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시 남자 아이 뇌는 여자 아이보다 더 크다. 그러나 남자 아이들은 정신지체, 언어 이해력 부족, 말더듬, 자폐증, 뚜렛증후군, 틱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야뇨증과 같은 발달장애를 겪는 빈도가 더 높다.·······남자 아이 뇌가 여자 아이보다 크지만·······낮은 대사율을 보인다. 체온이나 심박이 여자 아이에 비해 떨어진다. 남자 아이 뇌의 산소와 에너지 요구량은 더 많지만 그것을 충족시켜줄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다.·······이와 같은 모순이 남성에게서 발달장애 빈도가 높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52쪽)


‘남자는 철들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일생을 철부지로 산다는 말이다. 그저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장구한 가부장적 전통에서 여성이 겪어온 삶의 진실을 녹여낸 말이다. 뇌 과학이 제시하는 증거는 그 진실의 원인일 수도 있고 결과일 수도 있다.


남자 아이에게서 발달장애 빈도가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은 제대로 치료되지 않는다면 성인기에도 유지되는 현상이다. 정신지체, 언어 이해력 부족, 말더듬, 자폐증, 뚜렛증후군, 틱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발달장애가 성인이 된 뒤에도 말끔히 고쳐지지 않고 계속되는 실제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흔히 성격이나 버릇으로 치부하고 말기 때문에 정색해서 문제 삼지 않을 뿐이다.


가부장사회의 남성 편향 윤리나 통념이 의학적 판단을 왜곡하는 일은 일반 시민은 물론 심지어 의료인에게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가령 공부 잘하는 아들에게 자폐스펙트럼이 나타나면 외려 자랑처럼 여긴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에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가 나타나면 오냐오냐 키워서 버릇이 없어 그런다, 정도로 눙치고 넘어간다. 그 아이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그 상태를 유지한 채,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피해는 고스란히 주위사람, 특히 여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얼마 전, 발달장애 상태가 유지된 채 50년 가까이 살아온 남성과 양극성장애 상태에 있는 여성이 찾아왔다. 둘은 부부다. 아내의 병을 치료하려고 남편이 함께 온 것이다. 나는 한눈에 아내보다 남편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남편은 그 사실을 부정했고, 당연히 치료를 거부했다. 둘은 늦깎이 결혼을 했다. 남편이 그런 상태인 줄 아내가 안 것은 결혼한 한참 뒤였다. 당사자는 병식이 아예 없고, 그 어머니는 알고도 감추었다. 둘의 결혼을 주선한 목회자 내외는 ‘다들 그러고 산다. 신앙으로 극복하라.’ 한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신앙은 극복 아닌 억압의 도구다. 치료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비단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문제다.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파면당한 박근혜 곁을 맴돌며 온갖 발달장애 증상을 기탄없이 드러내는 남성들을 보라. 저들은 대부분 이른바 대박 난 자들이다. 발달장애가 대박의 스펙이 되는 사회가 우리사회다. 그 수혜자 대다수가 남성이다.


백색의학은 이런 사회의 총애를 받는다. 백색의사는 이런 사회에서 대박 난 사람에 낀다. 녹색의학은 이런 사회의 눈총을 받는다. 녹색의사는 이런 사회에서 쪽박 찬 사람에 낀다. 쪽박을 각오하고 진욕하는 녹색의사의 ‘소박素博’ 혁명 기치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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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면 여성은 의기소침해지고 근심, 걱정에 잠기며 안으로 숨는데, 남성은 술을 마시고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 따라서 부부가 둘 다 우울증을 앓아도 부인과 남편의 증세는 현저히 다르다. 남편의 경우 음주량이 증가하고, 평소와 달리 성질이 급해지며 난폭해질 수 있다. 한편 부인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거나 사람이 많은 백화점 같은 곳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33쪽)


