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20주년 기념 개정판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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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약 서른여 명의 인물들을 다루는데, 그들이 '패배자'가 된 요인을, 그들 개인적 성향이나 환경,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을 서술하며 하나하나 짚는다. 신화, 종교, 예술, 정치(혁명), 과학(기술),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인물들을 통해 본 패배와 실패. 경쟁자, 인민, 대중, 시대, 운명, 사랑 등에 패배한 사람도 있고, 겸손하지 못해 혹은 고집스럽거나 신념이 강해서 혹은 어리석음 때문에 스스로 제 발목을 잡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너무나 이른 나이에 절정을 맞고 젊은 나이에 요절함으로써 죽음에 패배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 반복되는 패배에도 굴하지 않는 자들과 죽은 뒤에야 비로소 인정받은 자들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밀고 나가 승리를 원했지만 결국 자신의 꿈을 접거나 혹은 비극적으로 혹은 억울하게 무릎을 꿇어야했던 이들. 물론 책에서 언급하는 인물들의 패배는 각기 다른 형태를 띠고 있고, 그 원인도 저마다 다르다.  


20년만에 출간한 개정판을 읽으면서 지금, 2025년이기에 새삼 눈여겨 읽게 된 세 사람이 있다. 고르바초프와 앨 고어(보다는 조지 부시)와 크누트 함순. 고르바초프가 제국의 붕괴를 촉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 주민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인들의 끔찍한 유혈 사태를 피할 수 있었던 당시와는 다른 현재 러시아 지도자.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현재 미국 대통령을 통해 본,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던지는 민주주의의 공정성에 대한 가치와 세계정신,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 또한 종전 이후 히틀러와 나치를 예찬했던 스스로에 대해 말을 교묘하게 왜곡하며 자기합리화로 변명하는 함순과 현재 한국의 보수(라고 해야하나?) 세력들.  




 



승자와 패배자의 서사는 대단한 업적을 이룬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지구는 좌절의 별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종種'으로서 인간은 무수한 진화를 거친 승자이지만, 개인으로서 인간은 대체로 실패와 좌절에 가깝다. 승자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학력이 높아지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도 높아지며, 이는 인간을 무한경쟁 시장으로 이끈다.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는 여전히 존재하건만 사회가, 정치가 입만 열만 나오는 말은 기회균등이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실패를 반복하는 데에 있어 이 책임이 마치 온전히 개인의 능력 부족이라는 듯 말하며 열등감, 자책감, 자괴감을 부추긴다. 그런가하면 본인도 알지 못하는 재능을 사장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주변 환경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저자가 말하는 좋은 패배자란 느긋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패배하고 느긋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돈 키호테가 되기도 어렵고. 이 책의 인물들 전부가 실패를 현명하게 극복한 건 아니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패배 이후의 삶은 결국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지나온 이들의 삶을 읽는 것이 때로는 어떤 지침서나 철학서보다 와닿는다. 그럼에도 때로는 소설보다 더 비극적인 현실이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읽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상 이야기, 즐거웠다. 




※ 도서지원_위대한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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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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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편의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소개글에는 중편이라고 쓰여 있으나 분량상 장편에 가깝다) 한 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일단 단편소설들은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장편 『헐리우드의 이브』는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삼는다. 굳이 소소한 재미를 하나 꼽자면 후반부에 배치된 장편소설의 중심인물인 이브가 뉴욕 맨해튼에서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는 점이다. 
 






단편을 먼저 살펴보자면, 각각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어딘가 어리숙하거나 순진한 구석이 있고, 허세만 가득할 뿐 그다지 영리하지 못하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사회 하층민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린 「줄서기」, 소설가를 꿈꾸다 서명 위조범이 되어버린 청년의 이야기를 쓴  「티모시 투쳇의 발라드」 등 실린 소설들은 비관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유머러스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정서를 담아 서술하고 있다. 


 「티모시 투쳇의 발라드」의 티모시를 보면 애초에 왜 소설가가 되고 싶어했는지 의문이 든다. 내면을 성찰하는 인물도 아니고, 포크노, 헤밍웨이, 도스토옙스키를 우상처럼 섬기지만 그들의 책을 공들여 읽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자신의 삶에 그럴듯한 서사가 없기 때문에 소설을 쓰지 못한다는 핑계만 댈 뿐이다. 엉뚱한 것 같지만 실은 티모시라는 캐릭터는 현재 청년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일정 부분 투영하고 있음이 잘 보여진다.


