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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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우에노 지즈코가 야마나시에 집을 짓고 도쿄를 오가며 살고 있는 생활에 대해 쓴 산문집이다. 호쿠리쿠 출신으로 대학 진학 이후 계속 도쿄에서 살았던 저자는 20년 전 지인의 권유로 후지산이 있는 야마나시현의 땅을 구입했다. 원래는 주말이나 방학 때 잠깐 와서 지낼 목적으로 집을 지었는데, 갑자기 팬데믹이 발생하고 재택근무가 일상화 되면서 도쿄가 아닌 산속 집에서 지내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정년 퇴직을 하면서 도쿄대 연구실에 있던 책들을 산속 집으로 전부 옮긴 이후에는 서고로서도 산속 집의 존재가 귀해졌다.


책에는 도시 출신인 저자가 난생 처음 산골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희로애락이 자세히 나온다. 산에서 살아보니 기대한 대로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자동차와 인터넷만 있으면 생활하는 데 불편함도 거의 없다. 외지에서 온 독신의 노년 여성이라서 소외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저자처럼 외지에서 온 중노년이 많았고, 결혼한 사람도 이혼, 사별 등으로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에게 운전이나 집 관리를 맡기다 남편이 죽거나 이혼하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여자들이 많은데, 계속 독신이었던 저자는 스스로 운전도 하고 집 관리도 할 수 있어서 남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줄 수 있어 좋았다고.


벌레나 산짐승 때문에 공포를 느낀 적도 있지만, 산속 집에서 살면서 얻은 기쁨이나 즐거움에는 비교할 정도도 못 된다. 봄, 여름, 가을에는 산나물, 죽순, 송이, 은어 등 그 계절에 나는 제철 식재료를 직접 수확해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다. 주변 농가에서 파지 제품으로 내놓은 복숭아, 옥수수, 양상추 등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서 식비도 덜 들고 건강도 좋아졌다. 겨울에는 집 근처 스키장에서 아침 운동 대신 스키를 타며 체력을 기르고 무기력을 날린다. 연말 연시에는 저자처럼 혼자인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연말연시 가족'으로 지낸다. 너무나 부러운 노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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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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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나이가 들어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 노인을 버리는 '고려장'이나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 나오는 '오바스테[姨捨]' 같은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버려진 노인은 그 후에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버려진 노인은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짐승의 공격을 받아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알래스카 원주민 출신 작가 벨마 월리스의 소설 <두 늙은 여자>를 읽기 전에는 말이다. 이 소설은 저자가 알래스카 아타바스칸족 출신인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알래스카 인디언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다.


겨울이 오고 혹한이 이어지자 짐승 사냥이 불가능해 먹을 것이 줄어들고 기근이 발생한다. 부족장은 부족회의 끝에 부족에서 가장 늙은 두 여자 '칙디야크'와 '사'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부족장과 부족원들은 물론이고 딸과 손주도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칙디야크와 달리, 사는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라며 오히려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인다. 과연 사는 자신이 선언한 대로 더는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서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오래 걷기, 불 피우기, 사냥하기, 낚시하기 등등)을 척척 해낸다.


사의 나이는 일흔다섯, 칙디야크의 나이는 여든으로, 요즘 노인은 예전 노인과 다르다는 말이 있는 현재 기준으로 봐도 상당한 노인이다. 게다가 부족원들은 물론이고 피가 섞인 가족에게도 배신당해 멘탈도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삶을 이어간 사와 칙디야크가 너무 대단하다. 겨울부터 가을까지 알래스카의 대자연속에서 두 사람이 먹이를 찾고 잘 곳을 마련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마지막에 자신들을 버린 부족원들을 다시 만나 기분 좋은 '복수'를 하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역시 나를 부정한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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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 생긴 일
마거릿 케네디 지음,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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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여름 해변으로 유명한 영국의 휴가지에서 절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 사고로 절벽 아래에 있던 호텔이 매몰되고 호텔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는다. 누가 봐도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사고 같지만,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매몰된 호텔은 몰락 귀족인 딕 시달의 소유로, 그의 부인이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경영하고 있다. 시달 부인은 성수기인 여름 휴가철에 열심히 돈을 벌고 싶은데, 도착하는 손님들의 행색을 보아 하니 돈을 많이 쓸 것 같지 않고, 그나마 여유가 있어 보이는 손님들은 직원들을 괴롭혀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이와중에 다른 호텔에서 쫓겨난 손님들이 흘러 들어와 호텔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영국 작가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은 제목이나 설정만 보면 애거사 크리스티 풍의 미스터리 소설 같다. 아름다운 휴양지에 위치한 외딴 호텔, 그곳에 머무는 다양한 계층의 손님들, 그들 각자의 숨겨진 사연... 그런 것들이 펼쳐질 것 같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시체를 보여주면서 시작하는 반면, 이 소설은 시체의 존재는 알려주지만 누구의 시체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는 소설을 읽는 내내 스스로 탐정이 되어 이중에 누가 시체가 되는지(또는 누가 누구를 시체로 만드는지)를 끊임없이 추리하며 읽을 수밖에 없다. 미리 알리건대 등장 인물이 상당히 많으니 인물 관계도를 그리면서 읽으시라...


