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존재하는 것도 내가 책을 읽는 것도 내가 글을 쓰는것도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이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이유가 없는것이 아니라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을 통해 공쿠르 상을 수상했고, 이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도 쓴 <자기 앞의 생>을 통해 또 한번 공쿠르 상을 수상하여 사상 유례없이 동일인이 두 번의 공쿠르 상을 탄 작가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살아있을 때는 이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고 하며, 그가 자살 한 후 그가 남긴 글을 통해 이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뭔가 비범한 느낌이 들어서 ˝로맹 가리˝에 대해 검색해보니 전투기 조종사에 외교관에 영화감독까지 하고, 게다가 당시 프랑스 문학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삶 자체가 소설과도 같았던 ˝로맹 가리˝, 이런 엄청난 작가의 책을 이제서야 접해서 너무 아쉬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그의 작품을 읽었다는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걸 보고 사람이 간사하다고 하는건가?


이번에 읽은 ˝로맹 가리˝의 단편집 <새들은 페루에 와서 죽다>에는 총 1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중 단연 압권은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와서 죽다> 였다. 시각적인 느낌이 강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마치 세계의 끝에 위치한 바닷가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왜 새들은 페루에 와서 죽는 걸까?

[새들이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P.12


세계의 끝에서 아무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만 있는 그의 앞에 우연히 바다로 뛰어드려는 여인이 나타나게 되고, 그는 그 여인을 구하면서 왠지 모를 희망을 갖게 된다.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체념을 거부하고 줄곧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했다. 그는 삶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황혼의 순간 문득 다가와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줄 그런 행복의 가능성을 은근히 믿고 있었다.대책 없는 어리석음 같은 것이 그의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P.20


하지만 세계의 끝에 온 여인은 다시 비루한 현실로 돌아가게 되고, 그는 다시 혼자 남겨지게 된다. 새들은 페루에 와서 죽는 이유는 왜일까? 이유는 있겠지만 이유는 모른다. 그리고 그는 세계의 끝에서 사라지게 된다. 왜 그렇게 그는 쓸쓸하게 그곳에 혼자 있었던 걸까?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데에는˝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이유가 있을 거요˝ ]


그들은 떠나갔다.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여자는 모래 언덕 꼭대기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저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페는 비어 있었다.]  P.36




이 단편 외에도 많은 단편들이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담고 있으며 읽고 나면 섬뜩한 느낌을 준다. 좋았던 단편을 몇편 더 소개해 보자면,


무난하고 안정적인 외교관 생활을 하던 가정을 배경으로, 인생의 말년에 깨달은 예술적 재능과 성적욕망을 추구하는 남편과, 안정적인 가정을 지키려는 부인의 심경을 다루고 있는 <류트>,


언제나 진품, 걸작만을 추구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부인의 외모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어 이혼하는 이야기를 그린 어이없는 이야기 <가짜>,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탐험가의 삶을 살아가는 ˝알베르˝, 그는 각세계의 여행지에서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엽서에 써서 보내지만 결국 자신이 그 여인에게 이용당한 것을 알고, 배신당한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야기를 그린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고갱의 그림을 소재로, 세상 어디에도 순수한 것은 없다는 것을, 자신만은 순수하다고 생각하며 순수한 곳을 찾아 다녔지만 자신 역시 세속적인 것을 버릴 수 없었고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나치 학대를 배경으로, 잔인한 괴롭힘과 학대가 피해자를 얼마나 무기력하게 그리고 비이성적으로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등이 개인적으로 좋았었다. 단편의 경우 짧은 분량 안에서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가끔씩 읽다보면 이해가 안되는 단편집들도 있다.

하지만 <새들은 모두 페루에 가서 죽다>에 들어 있는 단편들은 모두 인간과 삶에 대한 냉소를 담고 있고, 특히 결말이 모두 반전있게 끝나다 보니 읽고나서 강한 여운이 남았다. 그래서 각각의 단편을 끝까지 읽고 나면 꼭 앞페이지로 넘어가서 다시읽게 되었다.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극찬하신 이유가 공감되었다. 어느 페이지, 어느 단편을 펼치더라도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또 알게된 ˝로맹 가리˝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 겠다.

