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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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서 하루로 넘어가는 일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도시를 배회하고, 자신의 존재성마저 의심하며 공허를 느끼는 타라. 자신이 잉여의 존재라는 생각에, 자신은 더 이상 타라 셀테르가 아니라는 생각에, 모멸감이 든다. 





 
 


11월 18일 안에서 타라 자신이 속하지 못한 흐름들. 같은 시간 안에 있지만 동시에 다른 시간의 차원에 있는 듯, 그래서  타라가 속할 수 없고 타라에게만 작동하지 않는 시공간. 타라는 그 흐름을 올라타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해야할 일도, 가야할 곳도 없는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허. 타라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보고 듣는 것뿐. 그렇기에 반복되는 18일 안에서 그녀 스스로 방해물이고 이물질이고 오류라고 여긴다.  


부유하듯 기차에 올라 국경을 넘나드는 타라. 클레롱에서 시작해 파리, 브뤼셀, 쾰른, 브레멘, 룬드, 스톡홀름, 북쪽 나라의 어느 마을, 런던, 콘월, 몽펠리에 등 유럽의 도시들을 전전하는 그의 모습은 또 다른 형태의 디아스포라다. 특히 11월 19일을, 12월과 1월을 바람하기에 따뜻한 남쪽 도시가 아닌 북쪽으로 향하며 차가운 겨울을 찾아다니고, 다시 베르겐, 런던, 콘월, 몽펠리에, 뒤셀도르프를 경유하며 이어지는 봄과 여름을 그리워한다. 또다시 가을 향하는 그녀의 모든 발걸음은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고 싶은 간절함을 대변한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에서 계절과 색감을 잘 연결하고 있는데, 타라가 집을 나와 계절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늦가을에 머물렀을 때에는 회색집에서 살았다면, 여름을 상징하는 프랑스 남부 마을의 집은 노란색이다. 이 색은 타라의 심경을 나타내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라는 마치 잊혀질까봐 걱정하듯 끊임없이 자기의 이름을 되뇌인다. 기차를 타고 다니며 이야기를 수집하는 사람마냥 타인의 얘기에 귀기울여 듣는 타라는 단편적이나마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삶에 이입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 역시 외로움과 불안, 상실과 슬픔을 안고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독립해 본가를 나온 후 한번도 생각치 못했던 부모님의 일상을 따라가보기도 한다. 그가 11월 18일이라는 시공간에 갇히지 않았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한곳에 아무리 오래 머룰러도(늘 11월 18일이지만), 타라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또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녀는 11월 18일 안에서 철저히 외부자이자 이방인이다. 오랜 시간을 홀로 견딘 타라의 모습은 현대인이 겪는 단절과 고립과 소외를 보여주고, 역사상 존재해 왔던 수많은 성벽(경계)들은 이주(디아스포라)를 나타내는 것으로 읽힌다.  


소설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하고 싶은 얘기를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소외와 고립은 비단 특정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자각할 새 없이 고독 속에 밀어넣어져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소설을 읽다보면 언뜻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떠올릴 수 있는데,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타임 루프의 설정이나 주인공의 상황, 정서 등은 전혀 다르다. 2권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그보다는 다와다 요코의 『지구에 아로새겨진』이 떠올랐다.  『지구에 아로새겨진』의 Hiruko가 언어를 찾아 길을 떠난다면, 타라는 계절을 갈망한다. 다른 점이라면 Hiruko의 여정에는 끝이 정해져 있지만, 타라에게는 끝이 없다. 끝을 낼 수가 없다. 외부로부터 물리적 변화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타라는 사계절을 찾아 부유할 수밖에 없다. 두 권을 같이 읽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는 독서가 될 듯하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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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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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이틀 째. 아침에 호텔에서 눈을 뜨니 어제, 11월 18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타라. 호텔 로비에서 어제 날짜의 신문을 오늘 날짜라고 말하는 직원, 식당에서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 자신이 반복의 순환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이 반복이 수백 번 거듭될 거라는 것을. 타라는 11월 18일에 갇혀버렸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대단한 줄거리가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체만으로도 이 소설은 상당히 매혹적이다. 섬세하고 세밀하지만 간결한 문장은 감정을 크게 부풀리지 않으면서도 타라가 가진 여러 감정선을 충분히 이입하게 만든다.  



1권을 읽는 내내 내가 가졌던 정서는 상실감과 슬픔이었다. 
나는 이 소설이 왜 이렇게까지 슬픈 걸까. 토마스의 망각이 오히려 타라를 안전하게 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안전을 위해 거리를 두는 것, 행여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기차를 타는 것도 조심스러워지는 것,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먼 곳까지 나가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는 것,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닌 손님이 된다는 것, 혼자여야만 안전해지는 것,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부정당하는 것, 더 이상 진정한 '집'이라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이 일들 중 무엇이 가장 슬픈 일일까. 여러 이유를 댈 수 있을테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글 전체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짙은 고독이, 외로움이, 슬픔이 느껴진다. 어쩌면 타라가 정말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토마스와의 연대와 친밀감이 사라지고 그와 경계가 생기는 것, 무엇보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전혀 예측할 없는 미래 때문이 아닐까.  


