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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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튀는 행동을 삼가고 평준화된 생각에 순응하며 그럭저럭 지내는 삶을 표준화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통념을 답습하는데 익숙하다. 혁신 교육을 주창하면서도 우리 교육은 획일화된 정량평가로 성취를 높이는 일에 주안점을 두어왔다. 공식을 암기하여 5개 중에 정답 1개를 맞히는 문제풀이 중심의 정답 찾기 교육에서 벗어나 자기 논리를 정립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익숙지 않은 길이더라도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 속에 지적 호기심은 앎의 지평을 넓혀주는 욕망을 충족하는 과정으로 귀결될 것이다.

 

  통찰력 있는 생각으로 문제를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논리를 펴 자신만의 관점을 새롭게 하는 교육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존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독서를 통한 사고력 신장과 어휘력 향상은 삶을 사유하며 철학하는 교육과도 연계된다. 숱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의사결정을 한 뒤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 걸음은 삶의 궤적으로 개인의 역사를 이루고 나가서는 인류의 역사로 모아진다. 계획을 수립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노력이 앞서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정해진 시스템을 따라야할 때가 많았음을 경험으로 알아차린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원시부족사회 때 유용했던 전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선택하여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확신이 들면 의사를 결정하고 결정한 대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의사결정의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70% 확신이 들면 의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실행 중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는 게 나은 결정을 위한 방편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나이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은 떨어지고 자기 객관화와 멀어지는 게 보편적이다. 자신의 신념을 회의하고 의심하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세상을 배우려는 가운데 자기 객관화는 정례화 될 것이다.

  정해진 길만을 걸으며 난관에 직면했을 때 슬기롭게 헤쳐 나가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탐험가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집단적 선택을 따르며 안전성을 취하기보다는 집단적 선택의 범주를 이탈하여 시도하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며 놓쳐서는 안 될 의사결정을 끌어내는 사람으로 결정 장애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습관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기존의 지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고침으로 습관 뇌 영역을 관장하여 갈 수 있는데 삶의 진폭을 넓혀가는 일은 일상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오지 않은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보다는 현재적 삶을 사는데 필요한 즐거움을 발견하며 지낼 때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하나의 사상이나 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생각의 주체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세상과 연결하는 경험을 즐기며 창의적인 인간을 지향하는 호모루덴스로 살다가고 싶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드넓은 세상과 호흡하며 살아가는데 여행과 독서는 일상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남과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할 때 창의성은 통찰력 있는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여 두었는가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시대의 성쇠를 좌우할 수 있다니 판단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인공지능을 도구로써 잘 이용하는 게 필요하다. 나와 유사한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회합을 다지고 인터넷 연결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에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능숙하게 활용하는 일이 절실하다.

 

 

  뇌 과학을 연구하는 저는 신경과학적으로 뇌는 체중의 2%를 차지하지만 에너지의 23%를 쓴다고 한다. 뇌를 쓰면서 사는 일은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셈인데 뇌의 인지적 에너지가 충만할 때를 생각하여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게 우선이다. 일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만지고, 책을 읽다 말고 영상에 빠져드는 경우 등을 흔히 겪으면서 남들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서 나만의 지도를 그리고 잘 살고 있는지 물어본다.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고 생각의 주체로 서는 이들과 협업함으로써 집단 지성의 긍정성을 확인하고 공유해 갈 때 자기 객관화와 혁신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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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주 세라 - 어린 시절 읽던 소공녀의 현대적 이름 걸 클래식 컬렉션 1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오현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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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가 산란을 위해 강물을 거슬러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지난시간들에 새겨진 추억은 아련한 그리움을 부른다. 구멍 난 신발에 해진 옷을 입고 지내면서도 명작만화로 나온 소공녀를 보면서 힘들고 지치는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 믿었다. 결핍으로 궁색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 일은 자존감 있게 생활하는 행태로 모아졌다. 외로움을 달래줄 피붙이 같은 인형 에밀리에게 말을 걸며 무정물에게 감정을 불어넣는 상상력이 풍부한 세라는 비루한 현실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극복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며 인도에서 풍족하게 살던 세라는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영국으로 건너와 민친 여학교에 입학한다. 민친 교장은 똑똑하고 야무진 세라가 풍부한 상상력으로 시야를 넓히는 이야기가 거슬리지만 그녀가 재력가의 딸임을 알고 학교 전시용으로 이용할 생각에 특별대우를 해준다. 교장의 속물적인 행동을 의아해하는 학생들도 타인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세라의 배려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많은 일이 우연하게 일어나.’(54)