Ps. 요즘 프랑스 작가 작품을 많이 읽는것 같다. 러시아로 다시 넘어가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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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12 08: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의 작품은 두 개만 읽었는데 읽지 않은 <새벽의 약속>을 가장좋아해요ㅋ
이 작품은 난해하게 느껴졌는데 새파랑님 리뷰를 보니 다음에 꼭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제목이 참 시적인듯 합니다~😊

새파랑 2021-09-12 09:03   좋아요 4 | URL
읽지 않은 책을 가장 좋아하는 미미님은 역시 엽기여왕이 맞는거 같아요 😆
시적이고 난해한데 다시 읽고싶은 생각이 드는 작품인것 같아요. 좀 적당히 어려워야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것 같아요 😅

mini74 2021-09-12 09: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로 읽으셨군요 새파랑님. 이 구역의 실천왕ㅎㅎ 저는 쓰디쓴 술같은 느낌. 숙취에 쓴 맛에 이젠 안 마셔하면서도 자꾸 생각나는 ㅎㅎ 새파랑님 글 잘 읽었습니다. ~~

새파랑 2021-09-12 09:46   좋아요 4 | URL
미니님 아침술 하신건가요? 😆 읽기는 금요일에 읽었는데 고민하다가 그냥 리뷰썼어요. 너무 작품이 좋아서 잘쓰고 싶었는데 😅

청아 2021-09-12 10:15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미니님도 참😉 🥃꿀물놓고 갑니당~♡

mini74 2021-09-12 12:59   좋아요 2 | URL
ㅎㅎㅎ꿀물 원샷하고 갑니다 ! 감사감사 *^^*

막시무스 2021-09-12 09:2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자기앞의 생과 달리 인간과 삶에 대한 냉소군요! 제겐 벅찰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당분간 참는걸루요!ㅎ 고객의 요청에 흔쾌히 먼저 읽어주시고 소중한 리뷰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건 주일되십시요!ㅎ

새파랑 2021-09-12 09:48   좋아요 5 | URL
다른 글 보니까 이 작품하고 <자기앞의 생>하고는 느낌이 정반대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자기앞의 생>이 더 궁금해졌어요. 도대체 어떻길래 ㅎㅎ 막시무스님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막시무스 2021-09-12 10:09   좋아요 4 | URL
읽으신다면 일러스트판 추천드립니다!ㅎ 어른을 위한 동화책같아서 맘이 따뜻해지더라구요!ㅎ

새파랑 2021-09-12 10:43   좋아요 3 | URL
그책도 일러스트판이 있군요~!! 찾아보겠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1-09-12 09: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리뷰로 다시 이 책을 읽어야할 것 같아요. 사실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아요.
그냥 좀 쓸쓸하고 우울했던 느낌이 있었어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제목이 너무 좋지 않나요^^

새파랑 2021-09-12 10:44   좋아요 4 | URL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은 맞는거 같아요~!! 저도 이책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페루에 가보고 싶어요😆

파이버 2021-09-12 10: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속도가 LTE급인 새파랑님! 새파랑님께서 요약해주신 단편을 보니 내용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단편집 전체의 분위기와 제목이 잘 어울려요 무엇보다 제목이 멋있음>_<크
이제 「자기앞의 생」으로 가시는 걸까요?

새파랑 2021-09-12 11:11   좋아요 4 | URL
역시 제목이 중요한가봐요. 저도 첨보고 제목에 확 꽂혔어요. 게대가 내용도 잘어울리고~!!
<자기앞의 생> 곧 읽겠습니다 ㅎㅎ 지금 가방안에 잘 들어있어요 😄

파이버 2021-09-12 11:13   좋아요 4 | URL
자기앞의 생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저는 명작을 보면 페이퍼쓰기 어렵던데 새파랑님께서는 소설을 보시고 느끼셨던 마음의 움직임을 글로 잘 표현하셔서 늘 새파랑님 리뷰가 기대되용

새파랑 2021-09-12 12:04   좋아요 5 | URL
저도 너무 좋은 작품에 대한 리뷰는 쓰기 어렵더라구요. 잘 쓰고 싶은 생각도 들어서 더 안써지고 ㅎㅎ
느낀대로 막 쓰는건데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3-05-16 18:5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ㅎ 감명깊게 읽은 책은 리뷰쓰기 더 어렵다는ㅎ

coolcat329 2021-09-12 1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었는데 무슨 바닷가 나오는 장면만 생각나고 머리속이 하얗습니다. 다시 읽으려고 중고 사뒀는데 다시 봐야겠습니다.