 「아스타 루에고」에서 가족을 위해 기꺼이 물불 가리지 않는 이를 이해하는 마음, 생면부지에 가까운, 다시 볼 일이 없는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애쓰는 남자의 배려. 누군가는 지나치게 무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한심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어리석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마냥 답답해하거나 그저 웃어넘기지 않는 독자가 있다면 현실의 우리에게도 살면서 몇 번쯤은 예고 없는 불행이 닥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을 알아야할 권리도 있지만, 알고 싶지 않은 진실에 대해 거부할 권리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은 결국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말을 바꾼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미행을 하지말라는 페기의 말을 어기고 기어이 미행을 한 것은 넬의 호기심에 불과하다. 그리고 차라리 불륜보다는 예상치 못한 취미 생활이 더 낫다는 판단은 넬의 생각일 뿐이고, 페기가 남편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는 지점도 넬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 누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켜야할 선이 있다는 것일테고. 

 ( 나는 살아남으리라」)


죄책감의 근간은 무엇일까. 타인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찍혀지는 낙인 때문일지도 모른다(후자의 경우 진정한 죄책감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주인공 토미가 카네기홀에서의 공연 관람이 자신의 계급을 드러내기 위한 허영이었다면, 정작 카네기홀에서 음악에 대한 새로운 기쁨을 느낀 사람은 클래식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의 아내 메리다. 음악을 느끼고 감정을 공유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순수한 기쁨. 어쩌면 토미는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가 진짜로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아마 어려울 듯싶다. 
( 밀조업자」)


노년에 접어든다면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낸 잔꾀가 의도치 않게 선의의 결과를 가져왔다. 원하던 돈을 얻지는 못했지만 외로운 그에게 가까운 가족이 생겼다는 점에서 더 가치있는 대가였으리라 생각한다. 
( 디도메니코 조각」) 


ㅡ 


장편  『헐리우드의 이브』는 작가의 전작인  『우아한 연인』의 등장인물인 이브가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부분에서 뚝 떨어져나왔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이브 한 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인공이라고해도 무방할 것이고, 3인칭으로 서술하지만 이브는 주인공인 동시에 그들의 서사를 이끌어내고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서술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찰리, 프렌티스, 올리비아 등 그들이 이브와 만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는 과정이 이 소설의 묘미다. 이 소설 역시 이브의 캐릭터가 조금 과장되게 그려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덕분에 읽는 내내 통쾌한 맛이 있다.  


ㅡ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재미'다. 600쪽에 육박하는 두께감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한국어로 번역한 에이모 토울스의 작품을 모두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모스크바의 신사』 이후로 가장 흡족한 작품들이다. 특히 단편들에서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이 연상되는데, 시대적 배경 때문일 수도 있고, 세련된 문체 때문일 수도 있겠다. 에이모 토울스의 책들 중 추천할 책을 물어온다면 『모스크바의 신사』와 이 책을 추천하겠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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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세고 촛불 불기 바통 8
김화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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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날이 언제인가?
저마다 가장 가슴에 박힌 기념일 하나쯤은 있을 터다. 그날이 기쁜 날일 수도 있고, 고통이나 애도의 날일 수도 있고. 여덟 개의 이야기가 실린 소설집은 저마다 특별한 '그날'을 담고 있다.  







(축제의 친구들)
생각하는 게 귀찮고, 사는 건 지루하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모든 게 뚜렷하지 않은 청춘의 시절. 누군가 좋아해주는, 익숙하고 습관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과학기술로 안드로이드 보디를 갖게 된 인간은 노화와 질병에서 해방됐다. 단, 안드로이드 보디를 구매할 수 없는 사람은 죽는다. 죽는 사람은 두 부류다. 돈이 없거나 신념이 있거나.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죽음에 관한 책들과 그에 대한 철학적 견해. 나는 문득 궁금하다. 우리는 왜 이토록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걸까. 죽음이 두려워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김윤호의 모순. 그는 구차한 삶과 아무도 모르는 죽음 중 무엇을 선택할까. 


(월드 발레 데이)
형편이 넉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무용에 재능 있는 아이는 엄마의 등골을 빼먹으며 성장했다. 아이가 더 높이 날아갈수록 엄마는 점점 가난해졌다. 이를 모르지 않는 아이는 아주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그만두라는 말이 나올까 두려워 긴장을 놓지 않았고 곤두서 있다. 자신을 잃어가면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성공을 향해 달린 삶. 정상에 섰음에도 밟을 땅이 없는 삶. 이게 소설 속 '나'가 죽은 이유고, 실재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위드걸스)
실패로 인해 적당히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불행한 사람이 될까봐 원인을 찾아 문제해결을 하기보다는 견디는 것을 택하는 것. 견디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으려나. 구원에 기대지 않고 어제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살아남겠다는 인혜의 결의가 장하면서도 안타깝다. 유리 천장과 보이지 않는 경계에 또다시 좌절하는 일이 없기를, 인혜도, 선주도, 그 누구도. 


(껍질?)
분명 바빠서 무언가를 많이 했고, 하루가 끝나면 무척 고단한데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기분은 어떘지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거의 비슷한 대답들. 사람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그날의 기분도 다 달랐을텐데... . 참 이상한 일이다. 언제부턴가 일기에 쓰는 나의 감정은 거기서 거기.  