타라는 이제 시간 속에 갇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희망을 갖고 간절히 바라던 그날이 왔다. 타라는 11월 19일을 맞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지금까지 타임 루프를 다뤘던 여타 작품들과는 설정상 다른 점이 있다. 이러한 부분이 결말로 가는 데에 있어서 실마리가 아닐까싶지만, 아직까지만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점점  흥미를 더해간다. 
1권에서는 매력적인 문체와, 고독과 슬픔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면, 2권에서는 좀더 이야기에 힘이 붙을 듯하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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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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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에세이다. 
원서 초판 출간이 30년 전임을 감안해도 거의 괴리감없이 읽힌다. 


19세기부터 20세기에 나온 문학작품과 작가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삶과 사랑, 자아와 정체성, 결혼과 가정, 수동과 저항, 인간 관계에 대해 섬세하게 짚어낸다.







 
자아와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컸던 클러버 애덤스. 통찰에 이르지 못한 채 그저 각성에 머물고 만 케이트 쇼팽. 작가로서 자기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분투했던 진 리스.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 사랑을 초월한 자아를 확립하기를 바랐던 윌라 캐더. 자기성찰을 하지 않았기에 신념적으로 대척점에 있었던 연인 하이데거에게 저항할 수 없었던 한나 아렌트. 평범한 가정생활의 살인적인 본질을 포착하고 상황과 인물에 거리를 두지 않는 극단성을 보여주는 크리스티나 스테드. 대부분의 남녀들이 갈망만 할 뿐 수동적 존재로 남아 있음을 지적하는 그레이스 페일리.  


사랑과 희망을 믿고 싶은 갈망이 있는, 그런 면에서 감상적인 레이먼드 카버의 글. 평범한 남자에게 닥쳐오는 삶에 대해 쓴 리처드 포드. 삶의 조건을 투명하게 묘사하면서도 거의 자의식적으로 그것을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듯보이는 안드레이 더뷰스.


헨리 제임스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몇 편의 소설을 읽었을 때 저자가 쓴 부분에 대해 비슷하게 느꼈던 지점이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나아가고 , 세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치고,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p86)' 양가적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 당시 여성 인물들을 남성 작가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았었다. 더하여 동성 친족 간의 과도한 친밀감이 무자비하다는 작가의 생각에 공감한다.   


책의 마지막에 위치한 「연애소설의 종말」은 앞선 글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오래 전, 에마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는 남편을 떠나 도망쳤을 때 정말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현대의 사랑은 위험을 무릎쓰고 무언가를 걸어야할만큼의 그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인생에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사랑을 함으로써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여전하다. 그러나 오늘날, 사랑이 자신을 구원해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임을 말한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 물리적.정서적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슬픔, 분노, 혼란을 느끼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결혼이 구원이 되지 못할 때, 지옥이 된다. 


과거 소설은 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독자를 심연으로 깊이 끌어들였다. 사랑 하나만으로도 여러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독자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 사랑이 전부였던 시대의 소설가는 사랑을 이용해 진정한 통찰의 빛을 끝까지 탐구했다. 비비언 고닉은 오늘날에는 이런 책이 쓰일 수 없다고 쓴다. 오늘날 소설의 중심에 낭만적 사랑을 놓고 인물들이 사랑을 추구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에 도달한다고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둔다. 이제는 사랑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향수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저자의 글에서 '왜 세상이 예전같지 않냐는 질문보다는 왜 삶이 이토록 공허한지(p182)'에 관해 사유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책을 출간하는 즉시 읽을 수는 없지만 언제가 됐든 꼭 읽는 에세이스트가 있다. 리베카 솔닛, 올리비아 랭, 비비언 고닉이다. 
근래에 읽은 책 중 밑줄을 가장 많이 그었고, 따로 발췌할 필요 없이 전체적으로 작가의 통찰에 이입해서 읽었다. 
당연히, 노골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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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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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서 덴마크로 해외 입양되었고, 12년 전인 이십 대 후반에 한국 가족을 처음 만나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 원가족과의 소통은 통역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렇다보니  만남의 시간은 짧고, 대화는 단조롭다. 아주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나'와 한국의 가족들. 


'나'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그 생각은 통역사도 알지 못한다. 연인이기도 한 통역사조차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짐작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어 장벽, 문화적 괴리, 가부장적인 분위기, 차별과 혐오, 정체성의 혼란을 온전히 이해해 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의 한국 자매들은 그들의 남편과 자식 들에게 그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통역사와 부모님들이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는데 대화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저 그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다. 한국 아버지가 임종을 맞았을 때 유가족 명단에 '나'의 이름은 없다. '나'는 소외감을 느끼고, 슬프다. 



읽다 보니 문득 든 생각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고 해서 서로의 언어를 다 이해하고 공감하며 배려하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산 혈육이라고해서 가족 구성원 중 성소수자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가정은 많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물론 혈육으로 엮인 원가족에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타국으로 보내져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성장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감히 비할 수는 없다. 다만 핵가족화를 넘어 딩크족이나 2인 및 1인 가구가 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나'가 느끼는 소외감이 비단 한국 가족에게서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고독에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음을 말하고 싶었다.    


