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러가 좋아
주원 지음, 김택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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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중국 문단의 비주류자 '이단아'라 불리는 한 작가가 있다. 아니 작가를 지칭하기 전에, 아직은 중국문학에 낯선 이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구석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기존의 인기를 나름 구가해온 '위화''쑤퉁'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는 궤를 달리하는 느낌이 다분하다. 중국 작가협회 및 공식 문학상과 완전히 결별하여 탈권력, 탈이데올로기의 글쓰기를 견지해온 '주원'이라는 작가. 사실 강호도 모르는 작가였지만,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된 이 작품 <나는 달러가 좋아>를 통해서 그의 본색과 진면목을 보게 된다. 무엇이 그토록 매 항상 시니컬하고 질퍽하게 서사와 아이러니를 뿌려대는지 무언가 극단을 달리는 고독함까지 보일 정도다. 책은 얇은 편이지만, 이 안에는 5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 바로 작가 '주원'에 대한 자전적인 것들로 그의 스타일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거시기한 내용들이 있는지 간단히 정리해 본다.



먼저, 표제작이기도 한 '나는 달러가 좋다'는 작가 주원의 삶의 방식과 스타일을 알 수 있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제목에서 얼추 느낌이 오듯이 그는 돈을 밝힌다. 아니 돈은 물론 '여자'도 무지 밝힌다. 그래서 그는 여자와 거시기 하는 것을 즐기는 성(性)만능의 쾌락주의자 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날도 어느 창녀와 그짓을 즐기는 와중에 그의 아비가 불쑥 집을 찾아온다. 객지 생활을 하는 두 형제중 막내인 둘째를 찾아보자고. 그러면서 부자는 길을 나서고, 주인공 '나' 즉 주원은 아비와 함께 거리를 배회하며 굶주린 늑대처럼 '성'(性) 이야기를 쏟아낸다. 원조교제 찰나까지 가고 성욕이 매 일어 운동장에 모인 처자들을 감상하고, 극장에서 도우미를 만나고, 결국에 창녀까지 집으로 불러들여 그짓을 할려다 돈 때문에 마는 등, 아주 가관이다. 친구도 아닌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면서 '성'에 대해서 토로하는 주원이 대단할 정도다. 물론 아비는 그런 아들의 성 관념과 처사에 반대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주원은 속물 근성으로 달러를 좋아하는 만큼 성에 대해서도 자유분방한 욕망으로 내달리는 인물임을 보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가 오버랩 되는 게, 정말 '주원'도 만만치 않다. 적랄한 표현보다는 그의 성적 관념이 대단할 정도다. 그의 아비가 "성이란 건 요리처럼 먹어야지 밥처럼 먹으면 안 된다'는 그 주지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빠 그건 아니라고요.. ㅎ

두 번째 이야기 '고도 난징의 두안리', 여기서는 대학시절의 동창녀였던 '두안리'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주원의 여친은 아니고, 그렇다고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두안리는 자신을 위시해서 대학 남자 동창들의 '로망'이었다. 주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매력 만점의 두안리를 건드려서 잤느냐 안 잤느냐가 능력의 관건이 될 정도로 말이다. 그러면서 주원은 그녀를 신비로운 저 편에 두고 그녀의 삶과 인생에 대해서 관조하듯 펼쳐낸다. 어느 누구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홀현히 사라졌다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는 등, 그녀에 대한 사유가 무람없이 전개돼 조금은 사색적인 분위기로 일관한다. 그러면서 그녀가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끝맺고 있는데, 그의 독특한 여성 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는 두안리는 한마디로 제목처럼 '고도'(古都)가 아니었을까..

중국 문단의 이단아 '주원', 다섯 편 모두 그만의 고독한 서사가 묻어있다.

세 번째 이야기 '가난한 자는 죄다 때려눕혀라'는 제목처럼 다소 과격한 이야기다. 가난한 자를 때려 눕히라니, 무슨 심보와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주원의 독특한 사고 방식을 볼 수가 있다. 처음부터 인류 진화 과정에서 양태된 '바퀴'에 대해서 그만의 개똥철학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자전거를 타고 대학 기숙사를 오가던 시절 겪은 경험담을 말한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 낯선 불량배를 만나고 그 와중에 어느 늙은이를 치게 하면서 일은 꼬이고 만다. 깜둥이와 말라깽이, 그 보다 더 마른 말라깽이 그리고 늙은이로 대표되는 이들 군상들에게 제대로 엮이면서 그는 살해 위협까지 받게 된다. 이들의 늙은이가 죽게 되자, 그 목숨값을 내놓으라며 겁박을 당하는데, 돈이 별로 없던 그에게 위기가 닥치면서 그는 궁지로 몰리고, 급기야 친구의 도움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할려고 달려든다. 그는 어떻게 이 위기를 모면했을까? 이 이야기는 다소 폭력적으로 점철된다. 앞선 성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게.. ㅎ

네 번째 이야기 '재교육'은 중국 문화와 시스템에 단죄를 가하는 형식의 이야기로, 국가에 의해서 대학시절 재교육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된 주원과 그의 여친의 이야기다. 이른바 천안문 사태 이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대학이 한시적으로 문을 닫고 재교육 소집을 당했던 그때, 그는 그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전 여친과의 '씨발'을 남발하는 추억담을 내놓으며 국가권력을 대비시켜 나간다. 그래도 그는 끌려갈 뿐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 '파운드, 온스, 고기'는 또 다른 여친과 어느 정육점에 고기를 사러 갔다가 겪은 이야기다. 그 와중에 할머니와 중년남자를 만나 횡설수설하는 모습에다 여친과는 일을 치른 후에도 그의 식탐은 식을 줄 모른다. 고기를 먹고 싶을 정도로..

