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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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마을 태고를 배경으로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공간을 이루고, 그 공간이 다시 시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미하우와 게노베파, 크워스카와 나쁜 인간의 시간.
파베우와 미시아, 루타와 이지도르의 시간.
포피엘스키와 게임(신)의 시간.
그리고 아델카의 시간. 


두 차례의 전쟁과 냉전 시대, 민주화 운동, 산업화를 겪으며 태고인들은 때로는 피해자가 되고, 때로는 박해의 목격자가 된다. 독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인류의 삶과 그 안에서 약자로 살아야했던 여성, 장애인, 부랑아 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히 게노베파와 크워스카에서 시작되어 아델카까지 이어지는 여성 연대기는 독자들에게 가슴 뭉클해지는 진한 여운을 안긴다.  






 
 
짧게 끊어가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형식을 취하는 소설의 화자들은 각양각색이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뿐 아니라 전쟁 중에 태고에 들어온 외지인들, 태고인이지만 비주류에 해당하는 인물들, 태고의 동물과 식물, 신, 천사, 게임 등 여러 화자들이 등장한다. 출생, 성장, 젊음, 사랑, 병病, 노화, 선善, 악惡 등 이 세상에 생명을 부여받고 온 존재라면 한 번쯤은 겪게 되는 것들을, 우리는 이 소설에서 다채로운 색깔로 만날 수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각자만의 시간과 속도로 살아간다. 저마다 다른 그 시간들이 맞물리면서 커피 그라인더가 돌아가듯 그렇게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게 삶이다. 


삶의 근원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노년기가 되면 만물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혜안이 트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여전히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해 탄식하는 이지도르처럼, 우리는 늘 의문과 회한을 품는다. 하지만 만물이 존재하는 수만큼 삶의 형태 또한 그 수에 비례할테니 정답이 있을 리 없다.   


태고로 대변하는 우주적 관점과 신화, 자연과 인간의 합일, 정신과 물질, 선과 악(또는 천사와 악마), 육체와 영혼, 삶과 죽음의 넘나들이가 판타지처럼 아름답게 그려지는 소설이다. 한 세대의 죽음은 다음 세대의 탄생을 알린다. 이렇듯 죽음이 곧 끝이 아님을, 토카르추크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이 처음 출간된 직후에 읽고 6년만에 재독이다.  
처음에 읽었을 당시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던 이 책을 두 번째 읽을 때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만족스러운 재독이었다. 전혀 기억에 없었던 부분들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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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불탈 때 - 인간을 향한 자연의 마지막 경고, 초대형 산불이 울리다
조엘 자스크 지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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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경북 지역을 초토화 시켰고, 동시간대 산청에서도 초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진화는 데 수일이 걸렸으며 엄청난 규모의 토양을 회색빛으로 삼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다. 이에 따른 인명 및 물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노력으로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숲이 사라졌다. 이에 앞서 2023년에 발생한 하와이 초대형 화재는 도시 전체를 삼켜버렸다. 이제는 우리가 초대형 산불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달라져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숲의 식민화, 불 산업 복합체 및 산업형 삼림, 생태계의 규제와 계획, 국토 개발, 기후 온난화,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불의 문화'의 변화, 메가파이어와 통제된 불의 구분, 산불 예방에 대한 단순 이원론적인 접근 지양, 화염 테러 등 여러 측면에서 대형 화재를 다룬다.  


2010년 이후에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산불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띤다. 과거 산불은 계절의 영향에 따른 예측 가능하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발생했다면 현재의 산불은 '메가파이어'라는 극단적인 현상인데 이 불길은 비정상적이고 발생 예측이 불가하며 한 번 시작되면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이 글의 목적은 메가파이어 현상에 공동 행동을 촉구하는 여론 촉진제로 삼아 인간 존재의 조건을 보존하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제안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또한 초대형 산불은 인간이 적응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비극적이고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며, 우리가 일으켰고 결국 우리에게 그 피해가 돌아오는 메가파이어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를 물어야 할 때라고 얘기한다. 


