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을 가다 -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
장 지글러 지음, 모명숙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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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하는 사회학자로 도덕적 양심을 견지하고 기아 퇴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저자의 글을 접한 뒤 선한 의지로 나눔을 함께하며 살았는지 돌아본다. 다국적 자본에 저항하는 노조들, 관계 단절로 탈인간화가 가속화된 현실에 비정부조직들과의 세계적인 연대로 맞설 용기를 내야 할 때임을 일깨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자매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국제연합 총회가 채택한 인권선언 제1조는 각자의 행복과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전제로 작용한다. 올린다를 여행하던 중 저자는 병든 부모와 동생을 대신해 가장으로 땅콩을 파는 아이에게 한 끼를 챙겨주었을 뿐, 더 이상의 적극적 조치는 하지 않았다. 공적인 업무 수행을 명분으로 절대적 빈곤에 짓눌려 사는 아이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아가고 성장하며 발전한다.’

  는 사상가의 말처럼 삶의 의미는 생겨나고 합성되면서 가치를 드러낸다.

저자는 지식인으로서 머리로는 잘못된 질서를 거부하지만 실제로는 그 질서에 적응하면 잘못된 질서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했음을 고백하였다.

 

   ‘우리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요인을 폭로하여 관련된 이해관계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여 죄 있는 자들을 지적하는 길을 걸어왔다.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선한 인간들의 침묵에 기인하였음을 가리키며 지식인은 결코 중립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야만적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신자유주의의 극심한 폐해를 직시하고, 재화를 사유화하는 일을 도입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은 깊어져 인간의 불평등은 고착화되었다. 비밀 유지가 가능한 스위스 은행에 검은 돈을 예금하고 탈세를 일삼는 거대 자본가들의 부정적인 축재는 신자유주의 아래 금권 결탁으로 공고해졌다.

 

   고유한 논리를 토대로 세워지고 일관성 있는 담론적 이성이 내재하는 상징체계인 이념 중 옳은 이념은 인간의 해방과 자결, 인간화를 촉진한다.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전쟁을 일삼고 방만한 국가 정책을 양산하는 정치 권력의 부패,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구조 등은 인간의 정체성을 파괴하여왔다. 루카치는 인간을 상품사회에서 작용하는 기능으로 한정 짓는 소외를 적시하며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교환가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노동력을 인간은 팔아왔다.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초국가적 강제 규제 장치를 하나씩 하나씩 설립해 나간 유럽연합은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조직화된 폭력으로 드러났다. EU 위원회에서는 덤핑을 조직해 자국의 이윤을 챙기며 아프리카 지역 농업을 초토화하여 유럽 국경 아래로 유랑하는 이들을 파생하였다.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권력 신장은 약자들을 위한 보루였던 국가마저 짓밟아 시민들을 큰 사회적 위험으로 몰아넣었다.

 

   크고 작은 서구 열강들은 아프리카를 임의로 차지하고는 아프리카 대륙을 잘게 자르고, 아프리카 민족들을 분산시키며 그들의 문화적 전통을 아우르는 집단적 정체성을 파괴하였다. 열강들은 이익을 앞세워 아프리카를 약탈해 많은 땅과 숲을 빼앗았으며, 다수의 사람을 노획물처럼 잡아갔다. 유럽의 경쟁국들은 베를린회의를 통해 최초 정복자의 권리가 유효하다는 점을 확정하였다. 식민 통치자들의 이익과 판단에 아프리카의 문화를 말살하고 문명을 파괴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짓밟았다. 아프리카 인구의 35.2%는 극심한 만성 영양실조로 고통받으며 대수롭지 않은 전염병 창궐로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포함한 삶의 본질까지 흐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불평등과 억압의 정치·경제·사회적 원인을 분석한 뒤 불평등을 해소하는 대결 의지로 정의로운 세상을 실현하는 길에 일관한 저자는 지금 내가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묻는다. 자기의 삶을 스스로 조직하고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인간의 실존을 저해하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율성은 한 인간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며 타인과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는 인류의 사회질서를 만들어가는 일은 선한 의지를 지닌 양심에서 싹을 틔운다.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사회학자의 실천은 대결과 전쟁, 파괴 등을 근거로 한 자본의 논리 대신 인간들의 상보성과 호혜성에 기반을 둔 연대성의 논리로 나아가는 길에 희망의 빛을 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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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옳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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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우리 삶의 길은 다양한 형태로 시간의 영속성에 놓인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名可名 非常名