이렇게 이 다섯 편의 이야기는 '주원'의 색깔을 확연히 드러내는 자전적인 분위기로 일관한다. 어느 중국작가가 이렇게 매 단편을 통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때로는 질퍽하게 쏟아낼 수 있을까? 적어도 강호가 아는 기존의 '위화' '쑤퉁', 그리고 '류전윈'은 그러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만들어낸 질퍽하면서도 풍자와 위트가 서려있는 사실적인 이야기가 있을 뿐, 하지만 주원은 그런 이야기에다 꽤 고독하리만큼 그만의 서사를 펼쳐낸다. 아주 리얼하고 솔직하게.. 그래서 기존의 중국 현대문학이 걷고 견지해온 '엄숙한 문학'의 분위기와는 상반돼, 여기 '나는 달러가 좋아'류 같은 작품은 저급한 색정문학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는 중국 문단의 비주류자 이단아로 주목을 받아오며 때로는 중국정부에 의해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물론 이 조치는 작품이 프랑스에서 '세계소설문화상'을 수상하면서 곧 해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주원'이 견지해온 그만의 문학적 지평은 중국에 아직도 엄존하는 검열의 메카니즘을 초월하는 매력이 있다. 그와 동시에 너무나 솔직해서 부담스럽기까지 한 현실을 향한 아이너리한 시선,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내는 그만의 질퍽한 서사, 여기 다섯 편의 이야기는 짧지만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주원'의 '고독'으로 통한다. 그래서 그가 기존의 '위화'나 '쑤퉁'과는 확실히 다름을 보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일 터. 그나저나 강호도 달러가 좋다. 여자도 좋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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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류진운 지음, 김재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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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의 또 다른 인기 작가이자 신사실주의 기법으로 중국인들의 삶과 인생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류전윈'(劉震云), 기존의 위트와 해학으로 점철된 '위화'나 어떤 풍자와 문학적 수사를 함께 펼치는데 일가견이 있는 '쑤퉁'의 연장선에서, 아니면 색다르게 끌리는 매력 때문에 현재 강호가 읽고 있는 작가가 바로 '류전윈'이다. 이미 '일지계모'를 뜻하는 <닭털 같은 나날>이라는 중편집 3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매력을 봤다면, 이번에 두 번째로 읽게 된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은 긴 호흡으로 달리는 장편소설이다. 보통 300여 페이지에서 더 나아가 600여 페이지 가까운 이 이야기 속에는 중국의 근˙현대사가 숨쉬고 있고, 그 속에서 인민들의 일상과 인생, 대물린 원한과 복수, 그리고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죽음이 매 편마다 펼쳐지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유구한 역사 속에서 관제화되고 고착화 된 인민들 속에 내재된 중국에서 진정한 서민을 가리킬 때 쓰는 말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역사가 여기 이야기에서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공된 것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실상에 가까운 역사라는 점에서 장편소설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의 의미는 깊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가열하게 펼쳐진 '라오바이싱'의 역사는 어떠했는지, 그 이야기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제1부 촌상의 피살 - 민국 초년'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서 '민국 초년'이라 함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쑨원이 중화민국을 세운 1912년 이후 한동안'을 말한다. 그렇기에 시대적 배경은 어느 정도 감이 온다. 20세기 초 서구열강의 외세 속에서 당시 중국도 그리 순탄치 않았는데, 여기 마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갈 뿐이다. 그러면서 여기 어느 한 마촌에 쑨씨네와 리씨네로 대표되는 두 지주 집안이 있다. 저 먼 할아버지대부터 대물린 원한이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와 이들은 그 지역에서 촌장 자리를 두고 서로 음해하며 가열하게 살육전을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쑨라오위엔의 아들이자 촌장 쑨뎬위엔이 목 졸려 죽게 되고, 그 범행은 리라오시의 살인청부라는 게 밝혀지면서 쑨씨는 양아들 '쉬부나가'를 사주해 리라오시를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그 살수 과정에서 놀라서 죽게 된 리라오시. 이어서 물려받은 촌장자리는 리라오시의 아들 '리원나오'가 맡게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비적들에게 죽임을 당하며 다음 촌장자리는 쉬부나가가 잡게 되고, 부촌장은 쑨라오위엔의 조카 쑨마오단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이들 두 집안은 촌장 자리를 놓고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대물린 원한에 방점을 제대로 찍는다. 그 넘의 감투가 무엇이길래.. ㅎ

두 지주 집안의 대물린 원한에서 시작된 이야기, 아주 제대로다.