초대형 산불은 약 20년 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반면, '메가파이어'라는 용어는 최근에 출현했다. 여기서 '메가'는 화재로 소실된 산림이나 땅의 규모뿐만이 아니라 심각하고 지속적인 화재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생명체가 숨쉴 수 없게 하는 볼모지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메가파이어는 숲의 본질이 변형될 수 있고, 대규모 상수원의 오염, 도시 전체 폐쇄로 인한 이주민 발생을 염두해야 한다. 불은 자연을 재생시키고 풍요롭게 만드는 본질을 가지고 있고, 산불은 숲 생태계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불이 자연적 존재에서 사회적 존재로 가주될 때 불은 더이상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대다수의 대형 산불은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지중해 지역의 경우 자연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산불은 전체의 2%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 때문에 발생한 산불의 비율이 전체 95%에 달한다. 문제는 초대형 산불 발생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한 번 산불이 발생한 이후 그 다음 새로운 산불이 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숲의 재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숲이 회복하기까지 약 50년이 걸리는데 잦은 산불은 나무가 자랄 틈을 주지 않고, 기후 변화로 인한 폭우와 폭설은 토양을 모조리 쓸어내린다.  


ㅡ 


야생의 세계에 질서와 규율을 도입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자연적 사건들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숲의 식민지화다. 이는 야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토 정복, 국토 개발 정책들과 닿아 있다. 수십억 달려 규모에 달하는 불 산업 복합체는 환경 보호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경제적 이익의 논리에 따라 개발되고 있다. 


산업적 이익을 위해 숲을 장악하는 것은 메가파이어의 발생을 촉진한다. 특히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경제적 수익성(단일종 나무)을 위해 체계적인 산불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산림 파괴를 초래한다. 산업형 산림(플랜테이션 숲)은 그 자체로 불에 타기 매우 쉽기 때문에 환경을 화염에 노출시켜 위태롭게 만든다. 이는 산림의 불량화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단일림은 오래된 숲에 비해 지구 온난화와 산불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 따라서 생물 다양성의 빈곤화는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 스스로 제공하는 셈이다.  


대형 산불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고, 이는 다시 산불 발생의 원인이 된다. 대형 산불은 같은 지역에서 자동차들이 1년 동안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많의 이산화탄소를 몇 개월 만에 발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메가파이어로 인해 오염된 물이 유출되면 강 전체를 오염시킨다. 따라서 대형 산불의 빈도 및 강도 증가는 아주 위험한 미래를 전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산불은 진압보다는 예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진압 패러다임이 우선하고 있고 산불을 싸워야할 적으로만 여기는 한 메가파이어에 적합한 예방 지침을 세우지 못한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줄어들수록 산불의 심각성은 커진다. 저자는 호주 원주민의 사례를 들어 산불 예방 정책을 일관성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원론적 철학보다는 상호 보완성과 상호 변형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거에 불을 쓰던 관행과 불에 관한 전체론적 과학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인간과 환경이 접촉하고 만나고 서로 맞춰 가며 영향을 주고받는 영역의 역할을 했던 불의 문화. 저자는 메가파이어와의 싸움과, 통제된 불과의 싸움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는다. 후자의 경우 무조건적인 진화는 오히려 메가파이어 확산에 유리한 가연성 물질이 축적되도록 부추긴다. 통제된 불이 금지된다면 숲은 유리 덮개 속 자연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을 완벽히 분리시키며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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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파이어 피해자들은 파괴와 그들 역사의 상실 등 붕괴를 경험한다. 방화로 인한 산불은 방화범에 의해 그 파괴력이 최대치로 향한다. 이는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테러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방화는 갑작스럽게 발생해 대응이 늦어지고 확산 속도가 빨라서 강력한 파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낮은 비용, 적은 에너지 소모, 언론의 주목, 범인을 찾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방화로 인한 대형 산불의 원인은 방화에 있지만 산불을 가속화, 극대화시키는 것은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음을 기억해야한다.   


가뭄 홍수는 물론 산불까지 자연을 과학기술로 완정히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함과 환상이 가져온 부주의, 온실가스와 기후변화가 자연현상이며 저절로 해결될 거라는 안이함과 불감증. 황폐해진 땅, 생태계 훼손, 문명 소멸은 인간의 특정한 파괴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메가파이어로 인해 우리가 겪는 것은 토지, 집, 자연의 경관 등 물리적인 소멸뿐 아니라 깊은 상실감과 무력감, 불안과 우울, PTSD다.  


