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2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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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평가하는 리처드 2세는 어떤 인물이었을지 궁금하다. 왕권찬탈 그 이상을 담아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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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과거 을유세계문학전집 131
드리스 슈라이비 지음, 정지용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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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군주라고 칭하고 가정에서 군림하며 가족들에게 자신을 '과인'이라고 말하는 아버지. 어린 나이에 감금당한 채로 일곱 번의 출산을 겪고 더 이상 욕망도 분노도 없이 신에게 오직 죽음만을 간구하는 어머니. 마치 왕을 모시는 신하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지의 부당함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자식들. 모든 가족들은 '군주님'이라고 부르는 가장에 대한 복종 이외에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소설은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등 종교와 민족을 떠나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탄압하는 비정상적이고 부조리한 권력을 강하게 반발하며 비판하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겪어야하는 침묵과 억압의 고통, 교육(혹은 훈육)과 인내심을 명분으로 육체에 가해지는 가학적 통증과 모멸감을 당연하게 여겼던 드리스는 프랑스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절대적 존재인 아버지(이슬람 세계의 지배층)에게 반항하기 시작한다. 그는 인종과 종교와 성을 차별하고 강압하는 이슬람인보다 근대적 문명을 상징하는 프랑스인에 더 친근함을 느낀다.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와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 비굴함과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모순, 그리고 아버지의 명령으로 간 페스에서 마주한 구태와 관습의 부조리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드리스의 혐오는 깊어진다. 더하여 페스로 날아온 막내동생의 사망 소식으로 그의 반항심은 절정에 이른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형제들을 모아놓고 이슬람 교리를 멋대로 해석하고 이를 빌미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맹비난하며 그에게 저항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늘 무기력하게 술에 취해 있는 맏아들 카멜과 아버지의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구경꾼 입장을 자처하는 다른 형제들은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드리스는 아버지를 향해 신정 통치가 아니라 관용과 자유를 지닌 부성애로서 가족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아버지의 이슬람 신정 통치는 종교적 차원에서도 온당치 않다고 비판한다. 더불어 그 자리에서 저항하지 않고 그저 침묵과 무관심 뒤에 숨어서 복종의 자세만 취하는 다른 가족들도 함께 질타한다. 이 사건은 드리스의 삶에 있어서 전환점이 된다.  



집에서 쫓겨난 드리스는 자국 땅 모로코 내에서 유럽인에게 차별을 당하는 모로코인의 처지와 모로코 사회뿐 아니라 이방인 사회에서 아버지 핫지 파트미 페르디의 위치가 갖는 힘을 새삼 깨닫는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반항. 속물적인 세상에서 책상머리의 이론에 그친 '자유, 평등, 박애', '동양 정신과 이슬람 전통과 유럽 문명의 공생'이라는 허위는 이슬람 사회의 기득권층이 지속적으로 악용해 누려왔던 특권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끼고, 비로소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드리스의 귀가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소설에서 20년이 넘은 가게 건물의 정면을 복원한 얘기가 세 줄에 걸쳐 짧게 나오는데, 페인트칠만 하면 될 줄 알았던 문을 살펴보니 경첩이 다 녹슬어 겨우 버티고 있더라는 가게 주인의 말은 당시의 모로코뿐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에 빗대어도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구습과 가부장제의 틀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동시에 '과인'이라는 말을 거둔 파트미와 다른 세상으로 나아간 뒤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아버지와 타협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정신과 '곧 보자'는 선전포고를 마음 속에 담고 프랑스로 떠나는 드리스의 모습은 독립 전 모로코 사회의 혼란스러운 과도기적 모습을 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단원의 제목들이 독특하다. 드리스의 생물학적이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위치 등 그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 가부장제 관습에 따른 가정폭력의 한가운데 던져진 유년 시절, 프랑스인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그가 겪는 내적 갈등과 반항과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현실적 한계에 따른 각성과 타협 등 주인공 드리스의 모습을 함축적이자 물리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1926년생 작가가 20대 초반에 쓴 소설로써 1950년대에 출간됐다. 초판 출간 이후 현지에서 상당히 이슈가 됐었다고 하는데, 모로코인이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는 작가가 이 작품 이후 어떤 글을 써왔을지도 자못 궁금해진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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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에디터스 컬렉션 16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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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시점은 1937년 7월 무렵이다. 오웰은 1936년 12월말에 신문 기사를 쓰기 위해 스페인에 갔다가 거의 도착하자마자 POUM(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 소속의 의용군에 들어갔다. 그가 배치된 전선은 아라곤 지방의 사라고사. 