'제2부 귀신이 오다 -1940년'에서는 세월이 20여 년이 흘러 중국의 안팎이 화약고 상황에서 이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 뒤에 자란 자식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은 촌장 쑨뎬위엔의 아들 '쑨스건'은 팔로군의 중대장으로, 죽은 리원나오의 동생이자 앞으로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인 '리원우'의 아들 '리샤오우'는 국민당 중앙군의 중대장으로, 그리고 한 성질하는 '쑨마오단'은 일본군 앞잡이 경비대 소대장으로 지내며 이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즉 이들의 세 세력을 충돌시키면서 일본군을 소탕하려는 팔로군과 중앙군의 암중모색이 디테일하게 펼쳐진다. 여기에다 부촌장을 오랫동안 해왔던 '루헤이샤오'의 아들이자 비적떼 수장인 '루샤오투'까지 이들 세력과 충돌하면서 수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게 된다. 일본군이 팔로군과 중앙군의 잔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죄도 없던 양민들의 대학살은 물론이요,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한 쑨마오단은 칼로 난도질돼 창자가 다 튀어나와 죽게 되는 등, 여기 '귀신이 오다' 편은 말 그대로 죽음의 귀신이 강림한 듯 정점을 찍는다. 누가 죽고 누가 사느냐는 읽어보면 알터.. ㄷㄷ



'제3부 해방 -1949년'은 장제스의 국민당을 물러나게 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공산당이 집권하는 시절로, 바로 '해방'이라는 위명하에 가열한 '지주 탄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앞선 이야기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몫으로, 지주로 몰린 자와 그들을 탄압하는 이들만이 존재할 뿐, 전면적인 토지 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투쟁대회가 신날하게 그려진다. 여기서 핵심인 두 인물이 나오는데, 이들은 이 이야기의 중반 이후 주인공 격으로 바로 소작농의 아들인 '자오츠웨이''라이허상'이라는 인물이다. 먼저, 득세한 공산당에서 공작원 '자씨'가 나서서 지주 탄압을 주도하지만 시원찮은 탄압으로 뭇매를 맞고, 이어서 온 '판씨'라는 인물이 빈봉단의 단장인 '자오츠웨이'와 부단장인 '라이허상'을 이끌고 지주탄압에 들어간다.

리씨 집안의 대들보 같은 존재인 지주 '리원우'가 어떻게든 이런 상황에서 버티는 가운데, 그를 먼저 탄압해 들어가 결국 그 집안을 숙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조카인 '리칭양'과 '리빙양'은 간신히 도망쳤지만, 이어서 과거 촌장이었던 쉬부다이와 한떼 비적떼 수장이었던 루샤오투까지 비판 대상이 되며 이들도 도망을 친다. 그러면서 한때 중앙군 중대장으로 활약하며 지금은 도망자 신세가 된 '리샤오우'의 잔류군에 합류를 하며 공산당에 맞서기로 한다. 하지만 들이닥친 해방군에 의해서 그들은 모두 전멸하다시피 죽는다. 리빙양만 살아남은 채로, 공산당 해방군의 소탕작전에 그들은 그렇게 죽은 것이다.

'제4부 문화혁명 - 1966년 ~ 1968년' 에서는 60년에 대기근을 일어서고 '4구 타파와 4신 정립' 운동의 기치를 내걸며 마오쩌둥의 업적?중 하나인 '문화대혁명'이라는 파고 아래 설립된 세 개의 사상적인 전투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그들 조직 세력 간에 벌어지는 파벌과 다툼 속에서 죽어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또 보게 되는데, 앞선 두 인물 바로 '자오츠웨이' '라이허상'이 역시 주인공이다. 자오가 만든 전투대는 '악미잔 전투대'고, 라이가 만든 건 '편향호산행 전투대', 그리고 기름 장수를 하다가 마오의 어록을 너무나 잘 외운 재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리후루'가 만든 전투대가 하나 더 있었으니 이름이 꽤 길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마오쩌둥 사상 수호 조반단'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이들 3개의 전투대간의 음모와 배신, 그리고 이합집산을 통해서 전개가 되는데, 마치 위·촉·오로 대표되는 '삼국지'라 보면 편하다. 아니면 어디 무슨 조폭들의 세력 다툼 같기도 한 게, 이들의 물고 물리는 상황이 꽤 드라마틱하게 전개가 된다.

물론 주 세력인 '자오'와 '라이'의 두 파벌 전투대가 서로를 '주전파'라고 몰아세우고 싸우며 전개된다. 이후 '정권 탈취'의 기치를 내세우고 결판을 내기에 이른다. 바로 그 지역의 현 위원회를 접수하겠다는 것인데, 그 와중에 리후루가 이끄는 조반단 파벌이 박쥐처럼 행동하며 정세를 따지고 든다. 결국 한 번의 난투극에서는 자오 측이 승기를 잡았지만, 두 번째 벌어진 탈취 과정에서는 '자오' 측이 무너지며 결국 그 지역의 정권은 '라이허상'에게 넘어가게 된 거. 그런 과정에서 논공행상을 통해서 서로 반목이 생기더니, 두 '웨이'씨에게 자리가 돌아가고,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려도 또 다른 권좌의 이동은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 연대기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노란 꽃'은 죽음의 꽃, 그 속에는 '라오바이싱'의 역사가 생생히 담겨 있다.

