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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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다정한 마음을 감추려고 일부러 무심하고 퉁명스럽게 구는 태도를 '츤데레'라고 한다. 황정은의 이전 소설들은 츤데레 같은 면이 없지 않았다. 사실은 따뜻하고 다정한데 일부러 차갑고 쌀쌀맞게 구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데 황정은의 신작 <디디의 우산>에 실린 두 작품 -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달랐다. 츤데레 특유의 '무심한 듯 다정하게' 구는 태도를 버리고 '무심하지 않으므로 다정하지 않게' 구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특히 그랬다. 이 소설은 오래전 누군가에게 '어째서 네 글엔 죽거나 죽어가거나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여태 고민 중인 화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질문을 한 사람은 '다정(多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조언인 양 덧붙였는데, 화자는 과연 내게 다정이 좋은 '툴'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왜 나에게는 다정이라는 툴이 없는가, 누가 빼앗아갔나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나 등의 생각을 떠올리지 않았나 싶다. 까마득한 과거 속으로, 과거 속으로 자꾸만 기억을 되짚어본 걸 보면.


화자에게 다정이 결핍된 까닭은, 대한민국에서 서민 가정의 자녀로, 여성으로, 딸만 있는 집의 장녀로, 비혼으로, 직장인으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만한 일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화자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유능함을 증명할 길이 없음에도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두 딸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며, '남성의 성기를 가지지 못한' 두 딸을 실패라고 여긴다. 이는 화자가 학교와 사회에서 만난 다른 남성들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여성은 인권을 존중하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피지배 계급, 속하게 말하면 '꼴리는 대로 따먹고 씹해도 되는' 성적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들을 견디는 나에게 다정해지라고? 얼마나 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같은 말을 작가가 굳이 적지는 않았으나 나로서는 그런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면 어디서 감히 여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동성인 여자와 같이 사는 주제에 같은 말들이 날아와서 목구멍을 틀어막는 세상. 이런 세상을 수없이 경험한 화자는 이런 내게 뭘 더 말하라는 건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자조하지만, 작가는 역으로 이런 화자의 모습을 통해 작가 자신이 이 사회의 부정과 불합리에 결코 무심하지 않으며, 무심하지 않으므로 다정하게 굴 수만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으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해보겠다고.


무심한 듯 다정하게 구는 태도도 싫지 않지만, 무심하지 않으므로 다정하게 굴지만은 않는 태도가 이 사회엔 더 필요한 것 같다. 사회는 몰라도 시대는 결국 그런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바뀐다는 걸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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