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웅진 당신의 그림책 1
안경미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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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열어도 열어도 끝이 없는 문을 통과하는 과정이 아닐까. 안경미 작가의 그림책 <문 앞에서>를 읽고 든 생각이다. 책을 펼치면 길고 좁다란 문 하나가 보인다. 책장을 넘기면 문 앞에 서 있는 세 자매가 보인다. 세 자매는 눈앞에 있는 문을 연다. 그러자 또 하나의 문이 보이고, 그 문을 열자 또 하나의 문이 보인다. 열어도 열어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문 앞에서, 세 자매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세 자매 각자의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문이 인생을 비유한 것이라면, 하나하나의 문은 우리가 살면서 끊임없이 겪게 되는 문제 혹은 위기를 의미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문 앞에서 무릎 꿇을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문을 창조할 것인가. 여러 번 책을 반복해 읽고 세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살면서 지나쳐 온 크고 작은 문제나 위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돌이켜 보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지도 생각해 보았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문을 만드는 사람,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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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완전판 - 양장판
타니구치 지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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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터인가 마음이 소란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모든 걸 내려놓고 무작정 걸었다. 때로는 공원, 때로는 하천변을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하늘의 색깔이나 나무의 생김새, 꽃의 모양 등이 눈에 들어오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흐려져 있던 마음이 개운해졌다. <고독한 미식가>의 작화가로 유명한 만화가 타니구치 지로의 대표작 <산책 완전판>은 그러한 산책의 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새로운 동네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남자가 이사 온 동네에는 친근한 분위기의 주택가가 있고, 소담스러운 폭의 하천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나무들과 그 가지 위에 앉아 쉬는 새들이 있다. 남자는 우연히 버드워칭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마주치고 그와 함께 새 구경을 한다. 박새, 찌르레기, 티티새 같은 다양한 새들을 근방에서 볼 수 있다는 말에 남자는 마음이 설렌다. 낯선 동네가 편안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른다. 


남자가 동네 산책을 하면서 마주친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풍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마을 공터에서 개와 함께 뛰놀았던 기억, 동네 꼬마들이 날린 연이 나뭇가지에 걸려서 대신 빼주었던 기억, 우연히 발견한 동산에 올랐다가 난데없이 고된 등산을 하게 되어 진땀을 뺀 기억, 산책 도중 소나기를 만나 이참에 목욕이나 할까 하고 대중목욕탕에 들른 기억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한가득이다. 마음 편히 산책하기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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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기타 사건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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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에 이어 새로운 에도 이야기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제목은 '기타기타 시리즈'. 첫 편인 <기타기타 사건부>는 과거 센키치 대장이라는 오캇피키 수하에서 일했던 청년 기타이치가, 센키치 대장이 세상을 떠난 후 문고를 파는 일을 하면서 센키치 대장처럼 마을 안팎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다. 참고로 여기서 문고란 역사책이나 오락소설을 넣는 두꺼운 종이 상자(文庫)를 뜻한다. 


처음엔 미시마야 시리즈가 진행 중인 판국에 새 시리즈가 시작된 게 불만스럽기도 했는데, 막상 이 책을 읽어보니 나름대로 재미있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도 된다. 기타이치는 주로 혼자서 사건 해결을 하러 다니다가 중간에 기타지라는 수수께끼의 청년을 만나게 된다. 이둘의 활약이 기대된다. 기타이치의 조력자인 마쓰바 부인도 매력적이다. 여성이고 앞을 못 보지만 누구보다 지혜롭고 현명한 이 캐릭터가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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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만드는 법 - 더 많은 독자를 상상하는 편집자의 모험 땅콩문고
이연실 지음 / 유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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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쓴 책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편집자도 아닌데, 유유 출판사에서 만든 편집자 공부책 시리즈를 쭉 따라서 읽고 있다. 


