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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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 편의 노벨레, 설화, 서평, 비평, 에세이 등이 실려있다. 그중에는 사후 출간했거나 미완성작도 있다. 크게 3부로 나뉘는 이 책의 매력은 다양한 벤야민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철학자이자 문예 비평가이고, 좌파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1부 꿈과 몽상>은 벤야민의 아포리즘 모음집 『일방통행로』를 떠올리게 한다. 「꿈」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이야기 속 화자가 꾼 꿈에 대한 이야기다. 나치를 피해 파리로 망명, 다시 나치에게 쫓겨 급기에 자살에 이른 벤야민에게 '꿈'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가 탐구했던 신비주의와 초현실주의가 꿈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2부 여행>은 벤야민이 여행자로서 또는 이방인으로서의 시각에서 쓴 에세이가 다수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꼽아본다. 나의 심리적 태도와 내가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타자와의 거리 등이 관계의 양상에 미치는 영향. 열등감과 자기비하에 치여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 꿈을 통해 드러나는 무의식 혹은 본능 등이었다. 벤야민의 글에는 사는 동안 수시로 찾아오는 위기와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행복했던 기억과 그리움임이라고 말한다.  


ㅡ 


「꿈 1」을 비롯한 1930년 이후에 집필한 글들은 당시 그가 처한 상황과 심경을 잘 보여준다. 특히 1933년 나치를 피해 파리로 망명한 벤야민이 쓴 글에는 전쟁과 폭력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벤야민은 인간이라는 존재와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와 문화에 대해 사유한다. 
언어(혹은 언어적 행위)의 모호함.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언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들어 「숨기고 있던 이야기」에서 짝사랑하는 여대생과 한 기차에 탄 남자 대학생. 그는 선뜻 아는 체를 하지 못하다가 그녀의 트렁크를 들어주는 차장의 손길에 질투심을 느껴 차장으로부터 그녀의 트렁크를 빼앗듯 낚아 채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 주었는데, 정작 여대생은 그를 짐꾼 취급이다. 여기서 알 수 없는 것은 남자가 여자한테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여자는 정말 그를 짐꾼으로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짐꾼이 아닌 줄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독자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어떤 비극적 순간에도 제 욕망에 충실한 인간의 원초적 성질. 
문자가 인간의 삶에 남긴 흔적들. 
거짓과 사실. 거짓은 발화發話됨으로써 존재하고, 거짓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신뢰는 상대적이다.
이처럼 세상, 세상 안에 있는 수많은 것들, 그리고 자아. 이들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찰. 



<3부 놀이와 교육론>에서는 벤야민의 비판이 유독 날카롭다.
그는 잘못된 교육 방식이 아이들의 재능을 사장시킨다고 말한다. 획일적이고 주입식 교육, 특히 특정 사상이나 이념의 강요는 아이들의 창의력에 가장 큰 독임을 지적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임을 강조한다. 또한 동화를 비롯한 여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들이 폭력과 학대를 선善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식민주의식 사고와 물질우선주의를 미화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독일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일갈한다. 그는 철학적 농담과 언어 유희를 이용한 딜레마와 역설, 발명과 이름 붙이기, 유머 등 창의성 말살에 가까운 현대 사회의 교육을 향해 유니크하게 충고한다.  


