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
곽한영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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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먼저 읽고 강력 추천해서 읽게 된 책이다. 저자 곽한영은 캐나다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키다리 아저씨>의 초판본을 만난 것을 계기로 서양 동화의 초판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작품 10편을 골라 그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에 소개된 서양 동화는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톰 소여의 모험>,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 <보물섬>, <빨간 머리 앤>, <하늘을 나는 교실>, <안데르센 동화집>, '곰돌이 푸' 시리즈, <닐스의 모험> 등이다. 이 책을 통해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동화들의 뒷이야기를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어릴 때 나는 <작은 아씨들>을 읽다가 주인공 조가 아닌 동생 에이미가 로리와 결혼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실은 이게 결혼이 여성의 인생 목표인 것처럼 그리는 소녀 소설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장면인 걸 알고 마음이 도리어 편해졌다. <빨간 머리 앤>의 작가도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독립적인 여성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고.


여성 작가 대부분이 생계의 압박에 시달리며 힘들게 글을 쓴 것과 달리, 남성 작가 일부는 자신의 콤플렉스나 소아 성애 취향을 충족하기 위해 글을 썼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루이스 캐럴이 생전에 좋아했던 소녀 앨리스에게 바치기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썼다는 이야기는 유명하고, <피터 팬>의 작가는 자신이 입양한 남자아이들 중에 특별히 아꼈던 소년 몇 명을 모델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안데르센은 평생에 걸쳐 지독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으며, 이를 반영한 작품이 <미운 오리 새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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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40일 - 손으로 쓰고 그린
밥장 지음 / 시루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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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허영만 화백 일행과 함께 호주 대륙을 일주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이제까지 스페인, 그리스, 에스토니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태국, 아르헨티나 등을 다녀온 소문난 여행 마니아지만 이번 여행은 출발하기 전부터 불안했다. 그도 그럴 게 40대인 저자가 이 여행의 '막내'였기 때문이다. 


허영만 화백을 비롯한 '인생 선배'들을 수발하느라 정작 여행은 제대로 못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선배들 몫까지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등등을 하느라 여행을 즐기기는커녕 본업인 그림도 못 그려서 힘들어하는 저자의 모습은 시집살이로 등골 빠지는 며느리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이래서 내가 단체 여행을 안 간다...).


호주에서 뭘 보고 어떻게 놀지를 궁리하는 게 아니라, 오늘은 뭘 먹고 어떻게 요리를 할지를 궁리하는 저자의 모습은 저녁 반찬 고민하는 우리 엄마의 모습... 참다못한 저자가 노동 쟁의(?)를 벌이고, 그 결과 막내가 전담하다시피 했던 일들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눈물겹다 못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그래도 여행은 혼자 하는 게 최고라고.). 


이렇게 저자를 부려먹은(!) 허영만 화백 일행이 따로 남긴 여행기가 있나 궁금해 찾아보니 <호주 캠퍼밴 40일>이 출간되어 있다. 이것도 조만간 읽어봐야지.


밥장 특유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일러스트로 기록한 40일간의 여정은, 때로는 그림이 글이나 사진보다 여행지에서의 추억과 감동을 전달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언제 봐도 부러운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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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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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야마구치 슈는 철학 전문가가 아니라 경영 컨설턴트이다. 철학 전문가도 아닌 저자가 사회인을 위한 철학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이렇다. 미국과 유럽의 엘리트 교육은 철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서양의 엘리트 경영인들은 어려서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 마르크스 등 철학과 사회학의 고전을 착실히 학습하며, 사회인이 된 후에도 꾸준히 새로운 저서를 읽고 토론을 나누며 지식을 업데이트한다. 반면 일본의 경영인들은 철학에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은 철학이 '돈 안 되는 학문'이라고 경시하거나 천대한다.


그렇다면 서양의 엘리트 경영인들은 왜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여 걸핏하면 쓸모없는 학문으로 치부되는 철학을 배우는 걸까. 시카고 대학교 총장을 지낸 로버트 허친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교양 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다. 전문 능력이 있다고 해서 교양이 없거나 매사에 무지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니까 서양의 엘리트 경영인들은 철학을 배우지 않고 사회적 지위만 얻은 '위험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바쁜 시간을 내서 철학을 배우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철학을 배우지 않고 사회적 지위만 얻은 일본(과 한국)의 경영인들은 위험한 존재라는 뜻이 아닐까.


저자는 이 책에서 비즈니스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50가지 철학 사상을 소개한다. 어려운 철학 용어나 이론을 남발하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목차를 연대순으로 구성하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으면 자기 것으로 취하는 방식으로 읽으면 된다.


니체의 '르상티망'과 명품 마케팅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여느 철학서에 따르면 '르상티망(ressentiment)'은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을 뜻한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복종하거나,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 자체를 뒤바꾸거나. 주위의 모든 사람이 명품 가방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만 없는 경우, 어떻게든 명품 가방을 사는 사람이 전자라면, 명품 가방을 가진 사람을 욕하는 사람은 후자다. 르상티망을 품은 개인은 르상티망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 상품을 구입하므로 기업은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제품의 콘셉트를 설정하고 마케팅을 한다.


