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죔레는 거기에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김보국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2월
평점 :
자신이 750년간 이어져 내려온 왕가의 후손이자 왕위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아흔두 살 요지 아저씨. 그는 더 이상 장작불을 피우지 않는 것처럼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만 이행한다면 더는 열정을 불사를 일은 없으리라 여긴다.
사이사이 드러나는 요지 아저씨의 인생사를 따라가다보면 그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과는 불화가 반복되고, 나름 평온하지만 외로운 말년을 보내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에게 왕정복고를 꿈꾸는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그들로 인해 아흔 살이 넘은 노인의 삶은 제대로 꼬인다.

첫문장부터 의미 심장하다. 또한 첫 페이지에 쉼표를 잔뜩 찍어놓은 문장들은 가슴에 박힌다.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임팩트 있는 도입부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소동극 같다. 이런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나,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한다는데 하물며 왕정복고라는 엄청난 대의(?)를 도모하면서 매번 엇박자로 틀어지는 그들의 모습은 코미디처럼 웃음이 난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있는 비관도 낙관도 아닌 공허는,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적 폭력은, 슬프다.
ㅡ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두 군데가 특히 인상적이다.
마을에 돌아다니는 괴물 같은 개들은 낯선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곧장 떼로 달려들어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말하는 요지 아저씨는 그러한 이유로도 산책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괴물 같은 개'들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아흔 살이 넘은 노인, 가난한 노동자와 무명의 예술인, 그외에도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또는 무관심이라는 가해는 아닐런지.
(여기는 살짝 스포) 요지 아저씨는 늙은 개 죔레가 죽자 이웃을 통해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얻었다. 그는 새끼 강아지를 데려워 곧장 죽은 죔레의 집 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이 새끼 강아지의 이름 역시 죔레. 이 집에는 33년 동안 많은 개가 있었지만, 모두 이름이 죔레였다. 죔레는 특정 한 마리 개가 아닌 요지 아저씨의 집을 거쳐간 모든 개의 이름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것. 혹은 개별성을 잃어버린 채 부속품처럼 살다가 교체되듯 사라지는 인간의 숙명을 뜻하는 것. 혹은 의무처럼 삶을 이어가는 공허한 인생을 빗댄 것. 여러 생각이 스쳤는데,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애초에 요지 아저씨가 원한 것은 간단하다.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다음 왕위 계승자를 지명하고, 계승자에게 계승 사실을 알리는 것, 그리고 평온한 노후, 이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요지 아저씨가 왕정복고와 왕좌에 앉기를 꿈꾸게 된 이유가 단지 추종자들의 부추김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흔 살이 훌쩍 넘은 노년의 끝에 이른 요지 아저씨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가난, 외로움, 단절, 돌봄의 부재 한가운데에 있다. 21세기의 시스템을 따라가기도 버거운 노인에게 제때 연금을 신청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다. 젊은 시절 소원해진 자식과의 관계는 얼어붙을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그와 유대를 맺는 유일한 존재는 개, 죔레뿐이다. 그들 둘은 서로에게 거의 절대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테다. 자기가 정한 원칙을 지키고,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버티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온 요지 아저씨의 말년이 과연 그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
ㅡ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 같다가도 사이사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판적인 시각과 촌철살인은 오직 돈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작금의 세태를 일갈한다. 작가의 작품에서는 정치, 환경 오염, 경제, 신자유주의, 복지와 돌봄, 예술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반드시 짚는다(적어도 지금까지 읽은 네 권은 그렇다). 즉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보통의 일상처럼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고 있으니 이러한 것들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며 늘 주의를 기울여야함을 당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도착했을 때 동봉된 '편집자의 레터'에는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이 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음을 애달프게 깨달았"다고 쓰여 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작가의 작품들이 난해한 것으로 워낙 유명한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독자라면 (가장 최근작이지만) 『죔레는 거기에』, 그리고 『라스트 울프』를 추천한다. 무리없이 읽을 수 있으리라 단언한다. 다만 만연체가 갖는 특성은 감안해야한다.
횡설수설,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스포를 우려해 줄인다. 300쪽을 넘어서면서부터 계속 울컥했고 눈물도 그렁그렁.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별도의 독서노트에 열심 끄적이는 중이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