지금껏 자신에게 근사한 일들이 많이 생긴 것,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아빠의 존재도 우연으로 돌리며 세라는 가진 것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었다. 심성은 곱지만 두뇌 회전이 더딘 아이들에게 놀림 받는 어민가드의 친구가 되어 그녀의 프랑스어 공부를 도와주었고, 엄마가 없는 응석받이 로티를 수양딸로 삼아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세라는 모두가 멸시하는 하녀 베티에게 음식을 나눠주었고, 막일을 수행하느라 힘든 베티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영특한 세라는 자신을 시샘하던 라비니아의 비아냥거림에도 휘둘리지 않는 의연함으로 민친 학교의 학생으로 신임을 얻어갔다.

 

 

세라의 열한 살 생일 잔칫날, 전시용 학생 세라의 후원자 크루 대위의 사망 소식을 들은 민친 교장은 장삿속을 드러냈다. 수백 파운드를 들여 세라의 생일파티를 열어준 민친 교장은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분개하며 무일푼 비렁뱅이로 전락한 세라를 부리면서 이용할 생각을 구체화했다. 궂은일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일어난 삶의 변화는 가혹하였다. 시련에 좋은 점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 하는 어먼가드에게,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우리가 모르는 좋은 점이 있을 거야.’(145)

라며 세라는 다락방에서 생활하며 끼니를 걸러도 불평하지 않고 심부름을 다녔고, 벌로 일을 더 시켜도 반항하지 않고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다락방 창가에서 멋진 저녁놀을 보며 무언가 낯선 일이 벌어질 때처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 순간을 즐기려는 긍정성을 드러냈다.

처음엔 저도 학생이었어요. 그것도 특실 기숙생이요. 그런데 지금은…‥.’(304)

기숙학교 잔심부름을 하면서 춥고 배고픈 날들에도 공주처럼 행동하려고 애썼던 세라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전 공주처럼 행동하려고 애썼어요.’(309)

인도에서 이사 온 커다란 덩치에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큰 가족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세라는 상상의 날개를 펴며 혹독한 겨울을 견뎌 나갔다.

 

만약 내가 공주라면, 내가 공주라면 말이야. 공주 자리에서 쫓겨나 가진 게 없을 때에도, 나보다 더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을 만나면, 그들과 늘 함께 나눠야 해. 언제나 그래야 해.’(217)

배고픔을 감내하며 자신보다 더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갓 구운 빵을 건넸다. 세라는 굶주린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고 절망에서 스스로를 구해내려고 숱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추운 겨울 누추하고 옹색한 다락방에 거의 매일 새로운 무엇이 다락방에 놓이는 일이 벌어졌다. 갖가지 신기하고 값진 물건들이 가득한 방으로 변모한 다락방은 마법을 부린 듯 상상 속의 일들이 현실화되었다. 이웃인 람다스와 캐리스퍼드 씨가 착하고 상냥한 세라를 돕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이벤트로 마법이 나날이 아름다운 삶이 펼쳐졌다.

 

불운과 행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크루 대위의 동업자이자 친구인 캐리스포드 씨가 간절히 찾는 아이가 세라였음이 밝혀졌다. 세라 아버지의 판단과는 달리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으로 큰 수익을 올린 캐리스포드 씨는 세라에게 그 몫을 남겼다. 아이의 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가 아이가 무일푼 되었을 때 세라를 함부로 대해온 경박함을 질타하는 어밀리아의 말은 민친 교장의 노기를 돋우었다.