본인도 주위 사람도, 심지어 의사도 “성질이 급해지며 난폭해”지는 남성, “사람이 많은 백화점 같은 곳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여성을 보고 같은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전자는 혹시 간헐폭발장애(속칭 분노조절장애), 후자는 말 그대로 공황장애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쉽다. 여성과 남성이 세로토닌 부족으로 드러내는 증상이 이토록 판이하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두 가지 모두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조금 더 생각한다. 공격성이나 난폭함과 공황 발작은 전혀 다른 증상인가? 사실 이 두 증상의 뿌리는 같다. 공포가 바로 그 뿌리다. 공포의 전방위, 전천후 확산이 불안이고 고강도 불안이 공황이다. 난폭한 행동이나 공격은 공포의 방어기제다. “겁먹은 개가 크게 짖는다.” 전자는 즉자적 반응이고 후자는 대자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삶의 조건에 연속적 태도를 취하는 여성과 불연속적 태도를 취하는 남성의 차이와 맞물린다.


이런 통찰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공포 반응을 우울증으로 파악하는 이치는 무엇인가? 미국정신의학회가 우울증을 기분장애로 보는 견해를 버렸다고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기분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우울증은 자신의 가치를 불신·폄훼하는, 마침내 존재 자체를 거부·부정하는 복합적인 정신·신체상태다. 나는 이를 자기부정증후군이라 부른다. 자기부정증후군의 날개 아래 공포·불안이 깃드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백색의학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통해 진실의 전체상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백색의학은 진실의 전체상에 비대칭의 대칭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성과 남성의 차이로써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백색의학은 달리 해야 할 치료, 같이 해야 할 치료를 혼동한다. 녹색의학은 이쪽에서 저쪽 진실을, 저쪽에서 이쪽 진실을, 함께 알아차린다. 녹색의학은 양극을 가로지르며 휘돌아 회통한다. 녹색의학은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조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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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4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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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4 1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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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볼 때 여성과 남성의 뇌는 작지만 본질적인 차이를 지닌다. 예를 들어 남성은 우울증을 예방하는 호르몬 세로토닌을 여성에 비해 52%나 많이 생산한다.·······그런데 사회적 성공·······은 뇌의 세로토닌 농도를 증가시킨다. 사회적 성공이 실제로 뇌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배나 높은 이유는 어쩌면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경우에 따라서 의사는 우울증 약을 처방하는 대신 삶의 문제에 대하여 상담을 권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32쪽)


백색의학은 마음을 뇌라 한다. 틀렸다. 뇌는 마음이지만 그 역은 아니다. 아마도 가장 진실에 육박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마음은 몸 전체가 삶의 내외 조건과 일으키는 상호작용의 파동적 측면이다. 뇌는 몸 전체와 삶의 내외조건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경계들의 관제탑이다.”


사회적 변화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알고도 마음을 뇌라 하는 것은 비과학 이전에 참으로 어이없는 사태다. 더군다나, 여기서는 언급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뇌에 있는 2% 미만의 세로토닌만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다. 세로토닌의 98% 이상은 장에 있다. 마음이 뇌라면 마음이 장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세로토닌에 관한 한 49배 이상 타당하다. 마음은 뇌가 아니다. 여기서 이 문제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뇌 내 세로토닌 생산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52% 우세하다는 사실이 큰 맥락에서 이해된다. 본디 뇌가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백색의학 어법이기 때문이다.


녹색의학은 우울증과 마주할 때, 삶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진단하고 치료한다. 증상 확인하면 곧 바로 프로작(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 던져주는 짓을 하지 않는다. 삶의 이야기, 그 역사를 경청하고 인생행로를 바꾸는 일에 조력하기도 한다. 녹색의학은, 그러므로 인문의학이다. 여성이 남성과 다름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차별은 묵인하는 사회와 싸우는 일에 함께하기도 한다. 녹색의학은, 그러므로 사회의학이다. 인문의학이며 사회의학인 녹색의학은, 그러므로 숙의 의학이다. 숙의의학에 인간의 미래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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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지 여성의 건강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것은 남녀 모두의 건강에 관한 책이자 성 차이를 고려한 새로운 과학에 관한 책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생식 기능을 제외하고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라고 가정하고 행동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모아온 정보에 따르면 이것은 잘못된 가정이다. 어디를 돌아보든지, 정상적인 신체 기능뿐만 아니라 질병을 체험하는 과정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차이를 보인다.(7쪽)


