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다스슝 지음, 오하나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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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일이 평범한 중년, 부음을 들을 때마다 70대 후반인 어머니가 생각난다. 고령의 나이에도 계절 따라 농사를 짓고 밭일을 하며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어머니의 휜 다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온다. 지금은 자식들 곁에서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지만 언젠가는 이 세상에 없을 어머니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장례식장을 찾아 망자(亡者)를 애도하고 상주의 슬픔을 함께하며 예를 갖춰 조문하는 시간은 유한한 인생을 회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잦은 도박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아버지를 홀대하지 않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저자는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을 간병하며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보면서 존엄성을 지키며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였다. 친구도 없이 놀기 좋아하다 도박에 빠질 것이라는 아버지의 판단이 전적으로 맞지 않았다며 장례식장에서 근무하며 겪은 일화를 모아 아버지 영정 앞에 놓고 싶다는 저자의 후기는 부자간의 거리를 가늠케 한다.

 

   장례식장에서 일하게 된 날, 새벽녘 순찰을 돌다가 도움을 요청하는 누군가의 손을 무서워 뿌리치고 도망쳤다가 이튿날 쓰레기 치우는 할머니로부터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이라는 꾸지람을 들으며 장례식장 일에 적응해갔다. 유가족들을 불러 서류를 작성한 뒤 시신을 냉동고에 넣는 일을 앞두고 용기를 내야 했다. 보디 백을 열어 시신에 이름표를 두르는 일은 섬뜩한 일인데 오랜 시간이 지난 발견된 시신은 훼손이 심해 시각과 후각의 충격이 컸다. 외할머니의 충만한 사랑과 관심을 고마워하는 저자는 할머니 죽음에 특별한 감정이 일어 눈물 짓는 일이 많았다. 연로한 이들 중에는 다음을 기약할 수도 없는 일들이 흔한 편이라 안부를 전할 때에는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지금 바로 연락하는 일이 옳음을 되새긴다.

 

   “밤에 잘 자고 뒷날 누운 채로 죽으면 좋겠다.”

   라며 어머니는 몹쓸 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더라도 연명 치료는 하지 마라며 신신당부하였다. 살아날 가망 없는 이의 명을 끄는 것은 천명을 거스르는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미장원에서 머리하고 나오다 쓰러져 그 길로 세상을 뜬 이웃 할머니, 마루에 앉아 있다 힘이 없다며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가 죽음에 이른 고모 등 죽음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나이 들수록 편안하게 죽는 것을 큰 복으로 여기며 기도에 정진하는 이들도 있다. 미수를 넘겨도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오늘도 불경을 독송하는 노보살의 모습은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원망과 미련을 없애는 일로 비춰져 숭엄해진다.

 

   살다보면 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겠다고 여기다가도 마음속 고민을 털고 일어나 일상을 시작한다. 왕따를 당한 학생의 투신자살, 고독사한 지 오래 되어 부패한 주검 등 여러 유형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변사체의 경우 관할 경찰의 현장 보존 아래 감식반의 현장 감식이 끝나면 시신을 보디 백에 담아 온다. 사고사의 경우 훼손된 시신을 복원하여 화장을 마친 뒤 냉동고에 보관한다. 유가족의 사정대로 위패를 만들어 향을 피우고 경을 읽는 애도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있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으면 이를 생략한다.

 

   오늘 저녁에는 중학교 동기가 지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떴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오십 대 중반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서둘러 이승을 뜬 친구의 황망한 죽음은 참혹함을 더한다. 후덕한 성품으로 동기회 모임에 정성을 다하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질병의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한 친구는 코로나 19로 병문안도 한번 못 갔는데 이렇게 황급히 서둘러 갈 줄 몰랐다며 회한을 토로했다. 태어난 자는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이탈한 채로 영생할 수는 없다. 단지 삶을 마감하는 날이 언제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탈한 일상을 이으며 보고 싶은 이들과 만나 회포를 풀고 서로 소통하며 지내는 시간이 그리워진다. 슬픔으로 북적일 장례식장, 산 자와 죽은 자의 마지막 접견실에서 의미 있는 삶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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