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끝 쏜살 문고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22117

˝나를 짓누르던 그것이 나의 사랑이었을까? 만일 사랑이 아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내 성격이었을까? 나였을까? 삶이었을까? 그렇다. 죽어서도 난 내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내 육신의 욕망, 관능의 욕구, 질투에서는 벗어나리라.˝


연인 관계에 있어서 질투란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을때 나타나는거라 생각한다. 만약 당신과 내가 연인이 된 게 운명이 아닌, 하필 그 시기에 그 장소에서 서로 만났기 때문이라면, 굳이 내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질투가 시작될 것이다. 당신의 옆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누군가는 괴로울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믿지 못한 사람의 잘못일까? 믿음을 주지 못한 사람의 잘못일까? 확실한건 한번 시작한 질투는 죽을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에 내가 읽은 <질투의 끝>은 총 네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초기 단편집인 <쾌락과 나날>에 수록된 단편중에서 네편을 선별한 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네편의 단편 모두 대단히 대단히 대단히 좋았다. 그중 두편만 소개해 보자면...




1.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자의 질투의 끝을 보여준다. 병 때문에 살날이 얼마 안남은 발다사르는, 그럼에도 여전히 장엄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삶에 의욕을 느끼며 죽음마져도 그를 피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눈속에서 만큼은 알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죽음을 앞두고도 저렇게 쾌활하고 여전히 극장에 가고 싶어 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감추고 있거나 특별히 용기를 낸 것은 아님을, 저렇게 죽음 가까이 다가가도 삼촌은 오직 삶만을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P.20



그 슬픔의 원인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살아가는 의지가 되는건 바로 질투였다. 예전에는 자신의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다른사람의 연인이 되어버린 시라쿠사 공녀 때문에 그는 질투의 잔인함을 느낀다. 공녀는 발다사르에 대한 연민 때문에 그를 친절하게 대하기는 하지만 다른 연인에 대한 속마음을 감출수는 없었고, 이런 그녀의 감정을 아는 발다사르는 더욱 괴로워한다. 그가 힘든건 가다리고 있는 죽음 때문이 아닌, 떠나가버린 사랑 때문이었다.

[발다사르를 이따금 잔인한 현실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단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가 여전히 감각과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는, 하지만 이미 카스트루치오를 향해 절대 꺾이지 않을 격정적 사랑에 빠진, 그래서 그가 잊으려고 애쓰는 시라쿠사 공녀, 피아의 냉담한 태도였다.] P.30



결국 발다사르는 쓰러진다. 그리고 이제 살날이 한달도 채 남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질투는 끝나지 않는다. 그는 공녀가 그의 연인과 함께 무도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하게 되고, 그의 누이에게 공녀를 불러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공녀는 발다사르 집에 방문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무도회에 가지 말라는 부탁을 듣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거부한다. 발다사르는 결국 그녀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몇일 후 그는 운명한다.

[아, 언젠가 나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보면, 혹은 나의 기일이 돌아오면, 조금이나마 나의 애정을 기억해 주시오. 그러면 난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당신이 오는 길 위에 마법처럼 꽃이 만발할 거요. 죽은 나를 생각해 주시오. 하지만 어쩌겠소! 삶의 열정과 우리의 눈물과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입술이 해내지 못한 것을, 죽음과 당신의 엄숙함이 이루어 내길 바랄 수는 없으리!] P.38



어쩌면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죽음보다도 질투가 더 괴로운 건지도 모르겠다.





2. <질투의 끝>

이 작품은 죽어야만 끝이나는 질투의 끝을 보여준다. 너무나도 다정한 연인관계인 오노레와 손느 부인은 매일매일 사랑을 키워나간다. 오노레에게 있어서 시간은 그녀를 만날 때에만 의미가 있었고, 그녀와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은 단지 그녀를 기다리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나지만, 주변사람들은 두사람을 연인으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그들의 애정은 비밀스럽지 않았기에 더욱 신비로웠다. 누구든 그 애정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 애정은 마치 사랑에 빠진 여인이 팔목에 차고 있는 신비한 팔찌, 그 여인을 살게 하고 또 죽게 하는, 이름이 보이지만 알아볼 수는 없는 글자로, 호기심 많은 이들이 보기에 분명 뜻이 있기는 한데 도통 그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실망스러운 글자로 각인된 팔찌 같았다.] P.88



오노레는 그녀와 함께한 파티에서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자르를 뜨자 혼자만의 행복한 망상에 빠진다. 만약 자신의 마음이 그녀로부터 멀어지는게 느껴진다면 그녀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할거라고, 대신 그녀가 다른 사랑을 받아들여서 삶을 다른 쪽으로 옮기려고 하면 질투하지 않고 그녀를 붙잡지 않을거라고.