이렇게 이 장편소설은 긴 호흡으로 달려온 하나의 가열한 서사적 이야기다. 쑨씨와 리씨로 대표되는 두 지주 집안의 대물린 원한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끝나지 않는 진행형으로 갈무리된다. 그 속에서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날것 그대로의 실상에 가까운 인민들 아니 토속적인 '라오바이싱'의 역사가 내재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도 있듯이 '고향'이라는 어감이 주는 친근함이나 따스함과는 거리가 먼, 언제나 욕설과 폭력과 음모와 배신과 죽음이 난무하는 그곳은 낯선 고향으로 다가오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들이 맞이하게 되는 죽음까지도 낯설기도 한데, 그렇다고 생소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 그러했듯이.. 한마디로 이 소설은 '라오바이싱'의 역사에 희생당한 수많은 이들을 그려낸 죽음의 연대기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제목에서 알 수 있다. 언급된 '노란 꽃'은 중국 민속학 자료에 의하면 '근대에 들어와 중국의 장례 풍속이 서구의 영향을 받아 간소화되면서, 죽은 자와 작별하거나 망령을 추모할 때 왼쪽 가슴에 자그마한 노란 꽃 한 송이를 다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므로 '노란 꽃'이란 '죽음의 꽃'을 말하고, 이 소설의 제목을 '고향 마을 죽음의 연대기'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바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가열하게 다루고 있다. 그 기법은 일정한 역사적 사건과 조건 속에서 우연과 필연을 서로 맞물리게 빚어내며 그 죽음이라는 일상적인 현상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사실주의 작가로 대표되는 류전윈, 그만이 풀어내는 날것 그대로의 '라오바이싱'의 역사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그런 죽음만이 점철된 것은 아니다, 중국 특유의 풍자와 블랙유머, 토속성과 역사성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매력까지 품고 있어 총체적인 재미까지 선사하고 있다. 물론 중심이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과거지사에 얽힌 대물린 원한의 이야기가 있다는 점과 그러면서 그 '라오바이싱'의 역사 속에서 시작된 도미노 같은 죽음의 연대기가 펼쳐지고, 또 그것을 이렇게 손쉽게 드라마틱하게 풀어낸 작품도 드물다. 그래서 '류전윈'의 첫 장편소설 작품인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오래도록 기억이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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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분
쑤퉁 지음, 전수정 옮김 / 아고라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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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기수이자 그 중심에 서 있는 작가 '쑤퉁'이 펼쳐낸 장편소설 '홍분'은 그 제목의 의미처럼 봄처녀가 봄내음을 물씬 풍기는 듯하다. 마치 여성 특유의 분내음으로 마음껏 치장한 이 이야기에는 바로 '여자'들의 삶과 인생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담고 있다. 분명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려내는 여성의 이야기는 섬세하면서도 우아함을, 때로는 질퍽하면서도 깔끄장한 잔인함까지 드러내며 여주인공들을 동전의 양면처럼 담백하게 생생히 그려낸다. 그렇기에 쑤퉁을 여성 소설의 대표 작가라 손꼽기도 하는데, <이혼 지침서>에서 나온 '처첩성군'의 이야기도 그렇고, 여기 <홍분>에서 그려낸 3편의 단편도 바로 '여자'들의 이야기다. 과연 그녀들의 일상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냈는지 잠깐 정리해 보자.



1편 '부녀 생활'은 얼추 제목만 보고선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바로 여자의 3대 이야기인데, 여기서 말하는 '부녀'는 그 부녀가 아닌 한자어로 이 '婦女', 즉 부인과 여자를 지칭하는 통상적인 여성을 뜻하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 이야기가 딱 들어 맞는다. 바로 '씨엔의 이야기'와 '즈의 이야기' 그리고 '씨아오의 이야기'까지,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여자들의 3대 이야기다. 그렇다면 장편으로 다뤄도 부족한 여인네들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여기선 100여 페이지에 짧지만 강렬하면서도 담백하게 담겨 있다. 1930년대 영화배우로 활약할 기회를 놓친 18세의 '씨엔'이 영화사 멍사장에게 이용당하고 아이를 낳아 혼자 기르면서 이들의 인생은 시작된다. 그 애가 바로 '즈'였고, 즈는 그런 엄마 씨엔을 무척 싫어했다. 그러면서 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저우지에'와 결혼을 했지만 평탄지 못한 신혼살림에 힘들어하며 우울증까지 걸린다. 데려다 키운 양녀 '씨아오'는 그런 엄마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샤오우'와 결혼해 산다. 하지만 그녀 또한 삶이 순탄치 않고 매 일상이 불안하고 짜증의 연속이다. 이들 삼대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여자의 운명이 생명의 잉태라면 씨엔도 그렇게 그려진다.

3편의 여자들 이야기, 덧칠하지 않고 일상과 인생을 담백하게 그려내다.

2편 '홍분'여기 표제어와 같은 제목의 이야기다. 바로 여성들의 치장한 맵시나 그 자태를 일컫듯이 바로 1950년대 기녀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대약진운동'이라는 위명하에 노동력 착취와 정신개조가 한창이던 그 시절 중국의 이야기로, 여기 기녀들은 성병을 검사한다는 명목하에 단체로 끌려갔다가 강제적으로 노동 훈련을 하게 된다. 그 중심에 있던 기녀 둘은 바로 '치우이' '샤오어', 하지만 치우이는 그 현장에서 도망쳐 도피생활을 하면서 '라오푸'와 부부행세를 하다가 때려치고 절간에 들어가 비구니가 된다. 그리고 노동 훈련소에 마대 만드는 일로 허송세월했던 샤오어는 그 어려운 노동을 간신히 버텨내고 지낸다. 그리고 그런 정신개조가 모두 끝났을 때 사회로 나온 그녀가 이번엔 라오푸와 결혼을 하게 된다. 지주 계급으로 몰려 한순간에 몰락한 라오푸 집안에서는 어디서 창녀를 끌어들여 결혼하느냐고 난리지만, 이들은 굴하지 않고 결혼해 산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요 어려워진 살림에 남편 라오푸가 회사 돈을 횡령해 쓰다가 총살 당하고, 샤오어마저 떠나면서 그들에게 남겨진 아이는 치우이가 키우며 갈무리된다. 물론 그 아이는 치우이를 엄마라 부른다.