요새같은 자연환경으로 인해 대치만 하는 양측 사이에 전투가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 정작 전투와는 별개로 열악한 무기 상태, 무기 사용 미숙으로 인한 부상, 절반이 열여섯 살 이하의 소년으로 이루어진 병사 구성, 언어와 암호 인지 부족에 의한 상호 소통의 부재, 땔감 부족으로 인한 추위, 물 부족과 불결한 위생 상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지는 보급품 기근, 수면 부족, 숙달된 의료진과 병원 부족. 한 마디로 병사들은 오합지졸이요, 지원도 엉망진창이다.  


오웰은 의용군을 두고 훈련과 무기 부족으로 생겨난 문제들을 의례 평등 시스템의 산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었음을 짚으며 현실적으로,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기강은 생각보다 믿을 만하다고 말한다. '혁명적인' 기강은 정치의식에 좌우되며, 정치의식이란 왜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의식임을 설명한다. 의용군이 승리가 아주 드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에 머물렀다는 사실 자체가 '혁명적인' 기강의 강점을 입증해 준다고 주장하면서 스페인 의용군은 예상하기 힘들 만큼 훌륭한 부대였다고 칭찬한다. 아마도 여기에는 스페인 사람들의 천성에 호의를 품은 오웰의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부분도 일부분이나마 작용한 것으로 느껴진다. 타인을 칭찬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고 재주가 많으며 즉흥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느긋한 스페인인들의 천성을 애정하면서도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점들이 전쟁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에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그는 10장에서 내전 이후에도 스페인의 정치적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 내전이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거짓말 이후에 파시즘이 들어설 것이며 그 파시즘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보다는 더 인간적이고 덜 효율적이리라 예측한다. 아무튼 어떤 결점을 지닌 정부라도 프랑코 정권이 더 나쁠 것임은 분명하기에 이 싸움에서 프랑코 무리들을 몰아낼 수 있다면 스페인뿐 아니라 세계정세도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오웰의 예측은 결과적으로 스페인 내전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된 셈이었으니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오웰이 아니더라도 당시의 국제 정세와 스페인 내전을 바라본 강대국들의 대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초반에는 내전 당시 스페인의 분열된 정치적 상황과 사회 분위기, 간간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선과는 다른 바르셀로나의 온도차 등을 오웰이 체감하는 그대로 적고 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급속하게 변하는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 공포 정치와 학살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한편으로는 내전에 참여한 한 사람의 일원에서 외부자의 시선으로 전환하는 오웰의 관점, 무엇보다 그의 너무나 솔직한 심경이 나타나는 10장부터 12장은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이 아닐까싶다.   


이 책에서 오웰 본인이 갖는 경험, 특히 전선에서의 한계는 분명히 느껴진다. 따라서 독자가 읽기에 그가 겪은 경험치를 대부분의 군인들과 같은 연장선에서 놓고 있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자신이 스페인 정부를 위해 더 유능하게 복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전쟁을 통한 개인의 발전과 전선에 발을 디딘 처음 3~4개월의 무익함, 그리고 한시라도 스페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기심'을 언급할 때에는 그가 어쩔 수 없이 그안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읽다보면 오웰 자신도 은연 중에 이를 인정하는 듯하고(무엇보다 돌아갈 곳이 있는 그와 그렇지 못한 이들의 차이가 아닐까싶기도 하고).  


어쨌든 오웰은 자신도 사람이다보니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느 한 편에 기울어지게 마련이고, 자신의 경험이 온전히 진실만 말할 수 없음을 밝히는데, 그러면서도 그가 끝까지 주목하고 분개하는 점은 '무의미'한 죽음이다. 적어도 이에 대해서만큼은 이후에도 오웰의 마음에 남아있는 듯하다. 



오웰은 이 책의 '부록Ⅰ'을 통해서 바르셀로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 스페인의 복잡한 정치적 측면, 즉 당파 간의 대립에 무지했고 이를 간과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프랑코가 이끄는 군사 반란을 비롯해 당시 스페인 혁명과 정치 및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들을 설명하고 이것으로써 대중이 오해할 만한 내용들을 짚으며, 여기에 자신의 견해와 주장까지 곁들여 당시를 서술해 나간다.  


