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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불탈 때 - 인간을 향한 자연의 마지막 경고, 초대형 산불이 울리다
조엘 자스크 지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5년 4월
평점 :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경북 지역을 초토화 시켰고, 동시간대 산청에서도 초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진화는 데 수일이 걸렸으며 엄청난 규모의 토양을 회색빛으로 삼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다. 이에 따른 인명 및 물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노력으로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숲이 사라졌다. 이에 앞서 2023년에 발생한 하와이 초대형 화재는 도시 전체를 삼켜버렸다. 이제는 우리가 초대형 산불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달라져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숲의 식민화, 불 산업 복합체 및 산업형 삼림, 생태계의 규제와 계획, 국토 개발, 기후 온난화,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불의 문화'의 변화, 메가파이어와 통제된 불의 구분, 산불 예방에 대한 단순 이원론적인 접근 지양, 화염 테러 등 여러 측면에서 대형 화재를 다룬다.
2010년 이후에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산불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띤다. 과거 산불은 계절의 영향에 따른 예측 가능하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발생했다면 현재의 산불은 '메가파이어'라는 극단적인 현상인데 이 불길은 비정상적이고 발생 예측이 불가하며 한 번 시작되면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이 글의 목적은 메가파이어 현상에 공동 행동을 촉구하는 여론 촉진제로 삼아 인간 존재의 조건을 보존하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제안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또한 초대형 산불은 인간이 적응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비극적이고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며, 우리가 일으켰고 결국 우리에게 그 피해가 돌아오는 메가파이어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를 물어야 할 때라고 얘기한다.
초대형 산불은 약 20년 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반면, '메가파이어'라는 용어는 최근에 출현했다. 여기서 '메가'는 화재로 소실된 산림이나 땅의 규모뿐만이 아니라 심각하고 지속적인 화재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생명체가 숨쉴 수 없게 하는 볼모지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메가파이어는 숲의 본질이 변형될 수 있고, 대규모 상수원의 오염, 도시 전체 폐쇄로 인한 이주민 발생을 염두해야 한다. 불은 자연을 재생시키고 풍요롭게 만드는 본질을 가지고 있고, 산불은 숲 생태계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불이 자연적 존재에서 사회적 존재로 가주될 때 불은 더이상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대다수의 대형 산불은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지중해 지역의 경우 자연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산불은 전체의 2%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 때문에 발생한 산불의 비율이 전체 95%에 달한다. 문제는 초대형 산불 발생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한 번 산불이 발생한 이후 그 다음 새로운 산불이 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숲의 재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숲이 회복하기까지 약 50년이 걸리는데 잦은 산불은 나무가 자랄 틈을 주지 않고, 기후 변화로 인한 폭우와 폭설은 토양을 모조리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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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세계에 질서와 규율을 도입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자연적 사건들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숲의 식민지화다. 이는 야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토 정복, 국토 개발 정책들과 닿아 있다. 수십억 달려 규모에 달하는 불 산업 복합체는 환경 보호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경제적 이익의 논리에 따라 개발되고 있다.
산업적 이익을 위해 숲을 장악하는 것은 메가파이어의 발생을 촉진한다. 특히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경제적 수익성(단일종 나무)을 위해 체계적인 산불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산림 파괴를 초래한다. 산업형 산림(플랜테이션 숲)은 그 자체로 불에 타기 매우 쉽기 때문에 환경을 화염에 노출시켜 위태롭게 만든다. 이는 산림의 불량화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단일림은 오래된 숲에 비해 지구 온난화와 산불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 따라서 생물 다양성의 빈곤화는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 스스로 제공하는 셈이다.
대형 산불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고, 이는 다시 산불 발생의 원인이 된다. 대형 산불은 같은 지역에서 자동차들이 1년 동안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많의 이산화탄소를 몇 개월 만에 발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메가파이어로 인해 오염된 물이 유출되면 강 전체를 오염시킨다. 따라서 대형 산불의 빈도 및 강도 증가는 아주 위험한 미래를 전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산불은 진압보다는 예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진압 패러다임이 우선하고 있고 산불을 싸워야할 적으로만 여기는 한 메가파이어에 적합한 예방 지침을 세우지 못한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줄어들수록 산불의 심각성은 커진다. 저자는 호주 원주민의 사례를 들어 산불 예방 정책을 일관성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원론적 철학보다는 상호 보완성과 상호 변형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거에 불을 쓰던 관행과 불에 관한 전체론적 과학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인간과 환경이 접촉하고 만나고 서로 맞춰 가며 영향을 주고받는 영역의 역할을 했던 불의 문화. 저자는 메가파이어와의 싸움과, 통제된 불과의 싸움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는다. 후자의 경우 무조건적인 진화는 오히려 메가파이어 확산에 유리한 가연성 물질이 축적되도록 부추긴다. 통제된 불이 금지된다면 숲은 유리 덮개 속 자연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을 완벽히 분리시키며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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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파이어 피해자들은 파괴와 그들 역사의 상실 등 붕괴를 경험한다. 방화로 인한 산불은 방화범에 의해 그 파괴력이 최대치로 향한다. 이는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테러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방화는 갑작스럽게 발생해 대응이 늦어지고 확산 속도가 빨라서 강력한 파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낮은 비용, 적은 에너지 소모, 언론의 주목, 범인을 찾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방화로 인한 대형 산불의 원인은 방화에 있지만 산불을 가속화, 극대화시키는 것은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음을 기억해야한다.
가뭄 홍수는 물론 산불까지 자연을 과학기술로 완정히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함과 환상이 가져온 부주의, 온실가스와 기후변화가 자연현상이며 저절로 해결될 거라는 안이함과 불감증. 황폐해진 땅, 생태계 훼손, 문명 소멸은 인간의 특정한 파괴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메가파이어로 인해 우리가 겪는 것은 토지, 집, 자연의 경관 등 물리적인 소멸뿐 아니라 깊은 상실감과 무력감, 불안과 우울, PTSD다.
메가파이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인종, 지역, 성별, 계층 등의 조건을 모두 떠나서 새로운 형태의 연대와 환경 윤리의 공유다. 따라서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는 익명적으로 연결된 거대 사회를 어떻게 인류 운명 공동체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저자는 인간들끼리의 토론과 추론이 아닌,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관계를 구축하고 인류의 공동 경관을 보호하는 새로운 사회 계약의 체결을 말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에세이 『농업』에서 지속 가능하도록, 미래 세대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세상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윤리적 원칙임을 주장했다. 이것보다 더 우선해야 할 가치가 있을까?
책을 읽고 쓰면서 이번만큼은 나의 개인적 소견이나 책의 평가보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일목요연하게 써내려간 저자의 글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그래서 우리가 시급히 고민하고 대안을 세워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바람한다.
※ 도서지원
자연 재해와 범죄 사건은 경계가 명료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는다. 인간의 동기와 자연의 원동력은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명확하게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너무도 긴밀하게 얽혀 있기에, 기존의 논증 방식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이 이 초대형 산불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문제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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