 

큰돈을 받게 된 세라를 놓칠세라 민친 학교 학생으로 복귀하기를 바랐지만 캐리스포드 씨는 교장의 청을 거절하였다. 마법 같은 일이 현실이 되어 지금과는 사뭇 다른 가족과 생활하며 새로운 꿈을 꾸는 세라는 최악의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삶의 의지로 힘든 시간을 다스렸다. 빵 집 앞에서 자신보다 더 굶주린 소녀에게 갓 구운 빵을 건네 허기를 면하게 해준 세라는 앤을 데려와 함께 생활할 정도로 타인을 돕고 배려하며 지친 영혼을 구원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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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문선희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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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가 들끓던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개 메리가 집 밖을 나갔다 어스름 저녁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온 가족은 메리를 목청껏 부르며 찾아 나섰다. 아랫마을 진동 댁이 메리가 자기 집 뒤란에 사지를 뻗고 누워 있는데 이미 묵은 것 같다고 했다. 식량을 축내는 쥐를 잡기 위해 놓은 쥐약을 먹고 목숨을 잃은 메리를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통곡하는 소리는 사립문에 이르러서야 그쳤다. 식구처럼 지내던 개를 땅에 묻고 온 뒤 며칠은 상실감으로 밥도 뜨는 둥 마는 둥하며 아픈 마음을 달래야 했다.

 

   말 못하는 짐승도 사지로 끌려 갈 때는 죽지 않으려 버둥거리며 울부짖는 광경은 어디에서든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구제역이 발생한 한우농가 반경 500m 내에 있는 농가 12곳은 혈청검사 결과 모두 구제역 감염항체(NSP)가 음성으로 나온 것이 맞지만, 농가 세 곳에서 백신을 맞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500m 이내 농가에 대해 살처분 결정이 됐다,’

   안성시 관계자는 NSP 음성 판정이 나왔지만,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이 마을 농가 9곳의 우제류 740여두를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경기 신문 2019.01.31.>

엊저녁까지도 여물을 잘 먹은 소를 사지로 몰아넣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진 주인은 허탈감을 드러냈다. 국가는 규칙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국민들은 기르던 가축들을 산 채로 땅 속에 묻어야 했다. 깊게 파 놓은 구덩이 속으로 돼지들을 굴삭기로 밀어 넣을 때, 돼지들은 죽고 싶지 않겠다고 울부짖으며 절규하는 듯했다.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도덕성을 알 수 있다.’

비폭력 평화주의자인 간디의 말은 명분을 앞세워 생명체의 존엄성을 짓밟아서는 안 됨을 일깨운다. 저자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짐승들을 매몰한 지 3년 후 그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전시했다. 사진 옆에 살처분된 닭과 오리, 돼지 등의 숫자를 실어 통렬한 아픔과 강한 죄책감은 비정한 인간들의 이기심과 맞닥뜨리는 순간 증폭된다.

 

   농식품부는 대학교수 및 전문가 등이 참석한 중앙가축방역협의회를 개최하여, 발생농장을 중심으로 반경 500m 내의 우제류를 살처분키로 결정한 뒤 이를 시행하였다. 산 채로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살처분 용역의 굴삭기 끝으로 터져 나오는 돼지들의 비명은 참혹한 죽음을 예견하는 절규로 비정한 인간성을 향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평생 오리를 키워 온 인터뷰이의 아버지는 정부의 명령대로 오이를 살처분한 충격으로 치매에 걸려 얼마 못 가 이승을 뜨고 말았다는 자식의 목소리는 떨렸다. 전시장을 찾은 군인은 군대에 있을 때 살처분 현장에 투입돼 살아있는 돼지들을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은 뒤 지금껏 악몽에 시달리는 형벌이 지속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동물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을 담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죄책감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구제역, 조류독감 등의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법규에 따라 수많은 동물들이 강제적으로 대량 살처분되었다. 수천만의 동물들이 고통 속에 죽어 갔고, 수백만의 사람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침출수 유출로 지하수와 토양 오염 등의 추가적인 문제도 발생했다. 극단적인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는지 물음을 던져 본다. 살처분이란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공장식 사육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내기 위한 현대의 공장형 가축 사육 방식이 사람과 동물의 공통 전염병이 나타난 근본 원인'이라며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지적한다. 거의 움직일 수 없는 비좁은 공간 안에서 혹사당하는 가축들을 줄여가는 길에 소비자들도 함께 해 거대 담론을 형성하여 갈 수 있길 바란다. 풀밭이나 야외의 넓은 땅을 밟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동물 복지를 향한 길에 작은 뜻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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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글.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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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보이는 대로 어림잡아 판단하여 서로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단면만 보지 않고 다방면으로 볼 줄 아는 힘은 여러 경험과 노력을 통해 길러진다. 파란나비 피터는 반쪽붉은나비를 보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싶다 하니 상대는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은 피터는 창문을 통해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숲속을 지나다 고슴도치를 만났다. 고슴도치는 몸의 가시를 비웃는 친구들 때문에 아플 때도 있지만 이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사랑 받을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가려 했다.