ㅡ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머리를 스친 생각은, 삶을 살아가는 혜안은 차곡차곡 쌓여진 경험과 성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이비사에서 만난 낚시꾼 오브라이언은 '매듭 짓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그물의 매듭이 아닌 인생의 매듭으로 읽혔다. 그리고 간혹 지나가듯 말하는 은섬 씨의 한 마디는 여느 철학자 못지 않다. 이 짧은 글들을 통해서 벤야민은 경험과 사유의 공유를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누구의 경험도, 어떤 이의 서사도 하찮은 것이 없음을,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매 작품의 앞에 실린 파울 클레의 그림들은 마치 마스킹테이프처럼 글의 분위기를 더해주는데, 본문의 내용과 묘하게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대분류로 나뉜 각 부의 제목에 실린 그림들( 1부의 「여자와 짐승」, 2부의 「힐터핑엔 지방」, 3부의 「춤추는 꼭두각시」)은 해당 하는 본문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도 든다. 어느 분이 이 그림을 선별하고 각 단편마다 매칭시켰는지 알 수 없으나 칭찬드린다. 덕분에 파울 클레의 화집을 찾아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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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체인지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8
최정화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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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일명 '호르몬 체인징'이라는 수술을 통해 호르몬을 제공하는 사람의 나이로 몸을 되돌릴 수 있다는 설정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노화에 대한 이야기같지만 이를 현실에 대입하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나는 수술을 받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노화를 체감하며 살아가는 70대 여성이다. 그녀가 견디기 힘든 것은 늙어가는 신체가 아니라 수술 받은 친구들이 이십대로 돌아가는 바람에 외톨이 신세가 된 외로움이었다. 이제 노인이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동물원 원숭이와 다름없는 볼거리가 되고 만다. 소설의 내용에 따르면 호르몬 체인징은 엄청난 재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비싼 수술비는 말할 것도 없고, 셀러(호르몬 제공자)의 남은 인생의 경제적 책임까지 모두 감당해야 한다. 이 말은 수술을 받지 않고 자연스레 늙어가는 노인은 외모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는 순리대로 살다가 늙어 죽겠소"를 외치며 소신대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짐작할 수 있듯이 셀러는 열이면 열, 가난한 사람들이다. 목숨을 담보로 거액을 받는 일이니 다급하게 돈을 필요로 하거나 오랜 시간 가난에 억눌린 이들이 선택한다. 대기업의 하청 시스템, 산재, 임금체불, 자립 청년, 청년 가장 등 복지의 사각 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길은 요원하다. 소설에는 건강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많아 병원에 갈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돈이 많아 생명을 연장하지만 한 번도 건강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빈자의 건강을 부러워한다. 누가 더 불행의 크기가 큰 지를 내기하듯 넋두리를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비록 이분법적 비교이기는 하지만 다른 독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 지 궁금해졌다.  


소설에서 호르몬 체인징을 주선하는 회사는 합법을 위장해 불법으로 매칭을 시킨다. 법적으로는 제공자가 사망해야 호르몬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살아 있는 사람의 호르몬을 제공받는 건 불법이다. 이에 대해 매매와 기증에 대한 언급은 없다), 회사는 셀러에게 먼저 사망신고를 하게끔 한다.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서는 호르몬 체인징을 매칭시키는 회사에서 셀러의 수가 줄어들자 팀장 한 명이 셀러의 연령대를 낮추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자 부장은 "유레카"를 외칠 기세로 반긴다. 당연히 불법이다. 이 장면은 마치 멀쩡하게 생긴 고학력자 인텔리들이 그럴듯한 회의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장기 밀매 회의를 하는 것처럼 읽힌다. 미성년자를 돈으로 유혹해 사망신고를 하게 만들고 법망을 피해 호르몬 매매를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인 것 같지만, 글쎄... 누가 알겠는가.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장담할 일은 아니다. 



