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발레리가 말했다.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시인의 말이라고 해서 시적 수사로 볼 일이 아니다. 디디에 앙지외가 말했다. “자아는 피부다.” 정신분석의의 말이라고 해서 정신분석적 은유로 볼 일이 아니다. 실재에서 가장 깊은 내면으로서 자아는 피부, 바로 그 피부다.


백색의학은 이 피부를 분열적 태도로 소외시킨다. 하나는, 미용 대상으로 귀빈 대우. 다른 하나는, 단지 살 껍질 취급. 전자는 의학 포르노의 총아다. 후자는 함부로 째도 꿰매 놓기만 하면 되는, 또는 스테로이드 처바르는 구박 덩어리다. 둘 다 모독이다.


인간은 본디 피부다. 피부는 몸과 마음이 미분통합 상태인 채 있는 태초 생명이다. 피부가 말려 대롱을 만들면서 안쪽 피부는 장腸이 된다. 장은 제2피부다. 제2피부는 장신경을 만들어 정보 시스템을 독립시킨다. 장신경은 제2피부신경이다. 제2피부신경은 자율신경으로 진화한다. 자율신경은 제3피부신경이다. 제3피부신경의 터미널이 각종 장臟이다. 장臟은 제3피부다. 제3피부신경은 중추신경계로 진화한다. 중추신경은 제4피부신경이다. 제4피부신경의 터미널이 뇌다. 뇌는 제4피부다. 이게 진실이다.


백색의학은 본말 전도다. 피부의 복권이 절실하다. 피부는, 이후 진화된 ‘신경’ 없이도 감각을 지닌다. 냄새와 빛깔, 그리고 소리를 느낀다. 함부로 째고 꿰매면 안 된다. 함부로 스테로이드 처바르면 안 된다. 포르노 미인 만들려고 조몰락거리는 것은 더욱 안 된다. 모든 산업피부를 거부해야 한다. 자연피부의 근원 상태를 복원해야 한다. 자연피부는 소미심심小微沁心 신의 거처다.


신의 거처에서 백색의학은 스스로 물러나라. 물러나서 삼가 엎드려 다시 시작하라. 피부에서 장腸으로, 장에서 장臟으로, 장에서 뇌로 가는 길을 겸허히 따라가라. 서두르라. 내일이면 늦는다. 녹색혁명이 들이닥칠 것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