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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비들
데니스 루헤인 지음, 서효령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1월
평점 :
인종차별이 한창인 1974년 여름, 미국 연방 정부는 학교 내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해당 도시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백인 거주 지역과 흑인 거주 지역 간에 학생들을 맞바꿔 버스로 통학시키는 칙령, 즉 버싱 시행을 발표했다.
범죄 이력이 전혀 없고 정규 학업을 마친 후 관리자 프로그램 과정에 있는 스무 살 흑인 청년이 백인 하층민 거주 지역의 지하철 승강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편 남자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다면서 절친과 함께 나간 딸이 실종됐다. 딸을 찾기 위해 행적을 추적하는 메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에 경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살인자들의 섬』으로 잘 알려진 데니스 루헤인의 최근작이다.
인종차별 쳘폐를 위한 칙령과 그와 동시에 백인 거주 지역에서 발생한 흑인 청년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소설로 여겨질 수 있으나 작가가 서술한 소설의 시의성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소설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백인 빈곤층이다.
미국에서 베트남전에 가장 많이 지원한 지역의 상위 순위는 주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곳이다. 버싱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에서 버싱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버싱을 결정한 법원 판사의 자식들은 어느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냐고 묻는다. 버싱 결정권자들 중에 이 칙령에 해당하는 자녀는 아무도 없다.
두 번의 이혼을 거친 결손 가정에서 성장하고 경제적 빈곤까지 겪고 급기야 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린 백인 소녀, 부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고 다정한 부모 슬하에서 착실하게 자신의 삶을 다져가는 흑인 청년. 이러한 대비는 이후 등장하는 인물들과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이어진다. 늘 화가 나 있어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해도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가난한 백인들. 백인 사회 내에서도 아일랜드 이주민 집안 출신으로 이방인으로서의 불안정함을 안고 거칠게 살아온 메리. 혐오와 멸시의 시선에도 분노를 드러내지 않으며 이성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흑인 여성 드리미.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흑인 지역의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폭력적인 집회를 거듭하지만, 정작 사우디 지역의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건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백인 공동체 이웃이다. 함께 나고 자란 이웃에게 마약을 팔고, 어린 아이들(심지어 친구의 자녀들)을 성추행하고, 마치 인심이라도 쓰는 양 돈을 주며 강도질의 세계로 이끄는 그들의 모습은 앞서 언급한 모순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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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버싱 반대 집회장에서 자식을 둘 다 잃은 자신에게 남은 것은 동네와 이웃, 즉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켜야할 유일한 것이라고 믿는다. 마약중독으로 인한 아들의 죽음에도, 짐작이 가능한 딸의 실종(혹은 죽음)에도, 가해자 모두 백인이다. 그녀가 지키겠다는 공동체의 기준은 무엇일까.
흑인 경찰이 백인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은 백인에 대한 모욕.
학교를 학교답게 유지하기 위하는 데에 그 구성원에 해당하지 않는 흑인 학생들.
흑인 한 명이 죽었다고 백인인 자신이 살인죄로 기소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럼.
백인에게는 감히 우호적인 안부를 물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
폭행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피해자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신고하지 않는 백인.
소설을 통해 작가가 드러낸 차별은 인종에 국한하지 않는다. 위의 문구에서 '흑인'을 다른 단어로 대신해 보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경제적 하층민, 보호자가 부재한 미성년자 등등. 인종차별이 한창인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은 지금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의 맨 끝에서 드러나는 줄스의 행위에 대한 진실.
딸을 오해했던 메리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미안했을 것이다.
줄스의 행위가 옳았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지만, 아마도 그 순간 어기 윌리엄슨을 위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비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비극과 사소한 기적, 그리고 알려지지 않는 작은 자비들. 이는 형사 보비에게서, 줄스에게서, 메리에게서, 드리미에게서 드러난다. 이것이야말로 배트맨과 아이언맨이 없어도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작은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