메가파이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인종, 지역, 성별, 계층 등의 조건을 모두 떠나서 새로운 형태의 연대와 환경 윤리의 공유다. 따라서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는 익명적으로 연결된 거대 사회를 어떻게 인류 운명 공동체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저자는 인간들끼리의 토론과 추론이 아닌,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관계를 구축하고 인류의 공동 경관을 보호하는 새로운 사회 계약의 체결을 말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에세이 『농업』에서 지속 가능하도록, 미래 세대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세상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윤리적 원칙임을 주장했다. 이것보다 더 우선해야 할 가치가 있을까? 



책을 읽고 쓰면서 이번만큼은 나의 개인적 소견이나 책의 평가보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일목요연하게 써내려간 저자의 글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그래서 우리가 시급히 고민하고 대안을 세워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바람한다. 




※ 도서지원

자연 재해와 범죄 사건은 경계가 명료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는다. 인간의 동기와 자연의 원동력은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명확하게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너무도 긴밀하게 얽혀 있기에, 기존의 논증 방식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이 이 초대형 산불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문제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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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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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한바탕 소동으로 1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애나를 떠올리는 사이 바움가트너.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활기 넘치는 애나는 케이프 코드의 파도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가 파도와 마주쳐 등이 부러져 죽었다. 







여러 등장인물의 삶의 이력을 통해 본 각 세대의 시대상과 젊은 시절의 초상을 작가 특유의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죽은 아내를 놓지 못했던 노교수의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고, 부모들의 삶에 대한 기억 등 독자는 아내 애나의 글과 그 글들을 정리하는 바움가트너를 통해 누구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폴 오스터는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역사 즉 관계와 의존, 상실과 외로움, 제 삶을 살아낸 후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애도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앙헬 플로레스의 손가락 절단 사건은 바움가트너가 10년 전 아내를 잃은 상실과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아내가 떠난 후 몇 달 동안 의식이 분열된 자신의 모습은 플로레스가 겪을지도 모를 환지통과 같은 선상에 있는데, 바움가트너 역시 애나가 죽은 후 여섯 달 동안 그녀에 대한 '환지통'을 경험했다. 그 여섯 달 동안 바움가트너는 방향 감각을 상살한 채 비합리적인 충동에 휘둘리고 흔들리며 지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몇 권의 책을 이어서 써냈다. 다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우정을 쌓으며 때로는 다른 여자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오히려 애나의 죽음 이후 훨씬 더 생산성 있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애나를 사랑했던 내면 한 부분을 영혼의 깊은 곳에 영원히 죽은 채로 묻어둔 것이었음을, 그는 불에 타 쪼개져벼린 냄비를 보고 깨닫는다. 바움가트너는 환지통의 궁극적인 치료법은 없다고 말한다. 폴 오스터는 인생이란 곡절마다 겪는 환지통을 완화해가며 살아가는 일임을 말한다고 읽혔다. 그렇다면 환지통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기억과 애도, 그리고 연결됨.
소설 후반부가 인상적이다. 대학 후배인 톰은 바움가트너에게 애나의 시로 논문을 쓰고 싶다는 젊은 여성 비어트릭스 코언을 소개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이후 바움가트너와 비어트릭스는 이메일을 통해 우정에 가까운 관계가 되고 애나와 똑닮은 그녀를 딸처럼 사랑하게 된다. 또한 비어트릭스의 방문을 대비해 정원을 손질하는 데에 소설 첫 부분에 등장했던 검침원 에드의 재등장까지, 이는 폴 오스터가 소설 내내 썼던 '연결됨'을 아주 잘 보여주는 설정이다. 사람과 사람,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기억과 상실 등 인생 전반에 있어 거의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없이 고립된다면 우리는 살아갈 힘을 잃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올랐던 사람들이 있었다. J 씨, M 선생님을 비롯한 몇 분들. 특히 바움가트너의 어머니에 대한 서술을 따라가자니 자연스레 은섬 씨의 삶이 겹쳐졌다. 물론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주변 인들물과의 관계 방식도 다르지만 1900년대를 지나온 이들의 삶과 그들 스스로 부여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에는 분명 비슷한 정서들이 있다. 나는 제 삶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이들에게 늘 감동을 받는다.   



가제본 책을 받았을 때는 아직 정식 출간 전이었다. 
내용적으로 구구절절 쓰고 싶은 얘기들이 많지만 출간 이후 읽을 독자들을 위해 남은 이야기들은 별도의 독서노트에 써둔다. 삶을 관조하는 따뜻하고 다정한 폴 오스터의 시선이 훈훈하게 들어오는 소설이다.  