 

 

  반쪽붉은나비를 만난 피터는 마음속 깊이 들어가 그곳에 피어있는 꽃을 따먹어야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꽃을 따 먹자 붉은 빛이 감도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마침내 반쪽붉은나비가 되었다. 피터는 아름다운 나비를 자랑하고 싶어 길을 나섰으나 친구의 시큰둥한 반응에 친구가 잘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줄 친구는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아차려야 했다.

  ‘높이를 갖고 싶다고 모두들 높은 곳만 기웃거리는데 헛수고일 뿐이야. 아가도 말했지만 높이를 가지려면 먼저 깊이를 고민해야 돼. 깊이를 가지려면 여러 번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 65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려고 아득바득 올라서려는 욕망에 갇혀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깊이를 갖고 싶다면 높이에 대한 열망을 내려놓고 먼저 잠재적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어둠의 시간을 견디며 당당히 피어나는 들꽃처럼 살아가는 일의 존엄함을 일깨운다.

  아름다운 날개로 곳곳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며 아픔은 더했고, 다른 나비들의 혹평에 싸움을 하며 파란나비의 날개를 찢어놓기도 했던 피터는 위로 받고 싶은 대상을 찾아 나섰다. 키 큰 나무를 만나 불행의 원인은 나와 다른 것과의 비교에 있음을 직시하고 아픔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 자리에서 성장을 위한 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웠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문제를 짚어주고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주는 친구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키 큰 나무의 말은 아픔을 떠안고 넘어설 힘을 실어준다.

 

  고정관념의 성에 싸여 현상 이면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한 채 독단에 빠지는 경우를 대면할 때마다 참혹한 슬픔을 이해하고 일어서는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침묵한 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욕망이나 이중성을 함부로 깔보지 말라는 표범나비의 말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욕망에 기인함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갈은 꼬리 끝에 독을 만들어 자신을 지켜 나갈 상징을 만들어두고 있다고 하였지만 그 상징으로 스스로를 쓰러뜨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함을 말했다.

 

  피터와 사랑에 빠진 분홍나비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나무와 바람은 서로에게 슬픔을 주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행복을 주기도 하니까 소통하는 것이라 했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을 때 소통은 시작됨을 기억해야 한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관심이 있어도 관심 없는 척, 욕을 하면서도 욕하지 않은 척하며 가면을 쓰고 사는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끌려 진실을 가두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냇물이 흘러 강물을 만나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며 만나는 숱한 사물들과의 부딪힘을 안고 사는 동안 누군가의 아픔을 달랠 줄 따뜻한 말이나 행동은 괴로움을 덜어 새롭게 시작할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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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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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따른 삼라만상의 변화는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다양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자욱한 먼지 속에 피어난 벚꽃은 탄성을 몰고 오는 튀밥처럼 튀어 올라 화사함을 더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움틔우는 몸짓은 활기를 더하고 지쳐 있던 마음까지 바로 세우는 힘이 있다. 태어난 지 오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와 이복동생,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로즈는 가난한 지역의 누추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타인의 눈에 나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역부족이었다. 로즈는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다가도 자신의 생각을 피력해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뜻을 비치고 이를 트집 잡은 새어머니 플로는 초반에 기선 제압이라도 하려는 듯 로즈의 언행을 문제 삼았다. 이를 빌미삼아 딸을 잔혹하게 매질하던 아버지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과장된 연기도 서슴지 않았다.

