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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석들 ㅣ 창비세계문학 88
에밀 졸라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마르세유 출신의 스물두 살 청년 옥따브 무레가 성공을 꿈꾸며 파리에 도착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옥따브가 세 들어 살게 된 아파트의 외관은 이루말할 수 없이 화려하다. 건축가인 깡빠르동은 아파트는 나무랄 데가 없고 입주자들 모두 점잖은 사람들만 살고 있다고 칭찬하지만, 사실 하나하나 정상적인 가정이 거의 없다. 겉으로는 온갖 교양을 다 갖춘 척 연기하며 서로에 대한 도덕과 정숙을 찬양하지만, 뒤에서는 썩을대로 썩어버려 스스로 타락한 줄도 모른 채 허울의 가면 뒤에서 다른 이를 비방하기 바쁜 가식과 위선 덩어리 부르주아다.
오 층 아파트의 구조는 시민 계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층은 건물주와 그들의 일가족, 3층과 4층에는 그럴듯한 직업을 갖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중산층, 5층은 월소득은 있으나 중산층 끝에 겨우 매달려 있는 이들이 산다. 그리고 5층 위쪽, 다락방이 있는 꼭대기층에는 막일꾼이나 마부, 하녀 및 하인 들의 숙소다. 4층까지의 거주자들은 자주 파티를 열어 아파트 주민들을 서로 초대하는데, 2층 거주자들은 5층에 사는 가족들을 초대하지 않는다. 친밀한 척 하지만 뒤돌아서기 무섭게 삼삼오오 험담하고 비방하기를 일삼는다.

출세와 쾌락만을 좇는 바람둥이 옥따브는 마리, 발레리, 쥐죄르 부인, 에두앵 부인, 심지어 이제 막 결혼한 베르뜨에게까지, 기혼 비혼 따지지 않고 아는 여자들한테 죄다 추파를 던진다. 잘생긴 얼굴 하나로 아파트에 사는 부인네들을 들쑤시고 다니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결혼식, 장례식 할 것 없이), 망나니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옥따브의 처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파트 내 사람들의 불륜과 외도는 이웃 간은 물론이고 친인척 간에도 벌어지고 있어서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특히 오로지 돈만 좇는 조스랑 부인은 돈 있는 남자를 사위로 삼기 위해 점찍어 놓은 사위 후보자들한테 딸이 교태를 부리도록 가르치고, 결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귀스뜨와 베르뜨의 결혼식은 부르주아의 민낯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옥따브는 하녀 아델을 '걸레'라고 비하하고 경멸하지만, 그가 유혹하면 마지못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맡기면서 자기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인네들이라고 아델과 다를까. 또한 중산층 점잖은 신사라고 자부심을 갖지만 저마다 내연녀와 혼외자를 두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공유하는 남자들은 또 어떤가. 각자의 잇속을 위해 서로의 불륜을 숨기고 감싸주는 작태는 그들 나름의 연대다. 그래서 지붕 아래 꼭대기층 골방에서 사는 최하층민 막일꾼이 그들에게 쏟아내는 일갈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혼외자를 출산하는 중산층 부인네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는 아델의 출산 장면과 그 이후의 상황은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등장인물 중 가장 무력하게 그려지는 조스랑 씨의 죽음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처럼 불구덩이 속으로 같이 뛰어들든가, 이름도 모르는 3층 거주민처럼 그들과 아예 벽을 쌓든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제 편의에 따라 적당히 외면했지만 결국 악의가 양심을 이기지 못한 사람이다. 끝까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지켜낸 가장은 죽음을 통해 딸의 굴욕적인 이혼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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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바르동을 비롯한 아파트 사람들이 이 모든 분란의 원인을 외지인인 옥따브에게 떠넘기지만, 그가 오기 전부터 이미 그들의 퇴폐와 타락은 깊어질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외면했을 뿐, 옥따브는 그들의 민낯을 수면으로 들어올린 불쏘시개 역할을 한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600쪽에 이르는 동안 거의 등장하지 않는 3층의 소설가 식구들은 아파트 사람들과 전혀 왕래하지 않아서 그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다. 소설의 말미, 그는 아파트 거주민들을 모델로 삼은 소설을 써서 큰돈을 벌었고, 이를 두고 아파트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며 욕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3층 식구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 3층 소설가는 에밀 졸라, 본인인 듯하다.
아파트는 향락과 탐욕, 타락의 성城이다. 그 성에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한바탕 소동이 가라앉은 몇 달 후. 아파트 사람들은 다시 모여 만찬을 즐기고, 그들에게는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 이 순간 관찰자의 입장이 된 옥따브 무레는 그들이 새로운 가식과 위선의 부르주아 성을 처음부터 쌓아가기 시작하고 있음을 깨닫든다.
걸칫하면 도덕성을 들먹이는, 코디기가 따로없는 그들의 이중성은 읽는 내내 참아주기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