기나긴 의학사에서 이 이야기를 정색하고 한 것이 2002년이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저자가 몸담고 있는 의학이 백색의학임을 웅변으로 증명해준다. 서구의학이 그렇다고 해서 동아시아 전통의학은 뭐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부질없다. 도 긴 개 긴이다.


이 다섯 문장은 이 책의 첫 문단을 이룬다. 단호하면서도 함축이 깊은 선언을 머금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며 그 차이를 고려한 의학을 말하면 대부분 ‘여성에 관한’ 의학이라고 인식한다. 바로 이게 남성의 사고방식이다; 형식논리의 사고방식이다; A가 아니라고 하면 대뜸 non A를 떠올리는 유아적 사고방식이다. 이치를 따지고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이런 사고방식이 수천 년 동안 인류문명의 주도권을 쥐어왔다. 의도된 무지를 탑재한 우중愚衆에게는 어이없음이 매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9년 동안 우리사회를 휩쓴 광풍이 그 전형에 해당한다.


A가 아니라는 말에는 부분은 오류라는 근원적 진실이 들어 있다. non A는 그 진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A가 아니라는 말은 딸랑 non A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전체 진실을 향해 두 팔을 한껏 벌리고 있는 것이다. “성 차이를 고려한 새로운 과학”은 여성과 남성의 화쟁을 통해 일심의 전체 진리를 밝혀 무애자재의 삶으로 나아간다는 선언이다. 종자논리를 바꾸는 발본적인 혁명이다. 이 과학이 완숙기에 이르면 이 과학의 주체들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여성 몸 공부는 당연히 여성 맘공부로 이어진다. 여성 몸 공부는 여성의 오감과 제육감, 그리고 육감肉感을 거쳐 직관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직관으로 보는 전체 진실이 어떻게 남성이 쌓아올린 백색 문명의 세계관과 다른지 알게 되면, 과학의 개벽이 온다. 개벽은 이상한 신흥종교가 떠드는 묵시록이 아니다. 백색과학의 어이없음을 타파하는 죽비다. 둔탁해서 예리한 깨우침 소리를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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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앤 J. 리가토가 2002년에 쓴『이브의 몸』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된 것은 2년 뒤였다. 나는 13년 넘게 이 책을 옆에 두고 수시로 읽어왔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려 애 썼다. 그러는 동안 한국성인지의학회가 창립되고 그 자리에 메리앤 J. 리가토가 참석했다는 소식 정도를 들었다. 거기까지다. 이제 사위는 예와 다름없이 고요하다. 적어도 한국의 백색의학은 남성의학으로서 굳건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브의 몸』은 이미 절판되었다.


나는 오늘 이 책, 『이브의 몸』을 불러낸다. 내가 고안한 주해리뷰 형식을 빌려 찬찬히 돌아보려 한다.





여성의 몸이 남성의 그것과 다르다고 할 때, 그래서 병이 다르니 달리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가면 안 된다. 여성의 다른 몸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성이 인식하는 세계, 인간 생명, 건강, 질병, 진단, 치료와 치유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 새로운 의학은 단순히 남성의학과 1:1 대응 관계에 서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학을 포괄하면서 넘어서는 광대함과 남성의학이 담아내지 못한 소미함이 모두 들어 있는, 이를테면 ‘어머니’ 의학이다.


글을 써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새로이 하겠지만, 이미 졸저 『안녕, 우울증』의 14개 절(15-28) 70쪽(109-178)에 걸쳐 이야기한 내용과 포개지는 것은 불가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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