(바다의 기분)
폐업한 가게 업주가 「맛없는 음식을 팔아서 죄송합니다, 실력을 키워서 되돌아오겠습니다」라고 쓴 폐업 안내 종이 위에 '저는 맛있게 먹었어요'라고 쓰는 마음씀이 좋다. "그냥 그런갑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좋네, 좋아. 역시, 나는 윤성희 작가의 글이 참 좋다. 


(비트와 모모)
박완서 선생의 「대범한 밥상」이 생각났다. 모모가 돌아와 주기를, 그래서 식탁에 마주앉아 비트와 식사하기를. 


(0302♡)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받는 방법을 찾는다면, 먼저 사랑을 줍시다. 



각각의 소설 속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마음이 간다. 
로롯의 생체 인식이 아니면 아무도 생존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단절,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출세지향주의 세태, 자존감은 고사하고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들어 자신에게 처해진 불의와 차별조차 당연하게 여기는 패배주의, 사랑과 관심에 굶주린 우리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슬픔이다. 소설 밖에서 그들을 따라가자니 그냥 슬펐다. 그러다 낙관적인 삼촌의 마음이 되고 싶었고, 그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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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 - 폭력의 시대, 불가능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W. G. 제발트 지음, 린 섀런 슈워츠 엮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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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와의 인터뷰, 그의 작품 평론에서 고른 글들을 엮어 구성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서술자들은 대체로 『자연에 따라. 기초시』  『현기증. 감정들』  『이민자』  『토성의 고리』  『아우스터리츠』 를 다룬다. 


제발트의 작품들이 수월하게 읽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실린 평론들(특히 팀 파크스의 글)은 적어도 나에게는 엄청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는 나의 한계를 마치 챗GPT처럼 정리해주는 듯한 이 쾌감(동시에 사이사이 끼어드는 자괴감까지는 아닌 속상함?)!


그리고 제발트와의 인터뷰들은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고착된 사고, 그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문화사와 사회사, 전범국 전후 세대라는 입장이 작품에 끼친 영향, 우연히 이루어졌으나 결국에는 필연처럼 선택한 영국 정착 등 그를 바라보는 외부적 시선 및 평가와 제발트가 직접 말하는 그의 작품 배경이나 집필 계기와 집필 방식, 실존 인물에 입힌 허구적 요소, 영감을 얻고 이야기를 창작하고 글을 쓰는 방식 등을 비교적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제발트가 언어, 특히 텍스트의 힘을 믿었다는 것은 옮긴이의 글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내내 독자에게 전달된다. 제발트의 장기인 기억의 파편들을 퍼즐 맞추듯 이어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린 우리를 일깨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 역시 텍스트다. 서술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용어가 산문설화(prose narratives) 혹은 산문소설이다. 이 용어는 제발트 본인이 자신의 작품 형식에 붙인 용어다. 그의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구체화한다. 그로인해 작가 본인이 서술자가 되어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제발트의 인물들은 (...) 삶에 대한 참여를 너무 경계하다보니 병적으로, 자학적으로 우울에 빠져들어 압도되고 마는 것이다. 제발트의 작품은 극히 엉뚱한 행동과 극히 암울한 사실주의 사이를 오간다. 전자의 극단이 후자의 극단을 부른다. 과거에 있었던, 열정에 대한 환상, 그리고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미래의 조용한 자살. 그의 예술에서 나온 이미지와 주인공들이 누릴 수 있을 덧없고 향수 어린 평정의 이미지는 과거와 미래 사이를 중재하면서 제발트의 작품 전반에 흩어져 있는 거친 흑백사진들이다. (p58-59)」 



아주 이른 나이에 죽음을 삶에 들인 제발트는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죽음이 혹은 망자가 산 자 인생의 둘레 어딘가에서 떠돌가 있는 관념이 깊이 자리잡았다. 그래서 그는 주변부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제발트는 열외로 취급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고, 그들의 말을 듣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전후 패전의 상실과 공허로 인해 독일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의 실패를 봉인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합의된 침묵이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제발트는 어린 시절부터 경청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독일에 없다는 판단으로 스무 살에 독일을 떠났고, 외부에서 진실을 말해줄 이들을 찾았다. 제발트는 한 인터뷰에서 전쟁에 대한 부모님의 침묵과 조국의 '집단 기억 상실'을 혐오했고, 나치 부역자였던 가족들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트는 독일어에 대한 애착이 커서 영국에 정착하고 영어 번역본에 공을 들였음에도 글은 독일어로만 썼다고 한다(이것도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다).


