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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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을 보러 가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구경을 온다. 그런데 모두가 하나같이 들고 온 것이 있다. 카메라다. 요즘에는 조그마한 '똑딱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다들 주둥이가 대여섯 발은 나온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곳곳에서 플래시가 터진다. 사람들은 카메라 구멍에 눈을 박고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공연에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략) 우리는 카메라의 심부름꾼이 되었다. 우리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즐길 뿐 결코 작품을 감상하지 않는다. 내 앞에 지금 서 있는 것이 앙코르와트건 성 베드로 대성당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몰입하고 있는 것은 저 경치가 아니라 카메라이기 때문이다. (pp.107-8)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결'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이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동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다시 고백이 강요된다. 동성애자라는 특수한 정체성만을 공고화하고 자연화할 수 있는 '언제부터', '왜' 같은 질문이 이들에게 던져진다. (중략) 이들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행위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오로지 '성적이기만 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한 동성애자는 자신의 일상에서 성 정체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2퍼센트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은 100퍼센트 성적이기만 한 존재로 취급받는다고 말한다. (pp.195-6)

 

이전까지는 가끔 등하교를 하는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탈 때 도무지 아이들의 언어를 견딜 수가 없었다. '은/는/이/가/을/를/다' 같은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건 '졸라'와 '씨바'다. 가끔은 아이들 멱살을 잡고 "울부짖지 말고 말을 하란 말이야, 이것들아" 하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아이들의 언어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냥 욕이라고 생각했던 '씨바'와 '졸라'가 아이들에게는 공감의 신호였다. 이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있음에도 다만 우리가 못 알아듣고 있었을 뿐이다. (pp.140-1)

  

 

길거리든 식당이든 연예인이 나타났다 하면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꺼내들고 일제히 사진을 찍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예인을 보면 멀찍이서 보거나 겨우 용기를 내 악수를 청하거나 사인을 부탁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요즘은 사진부터 찍는다. 대체 왜 그럴까? 아무리 대단하고 유명한 연예인이 나타났다 한들 나와 똑같은 사람, 평등한 인간인데 왜 누구는 플래시를 받는 사람이고 누구는 찍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조차 없다. 뻔뻔한 건지, 자존감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연예인 중에는 그런 시선과 관심을 불편해하는 이도 있을텐데 사람들은 그러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카메라 렌즈 앞에 놓이는 순간 연예인도 뭣도 아니고, 그저 피사체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연예인만 찍는 게 아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불꽃놀이 대회를 구경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는데, 이들 역시 하나같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시커먼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광경. 맨눈으로 보기에도 아까운 그 광경을 왜 사람들은 카메라 렌즈 너머로만 보려고 하는가. 왜 지금 당장 보지 않고 나중에 보려고 하는가. 여행지에서도,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도, 입학이나 졸업 같은 기념할 만한 때에도 사람들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않고 사진부터 찍으려고 든다. 사진. 대체 사진이 뭐길래.

  


엄기호의 2011년 저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보니 저자 역시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눈이 있어도 카메라라는 대체 감각기관 없이는 온전히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사에도 그렇게 무감각하다. 사회 지도층이 얽힌 논란에 대해서 무감각하다. 잘못된 회사 방침이나 관행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성희롱을 당해서 쫓겨나듯이 회사를 떠나는 여자 직원을 보면서 같이 싸워주기는커녕 위로도 못해줄 만큼 마음도 굳었다. '무감각증'은 오로지 저들보다 힘없고 약한 이들에 대해서만 예외다. 이제 막 들어온 인턴 사원의 오타나 지각에는 시시콜콜 지적을 하고, 커피 전문점 점원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사장 나오라며 열불을 낸다. 누구나 바쁜 출근길에 어깨를 부딪친 젊은 여자에게는 시비를 걸고 욕을 한다. 어린 아이돌 가수나 젊은 여자 연예인이 어쩌다 방송에서 말실수를 하거나 스캔들이 나면 득달같이 달려들며 훈수를 둔다. 비주류, 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주류, 소수자 문제를 무시하고 묵살했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과민반응의 시대가 왔다. 주로 표적이 되는 대상은 동성애자, 성적 소수자다.

 


동성애자, 성적 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을 동성애자를 오로지 동성애자로만, 소수자를 소수자로만 본다. 그들이 꼬박꼬박 세금도 내고 투표권도 행사하고 일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똑같은 시민이라는 사실은 보지 않는다(또는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에만 과민반응한다. 어디 이들뿐인가? 저자는 청소년 문제, 대학 문제, 20대 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10대 청소년은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집에서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형, 오빠, 누나, 언니, 동생이다. 누군가에게는 친구이며, 종교집단의 일원이고, 인터넷 카페나 팬클럽의 회원이며, 블로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10대 청소년을 그저 학생으로 규정하고, 조금이라도 학생의 본분에서 벗어나면 문제아로 낙인을 찍는다. 방황하는 대학생, 취업 못하는 20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역할로만 규정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드물다. 10대든 60대든, 여자든 남자든, 주류든 비주류든, 다수자든 소수자든, 몸뚱이 하나로 수십, 수백 개의 역할을 짊어지고 사는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누구나 똑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그들이 힘들어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감각이 없다. 무감각하다. 