문학동네 이연실 편집자가 쓴 <에세이 만드는 법>도 그래서 읽게 되었다. 약력을 보니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김이나의 <김이나의 작사법>,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 등 나도 좋아하고 대중들도 좋아한 유명한 책들이 한가득이다. 심지어 이반지하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슬릭 & 이랑의 <괄호가 많은 편지> 등도 이분이 편집하셨다니!!! 하나같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라 반갑고, 이 많은 책들을 세상에 내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책에는 제목 그대로 '에세이 만드는 법'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문학 편집자를 꿈꾸며 출판사에 입사했지만 배치된 곳은 '비'문학 부서. 실망할 겨를도 없이 오로지 잘 팔리는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15년차 에세이 편집자, 문학동네 편집팀장이 되었다. 그의 생각에 에세이는 '한 사람의 결과 바닥을 그대로 드러내는 적나라하고 무서운 장르'다. 더욱이 요즘처럼 공짜인 읽을거리, 볼거리가 넘치는 세상에서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로만 승부하는 에세이 책이 팔리게 하기 위해서는 예민한 감각과 진중한 뚝심을 두루 갖춰야 한다. 


편집자는 책의 기획과 편집 외에도 많은 일을 한다. 열심히 만든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선택받도록 제목 짓기, 띠지 문안 작성, 표지 디자인, 굿즈 제작 등 많은 일에 관여한다. 입사 전까지 오로지 문학밖에 몰랐던 저자는 컴퓨터에 갤러리 폴더를 만들고 틈틈이 전시회를 보러 다니며 여행 중에도 서점에 들러 예쁘고 진귀한 굿즈들을 구입한다. 이런 변화와 수고가 싫지 않고 좋은 건, 그만큼 일을 사랑하고 책을 아끼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책을 만들어서 저자가 만든 책들이 그렇게 다 좋은가 보다. 나는 어떤 자세로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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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가 많은 편지 총총 시리즈
슬릭.이랑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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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구입한 책부터 읽다 보니 신간을 나중에야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제부터는 가급적이면 최근에 산 책부터 읽는 습관을 들여보려고 한다. 그래서 고른 책이 이 책, 뮤지션 슬릭과 이랑이 공저한 <괄호가 많은 편지>이다. 


슬릭은 몇 해 전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이랑은 그보다 전에 모 독립출판물 전시회에 갔다가 그곳에서 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둘 다 본업인 음악이 아니라 다른 활동을 통해 알게 된 경우인데, 나중에 음원사이트를 통해 이들의 음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아이돌 노래 외에는 한국 대중가요를 거의 듣지 않았던 내게는 회사에 의해 기획되지도 않고, 대중의 취향에 전적으로 맞추지도 않은 이들의 음악이 생경하지만 멋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슬릭과 이랑이 공저한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심지어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형식이라고 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웹진 연재 당시에는 읽지 않고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역시 좋았다. 서로를 무슨 호칭으로 부를 것인지, 언제 어디서 주로 작업하는지, 작업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등등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들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가령 슬릭은 룸메이트가 데려온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중 '또둑'이라는 고양이를 잃어버렸을 때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동물들에게 안 좋은 환경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나아가 그는 동물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고(슬릭은 비건이다), 주변에 비건/동물권/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이랑은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그는 대학생이었고 단편영화 연출을 앞두고 있어서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수술은 그전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과 전혀 달랐다. 몸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낙태죄 폐지가 이슈화되었을 때 이랑은 자신의 SNS를 통해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지만,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언론의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개인의 경험을 언론이 어떤 식으로 왜곡하는지, 대중이 어떤 식으로 재단하고 폄훼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표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도 표현이 두렵고 어렵다고 말한다. 표현 자체가 두렵고 어렵다기보다는 표현에 뒤따르는 평가와 비난, 질책 등이 두렵고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언젠가 슬릭은 <영혼의 노숙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만 명 이상의 평가를 받아본 역사가 없고, 그걸 감당할 수 있게 진화되지 않았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인디 뮤지션으로서, 비건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공적으로 발언하고 창작하는 두 분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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