ㅡ 


「더 묘한 것은 제발트의 작품은 시시하거나 장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반 소설의 즐거움을 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머와 매력, 세련미, 공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놀랍다. 그런 요소들이 없는 책들이 영국에서 조금이라고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놀랍다. 또 다른 잣대를 들이대자면 등장인물이나 사건으로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사색이나 독서에 관한 것만으로,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색의 기억이나 독서의 기억만으로 쓴 책들이 인기를 끈다는 사실이 놀랍다. (p168)」 



제발트는 글쓰는 사람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참상의 시각적 형상은 너무 자주 노출이 되기에 광범위한 사고와 철학적 반성을 방해한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제발트는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간접적으로 지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이것이 잊을 만한 것들을 상기시키는 데 가장 적절한 방식이고, 이것이 곧 문학의 역할이라고 이해했다. 


원래 체계적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제발트는 좌표 설정없이 무작위로 혹은 되는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진행되어가는 과정에서 자료가 다른 자료에 가지를 치고 자료는 그만큼 쌓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제발트는 그 안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상상력을 짜내고 연결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선례가 없는 글쓰기를 하려면 자료들의 종류가 각기 달라야 한다. 이것이 제발트가 말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이다. 


제발트의 글쓰기에서 우연은 중요한 요소다. 재미있는 점은 이 우연이 사건의 결말까지 가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코오모 교수는 이 점이 핵심이라고 짚는다. 이것이 어떤 주제를 다루든 일반화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덧붙이자면 운명이든 우연이든 인생은 통제 되지 않는다는 은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ㅡ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1944년 독일에서 태어나 스스로 기억상실을 유도한 사회에서 자라난 제발트는 기억하는 일을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친유대인적인 이유로 유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독일에서 말살된 사회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문득 '알고 싶다'가 참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 '반', 혹은 이념적 소신을 떠나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에 대해 알고자 하려는 태도. 왜곡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진지하게 알려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딜레마들도 조금씩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렇다보니 제발트가 죽음과 죽은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떤 이는 제발트의 글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다른 이는 그가 창조하는 예술에는 기적에 가까운 아름다움이 있으나 연약하고 덧없다고 평한다. 누가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의 작품에는 혼란과 방황,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공포와 자발적 고행과 죽음, 그리고 연민이 담겨 있다. 


2001년 12월, 제발트는 운전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기억의 분량은 줄어들지만 남는 기억의 밀도는 높아지고 이로 말미암은 무게가 한번 짓누르기 시작하면 우리를 침몰시킨다고 말했다. 1998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인터뷰가 그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제발트의 죽음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직 『이민자』들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데,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번쯤 제발트 작품을 읽고 싶으나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독자라면 이 책을 먼저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몇 권을 읽고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하는 나같은 독자에게도 적잖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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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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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표지 날개의 소개가 아니더라도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한국계 외국인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완독을 하고나니 에르난 디아스가 극찬하고 추천한 이유를 알겠다.  


일곱 개의 단편은 미국, 스페인, 일본의 에도시대, 영국, 러시아 극동 지방(연해주, 사할린) 등을 배경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한국계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 탈북, 강제 징용, 강제 이주, 이주 노동자, 2세대(혹은 3세대) 이주민, 실향민, 전쟁 고아. 끝나지 않는 디아스포라의 삶. 떠나온 자, 떠밀려온 자, 그래서 부유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서사를 스산하지만 한편으로는 명치가 눌리는 듯한 먹먹함과 고요함으로 다가온다.  


이주민들의 헛헛함(보선), 스스로 존재를 지워가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탈북민의 정서적 애환(코마로프),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가 성장해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는 조선인 아이에게 '원래 자리'는 어디일까(역참에서), 같은 이주민이면서도 빨갱이로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되는 탈북민들과 그들의 2세대들(크로머), 유령보다 정착지를 잃는 것이,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것이 더 두려운 고려인들(벌집과 꿀), 전쟁이 남긴 상처를 그대로 떠안고 살아가는 시람들(달의 골짜기). 


실린 소설들이 다 인상적이지만, 특히 「코마로프」가 기억에 남는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떠돌이로 살아간 주연의 말하지 않는 아픔이 니콜라이에게 건네준 쇼핑백 안의 전단지에 휘갈겨 쓴 몇 자에서 전해진다. 차라리 니콜라이와 주연의 관계가 다른 이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면, 주연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어쩌면, 그랬다면 주연은 그 길 위에 서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외로움과 절망의 아픔, 스스로 세상과 경계를 짓지만 가슴 한 켠에서는 타인과 세상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이들의 열망, 이주민 세대 간의 정서적 거리, 반복되는 상실을 가슴 속에 켜켜이 쌓아놓은 삶의 무게. 작가는 담담하게, 서정적으로 서술한다. 내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것도 이 부분이다. 충분히 과잉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절제하고 문장 사이사이에 독자들이 그 감정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다는 점. 덕분에 서두르지 않고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잘 따라갔다.  


좋은 소설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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