본문 중에 기억에 남는 '나'의 말이 있다. 그는 입양인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부모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모 역시 자식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야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족 중심 사회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정서적으로, 관습적으로 가능하기는 할까싶지만, 한편으로는 일정 부분에서 필요하다는 데에 같은 생각이다.  


통역사가 '나'에게 물었다. 가족이라는 구조가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왜 한국 가족과 연락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이 쓴 책의 내용 때문 자매들에게 내쳐질까봐 두려워하는 거냐고. 이 모순된 양가적 감정을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에라야 우리는 타인의 소외감과 슬픔을 이해할 준비가 된 것은 아닌지. 



대화 형식으로 이뤄지고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기에 문장은 간결하다. 그러나 그 어떤 장문의 서사보다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이 깊이 전해졌다. 사이사이 통역사를 통하지 않는 '나'의 혼자만의 생각들 앞에서 페이지가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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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 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수전 구바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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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는 노년 여성의 삶과 예술을 살펴본다. 1부에서는 말년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예술가들을, 2부에서는 노년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관점을 변형시킨 예술가들, 3부에서는 중년기에 자기초월을 통해 만년에 활력을 불어넣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글쓰기와 사랑, 마지막까지 자기서사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노력하며 산 조지 엘리엇. 
선함보다는 열정을 취했고, 결코 글쓰기를 믐촌 적 없는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모든 계급의 여성이 억압받고 있다고 주장던 화가 조지아 오키프.
스스로 불멸하는 욕망의 삶을 살 수 없었으나 자신의 예술과 서사를 갈고닦아 삶을 멋지게 표현하고, 에로티시즘으로 남자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이자크 디네세. 
실험적 모더니즘의 엘리트 시인이라는 경력을 뒤로 하고, 물질주의를 비판하고 독창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하며, 노인이 된 자신의 자아를 대중 문화의 아이콘으로 바꾼 메리앤 무어.
말년에 자신의 개인적 주제들을 과감히 다루어 가장 생산적인 시기를 보낸 것은 물론 기념비적 작품을 창작해 과거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치유와 보상을 받은 루이즈 부르주아.
사십대 후반에 (상업적) 음악을 그만둘 각오로 가톨릭으로 개종 후 재즈를 (종교 음악) 예술의 경지로 끌어오리는 데 일조한 메리 루 윌리엄스. 
서른두 살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나 쉰 살부터 인종차별이 초래한 폭력의 폐해와 불의를 규탄하며 흑인 시인으로 자신을 규정한 궨덜린 브룩스. 무대 예술 공연을 통해 범아프리카적 예술을 전 세계에 알린 무용가에서 통합적 인문학을 실현을 위한 교육자이자 정치적 활동가가 된 캐서린 더넘. 
  
 






이처럼 책에는 문학 작가, 회화 미술가, 조각가, 재즈 뮤지션, 무용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나이듦의 과정이나 관점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주제(성性, 타인의 시선 등등)를 두고 각기 다른 경험과 의견을 가지는데, 그 폭이 아주 크다는 점은 독자로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 삶의 지항점이 늘 옳고 정의로운 건 아니었을지 모른다. 다만 각각 다른 삶의 결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도리어 노년의 상실을 창조성으로 발현하는 계기로 삼아 생의 후반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정을 쏟아부으며 야망을 이루기 위해 투쟁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교류와 젊은 세대의 도움을 무시할 수 없음을 그들 스스로 깨닫는데, 노년의 창조 활동에 있어서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이 중요함을 독자 역시 그들의 삶을 통해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노년층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개인의 삶도 물론이지만 공공의 선이라는 측면에서도 노년을 맞은, 그리고 앞으로 노년을 맞게 될 우리가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환경 운동가이기도 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지구 생명체 종말이라는 미래 전망에 비하면 노년에 대한 걱정은 극히 사소한 것으로 여겼다. 한 인터뷰에서 "왜 걱정하고 무서워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겠느냐"는 그의 말은 작가 이사벨 아옌데, 화가 루치타 우르타 등 다른 노년의 예술가들과 궤를 같이한다. 그들의 주장을 생각해보면 정작 순수하게 열정을 다해 뜻하는 바를 실행할 수 있는 시기는 노년기가 아닌가싶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노년기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니 이 시기를 최대한 꽉 채워 살아야 한다는 아니 에르노의 말도 와닿는다.  



​ 「독자의 상황에 따라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박히는 명문이라, 중년 이후 여성이라면 오래도록 붙잡아둘 책이다.」
정희진 선생의 추천사 중 일부인데, 책을 완독하고 나니 이 문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시선은 조지아 오키프와 루이즈 부르주아에 오래 머물렀더랬다. 처한 상황이 그들과 다르니 어느 한 사람이 롤모델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에 등장한(본문 외에 결론 부분에서도 많은 창작가들이 언급된다) 예술가들은 내가 노년을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줄 것임은 분명하다. 정희진 님의 말처럼 곁에 두고 읽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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