3편 '또 다른 부녀생활' 편은 앞선 1편과 같은 여성들의 이야기인데, 여기는 3대가 아닌 바로 '자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찌엔샤오쩐' '찌엔쌰오펀'으로 불리는 '찌엔'자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이 두 자매는 힘들게 살지만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녀들 아버지가 일궈낸 간장 가게가 국영으로 넘어갔지만 그 가게 2층에서 살아온 거. 그러면서 간장 가게에서 일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들 나이가 솔찮이 된 아줌씨들도 '리메이씨엔', '항쑤어위', '꾸야시엔'까지 이들 셋은 서로 반목하고 싸우는 등 제대로다. 특히 항쑤어위가 공격 대상이 되는데, 그녀의 화냥년 기질이 결국 화근이 돼 남편 송씨에게 죽는 참극이 벌어진다. 한편 찌엔 자매는 아래 간장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무관하게 '방콕' 인생처럼 사는데, 특히 동생인 샤오펀은 여리고 남자도 모르는 쑥맥으로 나와 까칠한 언니 샤오쩐에게 매 혼나기 일쑤다. 이 집안 내력이 그렇기 때문인데, 하지만 샤오펀은 꾸야시엔이 중매로 소개해 준 남자와 결혼까지 하게 되고, 이를 못마땅해하며 점점 정신병을 앓더니 언니 샤오쩐은 그로테스크하게 2층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여기 세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여성들 즉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그렇기에 은근히 따스한 시선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여기 이야기는 소위 뷰피풀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질퍽한 것도 아니다. 1편의 부녀생활을 보듯 여성 3대의 이야기지만, 이들 여자는 서로 보듬고 도와주는 존재가 아닌, 서로가 걸리적거리는 존재로써 대한다. 오로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영위해 나가는데만 신경을 쓴다. 하지만 2편 '홍분'은 두 기녀를 통해서 서로 돕고 의지하는 그런 관계 설정으로 여자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면서 한 남자를 두고 결혼까지 한 그녀들의 상황을 묘사하며 사회적인 약자로 내몰린 여자들을 그려낸다. 3편은 피는 같지만 성정이 전혀 다른 두 자매와 그런 자매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간장 가게 세 아줌마의 반목을 통해서 여자들의 일상을 담백하게 다루고 있다.

이렇듯 간단히 보더라도 여기 3편의 이야기들은 그 제목의 의미처럼 여성 소설로 대표되지만 여기 이야기 속 여성들은 그렇게 착하거나 가슴을 울리듯 따스하지는 않다. 매우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편협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천박하기도 한 모습들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러면서 여기 이야기 속 여주인공들은 휘두를 만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분위기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몰리며 문화적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천생의 약자들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쑤퉁'의 '홍분'은 꽤 와닿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마치 공주병에 빠진 듯한 환상의 이야기가 아닌 결코 우호적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반감은 물론, 결국 그것을 극복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허위허위대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면서 그 지점에서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과 인생을 만나게 된다. 비록 아름답지는 않지만, 죽지 못해 사는 여인들의 이야기야말로 우리네 인생살이가 아닌가 싶다. 역시 쑤퉁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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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쑤퉁 지음, 김재영 옮김 / 비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여기 중국 최초의 여황제로 잘 알려진 '측천무후'에 관한 역사소설 한 편이 있다. 잘 알다시피 무측천에 대한 평가는 현세에도 많이 회자될 정도로, 중국사에 아니 동양사에 있어서 간단하게 말하면 임팩트한 여걸 중 하나로 손꼽는다. 그래서 여황제 무측천과 관련된 이야기는 책이나 드라마 등으로 발현이 돼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제공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이 역사소설은 여황제 무측천에 대한 한 편의 대서사시와 같다. 바로 중국 현대문학의 기수이자 그 중심에 서 있는 '쑤퉁'이 그려낸 것으로, 지난하고 질퍽한 가족사든지 잔혹한 청춘사든지 여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 필력 만큼이나 여기서 '무측천'은 새롭게 환생하듯 눈앞에 오롯이 살아난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역사로 빠져드는 재미는 물론 무측천만의 고뇌와 정치력을 엿볼 수가 있다. 특히 그녀의 자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눈에 띄는데, 그렇다면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어떠했는지 이 역사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먼저 이 역사소설은 보통의 위인들의 일대기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는데 비해서, 조금은 독특한 방식을 택한다. 물론 이것도 시간순으로 진행이 되긴 하지만, 측천무후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럿이 존재한다. 즉 화자로써 두는 상대가 바로 태자 홍, 태자 현과 단 등 그녀의 아들들이 어미를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을 펼치며 무측천을 관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의 공포정치와 막후정치를 논하며 여기 아들의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데, 이 이야기가 꽤 쏠쏠하다. 특히 장남 태자 홍이 어미를 바라보는 시선의 몰입감은 최고조로, 그런 점에서 '쑤퉁'의 '측천무후'는 색다른 역사적 재미를 선사한다. 

