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뤼미나시옹 - 페르낭 레제 에디션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지음, 페르낭 레제 그림, 신옥근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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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해의 삶을 살다간 랭보. 거기다 문학적 삶은 훨씬 더 짧기에 그의 시는 그다지 많다고 볼 수 없다. 산문시인 <일뤼미나시옹>은 <지옥에서의 한 철> 이후 그가 시인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난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래서일까, 뭐라 깔끔하게 단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의 심경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회의, 혼란, 새로운 시작, 무언가에 삶을 바치겠다는 열정, 자유, 시와 삶에 대한 격정과 치열함, 청년 시절의 회한과 그리움 등 그가 예술가가 아닌 삶의 현장의 직업인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어떤 경계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을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싶다. 그런데 그의 격정이나 치열함에 비해 삶에 대해 그다지 희망적이라거나 또는 지나온 삶을 아름답게 기억하지 않는 것으로 읽힌다. 


이러한 글을 쓴 나이가 서른 전후였다고 짐작해보면ㅡ굳이 그의 삶의 이력을 언급하지 않더라도ㅡ얼마나 고뇌가 컸을지 알 것 같았다.  





 



랭보의 시도 귀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단연코 페르낭 레제의 그림이다. 실린 그림의 양도 적지 않다. 
이 책, 페르낭 레제 에디션은 페르낭 레제가 《일뤼미나시옹》만을 위해 그린 그림이 수록된 아트 컬래버 시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에 맞춤처럼 그림과 글이 상통한다. 때때로 마주하는 시의 모호함과 난해함이 추상화와 만나 이해를 돕는다. 왠지 회색빛일 것만 같은 랭보의 시가 이토록 색감이 풍부한 그림과 찰떡이라는 것도 의외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책의 가장 끝부분에 실려있는 랭보의 초상화가 마음에 들었고, 책 내지의 질감이 좋았다. 이 질감 때문에 그림을 보는 맛이 더 컸다.  


시는 몇 번에 걸쳐 더 읽어봐야할 것 같아서 옮긴이의 해제는 이 과정을 거친 후 참고하기로 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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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Philos 시리즈 23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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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에 명시된 '혐오표현금지법'을 논제의 중심에 놓고 혐오표현금지법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서술한다. 일단 혐오, 그리고 혐오표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충분히 왜곡해서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 일단 용어와 용어가 갖는 범위에 대해 숙지하는 게 우선일듯 하다.


혐오표현금지법 지지자들은 형.민사 사법제도를 포함한 사회제도가 인종차별과 다른 유형의 차별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면서 무의식적 편견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혐오표현금지법을 집행하는 기관과 개인은 소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집행하지 않을 것이 뻔함을 지적한다. 일부 지지자들은 전통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어 온 집단을 향한 표현일 때에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자유와 평등 원칙을 위반하는 셈이다. 과거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을 향해 노예제도 옹호론자였던 존 캘훈이 노예제도 비판이 남부의 명예를 훼손하고 상처를 입혔다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역차별'이라는 용어가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혐오표현은 당연히 반대하지만, 이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악용될 수 있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저자는 다른 방식으로 혐오표현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ㅡ 


혐오표현금지법은 기본적 표현의 자유 원칙과 평등 원칙을 위반함과 동시에 난감한 모호함과 광범위함 때문에 표현의 자유와 평등을 저해한다. 무력한 소수자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혐오표현금지법이 바로 그 소수자집단의 또는 그들을 대신하는 표현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다. 이 소수자 집단들은 정치적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집행 양상은 예상할 수 있고 매우 흔하다. 취약한 소수자집단에 집행되는 혐오표현금지법의 문제는 서유럽을 포함하여 보다 안정된 민주주의 정부에서도 발생한다.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광범위하지 않은 혐오표현금지법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저자는 혐오표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함, 갈등, 혼란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근본적인 관점 중립성 원칙과 긴급성 원칙을 벗어나고자 하더라도, 모든 혐오표현금지법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광범위하기 때문에, 여전히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원칙에 위배될 것이라고 짚는다.   


혐오표현금지법이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를 낳은 수많은 사례를 들면서 혐오표현금지법을 가진 많은 국가가 차별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오히려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법을 집행해 온 몇몇 정부는 인종, 민족,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야만적인 차별을 경험해 왔는데, 대표적이 사례가 혐오표현금지법이 있음에도 부활한 나치즘이다. 


그리고 또다른 방법으로 삼는 검열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일부 차별적 표현을 더욱 숨게 만들어,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행동이 차별적이지 않은지 감시할 기회를 잃게 만들며 이로써 차별적 언행을 하는 이들이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잃게 된다. 혐오표현을 억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단기 이익보다는 이를 폭로하고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기 이익이 더 클수 있다고 주장한다.  


ㅡ 


처음 위에서 언급했듯 법률로써 혐오표현을 제한하는 것은 부작용이 따른다. 그래서 저자는 혐오와 차별을 맞서는 방법으로 '대항표현'을 제시한다. 