 

 

대체 이 감각없음, 무감각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철학의 빈곤 때문일 수도 있고, 인문학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의 병폐 때문일 수도 있고, 뿌리깊은 사회 구조의 고착 때문일 수도 있고, 법과 제도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저자는 여기에 언어의 문제를 추가한다. 저자에 의하면 의사들이 어려운 의학 용어로 이야기를 하고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일반인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법률 용어를 섞어 이야기 하듯이 아이들은 저들의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나 판검사, 변호사가 알아듣지 못하게 말하는 것에 항의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은 꾸짖는다. 배운 사람, 가진 사람에게는 무감각하고, 만만한 사람, 못 배운 사람, 못 가진 사람들에게만 과민반응한다. 언제쯤 이들이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 중 다수는 잘못 살고 있는 것 같다. 사회의 문제, 구조의 문제, 제도의 문제를 아예 못 보고 못 들은 거라면 몰라도,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사는 거라면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쯤 내가 잘못 산 게 아니라 온전히 사회의 탓이라고 안도(?)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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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발로 찬 소녀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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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그 라르손이 열다섯 살 때 윤간 현장을 목격했다는 사실은 3부를 다 읽고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위키피디아에서 알아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나니 작품이 새롭게 보인다. 안 그래도 남성인 작가가 여성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단순히 저널리스트적인 열정 때문인지, 문학인 장치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원래 반파시즘 성향이 강한데 남성우월주의도 파시즘의 하나로 보고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였다니, 그것도 열다섯 살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 이유였다니 마음이 아프다.


위키피디아에는 그 밖에도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몇 가지 더 있었다. 스티그 라르손이 밀레니엄 3부작을 막 완성했을 때, 기자로서는 경력이 길지만 작가로서는 무명이다보니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도 부정적인 의견을 많이 들어서 편집자는 이 책이 1만 부만 팔려도 좋겠다고 했을 정도였다는데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가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스티그 라르손이 기자 출신인 건 맞지만, 입사 초기만 하더라도 글재주가 없어서 사진이나 그래픽을 주로 담당했다. 그래서 혹자는 진짜 이 소설을 스티그 라르손이 쓴 게 맞는 지 의심하기도 했다. 가장 눈길을 끈 이야기는 스티그 라르손 사후 밀레니엄의 저작권을 두고 연인 에비 가브리엘손과 스티그 라르손의 아버지, 형제 사이에 분쟁이 있었던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은 네오 나치와 인종차별자를 비판하는 기사를 써서 오랫동안 테러 위협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에바 가브리엘손과는 차마 결혼하지 못하고 사실혼 관계만 유지했다. 문제가 된 것은, 스웨덴 민법상 사실혼 관계는 상속 관계로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십년 간 스티그 라르손과 함께 동고동락한 에바 가브리엘손이 아닌 의절한 부모와 형제들에게 밀레니엄의 저작권이 넘어간 것이다. 에바 가브리엘손은 현재 밀레니엄 4부의 미완성 원고가 담긴 노트북을 (법적 권리 없이) 가지고 있는데, 팬으로서는 미완성 원고라도 좋으니 4부를 보고 싶지만, 스티그 라르손이 사랑했던 에바 가브리엘손을 생각하면 좀 더 참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시리즈물이라는 게 원래 다 읽고 나면 허탈하고 섭섭한 법이라지만, 밀레니엄 시리즈의 경우는 아쉬움이 더 큰 것 같다. 작가가 3부작까지 탈고한 뒤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 탓에 원래는 10부작으로 구상된 시리즈의 반의 반 정도밖에 보지 못한 것도 아쉽고, 3부까지의 내용이 이 정도로 방대하면서도 치밀하면 남은 7부의 이야기는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더 아쉽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와 원서, 비슷한 첩보물을 더 읽으면 아쉬움이 달래질까? 아무래도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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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발로 찬 소녀 1 밀레니엄 (뿔)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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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여러 명의 남성이 한 여성을 윤간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용감하게 뛰어들어가 그 여성을 구하면 가장 좋겠지만, 섣불리 끼어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했다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못 본 척 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스티그 라르손은 후자였다. 열다섯 살 때 스티그 라르손은 윤간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대신 두고두고 후회했다.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는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며 고통에 시달렸다. 저널리스트가 된 후에는 평생을 여성 폭력, 학대 문제에 바쳤다. 소설도 썼다. 제목은 <밀레니엄>. 여주인공의 이름은 당시 피해를 입은 여성의 이름에서 따왔다. 리즈베트. 그녀가 적어도 소설 속에서만큼은 연약한 피해자가 아닌 당당한 여전사로 살기를 바라며.