나는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봤다. 노화와 죽음이 없는 우리 사회. 정확히 말하면 죽음이 드러나지 않는 사회. 돈이 있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보다 젊은 사람들의 호르몬을 제공받아 젊어진다. 가난한 청년들은 셀러로 인생의 하향곡선을 그으며 벌집의 여왕벌처럼 숨만 붙어 있는 채 정기적으로 수술을 받는다. 이를 통해 큰 돈을 벌어봐야 밖으로 나갈 기운이 없으니 쓸 데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불현듯 노동 인구에 대한 책 『일 할 사람이 사라진다』가 생각났다. 몸은 젊어졌으나 재력이 넘쳐나니 신체가 젊어진 노인은 일을 하지 않는다(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인류 종말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예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호르몬을 공유한 바이어와 셀러가 일심은 아니더라도 동체라는 점이다. 바이어의 수술 이후의 삶은 전적으로 호르몬을 제공한 셀러에게 달렸다. 셀러의 신체에 문제가 생기면 바이어도 그에 준하는 수준에 부작용을 겪는다. 셀러가 죽으면 바이어 역시 짧은 시일 내에 죽는다. 즉 자기 몸이면서도 자기 것이 아니게 된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호르몬 체인징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 서술한다. 당연하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세상 아닌가. 그런데 나는 엉뚱하게도 이 수술을 받고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의 서사가 궁금해졌다. 적지 않은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셀러다. 그들 중 바이어(호르몬을 제공받아 수술한 사람)는 두 사람인데, 소설 앞부분에서 잠깐 등장하는 민재준은 한나의 젊은 시절 친구다. 만약 한나가 과거의 친구였던 민재준을 알아봤다면 그녀의 선택이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소설의 마지막, 윤희는 나이들 권리를 달라고 외친다.
우리 사회는 노화를 혐오한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넘쳐나는 안티 에이징 화장품이나 기구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되고 남는다(솔직히 나도 가끔 하나쯤은 사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려보인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이고, 60대 연예인이 20대 몸매를 유지한다는 게 기사로 나오는 세상이다. 피부가 늘어지고 주름이 생기는 자신의 얼굴이 낯설다. 우리는 늙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젊어지기 위한 불로초가 아니라 늙어도 괜찮다는 위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인정, 세대 간 서로를 적이라 여기지 않는 시스템 구축일 것이다.  


다각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다. 
이러한 글을 쓰고도 아이크림을 바르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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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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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성폭력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미투운동, 성소수자, 외모지향주의, 현대인의 고독 등을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서술한다. 특히 그들의 소통 방식이 시종일관 이메일이라는 점, 그리고 팬데믹에 의한 거리두기와 봉쇄로 인해 서로 거의 대면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개개인의 정서적.물리적 고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스카가 쓴 메일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린 말은, "가지가지한다"였다. 그는 한마디로 종합세트다. 직장 내 성추행, 알코올 및 마약 중독 등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데다가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들은 가관이다. 조에를 열렬히 좋아하고 그녀와 연인 관계가 되고 싶어 끈질기게 치근덕거린 건 사실이지만 무언가를 억지로 강요한 적은 없었다고 항변한다. 특히 그 기간은 고작(!) 3개월이었고, 조에가 불쾌해할만한 일이라면 가볍게(?!) 억지로 그녀의 입에 입맞춤한 정도가 전부라고 말하면서 그것도 술기운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오히려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백인 남성의 화신이 되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면서 덫에 걸린거라고 억울해 한다. 한마디로 자신은 여자나 후리는 난봉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스카의 오랜 지인인 프랑수아즈는 모든 강간범이 그와 똑같은 말을 한다고 대꾸한다. 즉 오스카가 아주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대부분의 성범죄자들이 따르는 수순이자 핑계라는 것이다. 그가 유년 시절부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지만 거의 공감하기 어렵다. 



작가는 현실 속 성폭력 현장을 가상의 이십대 여성 조에를 통해 서술한다. 세상은 여성의 성적 욕구를 억압하며 족쇄를 채우고, 여성의 성욕을 부정하기 위해 성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이 점에 대해 '투우장에 끌려온 황소나 다름 없다(p35)'고 쓰는데, 이 부분을 읽다보면 많은 독자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레베카의 말들 중에서 크게 동감하는 부분은 '교육'이다. 레베카는 근본적인 원인을 교육의 문제에 두고 있다. 당연시 여겨지는 모성애, 대등하지 못한 성적 관계, 여성의 정숙함, 희생자에게 씌어지는 가해자 프레임, 사회적 살인의 용인, 부지불식간의 남성우월주의, 강요된 행복 등 대부분 일상이나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스라이팅에 가깝게 학습되어진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모든 젠더에게. 페미니스트를 향한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은 비단 남성뿐만이 아니다. 기성 세대 여성들은 조에가 겪은 일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고 다들 잘 넘겨왔으니 유난 떨지 말라고 말한다. 그들은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오스카가 자신의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상대가 레베카라는 사실은 의외다. 레베카 역시 전적으로 조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입장이고, 오스카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따박따박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카는 레베카에게 지속적으로 이메일을 보낸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공감이 아닐까싶다. 레베카는 처음에는 굉장히 분노하지만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약 중독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오스카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보내고, 진심어린 충고(와 경고도 함께)를 전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와 같은 '대화'가 아닐까. 사실을 인지하고, 제대로 알지 못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해법을 의논하고, 때때로 상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릴지라도 끊임없이 상호이해가 가능한 길을 모색하는 과정을 함께 얘기해야하는 것. 그래서 조에처럼 메아리만 울리는 일방적 외침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것. 자신 유약한 인간일뿐이라고 말하는 레베카가 오스카에게 건네는 진심어린 충고는 젠더와 계급을 넘어서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다.  