'대항표현'이라는 용어는 동의하지 않는 메시지에 대항하는 모든 표현을 포괄한다. 혐오표현의 맥락에서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이 전달하는 사상을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표현,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교육 계획, 차별적인 발언을 한 사람의 반성 표명 등 잠재적으로 광범위한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혐오적이고 차별적인 말의 해로운 잠재력에 저항할 수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에 더 민감해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할 것이다. 저자는 여러 이유에서 관점 중립성 원칙에 예외를 두어 혐오표현을 규제한다면 시민권 보호를 옹호하는 이들의 표현도 보호할 수 없게 되고, 혐오표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평등 및 사회적 화합을 심각하게 손상할 것이기 때문에 혐오표현금지법을 거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 한 국회의원이 '온라인 혐오표현 방지법'을 발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혐오표현을 법률로써 규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이미 수많은 프레임을 구축해 놓은 기득권층은 이를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여러 다른 부분의 사례에서 봐왔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건 저자가 강력히 주장하는 '대항표현'이다. 비록 미국 법률을 근거해 서술하고 있으나 현재 대부분의 국가와 사회에 해당하는 내용이기에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

혐오표현이라는 용어는 특정한 개념 정의를 가진 법률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표현을 낙인찍고 금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가장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혐오표현의 의미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역히 역사적으로 차별에 직면했던 사람들에게 혐오적이거나 차별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표현을 말한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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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알베르 카뮈 소설 전집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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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서문부터 심상치 않다. 카뮈는 서문에서 이미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밝히고 있다.

 
소설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를 상대로 화자의 혼잣말로 진행한다. 마치 연극의 방백처럼 화자는 정작 앞에 있는 상대가 그의 말을 듣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연극적으로 말을 이어간다. 자아도취, 자기 환멸과 합리화, 변명과 설득, 거짓과 허세, 자기애와 자기비하, 감정의 기복이 오락가락하는, 적잖이 과장된 화자의 모습은 소설의 한 장치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화자 장바티스트 클라망스는 40대 남성 (전직)변호사다. 자신을 재판관 겸 참회자라고 소개하지만, 본명이 아니라고 밝힌 그의 명함에는 이름과 함께 직업이 '배우'라고 인쇄되어 있다.  


대화 상대자와의 첫만남에서 장바티스트는 자신을 '블초소생'이라고 칭하며 한껏 낮추어 겸손의 태도를 보이는데(원서는 어떻게 표현이 되어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앞서 서문에서 쓴 맥락ㅡ먼저 스스로를 낮추어 비판의 정당성을 갖는ㅡ과 같다. 또한 이는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자신을 고발함으로써 심판할 권리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소설의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이 정당성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보여준다.  


장바티스트는 술집 주인에 대해 남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의심이 많아졌다고 평가하며 솔직 담백하던 술집 주인의 천성을 사회가 다소 변질시켰다고 말한다. 이렇듯 개인의 천성을 변질시키고, 의심과 경계를 부추기는 데에 있어서 그 기저에는 사회 집단이 있음을 언급한다. 작가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은연 중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여타 전쟁 상황에 빗대고 있다. 그만큼 현대 사회의 폭력적인 경쟁과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을 지적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현대 사회는 경쟁과 효율성으로 조직되어 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효용성이 떨어지면 가차없이 조직에서 제외시키는 현상을 우스갯말로 에둘러 비판한다.  


그는 주로 과부와 고아 등 사회적 약자의 변론을 맡았고, 그 자신의 정의로움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타적이고 양심적인 자신의 생활태도와 미덕에 만족하고 그것으로써 자신을 정의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예의바르고 너그러운 사람인지를 확인시켜주듯 줄줄 읊는다. 이것이 자신이 상위층임을 드러내는 그만의 방식이다. 선의를 행함으로써 충족되는, 그래서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만끽한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을 '개미 같은 인간들'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말이나 재판정을 무대라고 칭하며 법정에서 판사의 판결과는 무관한 자신의 변호 행위에만 치중하며 판사가 아닌 오히려 본인이 그들을 재판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인간은 여러 관점에서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다. 도덕과 부도덕, 현실과 이상, 이기와 배려, 위선과 위악, 자유와 속박, 겸손과 허영 등 때로는 신에게 의탁하고 선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이 더해질수록 죄악이 쌓여가는 아이러니한 현실.   


우정, 공감, 자각과 사유 등 무형의 가치가 사라지고, 타인의 비극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치부하며, 획일적인 감정과 일관된 삶의 패턴을 강요(당)하면서 마치 배우인 양 보여주기식 삶과 평판에 기대어 살다가 결국 권태에 이르는 세태.  


카뮈는 어떤 계기에 의한 화자의 전락을 떠나서 산업,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과는 별개로 인간 그 자체로서는 서서히 지속적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장바티스트의 말처럼 '완전한 결백'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사건(혹은 사고)가 발생함에 있어서 원인, 진행, 해결, 대안 및 예방의 과정 중에 대부분의 사람이 완벽하게 결백하기는 어렵다.  