()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노자는 영원불변의 도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존재는 변화 속에서 존재한다고 여기며, 인간의 언어나 관념이 실재의 모습을 나타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노자는 변화를 긍정하고 불변의 허구성을 부정한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것이 진리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노자는 명과 짝을 이루는 지고의 개념을 상()이라고 보았다. 상은 관념이나 개념이 아닌 변화?변통?생성?무제약을 뜻하는 창발을 담고 있다. 노자 도덕경의 핵심이라 할 제 1장의 사상적 핵심을 짚어 초원 이충익과 박세당의 해석을 견주어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펴나갔다.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지상의 가장 바람직한 이상적 통치자인 성인을 위해 집필된 노자도덕경의 덕목은 당쟁을 일삼으며 국민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정치인들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 상도에 대한 진실을 확신하는 자는 인생살이에 있어서도 언()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려 하지 않았다. 무위라는 말에는 무()적인 함을 하는 것으로 우주생명과 합치되는 창조적인 함이 담겨있다고 보았다. 상도를 구현하는 성인은 말함이 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이상적인 통치자로 말 없는 솔선수범으로 세상을 다스린 사람으로 귀결된다. 신험이 부족한 곳에는 불신이 싹트게 마련이므로 통치자들의 말의 신험은 큰 의미를 갖는다.

 

   로고스로 시작되고 우주의 종말인 재림으로 차단되는 시간의 감옥 속에서 인간은 독단의 노예로 전락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종교 활동을 함께하는 신도들이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의 온상이었던 사실을 이를 입증한다.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노자의 심오한 사상에 경도된 저자는 50년 동안 노자 철학을 연구해 왔다. 저자는 노자의 우주는 카오스의 물()에서 시작하여 도()의 개방으로 끝남을 적시했다.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그러므로 좋은 사람은 좋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며, 좋지 못한 사람은 좋은 사람의 거울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삶의 지표로 삼아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함을 27장에서는 뜻을 품는다. 인간의 욕망은 생명의 근원이며, 그것이 있어 무질서와 조화의 통합적 과정이 가능해진다. 1장에서 37장에 이르는 길의 성격은 성인이 무위를 실천하고 허를 극대화시키면 천하는 안정될 것이라 분명히 했다.

 

   지금껏 노자의 사상을 무위자연 사상으로만 여기며 상충하는 일을 막고 피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겨왔음이 무색해진다. 상덕(上德)으로 시작하는 도덕경 38장에서는 인류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담는다. 도와 덕을 화해 통일시키는 데 관심이 많은 노자는 자주 명예를 얻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오히려 명예가 사라짐을 강조했다. 40장에서는 제 1장 전체 내용을 압축적으로 기술하며 그 흐름을 역전하였다.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하늘 아래 만물이 모두 유에서 생겨나는도다. 그러나 유는 무에서 생겨나는도다.’

   이 움직임에는 허의 창조력을 의미하는 약()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 허가 있어야 순환이 가능해지고 약이 있어야 새로움이 개입됨을 분명히 했다.

 

   더 큰 명예를 탐하여 끝 모르게 가다 자멸하고 만 사례가 즐비하다. 끝 간 데모를 욕심 아래 분수를 지키지 않으면 욕됨을 얻게 된다

.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도덕경 제 44장의 가르침은 존재의 근원인 몸을 보전하는 일은 이름과 재화를 얻으려다 망신(亡身)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人之生 氣之聚也 聚卽爲生 散卽爲死

   기의 뭉침과 흩어짐으로 생사를 말한 노자는 노년까지 기의 쏠림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하며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물질문명의 극대화로 자본주의의 야수성을 보이는 시대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극심해지고 있다. 전례 없는 코로나 19사태를 겪으며 자본의 양극화를 어떻게 줄이며 빈자나 약자가 함께 잘사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노자의 사상은 함께할 수 있다. 빈 마음으로 순수성을 견지하는 어린이의 순순함을 회복할 때, 덕성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0년 전 노자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철학을 시작해온 저자는 기존의 노자 철학을 밝힌 해석의 용례를 들어 노자 사상의 핵심을 짚어 내려했다. 싸움을 잘하는 자는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68장의 가르침은 부쟁(不爭)의 미덕을 위해 갖춰야 할 인간의 태도를 담았다. 노자는 겸퇴(謙退)무쟁의 반전 사상가로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군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노자는 형이상학의 폭력을 거부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와 지속의 항상성을 천명한다.

 

   ‘弱之勝强 柔之勝剛

   어떤 것과 부딪치고 어떤 것에 공격을 받아도 맞서 저항하는 일 없이 그 모양대로 변화하다 다시 물의 부드럽고 연약한 속성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어떤 이가 자신을 욕해도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상대를 비방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태도를 물에게서 배운다. 노자의 유약함은 모든 견강함을 이길 수 있는 힘이다.

