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사람이 소멸되었을때, 다른 사람이 아주 소중한 사람을 대체 하는게 가능할까?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중한 옛 사람의 그림자 때문에, 모든걸 버리고 나에게 손을 내민 새로운 사람을 배신한다면 나는 나쁜 사람일까?
줌파 라히리의 두번째 장편 소설인 <저지대>를 읽고 떠오른 두가지 질문이었다. 이 책의 키워드를 꼽아 보라면 나는 ‘상실과 극복‘이라 말하겠다.
이 작품은 켈커타에서 쌍둥이처럼 자란 두 형제인 ˝수바시˝, ˝우다얀˝, 그리고 그 둘의 부인인 ˝가우리˝의 인생이야기로, 소설의 배경은 인도의 켈커타에서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까지이며, 등장인물은 4대에 걸쳐 등장하는 대하소설급 작품이다. 총 8장에 540페이지로 되어있는데, 책의 양이나 구성 측면에너 너무 탄탄하여 읽다보면 감탄하게 된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형 ˝수바시˝와 열정적이고 과격한 동생 ˝우다얀˝은 둘 다 머리가 좋고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형제이다. 당시 켈커타가 있는 뱅골지역은 분리운동과 좌익운동이 혼재되어 있는 복잡하고 위험한, 공권력이 강하게 힘을 발휘하는 지역이었다. 마치 우리나라라의 광복 후 또는 70년대 독재정권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른 보여준다.
하지만 서로 떨어져 살 수 없을 것 같던 두 형제는 성격 차이로 인해 형인 ˝수바시˝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동생인 ˝우다얀˝은 인도에 남아 평범한 선생님으로 살아가나, 은밀하게 혁명세력에 가담하여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다얀˝은 그러면서 사랑하는 ˝가우리˝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그의 부모집에서 함께 살며 겉으로는 평범한 신혼 생활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경찰에 쫓기게 되고, 경찰은 결국 그의 부모님 집까지 찾아오게 되며, 그는 급히 ‘저지대‘의 부레옥잠이 가득한 물속에 숨는다. 그 ‘저지대‘는 어린시절 두 형제가 지나다니던 추억의 장소이다. 결국 그는 경찰에 의해 발견되고, 부모님과 아내가 보는 앞에서 총살을 당한다. 이러한 장면을 목격한 그들은 큰 충격과 상실에 빠지게 된다.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인도로 돌아온 형 ˝수바시˝는 충격을 받은 부모님을 보면서 그가 더이상 부모님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걸 알게 된다. ˝수바시˝를 보면 죽은 동생이 생각나서 부모님은 그를 차갑게 대하고, 그는 오히려 남은 동생의 미망인인 ˝가우리˝를 걱정하게 된다. ˝가우리˝는 부모님 집에서 둘째아들을 죽인 원인이 된 것처럼 소외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가우리˝는 ˝우다얀˝이 죽기 전 임신을 하게되는데, ˝우다얀˝은 그 사실을 모른채 죽었다. 형인 ˝수바시˝는 그녀와 조카를 구제하기 위해 ˝가우리˝와 결혼을 하고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 그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붙잡는데는 실패하고, 그녀의 딸이자 조카인 ˝벨라˝를 친딸로 받아들이고 ˝벨라˝에게 헌신하며 산다. 반면 ˝가우리˝는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를 벗어던지고, 머리를 짧게 자르며 과거를 버리고 현대의 여성으로 살아간다.
이후 이러한 엇갈린 삶속에서 그들 각자의 아픔을 간직한 인생과 이를 극복해가는 또는 적응해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마지막 8장에는 ˝가우리˝가 첫번째 남편인 ˝우다얀˝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을 회상하며, 그가 그녀를 기다렸던 영화관 앞에서의 행복했던 순간을 오버랩 하며 이야기가 끝나는데, 너무 아름답고 그림같은 이 장면 묘사는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우다얀˝이 죽음으로써 주위사람들은 상실을 경험하고, 누구는 이를 극복하지만, 누구는 이에 매몰되어 외롭게 살아간다.
1.그의 부모님은 ˝우다얀˝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와 너무 닮은 첫째 ˝수바시˝와 며느리인 ˝가우리˝를 밀어내며 쓸쓸한 인생을 살아간다.
2.˝수바시˝는 사랑하는 동생이 남긴 ˝가우리˝와 딸 ˝벨라˝를 자신이 보호하게 되고, 어떻해서든 ˝가우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하지만 ˝벨라˝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결국 친딸이 아니라는걸 알게되었음에도 ˝벨라˝의 사링과 믿음을 얻게 되고, 그가 꿈꿔온 행복한 가족의 미래를 얻게 된다.
3.˝가우리˝는 ˝수바시˝와 재혼을 하게되지만 결코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학문의 힘으로 버티면 살아간다. 결국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는 그녀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게 되며, 직업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4.˝벨라˝는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아 방황하며 살게 되지만, 결국 나중에는 진실을 알게 되며, 자신을 아껴주고 키워준 ˝수바시˝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자신을 버리고 이기적으로 떠난 ˝가우리˝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각자의 소중했던 사람의 상실에 대한 슬픔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너무 절절하고 공감되게 그려져 있다. 책을 읽다보면 남겨진 ˝수바시˝의 마음도, 떠나간 ˝가우리˝의 마음도, 돌아온 ˝벨라˝의 마음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상실을 경험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 맞다 틀리다 판단한 수 있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저지대>의 책 속에 표현되어 있다. 특히 당시 인도ㅡ파키스탄의 분리운동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과 뱅골지역의 혁명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줌파라히리의 <저지대>는 그녀의 2번째 장편소설이자 내가 읽은 2번째 작품인데, 이 책을 시작으로 그녀의 전집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지대> 이 작품에 🌟 9개를 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