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식물 시리즈
피오나 스태퍼드 지음, 강경이 옮김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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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서운 바람도 잦아들고 얼어붙은 땅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뿜어내며 따스한 봄기운을 몰고 온다. 뒤란에 서 있는 밤나무 아래에는 수선화가 자라고 있어 봄이면 노란 빛깔의 꽃들로 사위를 밝히며 은은한 향기를 뿜어냈었다. 나이 들어 얻은 병으로 걸음이 느린 할머니는 봄이면 수선화를 보고 싶다며 함께 가보자며 나선다. 할머니를 부축해 뒤란으로 가는 길이 몇 차례나 계속 될는지 가늠키는 어렵지만 할머니는 시절 따라 피었단 지는 꽃들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이듬해 할머니는 먼 길을 떠났고 가족은 아랫마을로 이사를 내려와 수선화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손녀를 아끼고 좋아했던 할머니 무덤가에는 수선화를 심어 저 세상에서도 노란 빛으로 눈인사하며 지냈으면 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빛깔을 드러내며 향기를 뿜는 꽃들이 있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유기적 생명체에게 고운 눈길을 보낸다. 봄의 첫 신호로 여겨지는 스노드롭 꽃무리, 그 옆에 피어나는 수선화, 부활절과 관련된 프림로즈는 봄기운을 흠씬 전한다. 연못가 수선화 한 송이로만 남게 된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채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 청년의 허영을 상징한다. 화가는 아름다운 에코를 그려넣어 그녀가 나르키소스의 관심을 끌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수선화 육종가들의 손에서 탄생한 수백의 교배종과 재배종은 분화되어 품종이 다양해져 계절을 달리해 풍성한 수선화를 볼 수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초여름으로 들어설 때, 장미 넝쿨은 노랑, 분홍, 하양 꽃으로 피어나 잔가지와 함께 정원에 놀라운 자태를 선물한다. 겹겹이 깊어져 매혹적인 향기로 사람들을 홀리는 장미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상징물로도 가치를 지닌다. 아름다움을 빨리 거두어가는 장미의 습성은 플로리분다 품종 개량을 촉진해 고혹적인 순간을 오래 즐기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였다. 다양한 꽃말을 지닌 장미는 사랑의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는 만큼 직관을 성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권력 유지하는 데 이미지의 중요성을 간파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보석으로 만든 장미 목걸이를 선택해 새로운 튜더 로즈를 왕권강화에 이용했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는 라벤더는 여러 시대에 걸쳐 저항의 상징으로 적응력 좋은 식물로 알려져 있다. 지중해가 원산지인 라벤더는 건조한 날씨와 뜨거운 태양 아래 선명한 색깔로 물들어 매력을 더하고, 다양한 형태로 온갖 질병에 처방될 정도로 치유 능력이 뛰어나다. 피나무 꽃은 꿀의 공급원으로 여겨질 정도로 독특한 향기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독일에서는 금지된 사랑과도 연결되어 있다니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가 있다. 한여름 숲을 찾아 걷다보면 잔가시를 달고 서 있는 보랏빛 엉겅퀴를 흔히 볼 수 있다. 자기 땅을 빼앗으려는 것들에 끈질기게 저항하며 자기 땅을 집요하게 지키는 엉겅퀴는 황폐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오래된 귀족 가문들을 상징하는 엉겅퀴는 귀한 생명으로 가치를 지닌다.

 

   태양이 가장 밝은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는 뜨거운 여름 열정의 표상으로 자리한다. 태양을 바라보며 동에서 서로 천천히 회전하는 습성 때문에 해바라기는 정절과 기독교적 헌신의 상징으로 변해왔다. 빈센트 반 고흐는 프로방스지방에서 진노랑으로 빛나는 해바라기 들판을 보고 해바라기연작을 낳아 고흐의 사후 대표작으로 남았다. 초록 들판을 진홍빛으로 점점이 수놓인 양귀비는 잠깐 피었다 진다. 수면을 돕고 통증을 완화하는 긍정성을 띠는 양귀비는 아편의 고통을 낳기도 하여 중독성을 경고한다.

 

   자연의 변화와 함께해온 저자는 가족과 함께 정원의 식물들을 돌보며 삶을 가꿔왔다. 꽃을 좋아하는 가족들은 이사를 다니면서도 꽃병, 단지 등을 챙겨 다채로운 식물들과 함께하며 꽃들이 실어 나르는 놀라움에 빠져들었다. 봉오리를 맺고 터뜨려 활짝 피었다 스러져 땅으로 사라지는 꽃들은 생명의 순환을 일깨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아름다운 꽃들도 머지않아 떨어지고 우리 역시 쇠한 기운으로 지내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덧없음에 갇힐 수 있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꽃들을 보며 생명의 신비와 경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길가에 피어난 꽃 한 송이에 깃든 생태의 의미를 발견하며 꽃들의 잔치에 나서 활기를 찾길 바라며 마음은 라벤더 밭으로 향한다

 

https://blog.naver.com/nopark99/222112403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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