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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 소돔과 고모라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평점 :
[우리는 흔히 창조적 정신의 결핍으로 고통속에서도 멀리 보지 못한다. 가장 끔찍한 현실이 고통과 동시에 멋진 발견의 기쁨을 주는 것도, 그 현실이 우리가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오래전부터 반추해 온 것들에 하나의 새롭고도 선명한 형태를 주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의심은 나를 불안하게 하고 질투를 유발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심이 확신이 되면 나를 미치게 하지 않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3부 이야기인 잃시찾 7,8권은 <소돔과 고모라>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3부 이야기는 주로 게르망트(귀족)의 만찬과, 베르뒤랭(부르주아)의 만찬에 대한 이야기가 비교를 이루면서, 귀족의 몰락과 부르주아의 부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샤를뤼스와 쥐피행/모렐과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나오는데, 묘사되는 외모와는 다르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는 "샤를뤼스"의 행동은 공감이 되기 보다는 어딘지 안쓰러운 느낌을 준다.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고 질투하는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보통사람의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3부에서 가장 인상깊은 이야기는 당연 "마르셀"과 "알베르틴"의 밀고 당기는 사랑과 "알베르틴"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였다.
이 책의 제목인 "소돔"이 남성 동성애를 의미한다면, "고모라"는 여성 동성애를 의미한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소돔"(이 책에서는 샤를뤼스)이 정신적으로는 여성적인 특성을 가짐에 따라 남성을 좋아하는 것이라면, "고모라"(이 책에서는 알베르틴)는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소돔은 성도착자를 의미하며, 고모라가 동성애자를 의미한다.
우리의 주인공 "마르셀"은 "알베르틴"을 좋아하지만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와의 밀회를 즐길 뿐이다. ("마르셀"은 정말 많은 여성을 좋아하는, 완전한 이성애자이다.) 또한 3부의 초반에 우연히 목격한 "알베르틴"의 고모라적인 특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알베르틴"은 이에 대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알베르틴"은 "마르셀"과의 육체적 관계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마르셀"의 주위에 있는 남자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를 통해 "마르셀"은 자연스럽게 "알베르틴"의 고모라적인 특성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 "마르셀"은 "알베르틴"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녀가 양성애자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내게는 하나의 취향이 다른 취향을 배제할 수 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순진함이 있었다.] 41페이지
대신 "마르셀은"은 그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알베르틴"의 관심에 점점 엄청난 질투를 하게 되고 괴로워 하면서,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나의 질투로 말하자면, 내가 알베르틴과 영원히 결별할 때라야 거기서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음에도 이런 질투심이 오히려 가능한 한 그녀 곁에서 떨어져 있지 않도록 부추겼다.] 275페이지
"알베르틴"이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주는 태도에 대한 "마르셀"의 질투는 극에 달하게 되고, 그녀가 옆에 있어도 의심을 하고 없어도 의심을 하는 상태에 까지 이르게 된다. 예초부터 "마르셀"은 "알베르틴"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그는 그녀와 해어질 결심을 하게 되고, 이별을 통보하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하는 도중 "마르셀"은 자신이 예전에(1부에 나옴) 목격했던 고모라적인 특성을 가진 여성들과 "알베르틴"이 오랫동안 친한 사이라는 것을 듣게 되고, "마르셀"은 "알베르틴"이 고모라라는 데 대해 확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고뇌에 빠지게 된다.
[생루나 여느 젊은이를 통해 유발된 이런 종류의 질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경우 나는 기껏해야 연적을 두려워하며 이기려고 하기만 하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연적은 나와 비슷하지 않으며 또 무기도 달랐고, 나는 동일 지대에서 싸우거나 알베르틴에게 동일한 쾌락을 줄 수 없었으며, 또 그 쾌락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상상할 수 없었다.] 475페이지
객관적으로 봤을때는 그냥 헤어지면 되는건데, "마르셀"은 그렇게 해어지지 못하고, 결국 "알베르틴"을 완전히 소유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며,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그리고 3부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4부의 제목이 <갇힌 여인>인데 앞으로의 이야기가 완전 궁금해 진다.
3부인 <소돔과 고모라 2>의 경우 게르망트(귀족)가와 베르뒤랭(부르주아)가의 비교, 샤를뤼스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소돔) 이야기, 그리고 코타르 언어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나오는데, 나는 도대체 이러한 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책을 읽으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후 해설을 보고 아하! 하며 깨달았다. 역전과 전환이 프루스트 소설을 매력적으로 하는 주요 장치였던 것이다. 해설에 쓰인 말을 옮겨보면,
[역전과 전환이 프루스트의 소설을 사로잡는 주된 움직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그것은
1. 성 : 남성미의 대표 주자인 샤를뤼스가 실제로는 여성
2. 정체성 : 사창가의 포주가 실은 러시아의 공주이자 대부호
3. 언어 : 타자의 말에 따라 수없이 변하는 코타르의 언어
의 흔들림으로 나타나며, 이 흔들림이 작품에 혁신적이고 전복적인 어조를 띠게 하는 것이다.] 530페이지
라고 한다. 뭔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답지를 보고 깜짝 놀란 기분을 느꼈다.
<소돔과 고모라> 안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내가 쓴 리뷰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진 못하고 제일 흥미있었던 "마르셀"과 "알베르틴"의 사랑 이야기만 정리했다. 실제로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미칠듯이 자세하게 쓰여져 있으니,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마르셀"에게 독약이면서도 동시에 해독제일 수 밖에 없는 그녀 "알베르틴". "마르셀"은 질투에 눈이 먼 사랑의 아픔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알베르틴"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곧 9권을 읽어야 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뒤로 갈수록 오히려 이야기가 흥미로워 지는 것 같다. 거꾸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ps. "알베르틴"에 대한 "마르셀"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노래로 리뷰 끝.
농담 - 김동률
https://youtu.be/Y1_IErAHpxs
나를 휘저었죠 나는 흔들렸죠
헛된 상상들은 자꾸
넘쳐만 갔었죠 하지만
누굴 탓할까요 내가 바보였죠
그냥 흘러가는 말에
휩쓸려 버렸죠 그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