   ‘聖人不積

   旣以爲人 己愈有, 旣以與人 己愈多

   재화를 쌓아두지 않을수록 더 많이 소유하게 된다는 말은 정치가의 이상형인 성인(聖人)이 되는 길을 극명히 드러낸다. 소유욕에서 벗어나 소비를 줄이며 필요한 곳에 재화를 베풀어 부쟁(不爭)하면서 인류가 상생하는 길을 찾아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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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식물 시리즈
피오나 스태퍼드 지음, 강경이 옮김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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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서운 바람도 잦아들고 얼어붙은 땅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뿜어내며 따스한 봄기운을 몰고 온다. 뒤란에 서 있는 밤나무 아래에는 수선화가 자라고 있어 봄이면 노란 빛깔의 꽃들로 사위를 밝히며 은은한 향기를 뿜어냈었다. 나이 들어 얻은 병으로 걸음이 느린 할머니는 봄이면 수선화를 보고 싶다며 함께 가보자며 나선다. 할머니를 부축해 뒤란으로 가는 길이 몇 차례나 계속 될는지 가늠키는 어렵지만 할머니는 시절 따라 피었단 지는 꽃들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이듬해 할머니는 먼 길을 떠났고 가족은 아랫마을로 이사를 내려와 수선화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손녀를 아끼고 좋아했던 할머니 무덤가에는 수선화를 심어 저 세상에서도 노란 빛으로 눈인사하며 지냈으면 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빛깔을 드러내며 향기를 뿜는 꽃들이 있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유기적 생명체에게 고운 눈길을 보낸다. 봄의 첫 신호로 여겨지는 스노드롭 꽃무리, 그 옆에 피어나는 수선화, 부활절과 관련된 프림로즈는 봄기운을 흠씬 전한다. 연못가 수선화 한 송이로만 남게 된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채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 청년의 허영을 상징한다. 화가는 아름다운 에코를 그려넣어 그녀가 나르키소스의 관심을 끌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수선화 육종가들의 손에서 탄생한 수백의 교배종과 재배종은 분화되어 품종이 다양해져 계절을 달리해 풍성한 수선화를 볼 수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초여름으로 들어설 때, 장미 넝쿨은 노랑, 분홍, 하양 꽃으로 피어나 잔가지와 함께 정원에 놀라운 자태를 선물한다. 겹겹이 깊어져 매혹적인 향기로 사람들을 홀리는 장미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상징물로도 가치를 지닌다. 아름다움을 빨리 거두어가는 장미의 습성은 플로리분다 품종 개량을 촉진해 고혹적인 순간을 오래 즐기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였다. 다양한 꽃말을 지닌 장미는 사랑의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는 만큼 직관을 성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권력 유지하는 데 이미지의 중요성을 간파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보석으로 만든 장미 목걸이를 선택해 새로운 튜더 로즈를 왕권강화에 이용했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는 라벤더는 여러 시대에 걸쳐 저항의 상징으로 적응력 좋은 식물로 알려져 있다. 지중해가 원산지인 라벤더는 건조한 날씨와 뜨거운 태양 아래 선명한 색깔로 물들어 매력을 더하고, 다양한 형태로 온갖 질병에 처방될 정도로 치유 능력이 뛰어나다. 피나무 꽃은 꿀의 공급원으로 여겨질 정도로 독특한 향기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독일에서는 금지된 사랑과도 연결되어 있다니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가 있다. 한여름 숲을 찾아 걷다보면 잔가시를 달고 서 있는 보랏빛 엉겅퀴를 흔히 볼 수 있다. 자기 땅을 빼앗으려는 것들에 끈질기게 저항하며 자기 땅을 집요하게 지키는 엉겅퀴는 황폐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오래된 귀족 가문들을 상징하는 엉겅퀴는 귀한 생명으로 가치를 지닌다.

 

   태양이 가장 밝은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는 뜨거운 여름 열정의 표상으로 자리한다. 태양을 바라보며 동에서 서로 천천히 회전하는 습성 때문에 해바라기는 정절과 기독교적 헌신의 상징으로 변해왔다. 빈센트 반 고흐는 프로방스지방에서 진노랑으로 빛나는 해바라기 들판을 보고 해바라기연작을 낳아 고흐의 사후 대표작으로 남았다. 초록 들판을 진홍빛으로 점점이 수놓인 양귀비는 잠깐 피었다 진다. 수면을 돕고 통증을 완화하는 긍정성을 띠는 양귀비는 아편의 고통을 낳기도 하여 중독성을 경고한다.