밀레니엄 시리즈의 마지막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에는 지난 1,2부에서 여전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리즈베트 외에도 수많은 멋진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3부의 줄거리는 이렇다. 2부 마지막에서 어린 시절 리즈베트의 어머니를 의식불명의 상태가 될 때까지 폭행했던 아버지 살라첸코와 마주한 리즈베트는 니더만이라는 괴력의 사내에게 폭행을 당한 뒤 땅에 묻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극적으로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진다. 겨우 의식을 찾고 회복이 된 그녀는 살라첸코가 탄 차에 불을 질렀을 때부터 지금까지 십여 년을 넘게 끌어온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그녀는 병원에 갇힌 신세. 혼자이고, 완전히 무력하다고 느끼고 있는 그녀를 위해 미카엘 볼룸크비스트와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리즈베트를 돕는 사람들 중에는 유난히 여성들이 많다. 밀레니엄의 편집장이자 미카엘의 오랜 친구인 에리카 베르예르를 비롯하여 경찰 소니아 모디그, 안보 경찰 모니카 피구에롤라, 밀턴 시큐리티 요원 수산네 린데르, 변호사이자 미카엘의 여동생인 안니카 잔니니 등이 그렇다. 하나같이 여성적인 매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머리도 좋고, 체력도 좋고, 인간성까지 좋다. 강자에게는 당당하며 약자에게는 우호적이고, 일에 있어서는 공평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롭다. 작가는 소설의 매 장(章) 앞머리에서 아마조네스를 비롯해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고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여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는데, 소설 속 여성 캐릭터들이 활약할 때마다 이 여전사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이제까지 무시되고 억압되어 온 여성의 힘과 지혜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2부가 리즈베트의 과거와 살란체코 일당, 살란체코를 비호하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파헤치며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부분이라면, 3부는 리즈베트가 살란체코 일당과 비호 세력을 응징하고 과거의 상처로부터 조금씩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재미있기로는 3부보다는 2부가 낫다. 하지만 2부와 3부가 이어지는 내용이기 때문에 2부를 읽으면 어쩔 수 없이 3부를 읽어야만 할 것이다. 2부에서 해결되지 않고 남겨진 문제들은 3부에서 거의 다 해결이 되지만, 리즈베트의 배다른 여동생인 카밀라의 행적과, 좀처럼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리즈베트와 미카엘의 사이는 해결이 나지 않는다. 3부에서 이미 스웨덴 수상까지 다 나온 마당에 10부까지 갔으면 대체 어떤 내용이 나왔을지(EU의장? 미국 대통령?) 이제는 알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연인 미만 친구 이상에서 멈춰버린 리즈베트와 미카엘의 관계만큼은 비록 알 수는 없지만 해피엔딩인 걸로 상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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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일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 인생학교 3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정지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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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다른 것도 아닌 인생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의미의 '인생학교'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 학교도(무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참여한다는 데도!) 별볼 일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시리즈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도서관 서가에 있길래 빌려온 <인생학교 - 일> 이 의외로 괜찮았다. 마침 내가 요즘 팟빵으로 듣고 있는 <벙커1 특강 - 철학박사 강신주의 다상담>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더욱 도움이 되었다. 강의 중에 좋게 말해 신선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생소하고 파격적인 내용이 많아서 철학적인 근거가 있는 분석일까, 아니면 박사님 개인의 의견일까 궁금한 때가 적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다른 학자들, 연구자들도 공감, 공유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내심 안도(?) 했다.



저자 로먼 크로즈나릭은 이 책에서 일의 의미와 잘못된 일 문화에 대해 다방면으로 고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은 직업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고, 직업 중에서도 고소득을 보장하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이자 가장 가치있는 일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직업은 일의 한 부분일뿐 일과 완전히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직업을 가진 것만으로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그마저도 경제적으로 부를 안겨주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몇 개의 직업만을 숭상하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직업교육, 적성, 심리검사, 가족, 동료집단의 영향력 등으로 직업 선택지를 좁히고, 직업윤리, 열정, 천직, 재능 같은 개념들로 인간을 워커홀릭화 한다. 일의 성과와 성취감을 중시하느라 정작 삶에서는 성과가 없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 딱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일 자체의 성취감이 아닌 내 삶의 성취감을 높이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1년 동안 30개 직업 가지기에 도전했다는 책에 소개된 사례 속 여인처럼(작년에 읽은 책 <까짓 것! 한번 해보는 거야>의 저자 대니얼 세디키는 1년에 50개 직업 가지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가능한 한 많은 직업에 도전하여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을 찾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니면 '퀴리 부인'으로 유명한 마리 퀴리처럼 그때 그때 하고 싶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에 매달리다가 최종적으로 과학자라는 자신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는 방법도 있다(그녀는 천직만 찾은 게 아니라 노벨상이라는 부상(?)까지 얻었다!). 직장에 다닌다면 취미로 조금씩 시작해보거나 휴일을 이용해서 부업을 하는 것도 좋다. 



