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랑 - 제1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26
조우리 지음 / 사계절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고뇌와 인내에서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 보이기 위해서 있다.’

   헤세가 남긴 사랑의 명언은 고뇌로 가득한 세상을 견디는 힘으로 작용한다. 여러 유형으로 다양성을 드러내는 사랑은 유일한 서사로 사람들 가슴에 켜켜이 자리한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 추억 속 공간을 밟는 이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밋밋한 삶에 윤기를 더하는 서글픔일 것이다.

 

   소설<<, 사랑>>은 뷰티 유튜버를 꿈꾸는 열여덟 살 고등학생인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즐겨 찾는 오픈 채팅방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사랑은 같은 학교 2학년인 ''을 만나게 된다. 온라인 모임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숨긴 채 스스로를 포장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이면의 세계를 드러낼 수가 있다. 낯선 이들과 만나 관심사를 말하며 어색함을 완화해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 때, 근심을 풀기 위해 들른 화장실에서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생리 현상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꾸미지 않는 솔직함으로 주변을 편안케 하는 솔이 사랑의 근심을 덜어준 일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타투를 배우며 타투이스트를 꿈꾸는 열아홉 살 솔은 자신의 길을 찾아 움직인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싶은 일들을 유예하고 경주마처럼 단련된 학생들은 전력 질주해 성취를 드높이려 한다. 동일한 옷을 입고 정형화된 틀 안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한 일반적인 학생들의 범주와는 다르게 생활하는 솔이다. 오프라인 모임 이후 친밀해진 둘의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기보다는 급식소에서도 혼자 밥을 먹고 교실에서도 혼자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둘은 서로를 찾으며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단짝처럼 잘 지내는 둘을 본 학생들은 사진 아래 안 좋은 댓글들을 달며 둘의 관계를 혐오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같은 반 아이는 사랑을 은근히 따돌리며 갖은 폭언과 행동으로 그녀를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들의 압도적인 미움을 견디기 힘들었던 극단에는 솔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평준화된 사랑에서 이탈한 사랑이라고 둘의 관계를 비난하고 혐오하며 숨통을 죄는 눈들을 피해 벗어나는 길만이 생존하는 길이라 여긴 사랑은 가출을 결심한다.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에 집으로 온 사랑은 상자 안의 카드를 읽으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영국 유학 생활을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엄마는 사랑이 스무 살이 되면 친아버지 존재를 알리려 했지만 그보다 일찍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사랑 영국으로!’

   남들보다는 조금 빠르게 내 인생을 찾으려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둘은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사랑의 아버지 주소 한 장을 들고 용기 있게 나선 둘은 영국에 도착한 첫날 숙소 사기를 당해 노숙을 하게 되었지만 낯선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며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 핏줄이라는 이유로 사랑이 낯선 이들과 가족이라는 범주에 묶여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새롭게 펼쳐진다. 금세 사랑에 빠지기 일쑤인 사랑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솔은 런던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솔은 동성애자로 가족을 떠난 어머니, 어머니의 성향을 닮은 딸을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며 섬세한 손놀림으로 타투를 그렸을 것이다.

 

   유튜버로 쉽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랑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찾으려 했던 솔은 영국에서 자신의 포부를 펴기로 했다. 사랑을 낳고 미혼모의 삶을 선택한 그녀의 어머니는 동성동본인 아버지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섯 살에 만난 아버지는 사랑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풀며 혈연 중심으로 맺어진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는 가족의 의미를 일깨운다. 돈을 벌기 위해 파독 간호사로 일하다 비틀즈를 좋아해 영국으로 이주한 할머니는 영국에서 자신의 정원을 가꿔왔다.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져 생명을 더하며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정원은 함께하는 이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을 용기로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며 사는 어른들을 보며 사랑은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려 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사랑은 거친 땅을 일궈 꽃과 나무를 심고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며, 솔을 향한 마음을 보듬고 지낼 것이다. 다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통념의 벽을 허물고 소수의 생각이라도 도외시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은 동성애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분위기를 형성해갈 것이다.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성씨의 자식들이 한 가족을 이룬 가정에서 서로 배려하며 지내는 낯선 가족도 용인되는 사회적 상황에서 솔과 사랑도 한 가정을 이루며 운명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