비록 낯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의 죽음에 애도조차 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카뮈는 측은지심 한쪽 없는 우리들 모두가 '공범'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었을까.  


소설 마지막 문장인 클라망스의 빈정거림이 가슴에 콕 박히는 사람은 나뿐이려나. 




※ 출판사 지원도서

아이구 떨려... 물이 얼마나 차다고요! 그러나 안심하세요! 너무 늦었어요, 이젠. 언제나 너무 늦을 겁니다. 천만다행으로!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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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 반물질의 블루스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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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미키7>이 끝난 시점에서 2년이 경과된 후부터 시작한다. 소설에서 행성 간 디아스포라는 200년 전부터 시작됐다. 디아스포라 이후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이 근현대 역사와 아주 흡사하다. 
 






전작 <미키7>이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 반스의 정체성과 의미론에 대한 고뇌였다면, 이번에는 정의와 도덕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인간 복제에 대한 종교적 · 윤리적 문제에 대한 찬반 논란. 디아스포라, 그리고 침략적 이주에 따른 토착민과의 갈등. 토착민과 이주민의 동맹과 협력을 통한 동등한 관계. 토착민이 이주민에게 내민 선의, 그럼에도 문명을 들먹이며 토착민의 관습을 미개하다고 낮잡는 이주민의 태도. 


읽으면서 이야기 자체도 상당히 재미있지만, 물리적 대결 구도뿐 아니라 사고의 차이와 관습의 이해, 그리고 가치관에서 오는 딜레마 등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많은 SF소설에서 봐왔듯 외계인(지구인 입장에서)과 인간 캐릭터의 설정을 보면 외계인이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아이러니와 인간의 모순을 짚어내는 역할을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점들이 더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인간이면서도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괴물로 취급당하는 익스펜더블과 반은 생명체이고 반은 기계인 하이브리드 크리퍼가 철학적으로 사유하며 공공의 이익과 우정을 더 우선시한다는 점에도 여러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나샤로부터 인간이 행성 간 이동을 한다는 말을 들은 스피커(크리퍼)는 인간이 예상보다 위험한 존재라고 말한다. 크리퍼는 폭탄의 위력에 상당히 놀라며 인간들은 왜 그런 걸 만드는지 묻는다. 아마 이 질문에 상당히 설득력 있는 근거를 들어 타당성을 설명해주는 것은 우리에게 일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타인의 죽음,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에 너무 익숙해져 '원래 세상은 다 그래'라는 한 마디로 모든 물음표를 일축하고 있는 건 아닌지. 


미키 반스가 던진 도덕적 딜레마. 살아 있는 적과의 약속, 죽은 친구와의 약속 중 더 우선해야야 하는 것은? 합의한 사항에 대해 약속을 어기고 배신을 하는 짓은 크리퍼 세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 종족을 괴물이라고 말하는 스피커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는 익스펜더블인 미키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은 '반물질 원정대'(내가 붙인 이름이다)가 남쪽으로 가는 동안 로버에서 스피커와 원정대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비록 서로의 이득을 위해 맺은 동맹관계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 그들은 '친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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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 일기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백수린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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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석 달 동안 투약한 모르핀 대용 약제로 인해 약물 중독 증세가 심해져 전문 의료 시설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던 사강이 짧은 입원 기간 동안 쓴 일기다. 








사강은 입원한지 이틀만에 스스로 쇠약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몸의 쇠락을 느낀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일테다. 그녀가 말하는 쇠약이 육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병원에서 듣는 다른 환자의 울음소리. 그 지치고 애통한 울음소리를 예사로 여기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사강의 눈에는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듯 하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내 의사대로 할 수 없다는 자괴감. 
몸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하면서도 예전과는 달리 책 한 권을 끝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침대와 소파만 오가고 조금 답답하며 잠을 못 자는 와중에도 자신의 탐욕과 호기심이 새삼스러운 사강.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았던 예전의 삶에 대한 그리움, 그러면서 진정한 행복은 드물다고 말한다.  


사강은 고통과 외로움이, 무엇보다 스스로 삶을 끊어내게 될까봐, 두렵고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두려움이 지겹다. 


​지치고 지루하고 도망치고 싶은 날들. 
삶과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열망.
그리고 글을 쓰겠다는 다짐.



​적은 분량과 각 페이지마다 길지 않은 글들임에도 느리게 읽혔다. 책에 실린 삽화는 사강의 피폐해진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음 장을 넘기고 다시 두세 페이지 앞으로 돌아가기를 여러 번.  


오랜만에 독후기록 노트에 발췌한 문장들과 읽는 순간들었던 단상을 꾹꾹 눌러담아 적었다. 



글로만 봐서는 이십대 초반에 썼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짙은 페이소스가 전해진다. 내 몸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상실한다는 것, 지겨울 정도로 두려움이 일상을 잠식한다는 것, 죽음에 더 가까이 발을 내딛다가도 글쓰기를 향한 열망 덕분에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삶을 향해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온전히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의 고통과 고독, 어렴풋한 희망을 조금이나마 나눈 시간이었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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