좀더 가열하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른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그래서 어찌보면 더욱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 깔끄장한 분위기를 관통하며 종국에는 인간 세상에 대한 쓰디쓴 풍경을 말하고자 했던 '화씨 비가'. 과연 그 화씨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이야기 속으로 잠시 떠나보자.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시대는 70년대로 중국 남부에서 살아가는 한 하층민 가족 '화씨네'. 가장은 '화진더우'요, 아내는 '위펑황' 그리고 자식들은 총 다섯 명, 위로 졸로니 딸이 넷, 막내는 아들이다. 순서도 신메이, 신란, 신주, 신쥐, 그리고 막내 아들 '두후'까지.. 이렇게 자식이 다섯이요, 친척으로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격인 고모 '화진메이'가 있다. 우선 이야기는 죽은 '화진더우' 망령의 서술로 진행된다. 즉 그는 죽어서 저승에 와 재판관 앞에서 심판을 받으며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토로한다. 수년 전 아내가 일하는 직장 연료창고에서 자살을 했고, 화진더우는 홧김에 복수심에 불타 아내가 다니던 그 연료창고에 불을 지르고 방화범으로 잡히게 된다. 그리고 그는 바로 감옥에서 저승의 아내를 만나볼 심산으로 자신도 자살을 한 거. 참 대책없는 인간이 아닐 수 없는데...

망령이 된 가장 '화진더우'의 남겨진 가족사 관망하기, <화씨 비가>

그래서 이렇게 하늘나라로 올라온 그가 이승에 남겨둔 가족은 그의 누이와 다섯 명의 아이들이다. 이때부터 그는 원혼이 돼 구천을 떠돌며 자신이 남겨둔 가족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가족의 일상이 가열하게 펼쳐진다. 20살 신메이부터 6살 된 막내 아들 두후까지.. 이들의 일상은 각자 역할에 맞게 나름 바쁘게 지낸다. 엄마와 아빠가 없다는 슬픔도 잊은 채 고모와 함께 이들 화씨네는 참죽나무길이 있는 그 동네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 딸 넷은 조신거하거나 참한 딸들이 아니다. 각 생활전선에서 나름 열심히 버티는 그들이다. 막내 두후는 외동아들로 애지중지 키워져 자란 사고뭉치고, 이들을 돌보는 고모는 한마디로 궁상맞을 정도로 억척스러운 면이 많다. 즉 고모로 인해 어찌보면 그나마 여기 화씨네가 유지될 정도로, 죽은 화진더우의 여동생인 고모는 청상과부의 몸으로 조카 다섯을 고집스럽게 길러내는, 이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자 그녀 자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매 항상 각 딸들이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상황이 전개되면 그 자리에 항상 고모가 끼어서 중재하거나 도리어 일을 망치는 등, 그녀는 화씨네의 실질적인 가장이다. 이런 그들을 하늘에서 바라보는 화진더우는 억장이 무너지고, 손을 쓰지 못하는 무력함에 자신을 탓하며 그래도 그 고마움에 계속 관조적으로 화씨네를 지켜본다. 신메이가 죽은 엄마의 못 받아낸 월급을 받겠다며 성깔을 부리고, 둘째 신란은 남친을 잘못 사귀어 덜컥 임신하자 고모와 함께 고향땅으로 찾아가 낙태수술을 하다가 그만 쇼크사로 죽게 되고, 악발이 신주는 더욱더 옹골지게 삶의 악다구니로 일관하며 지내고, 막내 딸 신쥐는 그저 그렇게.. 두후는 화씨네 유일한 아들이지만 귀여운 구석에 사고뭉치로, 그렇게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살아간다. 어느 덧 세월이 십년이 지난 80년 대, 아비의 원혼은 하늘나귀를 타고 계속 구천을 떠돌며 화씨네를 지켜보는 가운데, 이제 훌쩍 커버린 이들 다섯 명의 운명도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한다.

