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
성해나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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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2025년에 문화일보에 연재된 것들이다.
'기획의 말'에 쓰인 것처럼 「세상엔 글이 되지 못한 글, 말로 다 할 수 없는 말, 기억으로 남지 못하는 기억이」이 셀 수 없이 많다. 열아홉 명의 작가가 일상의 중독에서부터 교육과 입시, 정치 갈등, 성폭력과 성차별, 불임, 나이 듦, 전세 사기 등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적은 분량이지만 임팩트 있게 짚어낸다.  


읽으면서 그때그때 적어놓은  짧은 생각들을 리뷰로 갈음한다.  




 


출산율 저하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사회 시스템과 더불어 부모 교육도 동반되어야하는 거 아닌가 싶다. 


문학에 있어서 효율성은 무엇일까? 바쁜 현대인과 지적 허영 덕분에 고전 혹은 벽돌책이라고 불리는 문헌들의 다이제스트 판본이 경쟁적으로 출판되고, 본문 뒤에 친절하게 줄거리를 정리해 놓거나 생각할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본문 못지 않은 분량으로 전문가의 해설까지 첨부되어 있다. 어쩌면 조만간 이러한 친절조차 불필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에게는 AI가 있지 않은가.
(읽으면서 끄적거렸는데, 김기태 작가도 콕 짚어서 말씀한다.) 


갓생이 무슨 뜻인지 찾아봤다. 'God + 生', 남들의 모범이 될 만큼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사는 삶이란다(Gemini한테 물어봤다). 신도 아닌데 왜 신처럼 살려고 하는 건지, 그리고 신의 삶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데 갓생이라니... . 갓생이 아닌 人生을 삽시다. 


갓생, 덕후, 마니아는 대체로 극단적이다. 지금까지 덕후나 마니아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 그 감정을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몰입은 좋다. 그럼에도 함몰陷沒은 우려스럽다. 


배달 오토바이 그림이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누군가 자기를 위해 달려오는 느낌이 들어 좋다는 화자.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갓생도 덕후도, 외롭기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에너지를 쏟아낼 창구와 공감의 결핍. 크든 작든 관계라는 것을 형성해나가면서 끊임없이 따라붙는 비교와 경쟁. 누군가는 지쳐버려 손놓은 채 방콕을 하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일방적 구애를 한다. 배달 앱을 사용하지 않는 내가 오토바이 그림이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으나 소설 속 그의 마음이 안쓰럽다.


​나이 듦은 누군가를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건지도.


가장 안타까웠던 내용의 소설은 문지혁 작가의 「다섯째 아이에게」였다. 불임(혹은 난임)에 관한 소설인데, 낮은 출산율 통계 안에는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님을 깨닫는다. 언젠가 매체에서 난임 관련해 국가건강보험의 지원 범위가 좁고 금액이 너무 적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 모쪼록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기를 바람한다. 교육과 임신(출산)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를 지키는 일이므로 여기에 직접적인 반대가 없기를! 


​안톤 허 작가의 언어와 문학과 번역에 대한 이야기,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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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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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가정에서 도망친 열일곱 살 소녀 루이사.
죽음을 앞두고 소녀에게 거액의 작품을 남긴 서른아홉 살의 중년 화가 C. 야트. 


두 사람은 마치 평행이동처럼 비슷한 삶의 궤적을 보인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예술가, 불우한 환경,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까지. 루이사와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피스케은 위탁시설에서 성장했다. 훗날 C. 야트로 불리는 화가와 요아르는 가난했고, 요아르는 아버지의 가정폭력 속에서 살았다. 루이사의 유일한 숨구멍은 피스케였고, 요아르는 화가에게 다른 삶의 길을 열어주었다. 



서로의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네 아이가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가정 폭력에 노출된 채 성장했다.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행, 정상성을 강요하는 학대, 단절과 고립과 무관심, 성추행. 그들 모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고, 서로의 존재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C. 야트의 그림을 칭찬해준 첫 어른 크리스티안, 화가 본인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꿈을 대신 꾸고 동력이 되어준 요아르와 친구들,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켜준 테드, 그리고 삶의 마지막 방점이자 의미가 되어준 루이사. 그들의 서사는 이렇게 단순한 몇 줄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긴 이야기다. 소설은, 물리적으로는 불과 며칠, 그리고 과거 2년여를 다룰뿐이지만, 그들에게는 헤어릴 수 없는 많은 사건과 감정들이 교차해 수십 년을 다룬 소설보다 훨씬 더 깊이 인물들에게 가닿는다.   