에리히 프롬의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조직 관리의 기술은 무엇일까.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따르면 인간은 결코 자유를 좋아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면서 자유를 만끽할 자신이 있는 인간은 의외로 많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즘이다. 당시 독일의 수많은 소상인, 장인, 사무직 근로자들로 구성된 하층 및 중산계급이 스스로 자유를 내던지고 국가 권력에 예속되고 복종하길 바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차 산업혁명 등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점차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사회에, '자유를 피하고 싶어 하는' 성향의 인간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명저 <제2의 성>을 언급하며 일본 기업은 물론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는 여성차별을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저자는 일본 기업 대부분이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줄도 모르는 심각한 상태라고 진단하며, 그러한 무자각이 여성의 사회 진출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벽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 기업도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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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이 필요한 시간 - 우리는 어떻게 공학의 매력이 깊이 빠져드는가 ㅣ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이인식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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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공학과 과학이 다른 학문인지 몰랐다. 이 책에 따르면, 공학과 과학은 엄연히 다른 학문인데도 국내 출판시장에서 공학은 과학의 일부, 심지어 하위 분야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학 분야의 명저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책은 잘 팔리는데, 공학 분야의 명저자인 헨리 페트로스키의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같은 책은 외면당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알지만 헨리 페트로스키는 모르는 '공알못(공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반성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책을 쓴 이인식은 현재 지식융합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대한민국 1호 과학 칼럼니스트이다. 저자는 이 책을 '국내 최초의 공학 도서 서평집'이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공학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공학 도서를 소개하는 전문 서평집 한 권이 없다는 사실에 개탄하며 이 책을 기획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는 공학 기술 도서 45권에 대한 서평이 실려 있으며, 서평 중 26편은 저자가 직접 집필하고 나머지 19편은 전문가들이 힘을 보태어 완성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공학 기술,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서는 저자가 공학 분야의 최고 명저로 꼽는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를 비롯해 <네 번째 불연속>, <중국의 과학과 문명>, <창조의 엔진>, <냉동인간> 같은 책들을 소개한다.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는 포크처럼 흔한 물건에서 위대한 디자인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는 귀한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공학자뿐만 아니라 미래의 발명가, 디자이너, 기획자에게도 도움이 될 만하다.


제2부 '기계와 인간의 공진화'에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 기술의 오늘과 내일을 다룬 저서들을 소개한다. <사람과 컴퓨터>, <괴델, 에셔, 바흐>, <생각하는 기계> 등 공학뿐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책들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마지막 제3부 '공학 기술의 미래를 말하다'에는 21세기 한국의 미래 공학자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의 목록이 나온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 언뜻 보기에는 공학 분야의 도서 같지 않은 책들이 언급된 점이 인상적이다. <메이커스>, <기업가 정신 2.0>,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등 경제경영 도서가 여러 권 등장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과학과 구별되는 공학의 특징으로 '실사구시'를 든다. 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학은 실용성이 높은 학문이다. 인간의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불편을 당장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을 고안하고 실용화하는 것이 공학의 목적이자 역할이다. 저자는 이 같은 위대한 일을 해내는 공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학뿐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은 물론 경영, 콘텐츠, 아이디어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이 책에 소개된 책들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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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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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다정한 마음을 감추려고 일부러 무심하고 퉁명스럽게 구는 태도를 '츤데레'라고 한다. 황정은의 이전 소설들은 츤데레 같은 면이 없지 않았다. 사실은 따뜻하고 다정한데 일부러 차갑고 쌀쌀맞게 구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데 황정은의 신작 <디디의 우산>에 실린 두 작품 -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달랐다. 츤데레 특유의 '무심한 듯 다정하게' 구는 태도를 버리고 '무심하지 않으므로 다정하지 않게' 구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특히 그랬다. 이 소설은 오래전 누군가에게 '어째서 네 글엔 죽거나 죽어가거나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여태 고민 중인 화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질문을 한 사람은 '다정(多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조언인 양 덧붙였는데, 화자는 과연 내게 다정이 좋은 '툴'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왜 나에게는 다정이라는 툴이 없는가, 누가 빼앗아갔나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나 등의 생각을 떠올리지 않았나 싶다. 까마득한 과거 속으로, 과거 속으로 자꾸만 기억을 되짚어본 걸 보면.


화자에게 다정이 결핍된 까닭은, 대한민국에서 서민 가정의 자녀로, 여성으로, 딸만 있는 집의 장녀로, 비혼으로, 직장인으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만한 일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화자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유능함을 증명할 길이 없음에도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두 딸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며, '남성의 성기를 가지지 못한' 두 딸을 실패라고 여긴다. 이는 화자가 학교와 사회에서 만난 다른 남성들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여성은 인권을 존중하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피지배 계급, 속하게 말하면 '꼴리는 대로 따먹고 씹해도 되는' 성적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들을 견디는 나에게 다정해지라고? 얼마나 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같은 말을 작가가 굳이 적지는 않았으나 나로서는 그런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면 어디서 감히 여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동성인 여자와 같이 사는 주제에 같은 말들이 날아와서 목구멍을 틀어막는 세상. 이런 세상을 수없이 경험한 화자는 이런 내게 뭘 더 말하라는 건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자조하지만, 작가는 역으로 이런 화자의 모습을 통해 작가 자신이 이 사회의 부정과 불합리에 결코 무심하지 않으며, 무심하지 않으므로 다정하게 굴 수만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으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해보겠다고.


무심한 듯 다정하게 구는 태도도 싫지 않지만, 무심하지 않으므로 다정하게 굴지만은 않는 태도가 이 사회엔 더 필요한 것 같다. 사회는 몰라도 시대는 결국 그런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바뀐다는 걸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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