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영혼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9
정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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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좋아하지만 신간 위주로 읽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인 2000년대 이전에 나온 작품은 읽은 것이 많지 않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화제가 된 한강 작가의 초기작들이나 양귀자의 <모순>, 은희경의 <새의 선물>처럼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찾는 책이 아니면 굳이 찾아 읽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3년에 등단한 소설가 정찬이 1992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집 <완전한 영혼>을 읽은 건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다.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 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작가가 정찬인데, 정찬의 책 중에서도 <완전한 영혼>이 가장 자주 눈에 띄었다(최근에 알라딘에서 공개한 정희진이 독자들에게 권하는 11권의 책에도 <완전한 영혼>이 포함되어 있다)이 책은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201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개정판이 나와서 현재는 새로운 표지와 현재의 표기 기준에 맞게 다듬어진 문장으로 만날 수 있다. 


책에는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완전한 영혼>은 출판사에 다니는 '나'가 '장인하'의 부고를 들으면서 시작된다. 장인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로, 군인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해 청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피해자들처럼 절망이나 증오의 감정을 비치는 일이 전혀 없다. '나'는 그런 장인하를 보면서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장인하와 같이 생각을 버리고 감정을 지우고 식물처럼 존재하는 것이 어쩌면 이런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장인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말은, 역으로 이런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내는 방법 따위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패랭이꽃>은 대학 시절 실연하고 찾아갔던 오이도로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놀러간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때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나'는 그사이 새만금 개발이 이루어져 예전과 크게 달라진 풍경에 놀란다. 그러다 '나'는 문득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고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근대화, 산업화 또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집단 기억 상실'을 겪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상태인 건 아닐까. 이런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알 리 없는 아이는 기대와는 다른 삭막한 풍경에 실망하고 옛날 이야기 같은 건 듣기 싫다며 '나'를 보챈다. 충격을 속으로 삭이고 서둘러 귀가하는 '나'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저항하지도 못하는 현대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권력이나 돈이 가진 힘 앞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 내지는 비판은 이어지는 두 편의 소설에서도 보인다. <신성한 집>의 '나'는 집이란 '신과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거룩하고 신성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그동안의 믿음을 배반하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혹해 재개발을 앞둔 달동네에 직접 가서 투자 가치가 있어 보이는 집을 산다. <길 속의 길>의 '나'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아내 덕분에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서, 실천 없이 관념만으로 글을 쓴다는 비평가들의 말에는 가슴 아파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글이나 예술은 그러한 욕망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다.


<영산홍 추억>은 <완전한 영혼>과 마찬가지로 고문 피해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 작품은 모두 식물적 인간을 지향한다. 식물은 겉보기엔 무력하고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땅의 양분과 공기를 뿌리로 빨아들여 그 어떤 동물이나 인간보다 오래 생존한다는 점에서 본받을 만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식물에게 삶의 자세를 배운다는 점에서 김수영의 시 <풀>과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영산홍 추억>에서 고문 피해로 숨진 아버지의 시체에 발이 없었다는 대목에서 정찬 작가가 2022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발 없는 새>가 연상되기도 했다.


<얼음의 집>은 고문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발표 당시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던 문제작이다. 주인공은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에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관동대지진을 겪고 극심한 고문에도 살아남은 결과, 고문 기술자 하야시 세이카의 눈에 들어 그의 제자가 되고 최후의 후계자가 된다. 브래디 미카코의 책을 통해 알게 된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 나와서 반가웠다. 가네코 후미코는 가족, 사회, 국가 등 자신을 억압하는 권력 일체를 거부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반대로 주인공은 극도의 고통과 죽음을 피하려다 권력에 순응하는 정도를 넘어서 권력과 한몸이 된다. 어쩌면 이것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제3자가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되지만 당사자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본능적인) 논리가 아닐까. 정희진 선생님이 이 책에서 이 단편을 특별히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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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26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희진샘때문에 읽어야지 하던 책인데 또 깜박하고 있었네요. 키치님 리뷰를 보니 빨리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키치 2026-08-26 09:32   좋아요 1 | URL
저도 책 사놓고 미루다 미루다 이제야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님은 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으실지 궁금하네요. 덧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