많은 부분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죽어가는 새를 살리는 부분이었다. 피범벅이 되어 찾아온 요아르가 테드에게 맡긴 상자 안에는 네 아이들이 발견한 죽어가는 새가 들어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난동을 부리는 와중에도 새를 살리겠다고 친구에게 맡겼고, 그들은 작은 생명을 구했다. 요아르는 새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써 아버지에게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살려놓은 새가 날아갈 때 느끼는 그들의 황홀감. 아마도 사랑과 연민이야말로 폭력을 이기는 방법임을, 말고하자 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들도 그렇게 서로를 살리고자 했다.  


두 사람에서 시작된 소설은 이야기가 진행할수록 인물이 한 명씩 한 명씩 늘어나면서 긴밀하게 이어지는데, 어느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내내 독자의 마음을 졸였던 인물, 화가의 예명이 가진 의미, 그림 「바다의 초상」에 숨겨진 비밀, 밝혀지는 화가의 본명, 그리고 예상을 뒤집는 반전들. 


화가의 유산은 그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각자 나누었던 깊은 우정을 공감하고 위무하는 테드와 루이사, 죽은 친구의 뜻을 이어주는 살아남은 자들. 선의가 선의를, 사랑이 사랑을, 사람이 사람을 구원해주는 이야기. 그리고 소리없이 이들의 연결고리가 되어 주는 서술자까지. 소설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다. 이런 진부한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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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
슬론 크로슬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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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집으로 돌아와보니 도둑이 들었다. 침실 창문으로 들어와 새하얀 침대보를 짓밟고 보석을 싹 쓸어갔다. 부재 중에 낯선 자가 침범했다는 트라우마는 물론이고 도난당한 보석과 망가진 가구들을 보면서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도난 사건은 내면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불안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거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세상을 떠난 러셀의 죽음은 저자에게 쉽사리 지워지지 못할 큰 충격을 안긴다.  






 



이 책은 오랜 세월 함께 했던 동료이자 친구이며 아버지 같았던 러셀과 그와의 우정에 보내는 저자의 헌사다. 러셀이 했던 말과 행동, 그가 장난처럼 던졌으나 진심이 담긴 조언과 위로 들을 천천히 되짚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를 돌아보았던 가장 큰 부분은 위로의 방식이다. 나(혹은 제3자)의 불행을 들어 상대를 위로하지는 않았는지, 내 의도와 무관하게 (혹은 나의 무의식 안에서) 그것이 결국 나도 견뎠으니 너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단정은 아니었는지,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애도 역시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앞서 언급한 위로나 섣부른 조언이 사실은 내 할 일을 다 한 것이라는 의무감이나 자위였던 건 아니였나,싶어 조금 겁이 났다고 해야할까. 


저자가 던진 인상적인 질문이 있다. 「당신과 당신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한 방에 앉아 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문입니다. 어느 날, 상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마디 설명도 없이 문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버립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이 글을 읽고 한참을 생각했다. 질문을 읽자마자 곧바로 든 생각은 상대가 나가버리고나서 남겨진 '나'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생각이 오래 머물다 보니 어떻게 할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궁금해졌다. 생각 끝에 떠오른 것은 상실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 상대의 세계에 '더 이상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상실감, 무용한 존재가 됐다는 상실감.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두려움. 저자는 러셀의 결단의 동기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읽혔다. 


이 책에서 읽혀지는 러셀은 굉장히 유쾌하고 유니크한 사람이다. 물론 그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고 주변에 소통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그것들이 상실감을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일까. 문득, 가까운 나의 친구와 지인들을 떠올리면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게 별로 없음을 깨닫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적확하게 쓰고 있다. 그래서 많은 페이지에서 그의 글에 동의하고 공감했다. 저자가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짧은 「감사의 글」은 갑작스레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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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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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수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다른 생명체의 기억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나' 게오르기가 1913년생인 할아버지의 기억을 좇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소설은 1990년대 불가리아의 현대사와 냉전 시대를 지나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속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생이 던지는 아이러니.
언어의 본질.
언어 혹은 이름을 잃는 슬픔.
세기가 바뀌어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의 참혹함.
시대가 가져다준 비극.
강자(침락자)에 의해 밀려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조롱, 그리고 모두가 가져야할 연민과 애도의 부재.
생기를 잃고 소멸해가는 것들의 쓸쓸함.
우리의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늘 가까이 존재하는 죽음.
자연이 인간에게 전하는 종말론적 메시지. 
 







