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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 - 배신과 왜곡이 야기한 우리가 모르는 진짜 세계사
나타샤 티드 지음, 박선령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10월
평점 :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실 이면에 있는 속사정이나 거짓에 대해 쓴 책이다.
책에 실린 내용들은 많은 문헌들을 통해 증명된 부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역사에 통달한 독자라면 익숙하게 읽혀질 것이고, 역사가 어렵다는 독자라면 재밌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스토리에만 치중한 건 아니다. 고대부터 20세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시대순으로 서술해 앞뒤의 맥락이 이어져 비록 일부분이지만 역사의 흐름도부분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근대 초기의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 19세기 비스마르크 편 등은 분량이 각각 대여섯 장에 불과하지만 복잡한 정세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어 당시의 시대 변화가 어려운 독자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세의 스페인 종교재판, 유럽의 마녀 사냥, 전쟁을 부른 비방과 거짓, 강자 위주의 역사 재편과 왜곡이나 해적 잔 드 클리송, 여성 교황 요안나, 반전 운동가 에밀리 홉하우스 등 역사에서 지워진(혹은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 그리고 정사正史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노스트라다무스, 맨더빌 여행기, 메리 토프트, 노예 조셉 나이트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통해 종교적, 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이상과 그 당시에도 자극적인 책들이 대중들에게 통했다 것처럼 사회적 분위기를 어렴풋이나마 느끼보는 시간이었다.
몇 가지 재미있는 점을 꼽아보자면,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의 서부 지역 전체에 대한 권리를 넘겨준다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에 관한 칙령은 8세기에 위조된 가짜인데 이 내용이 기가 막히다. 기증 문서에는 시칠리아, 나폴리, 이탈리아 전체, 갈리아, 스페인, 독일, 영국 등 사실상 제국의 서부 전체를 교회에 기증한다는데(아무리 황제라는 사람이 제국을 통째로 교회에 바친다는 것을 누가 믿겠나), 뒤늦게 이를 주장한 사람은 로렌조 발라(사실 교회에서조차 반박했으면 거의 사기에 가까운!). 이러한 주장을 담은 발라의 책이 1517년 출판되었고, 1520년에 이 글을 읽고 가톨릭교회의 부패 징후를 예감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다. 물론 이 글을 읽기 전에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후대가 이름 붙인)종교개혁을 시작했지만, 발란의 글은 그에게 더 없는 확신이자 증명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말년에 쓴 유대인 비판이 나치 정권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유언>을 읽다보면 예언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는데, 반유대주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뜻밖에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외부자의 시선에서 본 임진왜란에 대한 제법 긴(?) 서술은 거의 처음이라서 생경했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은 스페인이 팬데믹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데서 유래되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 독감이 스페인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 그것보다 정작 스페인에서는 이 병病을 프랑스 독감이라 불렀다는 점이다. 이 바이러스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많은 역사가들은 가장 가능성 높은 출처로 미국을 꼽는다고. 20세기 초의 질병이나 100년이 지난 21세기 초의 전염병이나 의료 및 과학 기술, 여타 학문과 시스템의 발달에도 전염병 출처에 대한 논란은 변함이 없다는 것에 어째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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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책처럼 재밌게 읽고난 뒤 그 끝에서 '사람'을 생각했다. 헛된 욕망과 두려움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왕, 명예와 유명세를 탐하며 양심을 저버린 지식인, 제 안위와 돈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먹을 파렴치한, 타인의 인생 전체를 휘둘러놓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간 큰 사기꾼, 날조와 속임수로 점철된 정치와 전쟁, 방치된 가난한 민초, 여성 차별과 그들의 저항,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또는 우월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가짜 뉴스 일색과 다른 한편에서 자행되는 언론 검열(이 부분은 현재 오랜 시간 동안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아 쌓이고 쌓여 축적된 수많은 프레임, 그리고 코비드19 시국에 벌어졌던 일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 생명윤리의 부재와 인권 유린.
기록으로 남은 역사들은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따라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사건의 조각들을 풀고 다시 맞춰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고 유추하는 건 후대의 몫이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미래의 우리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유의미한 일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