[또한 오노레는 만일 프랑수아즈가 다른 사랑들을 받아들여서 삶을 서서히 다른 쪽으로 옮겨 가는 날이 온다면 그녀를 붙잡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질투하지 않고, 심지어 그녀에게 더 점잖고 더 영광스러운 경의를 바칠 수 있을 남자를 직접 골라 줄 수도 있으리라.] P.90



하지만 이런 오노레의 열린(?) 마음은 파티에 참가한 뷔브레의 한마디에 무너지게 된다. 뷔브레는 오노레에게 손느 부인은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여자라고,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아주 격정적인 여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노레는 자신의 연인에 대한 험담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항변하지 못한다. 대신 이날 이후 끝이 보이지 않는 의심과 함께 질투에 빠지게 된다. 질투의 시작.

[하지만 프랑수아즈와 떨어져 있는 동안, 혹은 곁에 있더라도 그녀의 눈 속에 불길이 어른거리는 동안이면 다른 누군가가 오래전에, 어쩌면 어제, 어쩌면 내일, 그 불을 지피는 상상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오노레는 다른 여인 곁에서 순전히 육체적 욕망에 굴복하기를 반복했고, 그러고 나면 지금껏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프랑수아즈를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거짓말을 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떠올렸다. 그러자 그녀 역시 거짓말을 할지 모른다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자기를 알기 전에 이미 지금 자신을 달아 오르게 하는 뜨거운 열정으로 다른 남자의 품에 달려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더 이상 허무맹랑해 보이지 않았다] P.94



오노레는 자신의 괴로움을 손느 부인에게 털어놓는다. 손느 부인은 오노레에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나는 오노레 너만을 사랑한다고 진심을 전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고, 오노레 역시 그녀의 말이 진심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한번 심어진 질투의 씨앗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득 문득 그녀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괴로워한다. 어떻게 해도 그녀의 마음에 대한 확신을 못하게 된다. 질투의 계속.

[설사 그녀가 단 한 순간조차 자기 아닌 다른 남자의 것인 적이 없었다는 불가능한 확신을 얻는다 한들, 뷔브르와 함께 문 앞까지 왔던 그날의 알 수 없는 고통은, 그때와 비슷한 고통 혹은 그 고통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바로 그 고통은, 그것이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증명된 이후라 하더라도, 절대 그를 놓아주지 않았으리라. 그것은 마치 누군가 우리를 죽이려 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난 뒤 꿈이었음을 알면서도 공포에 떠는 것과 같고, 다리가 잘린 뒤에도 그 없는 다리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다.] P.95



오노레는 어느정도 질투의 끝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고,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오노레의 불행은 끝난게 아니었다. 그는 길을 가다가 마차에 치여서 두 다리가 골절되고, 복부에 타박상을 입는다. 그는 자신이 다친 것 때문에 손느 부인의 사랑이 떠날거라고 절망하게 되고 다시 질투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이 죽어야만 이 질투가 끝날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질투의 끝.

[죽어야 한다면, 죽고 나면 질투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죽기 전에는? 내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질투하는 것은 오로지 쾌락이고, 나의 육신이 질투하고 있을 뿐이고, 그녀의 마음과 그녀의 행복은 내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바라는 것인데, 누가 제일 잘 해낼까? 내 육신이 사라지면, 영혼이 육신을 이기면, 이전에 많이 아프던 때처럼 내가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오게 되면, 그래서 더 이상 미친 듯이 육체를 갈망하지 않고 그만큼 영혼을 사랑하게 되면, 그때는 질투하지 않으리라. 그때는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리라.] P.112



인간의 의심과 욕망, 질투는 살아있는 동안 계속따라다니며 죽어야만 없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질투라는 감정이 어떻게 보면 대단히 유치할수도 있지만 프루스트가 쓰니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결하게까지 느껴졌다. 한번 부서진 마음을 완벽하게 치유할 수는 없는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올랐다. 해설을 보니 <질투의 끝>이 <잃시찾>의 전단계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거 같다. <잃시찾>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요약해서 들어가 있는 작품이 <질투의 끝>이라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잃시찾>에 비견될 정도로 대단히 좋았다. <잃시찾>을 읽기 시작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Ps. 이 작품이랑 어울리는 노래 하나 추천해 본다.