소설의 중요 모티브는 기억과 공감(이입), 그리고 유기遺棄이다.
특히 미노타우로스를 빗대어 유기, 차별, 학대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한다. 이것은 인간 권리와 존엄의 박탈이다. 더욱이 아이들은 전쟁과 가난에 취약한 존재다. 어른(강자, 권력자)들은 아이들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으며 언어를 허락받지 못한 아이(약자)들은 더 억압당한다. 아이(약자)들은 지속적으로 유기된다. 과거에는 이데올로기와 전쟁과 가난 때문이라면, 현대에는 단절과 고립에 의한 다른 양상의 유기가 더해졌다.   


우리가 공감하기를 저어하는 데에는 게오르기가 느끼는 것처럼 타인의 슬픔이 질병처럼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무게감을 나눈다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소설에서 게오르기는 나이가 들면서 이입하는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사라져간다. 이는 우리가 공감하고 배려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갈수록 인색해지는 것과 닿아 있다. 평등, 연민, 공감, 이입, 연대 등 공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하려들지' 않기에 슬프다.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시대의 통로를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슬픔을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게오르기의 그 마음이, 병적인 이입의 능력이 사그라들고 있음에도 그 마음을 지키고자하는 그 애씀이, 지금 우리한테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은 아닐까. 수많은 출구가 도사리고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는, 삶이라는 미궁에서 헤쳐나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를 기억하기, 이해하기, 손을 맞잡기. 


탄생을 비롯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 어느 것도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화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행복했든 불행했든 지나온 시간보다는 내 앞에 놓여 있는 시간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싶다. 명치가 묵직해지는 부분이 많다. 서럽거나 분노의 슬픔이 아닌, 한 단어로 담아낼 수 없는 흐르는 시냇물같은 슬픔이 이어지는데, 슬픔으로 정화되는 듯한 이 감정이 썩 괜찮다.  


출생(프롤로그)에서 시작해 죽음(에필로그)으로 마치는 소설은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고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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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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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하루만에 읽어버린 소설이다. 남동생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이후 하나씩 드러나는 정황들을 통해 우리가 나 자신을 제외한 타인(때로는 자 나신까지)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문체가 수월하게 읽히고,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가오루코와 세쓰나의 케미가 재미를 더한다.  


남동생 하루히코의 죽음과 그의 유언장이 이어준 인연으로 가사 대행 서비스 회사 '카프네'의 무료 봉사에 참여하게 된 가오루코는 어쩌다 세쓰나와 파트너가 되어 가정 방문을 한다.  


홀로 노모를 돌봄하는 중년 남성(혹은 여성), 사별 후 단순 노무직을 전전하며 사춘기 딸과 단둘이 살고 있는 여성, 갓난 쌍둥이의 독박육아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 엄마, 아내가 가출한 후 혼자 두 살난 아들을 양육하다 지쳐버린 남성, 방치된 두 아이만 남은 집, 치매 남편을 돌보는 노부인. 두 사람이 찾아간 가정은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다.  







 
살다보면 노력과 성실로 안 되는 일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제 자신을 다치게 한다. 그럴수록 나 자신을,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가오루코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치유를 얻는다. 그렇다고 가오루코가 자신보다 불우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위안을 얻었다는 오해는 금물. 오히려 그들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시선을 돌려 다른 일에 집중하고, 진솔한 대화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나아진 '나'를 경험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받은 사랑만큼 대가를 치르듯 상대가 원하는 것에 맞춰 살고, 그로인해 지쳐간다. 성실을 강요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속박하는 세상. 그럼에도 이 고단한 세상에서 의지할 대상은 결국 사람이다. 이 소설의 키워드를 꼽자면 '도움'과 '돌봄'이다. 이 두 가지는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도 포함하며 어느 한쪽에서 한쪽으로의 일방이 아닌 양방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이야기도 이야기만 각각의 인물물이 무척 흥미롭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보편적 인물이지만, 그들이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그들만의 이야기를 통해 새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어떤 말 못할 이야기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오루코와 세쓰나. 정말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세쓰나가 염세적이라면 가오루코는 모든 일(심지어 탈선도)에 열정이 넘친다. 세쓰나가 다른 사람의 인정에 관심이 없는 반면, 가오루코에게는 타인의 인정과 쓸모있는 존재라는 자부심이 삶의 동력이 된다. 상대를 위로하는 방식부터, 하다못해 영화 취향까지 극과 극인 두 사람의 유대가 주는 따뜻함은 어느 독자라도 대리만족을 얻을 것이다. 


사실 읽는 내내 세쓰나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퉁명스럽고 냉정한 말투 이면에 가식 없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보살핌을 통한 위로와, 무심한 듯하지만 솔직한 조언과 배려는 지극히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더 와닿는다.  


구성이나 문체 등 여러 면에서 이성과 감성이 조화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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