네 명의 태자들 시선이 묻어나는 무측천의 삶과 인생의 서사 '측천무후'

먼저 1장 '재인 무조'에서는 형주도독 '무사확'의 딸로 열 네살 '무미랑'이 미모와 글재주를 지니고 당태종 정관 15년에 궁궐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이다. 즉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것으로, 역사의 기록처럼 당태종의 시녀로 들어왔지만, 그 10여 년간 승은을 제대로 입기는커녕 태종 사후에 비구니로 전락해 감업사로 들어간 그녀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그 절간에서 2년을 썩게 되는데, 어찌보면 '순장'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하지만 태종 말년 그의 아들 이치(고종)와 눈이 맞어 화장실에서 거하게 첫 운우지정을 나눈 후, 고종이 즉위하고서야 그녀는 궁궐로 다시 들어오게 돼 '소의' 신분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2장 '태자 홍'편에서 재미나게 펼쳐지는데, 그것은 고종의 두 부인인 왕황후와 소숙비의 암투가 빚어낸 것으로 왕황후가 소숙비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무소의를 끌어들인 거. 하지만 이게 화근이 돼 고종은 더욱 무소의에 빠져들게 되고, 두 여자는 고종에게 멀어져 무소의의 간계로 결국 냉궁에 갇혀 처참하게 죽게 된다. 이때 장남 이홍이 어릴적 기억을 되살리며 들은 풍문으로 자신의 어미 무측천의 그런 궁궐암투를 그리는데, 한마디로 '무섭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어미가 무섭도록 싫고 조심스러웠는데, 결국 그는 합벽궁 연회장에서 독살당한 채 생을 마감한다. 그게 어미의 짓인지 몰라도, 어쨌든 태자 홍은 그렇게 정적처럼 제거되고 만다.

3장 '소의 무조'편은 제목 그대로 소의 시절의 이야기로, 황후가 되기 전에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왕황후와 소숙비 둘을 제거하며 몰락시키는 이야기다. 앞편과 이야기는 중복되지만 정말 무서운 '무소의'의 권력을 보게 된다. 고종을 제대로 구워삶은 것인데, 여태후 저리가랄 정도다. 그리고 무조는 드디어 황후로 등극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황후로써 이야기가 펼쳐지나 싶지만, 4장 '태자 현'편을 통해서 독살로 죽은 '태자 홍'처럼 태자 현이 바라보는 어미 무측천의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태자 현은 무측천의 소생이 아닌 무측천의 언니 한국부인의 소생이 아닌가 싶어 홍은 계속 그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 그러면서 모후와 대립각을 많이 세우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러는 가운데 현은 몸종 조도생과 동성애에 빠지고, 정간대부 명숭검을 척살하고, 동궁의 모반사건에 연루되는 간계에 빠져 폐서인으로 강등돼 유배당하고 만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자결하며 생을 마감해 옹왕에 추서된다. 그마저도 태자 홍처럼 현도 그렇게 물러난 거.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어미다.

5장 '천후 무조'는 제목처럼 측천무후의 전성시대를 그리고 있다. 다만 그전에 고종이 죽고 나서 태자 이철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중종'이다. 하지만 이철도 어미의 레이더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경우엔 자신의 장인을 재상으로 앉히려다 44일만에 권좌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권좌에 오른 막내아들 이단, 즉 그가 바로 '예종'이다. 그는 역사상 어머니의 그늘에 가린 허수아비 왕으로 각인된 인물로, 무측천의 섭정이 예종시대 펼쳐진다. 특히 이 시대에는 이적의 손자인 이경업의 반란이 있어 골칫거리였는데, 여기에 재상 배염이 모반죄로 연루돼 참형을 당하게 되고, 우리의 신문고 제도처럼 거대한 구리상자가 만들어져 이게 밀고함으로 악용이 되면서 이씨 황족들이 씨가 마르게 몰살되는 참극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무측천이 어디서 굴러먹은 '풍소보'라는 놈을 끌어들여 남창에 빠지는데 그는 나중에 '설회의'로 이름이 바꿔 절로 들어간다. 그리고 대표적인 혹리전(酷吏傳)의 대명사로 '삭원례, 내준신, 주흥'이라는 세 명의 권신이 등장에 무측천을 도와 공포정치를 펼치니 바야흐로 무측천의 전성시대인 셈이다.

6장 '예종'편은 권좌에 잠시 있다 내려온 중종에 이어 오른 예종의 이야기인데, 이때 무측천의 섭정이 위세가 있던지라, 그는 말 그대로 허수아비 왕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권좌에서 물러난 중종 이철과의 닭싸움과 관련된 우애가 나오고, 시인이자 문인으로 유명했던 '왕발'과의 짧았던 교분을 언급하며 예종의 성정을 대변한다. 그렇게 어미의 위세 속에서 그래도 천자는 예종인데, 결국 그는 모후와 세번 만에 양위를 받게 되며 다시 권좌를 찾게 된다. 하지만 이미 정권은 무측천 중심으로 흐르고 있었다. 7장 '여황' 편에서 그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무측천이 당을 버리고 주(周)나라를 세우며 권력 말년이 그려지는데, 금지옥엽 외동딸 태평공주가 남편과 사별 후 무측천은 그의 조카 무유기를 끌어들여 재혼을 시키고, 혹리전의 대표 3인방 중 내준신이 삭원례와 주흥을 내사해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그마저도 명신 이소덕과 참수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한편 무측천의 남창 설회의도 말년에 궁녀들에게 둘러싸여 죽게되는 등, 이 시대에 무측천과 함께 한 권신들이 토사구팽처럼 거의 다 죽게 된다. 그러면서 여황제 무측천은 인생 말년에 애완소년 두 명인 장창종 장역지 두 형제를 끌어들여 회춘을 하시고, 황사(皇嗣, 황제의 후계자)인 황태자를 세우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 쫓아냈던 중종 이철을 불러들이니 다시 중종이 권좌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40대가 된 중종은 아직도 어미를 무서워해 자식까지 자살케 만든 무력한 인물이었다. 결국 장씨 형제의 무소불위 권력을 두고못한 문무백관은 재상 적인걸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 무측천 마저도 종이호랑이가 다 된 그 상황에서 원로대신 '장간지'가 나서 역성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장씨 형제를 척살하고 무측천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한다. 그러면서 15년간 지속된 무측천의 세상인 대주 제국은 막을 내려 다시 대당이 세워지고, 이제 70이 넘은 무측천은 상양궁에서 말년을 쓸쓸히 보내며 78살로 붕어하고 만다. 그녀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자단나무 공 하나를 입에 문 채로.