가히, 그의 아름다운 마지막 소설이라 하겠다.



※ 가제본 도서지원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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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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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된 인간의 땅 모데란에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 미래소설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69년,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064년으로 짐작된다.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그리 먼 미래는 아니라서 더 섬뜩한 부분들이 있다.  


총 4부로 나뉘어진 소설은 모데란을 배경으로 하는 연작소설로 읽힌다. 1부가 '10번 성채'를 통해 모데란 세계에 대해 개괄적으로 서술했다면, 2부에서 4부는 모데란 세계관 안에서 살아가는 신금속 인간들의 생활상을 비롯해 모데란에 진입하지 못한 올데란과 여성이 강제 이주된 하얀 마녀 계곡 등 성채 주인을 중심으로 종말과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1부가 다소 어둡고 무거운 면이 있는데에 반해 다른 장章들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모데란의 모순적인 모습을 역설적으로 그려낸다. 







 
핵전쟁으로 지구는 오염되고 인간 세계는 지옥으로 변했다. 9개월이라는 대수술을 받고 모데란을 지켜줄 10번 성채의 신금속 인간의 등장, 그가 위대한 운명을 선택받은 자 '나', 이 책의 서술자다. 


지구 표면은 플라스틱으로 뒤덮여 있고, 오직 전쟁과 쾌락만이 유일한 행위인 모데란 세계관에서 인간의 정신, 선의, 예의, 사랑, 꿈은 거짓된 개념일 뿐이다. 그리고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만사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신금속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위대한 운명을 선택받은 지도자가 되기에는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바로 슬쩍슬쩍 비어져나오는 '웃음'이다. 심지어 꿈까지 꾸고 종종 농담까지 한다. 위대한 신금속 인간에게 웃음, 꿈, 유머는 적절한 덕목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인상적인 점들이 꽤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성채 주인의 독백에 가까운 서술들(특히 2,3부)이 상당히 시적이다. 전쟁과 쾌락만이 남은 세상에서도, 인간의 인체가 모두 금속으로 바뀐 세상에서도, 성채 주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이들, 꽃, 새, 우정, 미소, 질투 같은 존재들이다. 이런 점들이 역설적으로 읽힌다. 그리고 모데란 종말 이후 살아남은 성채 주인의 회고는 우스우면서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살아남은 신금속 인간들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1에이커의 토양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아래 묻혀버린 토양을 복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전쟁을 그만두지 않는다. 이는 실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보도블럭으로 뒤덮인 세상이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모데란과 큰 차이가 있을까? 또한 전쟁의 폐해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세계는 아직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ㅡ 


의미 없는 갈등과 전쟁, 생태계 파괴, 과도한 과학기술에의 의존, 로봇의 출현과 인간 관계의 단절 및 고립, 사회적 약자 차별, 엘리트주의와 산업주의 팽배 등 소설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들을 압축적으로 꼬집는다.   


모데란이 추구하는 목표는 두 가지, 영원한 삶과 내면의 진정한 악덕을 체현하는 것이다. 모데란에서 생기는 오염은 플라스틱으로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최고의 신금속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꿈을 꾸지 않는다, 웃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신을 거부하면서 신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며 사유를 거부하면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스스로 만들어낸 양심의 출현에 공포를 느끼는, 모순적인 존재다.  