넬 - 치유
https://youtu.be/kMH6vM6-WMA

나를 갈라 내 안에 너를 들여놓고 싶은데
그래서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지 보여주고 싶은데
부탁해 부디 부서진 내 맘을 치유해 주길 바래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2-09-27 1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권에서 질투에 대해 장황하게 써 놓았잖아요. 작가는 처음부터 사랑에 질투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나봐요.
새파랑님, 별 다섯 주셨네요
기대됩니다^^

새파랑 2022-09-27 18:03   좋아요 4 | URL
질투의 화신 프루스트 입니다 ㅋ 이 책 정말 재미있습니다. 계속 꺼내읽고 싶은 책이에요~!!

거리의화가 2022-09-27 17: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잃시찾 내년에 시작 전 이 책 먼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네요. 새파랑님 추천 감사해요!

새파랑 2022-09-27 18:03   좋아요 3 | URL
이 책 먼저 읽고 잃시찾 읽으면 더 잘 이해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coolcat329 2022-09-27 19: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처음 보는 책인데 프루스트의 단편집이네요.
질투라는 감정은 눈 앞에 다가온 죽음도 능가할 정도로 강한 감정인가 봅니다.
프루스트가 질투의 화신이라니 참 프랑스다운 작가같아요.

새파랑 2022-09-27 20:15   좋아요 2 | URL
제가 그래서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거 같아요 ^^

청아 2022-09-27 19: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단히×3 좋았다고 하시니 반드시 읽어야겠네요. 사랑에 따르는 위험요소들, 감정들에 프루스트만한 전문가는 없는것같습니다^^*

새파랑 2022-09-27 20:16   좋아요 2 | URL
미미님 이 책 안읽으셨군요 ㅋ 완전 좋습니다~!! 프루스트 찐팬이라면 완전 소장각입니다~!!

얄라알라 2022-09-27 1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플친님들 댓글만 읽어도, ;프루스트 특화 영역이 감정을 다루는 것인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새파랑 2022-09-27 20:16   좋아요 2 | URL
질투는 프루스트 특화 영역이 맞는거 같아요 ㅋ 전 너무 즐겁게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22-09-27 2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놓았어요 새파랑 님.^^
언제 읽으려나...

새파랑 2022-09-28 07:36   좋아요 1 | URL
요책 얇은데다가 재미있어서 금방 읽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09-27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입니다!!

새파랑 2022-09-28 07:36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전 문장이 다 필사 문장입니다 ㅋ 정말 좋더라구요 ^^

희선 2022-09-28 0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가 질투를 많이 했나 하는 생각이 들게도 합니다 실제로는 어땠을지... 그런 마음이 있어서 글도 썼겠지요 믿으면 좋을 텐데... <질투의 끝>에서는 다른 사람 말을 더 믿다니... 괴로움은 자신이 만드는 거네요


희선

새파랑 2022-09-28 07:37   좋아요 2 | URL
상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런거 아닐까요? 프루스트는 실제로도 그랬을거 같습니다 ㅋ 모든 원인은 결국 자신인거 같아요~!!

mini74 2022-09-29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가 쓰는 질투라니 궁금합니다. 잃시찾은 포기해도 이 책은 도전 !! ㅎㅎ 새파랑님이 책 소개하며 써 놓으신 질투에 대한 글들 👍좋아요

새파랑 2022-09-30 07:28   좋아요 2 | URL
제가 질투를 좀 해봐서 잘 압니다 ㅋ 이 책 초강추 입니다~!!

yamoo 2022-10-01 1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첨 보는 책인데....프루스트의 잃어버린..9권을 재편집한 걸까요, 아님 새로운 단편집인가요?? 새로운 단편집이면 저도 구매해서 봐야 겠습니다요~!

새파랑 2022-10-01 20:39   좋아요 1 | URL
<잃어버린시간을 찾아서> 나오기 전에 프루스트가 쓴 단편집 <쾌락과 나날>에 실린 단편중 네편을 엄선한 작품입니다 ㅋ 이미 기존에 나온작품인데 전 첨읽었어요 ^^

그레이스 2022-10-04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질투의 감정은 살아있는 동안 지속되는 부정적이기고 긍정적이기도 한 감정이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관건이라는 생각!

새파랑 2022-10-04 13:04   좋아요 2 | URL
질투라는 감정은 평생 따라다니는 거 같아요. 긍정적으로 다루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