 

   자연의 변화와 함께해온 저자는 가족과 함께 정원의 식물들을 돌보며 삶을 가꿔왔다. 꽃을 좋아하는 가족들은 이사를 다니면서도 꽃병, 단지 등을 챙겨 다채로운 식물들과 함께하며 꽃들이 실어 나르는 놀라움에 빠져들었다. 봉오리를 맺고 터뜨려 활짝 피었다 스러져 땅으로 사라지는 꽃들은 생명의 순환을 일깨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아름다운 꽃들도 머지않아 떨어지고 우리 역시 쇠한 기운으로 지내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덧없음에 갇힐 수 있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꽃들을 보며 생명의 신비와 경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길가에 피어난 꽃 한 송이에 깃든 생태의 의미를 발견하며 꽃들의 잔치에 나서 활기를 찾길 바라며 마음은 라벤더 밭으로 향한다

 

https://blog.naver.com/nopark99/222112403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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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랑 - 제1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26
조우리 지음 / 사계절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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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고뇌와 인내에서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 보이기 위해서 있다.’

   헤세가 남긴 사랑의 명언은 고뇌로 가득한 세상을 견디는 힘으로 작용한다. 여러 유형으로 다양성을 드러내는 사랑은 유일한 서사로 사람들 가슴에 켜켜이 자리한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 추억 속 공간을 밟는 이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밋밋한 삶에 윤기를 더하는 서글픔일 것이다.

 

   소설<<, 사랑>>은 뷰티 유튜버를 꿈꾸는 열여덟 살 고등학생인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즐겨 찾는 오픈 채팅방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사랑은 같은 학교 2학년인 ''을 만나게 된다. 온라인 모임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숨긴 채 스스로를 포장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이면의 세계를 드러낼 수가 있다. 낯선 이들과 만나 관심사를 말하며 어색함을 완화해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 때, 근심을 풀기 위해 들른 화장실에서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생리 현상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꾸미지 않는 솔직함으로 주변을 편안케 하는 솔이 사랑의 근심을 덜어준 일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타투를 배우며 타투이스트를 꿈꾸는 열아홉 살 솔은 자신의 길을 찾아 움직인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싶은 일들을 유예하고 경주마처럼 단련된 학생들은 전력 질주해 성취를 드높이려 한다. 동일한 옷을 입고 정형화된 틀 안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한 일반적인 학생들의 범주와는 다르게 생활하는 솔이다. 오프라인 모임 이후 친밀해진 둘의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기보다는 급식소에서도 혼자 밥을 먹고 교실에서도 혼자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둘은 서로를 찾으며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단짝처럼 잘 지내는 둘을 본 학생들은 사진 아래 안 좋은 댓글들을 달며 둘의 관계를 혐오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같은 반 아이는 사랑을 은근히 따돌리며 갖은 폭언과 행동으로 그녀를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들의 압도적인 미움을 견디기 힘들었던 극단에는 솔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평준화된 사랑에서 이탈한 사랑이라고 둘의 관계를 비난하고 혐오하며 숨통을 죄는 눈들을 피해 벗어나는 길만이 생존하는 길이라 여긴 사랑은 가출을 결심한다.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에 집으로 온 사랑은 상자 안의 카드를 읽으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영국 유학 생활을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엄마는 사랑이 스무 살이 되면 친아버지 존재를 알리려 했지만 그보다 일찍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사랑 영국으로!’

   남들보다는 조금 빠르게 내 인생을 찾으려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둘은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사랑의 아버지 주소 한 장을 들고 용기 있게 나선 둘은 영국에 도착한 첫날 숙소 사기를 당해 노숙을 하게 되었지만 낯선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며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 핏줄이라는 이유로 사랑이 낯선 이들과 가족이라는 범주에 묶여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새롭게 펼쳐진다. 금세 사랑에 빠지기 일쑤인 사랑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솔은 런던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솔은 동성애자로 가족을 떠난 어머니, 어머니의 성향을 닮은 딸을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며 섬세한 손놀림으로 타투를 그렸을 것이다.

