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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자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괴짜 천재 글렌 굴드와 그의 천재성에 열패감을 느끼며 피아노 연주자의 길을 포기한 두 친구 이야기.
음악과 예술가로서의 본질에 대한 고뇌,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진정성, 연주자로서의 성공과 실패, 완벽과 최고에 대한 집착, 최고가 아니면 아무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아집. 여기에 가르치는 학생이 자신을 뛰어넘는 꼴을 보지 못하고 젊은 음악도들을 망쳐놓는 무책임한 교수와 돈과 지위만 밝히는 무식한 예술가들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다.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대부분의 문장을 '~, 난 생각했다'로 끝맺음을 한다는 점이다. 확인되지 않은 것들을 사실처럼 서술하고는 마지막에 자기의 생각이라고 선을 긋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백의 형태로 서술되는 소설에서,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진실은 거의 없다. 그저 그의 생각일 뿐이다.
글렌은 승자, 베르트하이머와 자신은 패자라고 생각하는 화자 '나'.
그는 자기와 베르트하이머가 글렌과 만나지만 않았다면, 호로비츠의 제자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대가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또한 자기가 피아노를 계속했다면 글렌 때문에 최고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최상급에는 속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리고 그것이 예술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몰락한 자'로 전락시킬 이유가 될 수 있을까?
화자 '나'는, 자기는 애당초 피아노 대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면서 죽음조차 선망의 대상이었던 글렌의 죽음 이후 자살한 베르트하이머를 동정한다. 그러나 정작 글렌에게 집착하는 자는 '나'다. 결국 '몰락한 자'는 자살한 베르트하이머라기보다 친구를 빌어 비겁하게 자기 합리화를 늘어놓고 있는 '나'라고, '난 생각했다'(화자를 따라해봤다).
그들이 '몰락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천재적 재능이 없어서도 아니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타인과 비교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보잘 것 없게 만들고, 모든 불행의 원인을 남탓으로 돌리거나 실패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기보다는 명분을 만들어 핑계를 대는 데 급급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제 삶을 의심하며 패배감에 익숙해져 버린 데에 있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목적 없이 목표만 좇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사는 게 숨가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