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씩 아무 걱정도 없이 그냥 즐겁기만 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그 시절을 이루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잃어간다. 하지만 결코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한 추억은 언제나 나와 함께일 것이다. 약간씩 흐릿해지더라도 말이다.
˝알랭 레몽˝의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추억에 관한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이 책은 일단 제목이 너무 환상적이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런 제목을 붙힌 걸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은 프랑스의 ‘트랑‘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10남매 중 한명인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시작은 주인공 ˝알랭˝이 친구로부터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살던 ‘트랑‘의 집을 지나왔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제 더 이상 ‘트랑‘에 있는 집은 자신의 집이 아니고, 현재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지만, 주인공은 친구와의 대화를 계기로 약 50년전의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어린이 ˝알랭˝은 ‘트랑‘에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즐거운 놀이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아무 걱정도 없었고, 그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나 해가 지나면서 시골 ‘트랑‘은 점점 현대식으로 변해가고, 그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알랭˝ 역시 어린시절을 벗어나서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되며, 자신의 가족에게는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행˝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더이상 놀이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이 된 것이다.
[커버리고 나면 아이들은 더 이상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녜스는 어느 날 놀이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자크도. 어느 날 문득 놀이를 할 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비밀을 잊어버린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걸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온갖 삶들을 마음속으로 지었고 그것을 굳게 믿는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게 끝나버린다. 그냥 그렇게 갑자기 딱 멈춰버린 것이다. 놀이의 상실, 놀이의 망각, 나는 그게 바로 일생 중 최악이 날이 아닌가 한다.] P.34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게 마련. 트랑에서의 행복, 내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셨던 그 행복은 거짓이었다. 그 행복의 내부에는 그보다 더 큰 불행이 도사리고 있었다.] P.73
나이가 들수록 그는 어린시절 ˝행복˝을 하나씩 잃어가고, ˝불행˝을 하나씩 얻게 된다. 언제나 집에 전쟁을 몰고 온 아버지, 그러나 존재만으로도 왠지 위안이 되었던 그를 떠나보내게 되고, 성인이 된 형제들은 모두 흩어져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으며, 어머니를 홀로 ‘트랑‘에 남겨 두어야 했다.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난 후 어머니도 병을 얻어 돌아가시게 된다. 살아계실 때 그렇게 전쟁을 치르던 부모님은 결국 같은 곳에 묻히게 되며, 부모님과 함께한 ˝알랭˝의 어린 시절도 그곳 ‘트랑‘에 묻히게 된다.
[‘나의 모든 하루하루는 작별의 나날이었다.‘ 어린 시절을 보냇던 이 콩부르의 숲을 떠나야만 했을 때의 가슴을 찢는 듯한 아픔을 표현한 대목이었다. 왜 어린 시절부터 사람은 사랑하는 모든 것과 작별을 해야 하는 것일까? 왜 모든 것들은 허물어지고 마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P.88
왜 우리는 항상 행복했던 과거와 작별해야 하는 걸까? 그 시절이 영원할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어도 추억은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어찌어찌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추억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하루하루 과거와 작별하더라도 매일매일 추억을 만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