그리고 '부록Ⅱ'에서는 바르셀로나 전투에 대해 자신의 경험치를 넘어 좀더 넓은 시각에서 서술하고자하는 목적을 밝히면서 전투의 목표와 그 의의 등 전후 정황을 앞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견해와 함께 서술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문헌이 '르포문학'으로 구분되면서도 오히려 문학보다는 르포에 더 가깝다는 평을 받는 까닭일 것이다. 오웰은 당파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도 좋다고 썼는데, 개인적으로는 읽어보기를 권한다.   


ㅡ 


책을 읽다보면 전투를 하겠다고, 공격을 하게 해달라고 외치지만 실상 순박하기 그지없는 이 사람들을, 당장에라도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인데 바리케이드 뒤에서 불을 피워 달걀프라이를 만드는 남자들을, 끔찍한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누워있는 오웰에게 배급받은 일주일치 분량의 담배를 쥐어주고 허둥지둥 병실을 나간 천진한 소년병들을, 어쩌면 좋은가 싶었다. 마치 처절한 전투 장면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 흘러나오는 영화적 장치를 마주한 것 같은 그런 느낌. 거기에 이토록 곤혹스러운 상황에 유머가 묻어나는 오웰의 필력은 또 어쩌란 말인가.  


거짓으로 점철된 이 전쟁에서 오웰이 바치는 '찬가'는 누구에게 향한 것이려나.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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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전 시집 : 카페 프란스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정지용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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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의 시집 <정지용 시집>과 <백록담>이 실려있는 전 시집이다. 이 시집의 장점이라면 시인이 생전에 써던 원전 그대로를 유지했다는 것과 앞선 두 시집에 담지 않은 미수록 작품을을 더했다는 점이다.  


특히 옛 표기법은 물론 중세 국어 표기법까지 그대로 살려서 읽는 맛에 '보는' 맛까지 더했다. 우연찮게 두어 달 전에 중세 국어 문법에 대해 살펴볼 일이 있어서 책을 읽었는데 시집에서 보니 괜히 반가웠고, 드물지만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중세 국어 표기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읽는 데에 있어 크게 어려움은 없다. 앞위 문맥상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고, 대부분은 각주가 달려 있어서 어느 독자가 있든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훨씬 시를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후반에 배치한 '미수록 작품'들을 읽어보면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정지용 시인의 말년에 쓰여졌다는 점과 광복 전후로 하는 애국시와 혁명시, 더하여 종교적 색채가 짙다는 데에 그동안 시집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특히 1940년대 후반과 1950년에 걸쳐 유독 혁명에 대해 언급하는 작품들이 두드러지는데, 그의 죽음을 떠올려볼때 그가 이 시기에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시 '향수'가 너무 유명한 탓에 자칫 정지용 시인의 시들이 모두 서정시 혹은 향토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려 있는 시들을 읽어보면 서정시뿐 아니라 모던하고 세련된 시구들도 적지 않고, 자유에 대한 열망, 애국과 혁명에 대한 애끓는 마음도 전해진다. 또한 독실한 크리스찬임을 알 수 있는데, 이처럼 다양한 갈래를 넘나들며 써내려간 그가 왜 천재라고 불리는지, 윤동주가 왜 가장 존경하는 시인이라고 했는지 납득이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의 서정시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연과 아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사랑과 애틋함, 그리고 망연한 그림움이 느껴진다.  


'이 아이의 비단결 숨소리를 보라.
이 아이의 씩씩하고도 보드라운 모습을 보라.
이 아이의 입술에 깃드린 박꽃 웃음을 보라.'
('태극선'에서) 