새파랑 2021-09-12 12:06   좋아요 5 | URL
ㅋ 첫 단편이자 표제작이 너무 강렬하거나 또는 이게 뭐지? 해서 그러실 수 있어요. 다시 읽으면 좋으실 수도 있어요 😆

scott 2021-09-12 1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있습니다 로맹이 직접 연출 각본 제작 감독한! (로맹은 페루에 딱 한번만 가봤고 거기서 새는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새파랑님 담 번 리뷰는 장! 그르니에르의 섬 ^ㅅ^

새파랑 2021-09-12 12:54   좋아요 3 | URL
스콧님 글 보니 로맹가리는 나쁜남자지만 매력이 넘치는거 같아요 ㅡㅡ 섬~!!! 책이 너무 예뻐서 줄도 아껴서 긋고 있어요. 곧 쓰겠습니다. 너무 좋아요 😊

2021-09-12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12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12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1-09-12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예전에 로맹가리 엄청 좋아해서 나름 열심히 읽어댔는데...
이 책 내용이 생각나질 않네요;;;한 10년 전쯤에 읽었거든요;;;;

새파랑 2021-09-12 17:07   좋아요 1 | URL
10년전부터 아셨군요. 전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 생각 안나신다면 재독을 ^^

그레이스 2021-09-12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야 할게 많은데 새파랑님 리뷰 보고 이 책에 자꾸만 손이가요^^;;

새파랑 2021-09-12 22:53   좋아요 1 | URL
이 책은 강추! 드립니다~!! 전 너무 좋았어요 ㅜㅜ

희선 2021-09-13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기는 했는데, 다 잊어버렸네요 저는 로맹 가리 예전에 알았다 해도 읽은 책 별로 없어요 로맹 가리, 이름부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에밀 아자르는 좀 다른 느낌이네요 《자기 앞의 생》은 괜찮았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1-09-13 07:10   좋아요 1 | URL
전 아직 <자기앞의 생> 안읽었는데 희선님에게 괜찮았다니 기대가 되네요~!!

초딩 2021-09-13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우앗 읔 핫!!!
단편집이었군요 ㅜㅜ 장식으로 꽂아두고 펼쳐보지도 못했네요
ㅜㅜ ㅎㅎ
그래서 요즘은 걍 책장 앞에서 읽기 작정 안 해도 뒤적 뒤적 거리기도 해요 ㅎㅎ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1-09-13 07:10   좋아요 1 | URL
표제작만 먼져 읽으셔도 좋을거 같아요 ^^

고양이라디오 2023-05-15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도 재밌게 읽으셨군요. 저도 최근에 재밌게 읽었습니다^^

<자기 앞의 생>은 재밌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ㅎ

새파랑 2023-05-15 22:49   좋아요 1 | URL
<자기앞의 생> 완전 좋았죠 ㅋ 하지만 너무 좋아서 친구한테 빌려줬는데 아직 못받았다는 ㅡㅡ 다시 사야할거 같습니다 ㅋ

고양이라디오 2023-05-16 11:33   좋아요 1 | URL
원래 뭐든 빌려줄 때는 어느정도 포기해야한다는ㅠㅋ

새파랑 2023-05-16 17:04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ㅋ 그래서 일러스트 있는 자기앞의 생을 다시 사볼까? 고민중입니다 ㅋ

고양이라디오 2023-05-16 18:54   좋아요 1 | URL
일러스트 탐나네요ㅎㅎ 전 <자기앞의 생> 너무 좋았어서 다시 읽기 겁나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