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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줘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평점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에는 딱 하나 문제점이 있는데, 그건 신작을 읽을 때마다 이전 책들을 전부 다시 읽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신작을 기다리는 동안 앞의 내용을 잊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전 책들을 읽을 때 내가 그 중요성을 모르고 무심하게 넘긴 대목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스트라우트의 최신작인 <이야기를 들려줘요>를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이 유난히 더 많이 들었는데, 이 책에 루시 바턴, 올리브 키터리지, 밥 버지스가 나오는 건 알았지만 에이미와 이저벨 이야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5년 전에 읽어서 거의 기억 안 남). 전자책으로 전권을 사서 처음부터 다시 읽을까 싶기도 한데 미국에서는 벌써 신간이 나왔다고. 한국어판 나오는 걸 기다리는 게 더 빠를지도.
<바닷가의 루시>에서 팬데믹을 피해 뉴욕을 떠나 메인 주로 피신(?)했던 루시는 아직도 전 남편 윌리엄과 메인 주에 살고 있다. 루시는 동네 산책을 하면서 알게 된 이웃 남자 밥 버지스와 정기적으로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다 이 시간을 아주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기게 된다. 밥은 아내 마거릿과 보내는 시간보다 루시와 보내는 시간이 더 즐겁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갑자기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루시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둘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한편 루시는 밥 버지스의 소개로 동네 주민인 올리브 키터리지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하고 편견이 많은 올리브는 루시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서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받는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맨처음에 "이것은 밥 버지스의 이야기다."라고 못박은(?) 게 무색하지 않게, 소설의 내용 대부분이 밥 버지스에 관한 것이다. <버지스 형제>를 읽었다면 알겠지만, 밥 버지스는 어릴 때 실수로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죄의식을 품고 몇십 년을 살았고, 최근에야 형으로부터 그것이 형의 실수였다는 고백을 받았음에도 형을 미워하기는커녕 형과 더욱 돈독하게 지내는 성자(聖者)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니, 아무리 둘 다 예순을 넘겼다고 해도, 아내가 아닌 여자와 정기적으로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떳떳하지만은 않았을 텐데, 어쩌면 형보다 더 의지했던 형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동네 청년 매슈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또 다시 자신을,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과연 나는 잘 살아 왔고,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성자' 밥 버지스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로 소설에 등장하는 것이 '나르시시스트'인데 그 정의가 흥미롭다. "그들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그런 것이다. 당신이 비난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가스라이팅할 것이다." (30쪽) 나르시시스트로 거론되는 인물들을 떠올렸을 때(ex.트럼프) 이 정의가 들어맞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씩이나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의도가 있더라도 그런 행위를 하기만 하면 다행 아닌가). 밥 버지스에 대한 또 다른 설명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죄를 먹는 사람'(138쪽)인데,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평생 (내 죄도 아니고) 남의 죄를 먹으면서 사는 건 너무 비참하지 않은지.
'노년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밥과 루시의 관계는 켄트 하루프의 소설 <밤에 우리 영혼은>의 두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이들도 밥과 루시처럼 육체적 관계 없이 대화만, 정신적 교감만 나눈다). '이야기' 또는 '대화'가 우리 삶에 하는 일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얼마 전에 읽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오후 공원>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밥과 루시, 올리브, 매슈보다도 인상적이었던 인물이 실은 밥의 형 짐과 그의 아들 래리인데 이들 관계가 너무 웃겼다 ㅋㅋㅋ (그런 아버지, 그런 아들을 둔 그들은 고통스럽겠지만...) 밥이 래리에게 "부서진 사람이 되는 것과 악이 되는 것의 차이"(429)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어쩌면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부서져도 살아가는 사람들(=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