꽤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고 『모데란』까지 오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키워드는 '접촉'이다. 그 많은 소설들이 공통적으로 기저에 두는 것은 접촉을 터부시하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 외 생명체와 인간 등 디스토피아 세계의 지도자들은 인간과 생명을 고립시킨다. 이를 달리 얘기하면 인간이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궁극적인 계기는 타자와의 관계(접촉)이다. 이것이 가능해야 도덕과 양심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주의를 들어 타자를 차단하고 가상의 세계에 만족하며 이것이야말로 신인류라고 착각하는 지금,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자발적으로 디스토피아 세상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다. 마치 10번 성채 '나'처럼. 디스토피아 소설에서나 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거라고 콧방귀를 내뱉을 수만은 없다. 소설에서는 2025년 오늘의 모습이 아주 많이 보인다. 특히 깊은 방에 홀로 틀어박혀 있는 모습이.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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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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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 편의 노벨레, 설화, 서평, 비평, 에세이 등이 실려있다. 그중에는 사후 출간했거나 미완성작도 있다. 크게 3부로 나뉘는 이 책의 매력은 다양한 벤야민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철학자이자 문예 비평가이고, 좌파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1부 꿈과 몽상>은 벤야민의 아포리즘 모음집 『일방통행로』를 떠올리게 한다. 「꿈」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이야기 속 화자가 꾼 꿈에 대한 이야기다. 나치를 피해 파리로 망명, 다시 나치에게 쫓겨 급기에 자살에 이른 벤야민에게 '꿈'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가 탐구했던 신비주의와 초현실주의가 꿈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2부 여행>은 벤야민이 여행자로서 또는 이방인으로서의 시각에서 쓴 에세이가 다수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꼽아본다. 나의 심리적 태도와 내가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타자와의 거리 등이 관계의 양상에 미치는 영향. 열등감과 자기비하에 치여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 꿈을 통해 드러나는 무의식 혹은 본능 등이었다. 벤야민의 글에는 사는 동안 수시로 찾아오는 위기와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행복했던 기억과 그리움임이라고 말한다.  


ㅡ 


「꿈 1」을 비롯한 1930년 이후에 집필한 글들은 당시 그가 처한 상황과 심경을 잘 보여준다. 특히 1933년 나치를 피해 파리로 망명한 벤야민이 쓴 글에는 전쟁과 폭력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벤야민은 인간이라는 존재와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와 문화에 대해 사유한다. 
언어(혹은 언어적 행위)의 모호함.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언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들어 「숨기고 있던 이야기」에서 짝사랑하는 여대생과 한 기차에 탄 남자 대학생. 그는 선뜻 아는 체를 하지 못하다가 그녀의 트렁크를 들어주는 차장의 손길에 질투심을 느껴 차장으로부터 그녀의 트렁크를 빼앗듯 낚아 채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 주었는데, 정작 여대생은 그를 짐꾼 취급이다. 여기서 알 수 없는 것은 남자가 여자한테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여자는 정말 그를 짐꾼으로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짐꾼이 아닌 줄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독자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어떤 비극적 순간에도 제 욕망에 충실한 인간의 원초적 성질. 
문자가 인간의 삶에 남긴 흔적들. 
거짓과 사실. 거짓은 발화發話됨으로써 존재하고, 거짓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신뢰는 상대적이다.
이처럼 세상, 세상 안에 있는 수많은 것들, 그리고 자아. 이들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찰. 



<3부 놀이와 교육론>에서는 벤야민의 비판이 유독 날카롭다.
그는 잘못된 교육 방식이 아이들의 재능을 사장시킨다고 말한다. 획일적이고 주입식 교육, 특히 특정 사상이나 이념의 강요는 아이들의 창의력에 가장 큰 독임을 지적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임을 강조한다. 또한 동화를 비롯한 여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들이 폭력과 학대를 선善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식민주의식 사고와 물질우선주의를 미화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독일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일갈한다. 그는 철학적 농담과 언어 유희를 이용한 딜레마와 역설, 발명과 이름 붙이기, 유머 등 창의성 말살에 가까운 현대 사회의 교육을 향해 유니크하게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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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머리를 스친 생각은, 삶을 살아가는 혜안은 차곡차곡 쌓여진 경험과 성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이비사에서 만난 낚시꾼 오브라이언은 '매듭 짓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그물의 매듭이 아닌 인생의 매듭으로 읽혔다. 그리고 간혹 지나가듯 말하는 은섬 씨의 한 마디는 여느 철학자 못지 않다. 이 짧은 글들을 통해서 벤야민은 경험과 사유의 공유를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누구의 경험도, 어떤 이의 서사도 하찮은 것이 없음을,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매 작품의 앞에 실린 파울 클레의 그림들은 마치 마스킹테이프처럼 글의 분위기를 더해주는데, 본문의 내용과 묘하게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대분류로 나뉜 각 부의 제목에 실린 그림들( 1부의 「여자와 짐승」, 2부의 「힐터핑엔 지방」, 3부의 「춤추는 꼭두각시」)은 해당 하는 본문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도 든다. 어느 분이 이 그림을 선별하고 각 단편마다 매칭시켰는지 알 수 없으나 칭찬드린다. 덕분에 파울 클레의 화집을 찾아보는 중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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