'쑤퉁'의 색깔이 묻어나는 '측천무후'의 삶과 인생에 대한 대서사

이렇게 이 역사소설은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다. 물론 소설이기에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가 돼 있지만, 역사적 사실들의 씨낱들을 제대로 열거하고 배치시켜 그녀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거. 특히 독특한 것은 앞서서 언급했지만, 그녀만의 시선이 아닌 그녀의 아들들인 태자 홍과 현, 그리고 태자 이철(중종)과 단(예종)의 시선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복기할 필요가 있다. 즉 이들 네 명이 바라본 어미로써의 모습과 황제로써의 모습 등이 중첩되거나 새롭게 각인돼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측천 스스로의 이야기도 있고, 특히 주나라를 건국 후 그녀만의 유아독존식으로 컽으로는 성현처럼 굴지만 혹리로 대표되는 세 명의 권신을 통한 공포정치와 시녀 상관완아와의 관계와 남창을 즐겨했던 것 등이 펼쳐진 거. 하지만 이런 안 좋은 모습 뒤에도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여 제국의 강대함을 알리고, 신하들의 직언을 과감히 받아들인 도량이 넓은 군주였다는 평가가 있듯이, 그녀만의 색깔이 확실한 여황제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쑤퉁'에 의해서 새롭게 각색되듯 태어났고, 단순히 그녀의 일대기적인 에피소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 한 여자의 인생사를 역사적 기록에 입각해 그려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측천무후의 대담한 행보와 파란만장한 생애에 주목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역사 소설을 창조낸 쑤퉁만의 측천무후가 아닌가 싶다. 그것의 중심에는 예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직접 황제가 되어 나라를 다스린 여황제 무측천이 있었지만, 그녀가 병이 든 틈을 타 일으킨 신하들의 반란으로 황제 자리를 내놓고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이 소설은 그녀의 삶을 마지막까지 오롯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쑤퉁의 시선으로 그려낸 무측천의 이야기는 생을 단순히 따라가며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점을 중첩시켰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할 수 있다.

특히 생모인 측천무후에 손에 의해 비극적인 삶을 마쳐야 했던 황태자들인 태자 홍과 현, 그리고 예종의 시선을 무측천 삶의 여정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함께 그려내고 있는 점은 분명 색다른 재미와 역사드라마를 보듯 제대로 펼쳐내고 있다. 물론 이것도 드라마적으로 각색돼 어찌보면 수많은 역사소설에 지나지 않을 지 모른다. 하지만 황궁의 높고 붉은 담장 안 열네 살 궁녀 미랑에서 중국 천하를 호령하는 여황제 무측천이 되기까지 한 편의 서사시를 만들어낸 쑤퉁의 '측천후무', 13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그녀를 이렇게 생생히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쑤퉁'의 역사소설은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만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여기 이야기말로 한 여자의 운명에 대한 서사이자, 가뭇없는 우리네 인생에 대한 관조적 상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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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탐정 정약용 2
이수광 지음 / 산호와진주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역사소설은 팩션 역사서에 일가견이 있는 '이수광' 저자의 '조선 명탐정 정약용' 그 두 번째 이야기다. 한 권이 아닌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정약용이 살인사건을 집대성한 '흠흠신서'를 기반으로 쓴 조선시대의 미스테리한 살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조선판 '살인의 추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미 1권을 정리하면서 정약용이 정조시대 말년 '형조참의'로 재직하던 시절, 임팩트하고 흥미로운 8편의 이야기를 나름 살펴보았다.

의문의 살인사건부터 해서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치정극과 정조시대 어우동이라 할 수 있는 '정삼매'의 전방위적 스캔들 같은 음행에 관련된 내용까지 있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정조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중점으로 정조를 시해하려는 역도들의 무리를 그리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번 2권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의 방점을 찍으며 아주 재미난 역사 드라마처럼 전개를 시켰으니, 이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물론 여기서도 살인 사건을 계속 다루고 있지만, 중반 이후에는 정조의 독살과 정조 사후 정약용의 유배 경력?을 소상히 밝히며 그의 생애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



제9화 피를 부르는 살인마(경기도 죽산 이보부 살인사건) 편은 한낱 포졸에 불과한 자가 관련된 범인을 기찰하는 과정에서 사고로 사람을 죽이게 된 사건, 그 포졸의 업무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심리가 펼쳐진다. 우부승지 이정행에 한방 먹은 정약용의 모습이 그려진다. 제10화 법이란 공평한 것이다(경상도 영해 신사량 옥사사건) 편은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간통 사실로 두 연놈들 대신에 이들을 중매선 다른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다. 그런 가운데 정약용과 같이 일하던 종사관 이여철의 부인이 참혹한 사체로 발견돼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제11화 부부로 산다는 것(황해도 신천의 백동 옥사사건) 편은 부인이 외간남자와 간통해 남편이 부인을 때려 죽였지만, 정작 이건 모함으로 밝혀지고 그러는 사이 정조를 향한 역모의 분위기가 풀풀 나기 시작한다.