큰딸 신메이는 나름 자수성가한 절름발이 페이성과 우여곡절끝에 결혼하게 되고, 결혼 후 그의 무람없는 태도에 홧김에 이혼하려다 혼절해 간염에 걸리고, 이를 수습하려는 남편은 고모의 조언으로 거짓 자살을 기도하다가 뇌를 손상당해 반신불수가 돼 신메이가 그를 평생 수발하며 살게 된다. 그리고 악다구니로 버텨온 신주는 아직도 그 기질을 못 버리고 삶을 거칠게 살아온다. 남친을 뭐 보듯이. 그리고 막내 신쥐는 또 그저 그렇게, 그런데 문제는 바로 아들 두후였다. 이제는 십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그런지, 이놈이 하는 짓이 크면 클수록 사내답지 못한 구석이 차츰 보이기 시작하자, 화진더우의 애를 더욱 태운다. 급기야 동네 아는 형이라 동성애와 빠지는 등, 이를 알게 된 죽은 아비의 원혼은 미칠 노릇이다. 내 아들이 '게이'라니 하면서...

그리고 세월이 다시 10년이 흘러 90년대. 이제는 남은 세 딸이 모두 출가한지라 수십 년을 이들을 따라다니며 지켜본 화진더우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 그동안 그저 바라만 보고 안 좋은 모습에 대해서 가열한 욕지거리만 남겼을 뿐, 사실 그가 한 것은 없다. 심지어 죽은 아내 펑황의 원혼도 만나지 못한 채 그는 그렇게 계속 구천을 떠돌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지켜봄이 계속되는 가운데, 두후가 마지막까지 동네 형의 꼬임에 넘어가 매춘을 하다 걸리는 등, 화진더우는 더이상 아들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어디서 소문을 듣고 '저 놈은 내 아들이 아닐거'라는 확신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가족을 수십 년을 돌보며 살아온 고모마저도 나이가 일흔에 가까워져 그녀마저 이제 기력이 쇠잔해지며 이승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한 가족사의 비극적 이야기지만, 통속적인 맛과 처연함까지 삶이 그렇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고모는 화씨네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어떻게든 삶의 끈을 놓치 않으려 한다. 이를 처연하게 바라보는 화진더우는 이젠 고모를 저승으로 부르려 하는데.. 과연 이 늙은 남매는 하늘에서 만났을까? 아니면 남겨진 화씨네 형제들은 또 어떻게 지내게 됐을까? 그런데 결말은 어찌보면 이들이 가열하게 버텨온 가족사처럼, 이 이야기는 사실 끝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왔듯이 말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중국의 격변기를 보냈던 하층민 화씨네의 이야기다. 어미는 이미 자살을 했고, 그 아비마저 홧김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겨진 다섯 아이와 그들을 챙기며 생활고를 버텨내는 고모의 가열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들을 바라보는 망령 화진더우의 넋두리가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그는 애잔하게 비애감에 젖는 감상적인 그런 인물보다는 무언가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다면 매번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자식들을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화자일 뿐이다. 정작 고생이란 고생은 실제 고모 '화진메이'가 다할 정도로. 이렇듯 이 소설은 우리네 삶의 불행과 행복의 대비점과 교차점을 찾으려는 듯 무던히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결국 이들의 가열한 가족사는 비극적 요소로 점철돼 있지만, 그렇다고 심한 비애감이 들 정도로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매 순간의 상황이 절망적인 궁지로 몰리며 때로는 가혹하게 이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애잔하면서도 처연한 웃음이 배어나오는 처량함을 보게 된다. 결국 망령이 된 화진더우를 통해서 처절한 삶에 대한 관조적인 관망, 그 속에서 고모가 겪으며 묻어나는 가열한 인간의 통속적인 삶에 대한 고독까지, 어느 것 하나 이야기는 사실 깔끄장한 요소가 참 많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이 매번 독립적인 에피소드처럼 진행돼 다소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이 소설의 약점이기도 한데, 그래도 쑤퉁만이 그려낸 전형적인 하층민의 생활상은 그만의 더럽고 옹색하고 음울하고 축축하며 꽤 처연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의미가 있다 하겠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쓰디쓴 풍경으로 갈마드는 현실이기에, 그래서 우리네 인생살이가 다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여기 '화진더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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