등장인물이 많다는 건 이점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경우에는 등장인물이 많은 만큼 인물들 간의 드라마도 많다.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 등. 무엇보다 이 소설은 결말이 인상적이다. (스포일러 주의)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가난한 살림과 매정한 어머니 때문에 그동안 한 번도 파티를 해본 적이 없는 코브 부인의 세 딸을 위해 호텔 직원 낸시벨이 파티를 열어준다. 파티를 열어도 파티에 올 사람이 없다고 걱정하는 소녀들을 위해 낸시벨이 호텔 손님들과 직원들, 시달 가족까지 초대하는데, 결과적으로 이 초대에 응했는지 안 했는지가 문자 그대로 그들의 명운(命運)을 가른다. 지나치게 극적이고 교훈적인 결말이라고 안 좋아할 독자도 있겠지만, 남에게 작게라도 선행을 하면 나에게도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이라서 나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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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는 날개에 건배를 2 - 완결
토요 투탄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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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는 츠바메는 어느 날 자신의 유일한 취미이자 삶의 낙인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러 갔다가 어떤 사고를 당해 자신의 최애 선수인 '이글'과 몸이 바뀐다. 그동안 자신은 작고 약한 여자라서 남편의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없다고 믿었던 츠바메는 크고 강한 이글의 몸을 얻은 김에 남편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남편에게 맞설수록 남편의 집착은 더욱 강해지고 츠바메와 이글의 몸이 계속 바뀐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라서 좀처럼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남편은 츠바메의 가족과 자신의 가족, 경찰, 법, 언론까지 동원해 츠바메와 이글을 압박한다.


<투쟁하는 날개에 건배를> 2권은 점점 더 악랄해지는 남편의 압박에 대항하며 각성하는 츠바메와 이글의 모습을 보여준다. 츠바메와 이글은 다양한 방면으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남편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그들이 그동안 괴롭게 살아온 것은 남들이 그들을 괴롭혀서이기도 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남에게 당하는 현실을 묵인, 방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츠바메와 이글은 자신들의 '투쟁'에 마침표를 찍고 각자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날개'를 발견한다. 둘의 미래에 나도 건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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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는 날개에 건배를 1
토요 투탄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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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 차 전업주부 츠바메는 남들 눈엔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대기업에 다니는 츠바메의 남편은 20대에 부장 자리에 오른 엘리트 사원으로, 일, 외모, 성격 모든 게 완벽해 모두가 동경하는 존재다. 그런 남편이 파견 사원인 츠바메를 신부로 선택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츠바메에게 복이 굴러왔다고 말했고, 츠바메 자신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아내를 돌본다',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츠바메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남편의 '가스라이팅'에 세뇌된 츠바메는 자신이 남편에게 맞고 산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었다.


그런 츠바메의 삶의 낙이자 유일한 취미는 프로레슬링 시합을 보는 것이다. 츠바메가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은 '이글'로, 실력은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합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패배를 거듭하고 있다. 평소에는 늘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프로레슬링 시합을 보다가 운좋게 티켓에 당첨되어 직접 경기를 보러 간 츠바메는 '어떤 사고'를 당해 그날 우연히 경기장에 와 있던 이글과 몸이 바뀌어 버린다. 그때까지 자신은 작고 연약한 여자라서 남편이 때릴 때 맞서 싸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츠바메는 거대하고 막강한 이글의 몸을 얻은 후 자신이 잘못 생각해 왔다는 걸 깨닫는다.


토요 투탄의 만화 <투쟁하는 날개에 건배를>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이 프로레슬링 선수와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처음에는 설정만 보고 판타지가 가미된 (<극주부도>같은) 코믹물일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진지하고 가정폭력의 양상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내용이라서 놀랐다. 빌런인 남편이 상당한 악질인 데다가 츠바메가 이글과 몸이 바뀐 후에도 남편에게 바로 복수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당하고 사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서 답답하기도 했다. 과정이 답답한 만큼 결말이 감동적이니 완결권(2권)까지 꼭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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