"상어를 무서워하면 결코 진주를 손에 놓을 수 없다," 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일이라는 것도 결국 어떤 위험이나 불안을 떠안지 않고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소득이 적은 일,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 일정 학력이나 자격증을 요구해서 진입장벽이 높은 일 등등 당장 도전하기에는 어렵고 벅차 보이는 직업이나 일자리가 많지만, 하기 싫은 일만 하다가 인생을 깡그리 소비하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도전해보는 것이 백 배는 나을 것이다.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에 인생은 너무 짧고 덧없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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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통장 - 작은 돈으로 큰 병 막는
우용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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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돈을 벌기 전이라서 병원에 가면 당연히 부모님이 돈을 내주셨기 때문에 의료비에 대한 걱정을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웬만한 의료비는 스스로 충당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크게 돈 쓸 일이 없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서 큰 돈을 쓸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이 들 때가 있다. 남들처럼 몇 개씩 보험에 들 여력도 안 되고, 그렇다고 돈을 갑자기 많이 벌거나 재테크를 잘 해서 여윳돈을 넉넉하게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의료통장>이다. 제목이 <의료통장>이라서 의사나 보험 설계사가 쓴 책이 아닐까 하고 넘겨짚었는데, 저자 우용표의 이력을 보니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서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고, 현재는 기업체 임직원 대상 직무능력, 재테크 교육업체인 더 코칭&컴퍼니의 대표이자, 건국대학교 부동산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고, 한성대학교 경제부동산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는 재무관리, 재테크 전문가라고 한다. 하긴, 일반인들의 의료비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쓰인 책이니 (의료비로 먹고 사는) 의사가 썼을 리 없고, 의료비를 보험만으로 충당하지 말고 적금통장까지 들어서 대비하자는 내용이니 보험 설계사가 쓴 책일 리 없다. 비록 의사가 쓴 책도, 보험 설계사가 쓴 책도 아니지만,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두루 거친 저자의 폭넓은 경험과 경영, 재무관리 등 여러 분야에서의 전문성은 이 책 곳곳에서 빛이 난다. 글도 어렵지 않고, 의료업계와 무관한 일반인으로서 평소 궁금했던 의료계 정보와 의학 지식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총 4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의료통장의 필요성, 2부에서는 의료통장을 가지기 전에 점검해볼 것들, 3부에서는 세대별 의료통장 전략, 4부에서는 좋은 의료통장의 조건과 소득공제, 세액공제 방법 등이 다뤄진다. 의료비는 보통 청, 장년기에는 많이 들지 않다가 65세 이후 노년기에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를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에서 하는 건강보험과 사기업에서 하는 민영보험, 그외 재테크 등으로 대비한다. 공식적으로 의료비는 아무리 많이 들어도 건강보험의 급여항목 부담액 수준인 400만원을 넘지 않는다(환자의 공식적 부담액은 400만원으로 충분 p.108). 문제는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항목 금액이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턱없이 높고, 수술과 입원 등으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하는 비용과 기타 정신적, 심리적인 비용 등 기회비용까지 더하면 의료비 부담은 엄청나게 불어난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의료통장이다. 의료통장이라고 해서 별다른 건 아니다. 갑작스런 의료비 지출에 대비하여 종신보험, 실손보험에 가입된 상태에서 의료비 전용 통장을 하나 더 마련하는 것 정도다. 월 7만 7천원 정도만 부담하면 10년 동안 약 1,000만원을 마련할 수 있다. 나같은 20대 여성의 경우, 현재 소득 금액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월소득의 약 5~8%를 종신, 실손 보험료로 납부하고, 약 2~4%를 의료통장으로 모으면 된다고 한다. 거창하고 신선한 방법은 아니지만, 누구나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쉽고(은행에서 10년짜리 장기 적금을 드는 게 전부다), 무분별하게 보험을 들거나 주식, 펀드 같은 재테크 수단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면서,적금이라는 가장 안정적인 재테크 방법으로 의료비라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나도 당장 시작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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