ㅡ 


21세기, 지금은 노출의 시대다. 그만큼 위험은 더 커진다. 더 자극적인 노출을 시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생활 보호를 외치는 이 역설적이고 기괴한 사회 현상. 레베카와 오스카, 두 사람 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한다. 폭력 중독, 권력 중독, 차별 중독, 분노 중독, 학벌 중독, 성공 중독, 외모 중독, 자극 중독, 혐오 중독.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수많은 중독에 노출되어 있고 의심없이 흡수하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이성을 잃어버린 중독의 시대. 



조에는 성범죄자의 이름이 공공연하게 알려질 때, 그를 법정에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집단적으로 책임을 묻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방관하는 자, 침묵하는 자, 그들이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하고 사과하고 개선될 수 있도록, 그래서 반성하지 않고 개선하지 않는 자들은 집단 내에서 몰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소설에서 정말 안타까운 점은, 오스카는 자신이 조에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끝까지 선명하게 이해하지 못한하는 것이다. 다만 레베카와의 대화를 통해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서서히(너무 느리게) 자신이 개자식이었음을 깨달아가는데, 그마저도 반성하는 자신을 착한 남자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일상의 안정을 찾아간다.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며 여전히 투쟁 중인 피해자 조에와 자신을 꽤 괜찮은 남자라고 자위하는 가해자 오스카. 이러한 대비에서 오는 씁쓸함은 소설이 아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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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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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편의 글이 실린 에세이집이다. 
예술과 예술가, 자아, 삶의 가치, 패션을 통한 고상함과 상스러움의 간격, 성공의 조건, 보수와 진보의 권력 갈등 및 독재와 노예의 탄생, 사형제도의 찬반 여부 등 윌리엄 해즐릿의 솔직한 직설이 매력적이다.  




 
 
윌리엄 해즐릿이 자신과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우리가 선뜻 드러내기 꺼리는 부분들을 건드린다. 익명 뒤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한다든지, 왜 삶에 애착을 갖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이라든지, 예술을 예술 그 자체보다는 다른 목적성을 두고 있는 부분이라든지,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싶어한다든지, 성공을 위해 비굴할 정도로 몸을 낮추는 행위 등 이렇듯 누구나 한 켠에 가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다. 
해즐릿은 삶의 가치가 영생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동조하겠지만 실상 우리는 더 오래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와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지 따져보면 "삶의 가치가 영생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수가 많지 않을 것이다. 해즐릿은 삶의 중요성과 삶에 애착하는 마음에 관한 우리의 관념은 행복이나 불행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어떤 원칙에 달려 있다고 판단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열정 때문이다. 열정은 행동으로 표출된다. 즉 삶의 애착은 '행동'에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쉽지 않았는데, 행동 자체(열정)가 삶의 이유가 되는 것이기에 삶을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어쩌면 이러한 점들 때문에 '먼 것이 더 좋아보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삶을 애착하는 마음은 우리가 삶을 얼마나 흥미로워하는가에 달려있다. 희망과 두려움에, 기쁨과 슬픔에 동요되는 다채로운 삶을 통해 스스로를 자각한다. 이로써 우리는 삶을 향한 열정을 담아간다.  