 

어둡고 흐릿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일을 플로는 역겹게 여기며 가족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헛간에서 놀음하는 공동체로 안정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사랑으로 서로의 부정적인 면까지 포용하며 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 로즈는 안온한 분위기와는 먼 비루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을 더했다. 예민한 감수성에 결핍을 견디기 힘든 사춘기 시절 변두리 학교에 다닐 때에도 도처에 자리하는 폭력의 표적에서 비껴나려는 노력은 본심을 숨기고 체제에 순응하며 버텨내야 했다. 재래식 변소를 들락거리며 배설하고, 아이들 사이의 위계질서를 따르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로즈는 연기하며 살아가는 생활에 젖어갔다.

 

아들로 태어나 별다른 노력 없이 특권을 누리며 인정받고 지내는 남동생과 달리 딸로 태어난 로즈는 안정적인 생활을 갈구하며 누추한 환경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욕망했다.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니는 로즈는 누군가의 후원이 없으면 학업을 지속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학비와 용돈 걱정 없이 생활하기는 힘들었다. 그녀는 욕망의 끈이 닿지 않을 공간으로 머무르는 시선을 거두면서도 걱정 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일을 가슴에 품고 지냈다.

 

결핍으로 점철된 그녀와는 달리 가진 게 많은 패트릭을 만나 사랑을 가장하며 만남을 이어갔다. 남루한 생활을 잇는 처지에서도 영민함을 지닌 로즈에게 끌린 소심한 역사학도 패트릭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백화점 소유주의 아들로 중산층 가정의 자제로 그와 결혼한다면 안정적 생활로 진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가진 것이 없어 자립을 꿈꾸기도 힘든 고단한 생활과 결별하고 싶은 바람이 큰 그녀는 이른 나이에 고심하지 않고 패트릭과의 결혼을 선택하였다. 이후 그는 그녀를 위해 역사 공부는 팽개치고 백화점 후계자가 되기로 마음먹고는 심신을 단련하기보다는 집의 외장을 화려하게 꾸미고 사람들을 초대해 집을 자랑하였다.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라는 패트릭의 말은 파경을 배태하고 있었다. 거지 소녀는 패트릭이 좋아하는 이미지에 불과하였다. 인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중산층의 속물근성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 경계선에 발을 들여놓고 안정적인 생활을 잇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사랑의 축복으로 귀결되는 결혼 생활과는 멀어진 가정은 파경으로 치달았고 로즈는 성적 일탈을 감행하며 자유로운 사랑을 구가하였다. 가난한 생활로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아온 조슬린 부부와 소통하며 갖지 못한 부분을 공유해왔지만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정서적으로 공감하며 지내고 싶은 남자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가 떠나는 게 두려워 마음을 정리하는 편지를 썼으나  췌장암을  앓다 죽은 사이먼의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사이먼의 소식을 전한 이의 말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임의대로 판단하고 해석한 로즈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여겨진다. 가난했던 시절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경멸하던 조슬린은 부자가 된 뒤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띠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이들의 내재적 욕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여러 지역을 떠돌며 고독하게 지냈던 시간들을 정리하고 살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새어머니 플로는 스스로를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플로는 타인의 도움을 받는데 반감을 드러내며 고집을 드러냈다.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 준 정신적 근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녀는 요양원으로 가면서도 정신만은 챙기려 애썼다.

 

 상대방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가난한 지역에서의 불안에서 도피해서라도  안정적인 생활을 바랐지만 행복한 생활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떤 남자 때문에 떠나야 했고, 어떤 남자에게 버림받는 게 두려워서 편지를 쓰고 치욕을 느끼면서 또 다른 희망을 품는 아이러니는 로즈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여러 경험 속에 기대가 꺾이며 맞닥뜨린 실망과 좌절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도 있었지만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노려도 스스로 행할 때 의미 있음을 알아차리고 타인의 태도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온 로즈는 새어머니 플로의 삶을 통해 인간은 소멸을 향해 가는 유기체임을 일깨우며 그림 속 이미지에서 탈피해 스스로 주인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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