 

   유튜버로 쉽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랑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찾으려 했던 솔은 영국에서 자신의 포부를 펴기로 했다. 사랑을 낳고 미혼모의 삶을 선택한 그녀의 어머니는 동성동본인 아버지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섯 살에 만난 아버지는 사랑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풀며 혈연 중심으로 맺어진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는 가족의 의미를 일깨운다. 돈을 벌기 위해 파독 간호사로 일하다 비틀즈를 좋아해 영국으로 이주한 할머니는 영국에서 자신의 정원을 가꿔왔다.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져 생명을 더하며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정원은 함께하는 이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을 용기로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며 사는 어른들을 보며 사랑은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려 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사랑은 거친 땅을 일궈 꽃과 나무를 심고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며, 솔을 향한 마음을 보듬고 지낼 것이다. 다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통념의 벽을 허물고 소수의 생각이라도 도외시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은 동성애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분위기를 형성해갈 것이다.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성씨의 자식들이 한 가족을 이룬 가정에서 서로 배려하며 지내는 낯선 가족도 용인되는 사회적 상황에서 솔과 사랑도 한 가정을 이루며 운명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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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음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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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독서 인구는 급격히 줄어든 대신에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1인 미디어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눈에 드러나는 결과를 중시하며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과는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눈으로 책을 읽으며 뇌를 거쳐 활성화된 창을 통해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읽기와는 멀어져 독서와 담을 쌓고 지내는 이들이 쌓여간다. 지금껏 학교를 오가며 십대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독서의 힘을 강조하지만 학생들은 게임을 즐기며 쾌락에 젖을 시간이 부족하다며 아우성이다. 독서의 효능은 알고 있으면서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아이들에게 오늘도 책 읽기를 권하며 책을 소개한다.

 

   사회학자로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배움의 길을 열어주던 교수가 니은 서점을 개점한 지 2년이 지났다.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기에 책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부모님을 여의고 삼거리 노 씨네 막내아들은 니은 서점 문을 열었다. 서점 지기는 부모와 조부모의 뜻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에서 책에 담겨 있는 지식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책과 멀어진 현대인들의 마음을 붙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제도권 교육의 틀을 벗어난 사회인들이 사회생활하며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책과 함께 해결하며 삶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저자는 니은서점의 북텐더로 나섰다.

 

   10% 할인, 무료 배송으로 바쁜 현대인들의 구미에 걸맞은 대형서점의 온라인 판매방식에 맞서 판매율을 높여야 하는 동네 책방이 숙명처럼 떠안고 가야 할 현안은 쌓여 간다. 대형 서점의 위탁 판매 방식과는 달리 현매 방식으로 서점에 책을 들여 놓아야 하는 입장에서 책 선정은 서점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서점 주인은 자금난의 압박에 시달릴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점 운영 방침을 확실히 했다. 실용서와 참고서와 커피를 판매하지 않는 대신 인문학 서적만 판매한다는 원칙 아래 쉽지 않은 출발선에 섰다.

 

   책을 팔아야 하는 서점은 종이책의 물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가 살아 숨 쉰다. 망하지 않고 버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은 날에는 주인이 니은 서점에서 선보이는 책을 직접 사서 공유 서재에 전시하였다. 자신이 읽은 책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처럼 서점의 정체성은 문화적 콘텐츠 활용에서 가늠할 수 있다. 집중력 부족으로 혼자 책 읽기가 버거운 이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는 니은 낭독회는 함께 읽기의 힘을 발현한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니은 하이엔드 북토크는 작자와 독자가 만나 책을 이해하는 장으로 자리잡아갔다.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부드럽게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선 주인은 독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 출세지상주의와 결별하는 수순을 밟아 정체성을 찾아 가는 동안 니은 서점의 띠지는 늘어날 것이다. 바람을 타고 자비의 말씀이 널이 퍼지길 바라는 오색 깃발 타루쵸처럼 니은 서점에 들러 책을 사서 가는 단골들이 늘어나 연신내 동네 책방으로 자리하길 바란다. 북텐더로 활약 중인 90년생들과 함께 운영하는 서점에서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세대와 세대가 소통하는 공간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고민을 나누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책 표지를 보며 책장을 넘겨 목차를 살피는 사이 책의 물성은 설렘 가득한 시간을 선물한다. 낯선 지역을 찾아 가는 여행길, 어딘가에 숨은 듯 자리 잡은 동네책방을 찾아 간다. 골목 안에 자리한 동네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잊고 지낸 골목길에 대한 추억을 불러온다. 느리게 걸어 도착한 서점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즐기며 서가에 꽂힌 책을 보며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사서 나오는 시간은 바깥으로 향하던 마음을 안으로 다잡는 시간이다. 책을 읽고 책 속 인물에게 말을 걸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은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는 데도 유용하다.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 확산으로 방향의 갈피를 잡고 살기 힘든 때일수록 관성대로 살아온 방식에서 벗어나 책을 가까이하며 참된 나를 찾아가는 길에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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