아무래도 18~19세기에 쓰여진 글이다보니 시대성을 감안해야하는 부분들이 있음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패션에 관하여」 「사형에 관하여」는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데 이 부분도 지금 우리 사회와 전혀 맥락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또한 「아첨꾼과 독재자에 관하여」는 공교롭게도 현재 전全 지구적으로 해당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워낙 직설적이고, 에둘러 쓰는 에세이스트는 아니다보니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견해에 긍정하든 부정하든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해즐릿은 자유에 대한 사랑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며, 권력에 대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썼다. 그래서 오늘날 변절자들이 생겨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쳇말로 웃픈 인과관계다. 지금이라서 더욱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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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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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가을, 사크라 디 산미켈레 수도원에 40년 동안 머물렀던 여든두 살의 노인이 죽어가고 있다. 그가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닌 '그녀'이고,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숨을 다해 나직이 읊조리는 것은 깊은 어둠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그녀'의 이름이다. 열세 살에 만난 첫사랑이 서로에 대한 영원한 사랑과 존중으로 빛나는 이야기다. 
 
 





도제, 마녀, 저주, 후작, 피에타상象, 수도원, 레오나르도 다빈치 날개, 미켈란젤로 등 단어나 소설의 분위기는 중세를 연상시키지만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00년대다. 미모 비탈리아니를 1인칭 화자로 하는 과거와 사크라 디 산미켈레 수도원의 수도원장 파드레 빈첸초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현재를 오가는 소설은 결국 시간의 간극을 좁혀가며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석공을 아버지로 둔 가난한 가정에서 왜소증을 안고 태어난 천재 조각가 미모 비탈리오니, 지역의 유력한 명문 귀족 집안의 영재로 태어난 비올라 오르시니. 한 사람은 미천한 신분의 가난한 장애인으로서, 다른 한 사람은 '여성'으로서 세상과 맞서게 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시대적 배경을 둔 이 소설에는 이름을 바꾸고 살아야만 했던 유대인, 서커스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장애인, 관습이라는 벽에 주저앉아야했던 여성, 성실만으로는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에 버거운 하급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그와는 다르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거나 유력 가문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는 기회주의자들도 있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인물은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화자 미모보다는 비올라다. 귀족 집안에서 외동딸로, 그것도 영재로 태어났으나 성性은 그녀에게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비올라가 열여섯 살에 쓴 시는 무척 인상적이다. 「나는 우뚝 선 여자다...」로 시작하는 긴 시는 십대 소녀가 얼마나 자유를 갈구했는지,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서른일곱 살이 되도록 그 시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눌러놓은 욕구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오르시니 가문'이라는 이름은 비올라에게는 화려한 감옥이다. 그러나 그 감옥이 매 위기마다 비올라의 뒷배가 되어 준다는 점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이 소설의 통쾌하면서도 아픈 부분은 비올라의 '날개'다. 비록 날아오르지 못하고 추락할지라도, 때로는 지칠대로 지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숨을 고르며 날개를 펼친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날개를 접으라고 하는 사람은, (비록 그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도) 비올라에게 입혀진 아름다운 드레스가 끔찍하다고 말했던, 비올라를 가장 사랑하고 이해하는 미모라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신의 '정상성'에 대한 비올라의 말을 읽다보면 여성은 '정상적'일 수가 없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느님을 믿기는 믿냐는 미모의 물음에 비올라의 오빠 추기경 프란체스코의 말은 작가의 뼈있는 작심발언이라고 할만 하다. "나는 교회를 믿어, 그 말이 그 말이긴 하지만. 정권이나 독재자와는 반대로 교회는 사리지지 않아." 이는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한다.   


마지막 반전. 미모 비탈리아니의 「피에타」 마리아는 누구일까. 그게 누구든 미모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비올라를 향한, 그 시대의 여성들을 향한 헌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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