때늦은 눈雪을 보며 다시 솜웃을 껴입더라도 춥고 싶다는, 새삼 돋는 빗속에서 붉은 잎을 소란히 밝고 가겠다는, 바람에 별과 바다가 씻기우고 바람이 음악이라는, 시인의 순수한 마음에 어떻게 독자의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시구처럼 나는, '탐하듯이 호흡한다', 그의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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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킬조이 - 쉽게 웃어넘기지 않는 이들을 위한 서바이벌 가이드 Philos Feminism 9
사라 아메드 지음, 김다봄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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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에서 보여지듯 이 책은 페미니스트 킬조이의 정의를 비롯해 페미니스트 킬조이로서의 생존 방법, 그리고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문화비평가, 철학자, 시인, 활동가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에 대해 서술하는데, 특히 순응하라는 압력 아래서 생각을 말로 드러내고 사고와 감정에 형태를 부여할 방법을 찾기 때문에 시인이라고 하는 데에 공감하는 바다. 또한 이 책의 목적은 페미니스트 킬조이들에게 자원이 되는 것, 즉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 및 부정의와 싸우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킬조이'라는 단어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에 대한 이미지의 핵심은 누구도 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킬조이가 한때는 인물 유형을 그려내는 데 이용되었다면, 이제는 정치 스타일을 묘사하는 데에 더 자주 쓰인다.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교묘하게 비틀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불행한 여성들은 모두 페미니스트라는 인식, 젠더 평등을 위해 싸우는 것을 천성에 대항해 싸우는 일이므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 편견 등,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기만 해도 당장 킬조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더 격렬한 사회 변화의 시기에 더 많은 킬조이가 등장한다는 의미이다.  


킬조이는 과민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센 사람으로 여겨지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과 다르게 영향받음(차별적 발언을 농담거리로 써먹거나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웃음에 동참하지 않는 것과 같은)으로써 소외되고, 상황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지경에 이르며, 이후부터는 자기 검열이 따른다.   


저자는 남들이 듣게 하려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면, 소리를 지르라고 말한다. 이 말이 이해가 되는 이유는, 페미니스트는 종종 너무 극단적이고 과격해서 싫다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사회적 약자의 조용한 외침에 귀기울이는 기득권층은 없다고 대답한다. 페미니스트뿐 아니라 세상의 약자ㅡ인종, 성, 장애, 유아동ㅡ들이 그렇게 소리라도 지르고 과격한 퍼포먼스라도 해야 관심은 고사하고 시선이라도 돌리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렇듯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달리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ㅡ 


저자는 페미니즘이 '백인 페미니즘'으로 인식되어 있음을 꼬집으며 페미니스트 내 인종차별에 대해서 언급하고 이방인에 대해 출신이나 소속이 아닌 '어울리지 않는 신체'로 여겨짐을 짚는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에 서술하는 문화비평, 철학, 시詩 등을 통해 여러 사례와 함께 설명한다. 


그는 문화비평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갖는 허위와 위선 뒤에 감춰진 본질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또한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행복의 대체성, 목적으로서의 행복과 수단으로서의 행복, 문화(종교)적 제약과 차별을 통해 관습적이고 국가주의에 대해 면밀하게 짚는다. 또한 주류적 보편성(책에서는 백인)에 진입하기를 의도하면서, 그렇지 못하면 낙오자인양 취급하고(책에서는 대표적인 예로 시민권을 든다), 이와 동시에 현재에는 개방과 공정이 보편적이고 차별과 괴롭힘이 일부 소수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인양 축소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책에는 홀로코스트와 트렌스젠더를 향한 폭력을 비교 상대로 들먹이는 함의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우리가 익히 함정에 빠지는 문장 프레임들이 떠올려진다. 활동가인 정희진, 리베카 솔닛이 자신들의 저작에서 재차 강조했던, 말(용어)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새삼 느낀다.   


5장에 '문간'이 갖는 공간적 의미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이 있다. 문은 문간이 되는데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의 가장자리에서,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 그늘이 떨어지듯 떨어지는 이들, 쓰러진 자들이 모이는,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위험한 이들을 위한 공간이 된다고 썼다. 그늘 속에 남음으로써 살아남는다는 문장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늘에 머무르는 것으로써 살아남는 이들이 과연 서구 사회의 흑인과 유색(또 그 안에서 여성)인의 서사이기만 할까.  


ㅡ 


책은 페미니스트 킬조이의 이야기를 수집해 담았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에세이와 문학,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페미니스트가 어떤 식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보는데 이를 통해 독자는 여러 사례들을 공유하고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볼 수 있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정치적 운동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약자의 연대는 생존과 연결되어 있음을, 개인적인 것이 역사가 됨을, 말한다. 개인적인 것들이 모여져 전기가 되고, 제도가 되고, 역사가 될 터다.


나의 짧고 부족한 독후 기록이 혹여 책의 내용을 오해하게 할까싶어 저어된다. 페미니즘은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느껴지는 바가 많고,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니 여력이 된다면 읽어보기를 바란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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