제12화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면 사형이다(한성부 김득복 옥사사건) 편은 제목의 의미처럼 신분제도가 철저했던 조선시대 사회에서 감히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이에 이런 법에 대해서 정조의 가열한 심판을 통해서 그 또한 반역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내비친다. 제13화 임산부 살인사건(전라도 만경 강도진 옥사사건) 편은 부인의 음행을 차마 못보고 죽게 했지만 그녀는 임산부였다. 제14화 사랑이 너무 뜨거워 정염으로 죽다(전라도 나주 정사사건) 편은 남녀간의 음행과 음욕에 대한 가열한 이야기다. 말 그대로 이 한몸 불사라 거시기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음이다. 바로 이어서 제15화 속곳이 헐거운 여자(평안도 용강의 인방신 옥사사건)편도 그 제목처럼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정조 암살에 대한 반역 도당의 이야기가 소상히 펼쳐진다. 제16화 피비린내 나는 궁중 암투(정조 독살사건) 편을 통해서 그 반역의 수괴인 우부승지 이정행 일파의 음모를 간파해 용호영을 통해서 척살하고, 이정행과 한통속 봉보부인 성씨도 그의 손에 의해서 죽는다. 하지만 그 배후세력의 거두 정순대비 만큼은 정약용과 밀약을 통해서 그 역모 사건에서 비켜가게 되고, 결국 정조는 1800년 승하하게 된다. 우선 여기서는 극적 재미로 독살설로 다루었다는 거. 제17화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정약용 귀양사건) 편은 정조 사후 노론이 득세하며 서학을 옹호하던 남인들이 대거 숙청되고, 그 과정에서 정약용의 파직과 유배지 이력이 소상히 나오게 된다.

제18화 여리의 눈물(정약용이 귀양에서 돌아오다) 편은 남장여자로 정약용 켵에서 영원히 남고자 했던 가냘픈 미소녀 '여리'와 정약용의 애틋한? 로맨스가 펼쳐진다. 유배지까지 찾아오려는 여리를 두고 떠난 이 남자의 정념이 쏟아진다. 마지막 제19화 거인이 생의 문을 닫다(봉산현 임산부 살인사건) 편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예전에 겪었던 하나의 살인사건을 떠올려 얘기하며 이젠 다 늙어버린 정약용의 마지막 생애를 그린다. 둘째 아들 학연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부인 홍씨와 회혼일(결혼 60주년)일인 1836년 2월 22일 향년 75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2권은 살인사건의 심리와 함께, 정조시대 말년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

이렇듯 2권에 담긴 내용들은 1권과 같이 각 에피소드마다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초점을 맞추고는 있다. 남녀간에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은 물론 주로 간음과 음행이 주를 이루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정조시대 말년의 상황들 즉, 정조의 고뇌와 역모에 관련돼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그렇기에 재미는 물론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아 컽으로는 살인사건을 심리하고 재판의 모양새를 띄지만, 내면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역모를 조사하고 밝히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눈길을 끌기도 하는데, 우부승지 이정행이 그간에 저질렀던 만행부터 해서 봉보부인 성씨와 관련된 일화, 그리고 영조의 계비이자 정조에게 할머니가 되는 정순대비의 정치적 역량과 주변의 막후세력까지 나름 소상히 펼쳐내고 있다.

그러면서 정조 사후에 노론 세력의 득세로 남인들이 대거 몰락하고, 천주교 서학이 탄압을 받으면서 정약용의 형 약현과 약전 등이 옥고를 치르고 유배를 가는 등, 그 시대에 서학에 대한 철퇴를 그려낸다. 결국 정약용은 장기현으로 유배를 갔고, 몇 달되지 않아 신유사옥이 일어나 다시 한양으로 압송돼 조카사위인 '황사영백서 사건'으로 옥사가 더욱 커져 의금부에서 문초당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가는 등, 그의 인생 말년이 순탄치 않았음을 짦은 시놉처럼 정리해 준다. 물론 순조가 친정을 하면서 유배길에서 풀려난 그지만 그때 그는 이미 늙어버렸다.

이렇게 이 한 편의 역사소설은 꽤 흥미롭게 '조선 명탐정'이란 수식어로 정약용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형조참의'로 재직하던 시절을 참고로, 실제 벌어졌던 조선시대 미스테리한 살인사건을 통해서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정조시대의 막후정치와 그와 관련된 역모의 그림들을 소상히 그려내며 역사 팩션으로써 재미를 한층 배가시켰다. 물론 남장여자 '여리'와 애틋한 로맨스까지 그려내며 문학적으로도 접근을 했는데, 아무튼 재미는 물론 정조시대 역모와 관련된 팩션으로써 꽤 흥미를 유발한 '조선 명탐정 정약용' 2권이었다. 물론 1권과 함께 이야기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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